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2) 졸업은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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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전해드리는 시간입니다. <청춘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북한에서는 3월에 졸업식이 있다고 하죠? 남한은 요즘 학교마다 졸업식이 한창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부터 이 졸업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는데요.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의 졸업식 분위기도, 졸업의 의미도 상당히 다릅니다. 남한에서 생활하는 세 청년들은 졸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졸업 뒤에 무엇을 희망하는지 계속해서 얘기 나눠보죠. 먼저 이 시간을 함께 할 세 청년을 소개합니다.

클레이튼 : 안녕하세요. 다들 저 누군지 알고 계시죠? 미국 켄터키 주에서 온 클레이튼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온 지 6년 됐고, 지금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서른 한 살입니다.

가연 : 안녕하세요, 이가연입니다. 북한 황해남도에서 살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5년 됐어요. 나이는 서른 살이고, 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형연 : 안녕하세요. 박형연이고, 스물일곱 살 학생입니다. 졸업 앞두고 요즘 열심히 취업 준비하면서 두 번째 인생을 위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나라마다) 졸업식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아무래도 졸업의 의미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북한에서는 직장을 강제로 가야 하거나 군에 입대하거나... 내가 뭔가를 시작하거나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길을 가야 하는 거죠?

가연 : 네, 정해진 삶을 따라가야 하니까 그런 것들이 정말 힘들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너무 슬프더라고요. 저는 대학 시험을 봤는데요. 졸업을 앞두고 대학을 가려던 건 아니고 원래는 군에 입대하려고 했어요. 집이 형편이 안 좋아서 내 입이라도 덜자고. 그런데 군대에서도 떨어졌거든요. 북한에서는 여자의 경우 키가 157cm부터 군에 갈 수 있어요. 키는 됐는데 몸무게가 영양실조로 미달이었어요.

진행자 : 실례지만 그 당시 몸무게를 물어봐도 될까요?

가연 : 키는 158cm, 몸무게는 36kg이었어요.

진행자 : 가연 씨가 몸무게 얘기했을 때 형연 씨와 저는 입을 떡 벌리고 있었거든요. 어떻게 그런 숫자의 몸무게가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이건 날씬한 게 아니라 깡마른 거죠.

형연 : 영양실조가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진행자 : 지금은 대략 어느 정도예요?

가연 : 50kg 넘어요. 예전에 좀 더 나갔는데, 공부하면서 신경을 쓰다 보니까.

진행자 : 키는 똑같잖아요?

가연 : 네, 키는 같아요.

형연 : 지금에서 반 정도?

진행자 : 상상이 안 가는 몸무게. 안 먹은 게 아니잖아요?

가연 : 그렇죠, 먹을 게 없어서 못 먹은 건데. 그래서 그때 대학시험을 봤어요. 남한에서는 수능 보고 내신으로 대학을 가는데, 북한에서는 5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해요. 그것도 저는 못 가게 됐던 거죠. 그래서 졸업 자체가 저에게 너무 힘들었어요. 직장을 찾고 있는데 당에서 묘목 키우는 직장에 가라고 파견장이 날아온 거예요. 저는 거기 적성도 안 맞고.

진행자 :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렇게 정해진 곳에 가서 일을 하거나 군대에 가야 하는 거죠? 그러면 졸업이 다가오면 참 암담하고, 오지 않길 바라겠네요.

가연 : 네.

진행자 : 졸업이 한자잖아요. 뜻을 보면 어떤 일을 마친다는 의미인데 북한에서는 고등 중학교를 마치면 군대나 강제로 일터에 가야 하기 때문에 오지 않길 바라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요즘 남한에서도 대학생들이 비슷한 기분일 것 같아요.

형연 : 그렇죠, 졸업을 하긴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요즘 남한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고 매체에서 얘기하곤 하니까 일자리 찾는 것도 쉽지 않고. 그래서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나는 것에 머뭇거리죠. 졸업유예라는 말이 생겨났는데요. 4년 공부 다 하고 끝났는데 졸업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일단 신분은 학생이니까 안정감을 느끼는 거죠.

진행자 : 어쨌든 남한에는 취업난이 있잖아요. 그런 면은 있죠, 내가 대학까지 졸업했는데 이 정도 직장은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취업난이 더해지고 있죠. 졸업하고 '취업 준비생이예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아직 '대학생이에요'라고 말하는 게 더 편하니까 졸업을 안 하는 거예요. 공부는 다 끝났고 졸업식만 안 하는 거죠. 등록금은 내나요?

형연 : 보통 안 내요. 아니면 학교별로 등록금의 10% 안 되게.

진행자 : 그러면 300달러 정도를 내고 학생의 신분을 유지하는 거네요.

가연 : 그런데 남한 친구들이 취업 때문에 졸업을 미루는 게 행복한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북한에서는 무조건 졸업을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없고, 특히 남한에서는 대학을 모두 선택해서 가는데 북한에서는 대학을 선택해서 갈 수도 없고, 하고 싶은 공부도 못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남한 청년들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일자리도 보면 많은데, 안 하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진행자 : 아무래도 고등학교에서 80% 이상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내가 대학까지 나와서 이 일은 할 수 없다, 월급이 조금 더 많고 복지가 좋은 곳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형연 : 그런 것도 있고, 자기가 정말 뭘 원하는지 모르는 친구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연기자가 되고 싶은데 공부해 온 건 경영인 거예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시간을 다 보내고 선뜻 아무것도 결정을 못 하고. 북한만큼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남한도 짜인 길이 있어서 자기에 대한 고민도 많이 안 했는데 막상 사회로 나가서 내가 먹고 살길을 선택하려니까 그걸 잘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더라고요.

