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먼저 이 시간을 함께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할게요.
클레이튼 : 안녕하세요, 미국 켄터키 주에서 온 클레이튼입니다. 한국에 거주한 지 7년 됐고, 한국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예은 : 안녕하세요, 강예은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제가 살아갈 세상과 통일 한반도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많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 이해를 넓혀갔으면 좋겠습니다.
광성 :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회사 다니고 있는 정광성입니다.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시고, 남한에 온 지 11년 됐습니다. 북한 청취자 여러분을 위해 좋은 소식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단어 '덕후'에 대해 지난 시간부터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덕후'는 일본어인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오덕후', 더 줄여서 '덕후'라고 표현하는 건데요.
보통 무언가를 많이 좋아해서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가에 가까운 지식을 갖추고 또 많은 돈을 들여 수집하고 관람하고 직접 찾아가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덕후'에서 파생된 단어도 많은데요. 덕후들이 하는 행동을 '덕질', 덕후가 되는 것을 '입덕', 덕후 활동을 접으면 '탈덕', 내가 덕후라고 세상에 알리는 걸 '덕밍아웃'이라고 합니다. 최근 남한에서는 취미활동을 심도 있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덕후들이 꽤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방송에서도 덕후인 배우나 가수들을 소개하곤 하는데요. 북한은 어떤가요? 청년들의 얘기, 계속해서 들어보시죠.
진행자 : 이제 북한 청취자들께서 덕후라는 표현에 대해 이해는 하셨을 거예요. 무언가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인데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이색 덕후를 좀 더 소개해 볼까요?
예은 : 만화 등장인물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에는 연예인들이 덕후라고 많이 밝히는데 '도라에몽'이라고 일본 만화영화 주인공 덕후라고 말한 사람도 있어요.
진행자 : 집에 도라에몽 인형이 쌓여 있더라고요. 어떤 연예인은 신발 덕후여서 집에 500켤레 이상의 신발을 소장하고 있던데요. 예전에는 방송에서 덕후가 나왔을 때 좀 부정적으로 보여줬다면 요즘은 오히려 덕후 문화를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것 같아요. 방송에서 재밌게 보여줘서 덕후로 나온 연예인들이 이후에 더 잘 되더라고요.
예은 : 네, 기계 덕후도 있어요. 신형 휴대전화나 노트북이 나오면 다 사는 거예요.
진행자 : 그것도 먼저 사야죠, 내가 가장 먼저 써봐야 하니까. 공연 쪽에서도 뮤지컬이나 연극은 두 달 정도 공연을 하잖아요. 덕후들 중에 첫 번째 공연을 제일 앞줄에서 봐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공연은 사람이 하는 거라서 매일 조금씩 달라지잖아요. 회전문 관객이라고 해서 들어갔다 나오는 게 아니고 또 들어가요. 몇 편씩, 50회를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클레이튼 : 미국에는 총 덕후가 있어요. 총을 수십 개 갖고 있어요.
광성 : 저도 미국에서 봤어요. 집에 아버지랑 아들 총이 각각 50자루씩 100자루가 있는 거예요. 정말 다양한 총이라서 중대를 만들어도 되겠더라고요.
진행자 : 미국에서는 총을 소장할 수 있으니까 여러 종류를 갖고 싶은 거겠죠. 클레이튼도 운동이나 자전거 덕후 아닌가요?
클레이튼 : 부자였으면 자전거 몇 대 정도 갖고 있을 텐데(웃음). 가끔 친구들이랑 자전거를 같이 타는데 덕후들은 일반 자전거가 아니라 신형에 장비도 다 갖춰야 하고. 만 달러 이상 나가는 자전거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광성 : 저처럼 방송 좋아하는 사람은 모르겠는데 모형 등 뭔가를 사야하는 사람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진행자 : 사실 덕후는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힘들죠.
진행자 : 지금까지 들으면서 '아, 나는 무엇의 덕후일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북한에도 덕후라는 표현은 없겠지만, 무언가를 많이, 지나치게 좋아하는 분들이 있을까요?
광성 : 많아요, 제 친구는 우표를 모았어요. 돈을 주고 사지는 못하니까 편지봉투에 있는 걸 떼서 소장했고. 저는 만화책 덕후였어요. 다람이와 고슴도치를 좋아해서 만화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아쉬웠던 건 도서관에 가야만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3~4회는 학교 끝나고 도서관에 갔었던 기억이 나요. 사고 싶었지만 비쌌고, 인민학교 3학년 때라 돈도 없어서 못 샀어요.
진행자 : 실질적으로 일반 사람들은 힘들겠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돈을 들여가면서 뭔가 덕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광성 : 지금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없지 않았을까. 뭔가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으니까요.
예은 : 사실 덕후가 취미생활을 심도 있게 하는 거잖아요.
광성 : 그렇죠, 슬픈 얘기지만 취미생활을 할 여유가 없으니까. 지금은 남한 영화를 모은다거나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모으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진행자 : 아마 광성 군이라면 송혜교 씨 나오는 드라마를 다 모으고, 연도별로 어떤 작품이 있었나 다 외우겠죠(웃음).
방금 외운다는 말에서 생각났는데, 그렇게 따지면 북한에 계신 분들은 모두가 무언가의 덕후이긴 하죠.
광성 : 그렇죠, 김일성 일가의 덕후죠. 의도치 않았지만 덕후일 수밖에 없죠.
진행자 : 다 보고, 완전히 다 외우잖아요.
광성 : 내 생활에 묻어나고, 어디를 가나 있어요. 그들이 몇 년도에 어디 가서 뭘 했는지도 알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슬프네요, 그런데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진행자 : 광성 군이 말한 것처럼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취미생활이 힘들잖아요. 또 취미생활에서 이른바 덕질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사실 덕후들 중에 수입의 절반을 덕질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렇게 따졌을 때 김 씨 일가에 대해서는 모두들 자기 시간과 돈도 들이잖아요.
