일중독(워커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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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청춘만세의 김인선입니다. 앞으로 3년 후인 2018년에는 남한의 강원도 평창이라는 곳에서 동계올림픽이 치러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한국에 대한 소개를 인터넷 상에 올리고 있는데요, 거기에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한글’과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여자골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밖에 한국인들을 일중독자들이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일중독’이란 계속해서 일을 하는 것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게 여기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남한 사람들의 어떤 모습이 ‘일중독자’로 비추어졌는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남북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최철남, 이민경 씨가 함께 합니다.

인트로(뉴스 내용 일부 녹취)

한국이 세계 최고인 것 10가지를 소개했습니다. / 밤이면 야근하는 직장인들로 건물마다 조명을 밝히고 뒷골목은 늦게까지 직장인들의 회식으로 또 다른 불야성을 이룹니다. 긴 노동시간과 지나친 음주문화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한국의 특징으로 꼽았습니다.

진행자 : 대한민국의 특징이라고 몇 가지를 꼽아줬는데 그중에 ‘한국 사람들은 일중독이 심각하다’라고 명시를 했어요. 공감하나요?

이민경 : 네. 제일 공감하는 부분은 11시 이전에 집에 못가는 취업한 제 친구들의 모습을 봤을 때요. 그런데 거의 다 회사일이 너무 많으니까 자발적이기 보다 타의에 의해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럼 결코 좋은 의미의 일중독은 아니라는 건가요?

이민경 : 물론 회사가 너무 좋고 일이 좋아서 그런 경우도 있긴 한데 대부분 사회분위기가 먼저 가면, 되게 이상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가 조성돼있다보니까 본의 아닌 일중독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다녔던 회사가 정시퇴근이 되는 회사였어요. 그래서 중독까지는 아니었고 하던 일을 못 끝내고 가게 되면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그걸 끝내고 가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퇴근 시간이 한 시간 정도는 늦어진 적이 있는데 그것은 제가 자발적으로 남아서 한 것이라서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약속이 있음에도 상사 눈치 때문에 애타하는 것을 봤을 때 힘든 것 같아요.

최철남 : 저도 그렇게 느껴요. 왜냐하면 남한사회가 대기업도 있지만 중소기업이 많잖아요. 그런 기업들은 인력이 많지 않아서 바로바로 퇴근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도 7시가 퇴근시간인데 그 시간에 절대 못 오시고 한, 두 시간 늦는 것은 기본이고 주말에 일 나가는 것도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있는 것 같아요. 국가에서 하루 8시간으로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보통 12시간 씩 일하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6시에 퇴근하라고 하지만 상사들부터 퇴근을 안 하니까 위에 사람들 눈치를 봐야하는 거예요. 빨리 퇴근하면 승진에 불이익이 올 것 같아서 빨리 퇴근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일중독’이라기보다 ‘눈치중독’인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런데 왜 남한 사람들을 일중독자들이라고 표현했을까요? 눈에 보이는 퇴근 시간 때문일까요?

이민경 : 그런 면도 있는 것 같고, 본인이 그런 것에 길들여진 것도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남아야 할 때도 있고, 그렇게 하다가 자연스럽게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기도 습관이 되고, 그러다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발적으로 남아서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일중독자’로 보이는 것 같아요.

내레이션 : 남한 사람들을 일중독으로 판단하는 근거는 평균 근무 시간 때문인데요, 법적인 근로시간이 주당 40시간이지만 실제 근무시간은 67.2시간으로 27.2시간 더 많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취업관련 업체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2014년에 직장인 1023명을 대상으로 '일중독(워커홀릭)' 여부를 조사해봤더니 24.6%가 일중독에 빠졌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직장인 4명 중에 1명이 스스로가 일중독이라고 생각하는 결과입니다. 일중독이 된 원인에 대해서는 절반 넘는 응답자(51.2%)가 '업무가 많은 환경 등으로 어쩔 수 없이'라고 답했고, 강한 업무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34.1%)라는 답변도 상당수를 차지했습니다. 일중독에 빠진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해지는데요.