클레이튼 : 미국은 취업준비생 없습니다. 남한에 처음 왔을 때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대학에서 4년 정도 공부했는데 졸업하지 않아요. 계속 도서관 가서 공무원 시험 공부하고, 영어 공부하고. 미국에서는 4년 과정 마치면 무조건 졸업합니다.

진행자 : 형연 씨도 말했지만 남한에서는 자기의 꿈보다는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다 보니까 일단 다니고, 졸업할 때쯤 '나 뭐하지?'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죠.

지금 형연 씨가 졸업을 유예한 거잖아요. 졸업 후에는 어떤 걸 계획하고 있나요? 남한과 미국의 졸업이 북한과 다른 것은 졸업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건데, 어떤 새로운 시작을 꿈꾸고 있기에 졸업을 미루고 있나요?

형연 : 사회생활로 일을 시작하면 그 방향을 바꾸는 게 쉽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방송계 일했다 금융계에서 일할 수 없죠. 제가 확신을 갖고 이쪽으로 쭉 가야지 라는 게 부족했어요. 그래서 그런 걸 찾고 경험도 해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고요.

진행자 : 남한에서는 솔직히 많은 대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할 거예요. 등록금이 굉장히 비싼데 졸업할 때쯤에는 '나 뭐했나?' 생각하는 거죠.

클레이튼 : 미국도 그래요(웃음). 특히 제가 원래 직업 군인이 되고 싶었는데, 교통사고 때문에 포기했어요. 졸업하고 나서 켄터키 집에 가서 6개월 동안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못 찾아서 '왜 대학교 다녔지? 그동안 뭐했지?'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등록금 너무 아까웠어요.

진행자 : 4년 동안 몇 천 만 원의 돈을 내면서 엉뚱한 걸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클레이튼 : 엄마, 아빠 죄송합니다(웃음).

형연 : 갑자기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웃음).

진행자 : 가연 씨는 확실히 다르잖아요, 북한에서의 졸업과. 앞으로 3년을 더 다녀야 하긴 하지만, 졸업이 다가올 때에는 어떤 걸 계획하고 있을까요?

가연 : 일단 저는 글쟁이가 되고 싶어요. 직장은 자주 옮길 수도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꿈은 꼭 간직하고 싶습니다.

진행자 : 가연 씨가 원래는 다른 걸 공부했죠?

가연 : 행정학을 공부했는데 그때는 남이 시키는 걸 했어요. 행정학을 공부해야 취직도 잘 되고,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제가 걱정돼서 그렇게 말해 준 것 같아요. 가족도 없이 혼자 남한에 오다 보니까. 학점도 좋았어요. 장학금을 1년에 8백만 원씩 받았는데 돈을 받을 때만 행복하더라고요. 이게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구나! 그런데 글을 쓸 때 행복하더라고요. 글을 잘 쓸 줄은 모르지만, 시를 쓸 때 좋고, 남의 시를 읽거나 들을 때도 좋아요. 그래서 학교를 옮겼어요. 성적은 무척 안 좋은데, 정말 행복해요. 제가 좋은 걸 선택했을 때 행복이 유지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행자 : 형연 씨 이 얘기 들으면 생각나는 거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는 전공, 이런 걸로 남한 친구들도 항상 고민하거든요.

형연 : 멋지세요!

진행자 : 지금 벌써 두 권의 시집을 냈어요.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하지만 꿈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에요. 남한에서는 특히나. 그래서 부모님들이 '내가 살아보니 꿈만으로는 안 되더라. 그러니까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는 그런 전공을 공부하라'고 하죠.

클레이튼은 어때요? 졸업했잖아요, 선배로서 한 마디 부탁해요.

클레이튼 :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졸업하고 싶었어요. 돈 벌면서 여기저기 여행하고 싶었는데 일 하다 보니까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자유로운 생활 누리고 싶어요. 진짜 부러워요. 지금 돈이 있지만 자유는 없습니다.

형연 : 돈이 있지만 시간이 없고, 저는 그 반대고(웃음).

진행자 : 두 사람은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았잖아요. 졸업 때까지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 동안 어떤 걸 이루고 싶나요? 자기가 한 만큼 졸업 후에 이룰 수 있는 거잖아요.

가연 : 일단 저는 글을 쓰고 싶어요. 중편 소설을 하나 내고 싶어요. 그걸 지금 쓰고 있고, 졸업 전에 출간하기로 목표를 세웠습니다. 북한에서는 그런 꿈조차 꿀 수 없었거든요. 먹고살기도 힘드니까. 대학에도 가고 싶었는데 북한에는 장학금 제도가 없어서 공부할 수 없었는데 남한에서는 장학금 제도가 있어서 글을 쓰면서도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셔서 그 꿈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형연 : 저는 올해 8월 졸업을 계획하고 있거든요. 작년에는 취업 준비하면서 잘 안 되니까 많이 위축됐어요. 하지만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올해 상반기에는 일을 시작한 이후 내 삶이 어떨지, 미래를 기대하고 좀 더 준비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진행자 : 클레이튼이 조언을 한 마디 해준다면?

클레이튼 : 열심히 하세요(웃음).

진행자 : 네, 오늘 졸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봤습니다. 남한과 북한, 미국의 졸업식 문화는 물론이고 그 의미도 다른데 북한에서도 끝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할 수 있는 졸업식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고요.

다 함께 인사드리면서 이 시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 함께 :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진행자 :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