광성 : 안 하면 처벌이 있으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죠.
예은 : 반면에 고 김정일 위원장 같은 경우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고 해요. 영화 덕후가 아니었을까.
광성 : 남한 영화나 음악을 좋아했어요. 술도 좋아해서 전 세계 술을 소장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요트도 좋아해서 계속 사들였고요. 규모가 완전히 다르죠, 인민들은 사소한 것도 못하게 하면서.
예은 : 정말 대조적이네요.
진행자 : 김정은 위원장도 덕후잖아요.
클레이튼 : 네, 농구 좋아하더라고요.
진행자 : 농구뿐만 아니라 디즈니 영화 등장인물 덕후지 않나요?
광성 : 아마 북한 텔레비전에서 최초로 공개됐을 거예요. 미키마우스라고 미국 만화영화 캐릭터죠. 미국 만화영화에 나오는 다른 주인공들도 나왔어요.
진행자 : 미키마우스가 뭔지 일반인들은 모르죠?
광성 : 모르죠.
진행자 : 커다란 생쥐 탈을 쓰고 무대에 섰잖아요. 그 쥐들이 미키마우스죠.
광성 : 미키마우스라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미키마우스 그림이 새겨진 옷이 있었고, 요즘 텔레비전이나 사진을 보면 평양에서 미키마우스 그림이 그려진 가방을 들고 있는 어린이도 보이더라고요.
진행자 : 미국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예요.
클레이튼 : 그때 미국 뉴스에서 다들 새로운 변화가 있는 거 아닌가 보도했어요.
진행자 : 미국 거니까. 올해 신년 행사에서도 미국 만화영화 주제곡을 10여 곡 연주했잖아요. 만화 영화 화면까지 보여주면서. 쿵푸팬더, 라푼첼, 인어공주 다 나왔어요. 그것도 뭔지 모르실 거예요.
광성 : 모르죠, 저런 게 있구나 생각할 뿐이지 저게 미국 것인지 남한 것인지.
진행자 : 미국의 주요 만화 영화 주제곡을 연주한 겁니다.
남한에서 마흔 살의 남자 배우가 어떤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집안 1/3 가까이 채우는 모습이 좋게 보면 좋고, 나쁘게 보면 '아휴 뭐냐' 생각할 수 있는데 한 나라의 지도자가 만화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공식적인 자리에 등장하게 하는 모습이...
예은 : 좀 우스꽝스러워요.
광성 : 북한 안에서 보는 사람은 모르죠, 신기할 뿐. 인민들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지 김정은이 좋아서 무대에 세운 건 모를 거예요.
진행자 : 어린이를 위한 무대라고는 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 미국뿐 아니라 남한의 많은 매체들도 김정은이 디즈니 덕후라는 식으로 기사를 썼거든요.
광성 : 새롭게 변화하는 것 아니냐,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개방의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많았는데 그건 전혀 아니었던 거죠. 그냥 자기가 좋아서.
진행자 : 단순히 덕후인 거죠.
예은 : 개인적으로 덕밍아웃 하셨네요(웃음).
진행자 : 안타까운 것은 사실 남한처럼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면 이른바 모두가 덕질을 할 수 있는 문화라면 우리나라 지도자가 저런 걸 좋아한다고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광성 씨가 말한 것처럼 일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하는데 본인만, 그것도 주적이라고 말하는 미국의 것들을 무대에 공개적으로 올리면서 언급만 하지 않은 거잖아요.
광성 : 그런 것도 있고, 미국의 농구선수를 초청해서 친선경기도 열었어요. 이상하잖아요, 주적이라면서 미국의 농구선수를 데려다가 자기 생일날 농구잔치를 벌이고. 말이 안 되는 거죠.
클레이튼 : 그때 미국 사람들이 '우리 북한 대사 생겼다,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우리 북한 대사다'라고 농담했어요(웃음).
광성 : 처음에는 혼자 방문했는데 나중에 김정은 생일에는 선수들을 데리고 가서 평양에 있는 농구선수들과 친선경기를 했어요. 그 자리에서 로드먼 선수가 한국어로 생일 축하 노래까지 불렀어요.
클레이튼 : 로드먼이 보통 선수와 다르게 염색 특이하게 하고 귀걸이도 엄청 많고 옛날에 여자 옷 입고 사진 찍은 적도 있어요. 문신도 많고.
광성 : 북한 주민들도 아실 거예요. 미국 선수들이 칭송의 마음으로 와서 경기를 한다는 식으로 방송이 됐거든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은 선수예요. 그런데도...
진행자 : 전에 예은 씨가 말했잖아요, 덕후의 자질 중 하나. 논리와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광성 : 김정은이 어렸을 때 스위스에서 공부하면서 농구를 굉장히 좋아했대요. 그 선수를 많이 좋아해서 결국 북한으로 불러들인 거고, 그야말로 급이 다른 거죠.
진행자 : 그러니까 북한에서 김 씨 일가는 남한으로 치면 덕후 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일반 주민들에게는 김 씨 일가에 대한 덕후만 허용을 하고 보편적인 다른 것들은 못하게 하는 셈이네요.
광성 : 그렇죠.
'덕후'라는 단어는 없지만 북한에도 덕후문화가 있기는 하네요. 특정 인물들만 누리거나, 어떤 것에 치우쳐 있어서 아쉽지만요. 다음 시간에는 요즘 남한에서 왜 덕후문화가 주목받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 나눠볼게요.
<청춘 만세>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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