이민경 : 토요일에 보통 모임을 자주 갖잖아요. 일부러 늦게 끝나는 사람까지 고려해서 방을 잡았는데 새벽 2시에 일이 끝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를 위해서 방을 잡았으니까 끝나고 와라’ 했는데 정작 놀고 싶어도 힘들어서 놀지를 못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일요일 오전에 또 출근을 한다는 거예요. 차마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이지만 사람이 일과 삶이 균형을 잡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너무 치우치는 모습을 봤을 때, 사람들을 만나는 것마저 포기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좀 안타까웠어요. 어떻게 보면 일을 많이 시키는 회사가 대기업이거나 이름 있는 회사다 보니까 돈을 못 버는 사람들 눈에는 돈을 많이 벌고 명예 같은 것을 얻을 수는 있겠죠. 그런데 정작 그분이랑 얘기를 해보면 ‘돈만 쌓여가’ ‘돈 쓸 시간이 없어’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최철남 : 네,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은 되게 좋아서 하는 것 같아요. 일을 하는 게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찾아서 할 정도로 열정이 많으신데, 밑에 있는 사람들은 힘들어 보였어요. 그걸 보고, 일중독이라는 게 본인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점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북한에서는 일중독이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북한은 남한처럼 일을 하면 대가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집이 아닌 이상 일중독이 없는 것 같아요. 대신에 북한은 국가에서 사람들을 일중독하게 만들어요. 북한은 주말에 쉬지 않고 쭉 일하기 때문에 쉬는 날이 거의 없어요. 대신에 시간은 한국처럼 9시부터 10시까지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북한은 저녁에 전기가 없기 때문에 어두워지면 일을 못하거든요. 보통 7시, 여름에는 8시에 집으로 다 들어오거든요. 대신에 아침에 일찍 일 나가요.

이민경 : 달력에 빨간 표시가 없어요?

최철남 : 일요일 있어요. 있는데 일요일에도 쉬지 않아요. 큰 공장 이런 데는 쉬는 것 같은데 보통은 안 쉬었던 걸로 기억해요. 특히 농촌지역의 경우 겨울에는 많이 쉬지만 여름에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잘 안 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요일도 일하는데요, 사람들이 일요일에 놀아야한다는 생각이 없어요. 또 북한은 남한처럼 고차원적인 노동이 아니잖아요. 단순노동이다 보니까 그냥 기계처럼 일하고 쉬라면 쉬고 그런 쪽이라서 일중독이라는 말을 북한에서는 잘 안하는 것 같아요.

내레이션 : 남한의 경우에는 2004년 7월부터 시행된 주 5일제 근무제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는 날입니다. 업무의 특성상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한다면 평일 중의 하루 이틀을 쉴 수 있도록 하거나 일찍 퇴근하는 등 근무시간이 점차적으로 단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근무환경에서는 인력 부족과 직장 상사의 늦은 퇴근 등의 이유로 야근을 하는 등 여전히 업무시간이 긴 편인데요, 이런 현실을 남한에서는 희극의 소재로 삼기도 합니다.

노래 삽입 - 개그콘서트 중 렛잇비

사장님은 말씀하셨죠. 즐기면서 일해라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대요.

그래 나도 오늘부터 재미있게 일할거야. 이곳은 회사가 아닌 놀이공원. (자 오늘 야근이야!)

야간개장, 야간개장, 야간개장, 야간개장

이젠 그만 놀고 집에 가고 싶어요.

진행자 : 많은 직장인들이 이 노래를 듣고 공감을 하며 박수를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요, 업무량으로만 따진다면 북한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중독이 될 것 같은데 남한에서 말하는 일중독과 북한의 일중독의 차이가 있나요?

최철남 : 북한이랑 남한이랑 확연히 다른 게 북한은 말 그대로 단순노동이잖아요. 머리 쓰는 노동이 거의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몸이 많이 힘들죠. 가장 다른 점이라면 북한은 시켜서 하고 남한은 자기가 알아서 하잖아요. 회사에서 시키기는 하지만 자기가 선택한 직업이잖아요. 같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북한이 생산량이 적은 이유가 사람들이 일을 잘 안하기 때문이에요. 여름에는 더워서 12시에 점심 먹으러 들어와서 밥 먹고 낮잠 자다가 2시까지 나가야 하는데 3시까지 나가서 일하다가 놀고 이러다 보니까 생산량이 적어요. 대신에 공사판, 발전소 건설소로 가게 되면 장군님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군대처럼 노동의 강도가 세요. 사람들도 많이 죽기도 해요. 그런 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남한이 천국이라 생각하죠. 그런데 남한의 일들은 머리 쓰는 일들이 되게 많아요. 그러다보니까 남한 사람들이 일 하는 게 많이 고달파 보여요. 북한에 비해 몸은 편한데 정신적으로는 약간 고달프지 않나 생각해요.

이민경 :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듯이 그렇게 일을 하면 할수록 야근 수당으로 돈을 더 많이 주니까요. 그걸로 자신이 나중에 가족들과 여행도 갈 수 있다거나 일한만큼의 보상도 더 크게 받을 수 있는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또, 일중독 문제들이 한국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보니까 각 회사별로 ‘문화를 조금씩 바꿔가자’ 이런 이야기들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 제작하는 일을 했었는데요, 저희 회사 같은 경우에도 ‘문화 데이’라고 해서 사장님이랑 전 직원이 같이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연극표가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한 지원을 해줘요. 많은 영감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보니까 어떻게 보면 일의 연장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장님이 계획하신 것 같아요. 사장님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게 불편하기도 했지만 저는 되게 좋았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애사심도 더 생기게 되는 계기가 됐었던 것 같아요.

내레이션 : 민경 씨가 다녔던 회사처럼 남한의 많은 기업에서는 업무환경의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기업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도 변화하고 있는데요, 금전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하던 일에서 자기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그 일에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연봉을 우선시해서 직업을 선택하는 청춘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자신의 실질적인 꿈을 찾는 청춘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민경 : 어떻게 보면 요즘에 주변의 애들이 무조건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선호하기보다는 되게 특이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골에 가서 갑자기 배추농사를 짓겠다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당신들이 살아왔던 삶과 너무도 다른 길을 가려고 가는 애들을 보면 한심해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서 많이 부딪치는 경우도 봤거든요. 지금 남한사회가 과도기적인 상황에 있다는 것이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금전적인 것도 사람에게 중요하지만 자아실현을 하는 만족감이 주는 것도 크잖아요. 만족감이야말로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최철남 : 저도 같은 생각인데요, 지금 하고 있는 ‘나우’ 활동 같은 경우에는 가치관이 없으면 못해요. 금전적인 보상을 받겠다고 하면 당연히 실망하겠죠. 그런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했다는 자기만족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불평불만 없이 활동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구출해 준 한 명이 남한에 와서 ‘나우’ 활동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진행자 : 남한에서는 일중독에 빠지는 분야가 두 가지 라는 거죠? 금전적인 보상이 가능한 일중독과 나의 자아실현이 가능한 일중독. 지금 남한에서는 과도기로 많이 변화하고 있는데요, 이런 부분 때문에 탈북하신 분들이 적응을 못하는 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때요?

최철남 : 그런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 열심히 일했던 사람도 많지만 놀다온 사람도 많은데 남한에 왔잖아요. 남한의 일이 북한의 일보다 훨씬 쉽기는 해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더 일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국가에서 어느 정도 정착금을 주잖아요. 그 돈이 북한에서는 만져보지 못한 큰돈이고 남한에서는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일하는 것보다 놀 수 있다는 게 더 강해요. 북한에서 못해봤던 것들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강하다보니까 그 돈으로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일하는 사람보다 일 안하는 사람이 더 많죠.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고, 북한에서 억압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자유와 돈이 주어지니까 굳이 나가서 일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북한에서의 행복은 오늘 당장의 먹을 것과 땔감이 있으면 되니까요. 남한에서 의식주가 해결됐으니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거죠. 그런데 요즘 탈북한 사람들은 오자마자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남한사회에서 적응하고 잘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강한 것 같아요.

내레이션 : 남한의 대표적인 특징 중에 하나로 꼽힌 ‘일중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일중독을 부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지만 남한의 사회를 빠른 속도로 발전시킨 원동력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공존합니다. 아직은 일부이지만 자신만의 분야에서 일중독자가 되고 있는 남한의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청춘만세,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