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 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먼저 이 시간을 함께 할 세 청년을 소개합니다.
클레이튼 :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 온 클레이튼인데 남한에 온 지 6년 됐습니다. 지금 한국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일곱 살이고,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강예은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있어 이렇게 함께 하게 됐습니다.
광성 : 안녕하세요, 정광성입니다. 저는 2006년까지 북한에서 살다 탈북했습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북한전략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청춘 만세> 이렇게 세 청년과 함께 지난 시간부터 '이름'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북한 사람들의 이름이 너무 강하거나 조금 촌스럽게 들린다는 얘기였는데요. 이런저런 이유로 남한에 온 북한 사람들은 이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물론 남한 사람들도 개명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왜 바꾸는 걸까요? 북한에서는 강제로 이름을 바꿔야 할 때도 있다고 하죠? 자, 이름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 계속해서 들어보시죠.
예은 : 궁금한 게 북한에서는 김일성 가족들 이름은 사용하면 안 된다고 들었어요. 예를 들면 일성, 정일, 정은.
진행자 : 그렇군요. 북한에 (한 명 외에는)없는 이름이 있네요. 남한에는 있어요.
클레이튼 : 정은 엄청 많아요!
광성 : 제가 오늘 퀴즈 내려고 했는데(웃음), 아예 사용할 수 없게 돼 있어요.
진행자 : 김 씨 일가의 다른 이름도 있잖아요. 에릭 클랩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죠?
광성 : 김정철은 북한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예요. 남한에서는 아는데 북한에서는 김정철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요.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이름은 상관없어요.
예은 : 그럼 이름에 있는 한자도 못 따오는 거죠?
광성 : 한자는 써요. 제 이름의 '성' 자도 김일성의 '성' 자와 같아요.
진행자 : 그런데 예를 들어 김정은 위원장보다 먼저 태어나서 그 이름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광성 : 바꿔야 해요. 무조건 강제로 바꿔야 돼요.
진행자 : 남한의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름이 같은 사람 정말 많았거든요. 남한에서는 굳이 바꾸지 않습니다. 왜 바꿔야 하는 거예요?
광성 : 북한에 유일영도체제, 유일사상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유일한 존재여야 하니까.
진행자 : 버락 오바마는 어떤가요? 이름이 특이하긴 하네요.
클레이튼 : 대통령 말고 다른 사람은 그런 이름 안 갖고 있을 것 같은데요.
진행자 : 대통령 인기가 많아서 내 아이 이름을 버락 오바마로 지어야겠다면?
클레이튼 : 지을 수 있어요.
예은 : 북한에서는 이름 짓는 데 자유로운 건 아닌 거네요.
광성 : 또 있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인데 남한에서는 '자' 자를 쓸 수 있잖아요. 영자, 미자, 순자. 북한에서는70년대에 강제로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아예 그 글자를 못 쓰게 했대요.
진행자 : 아, '자' 자가 일제강점기 때 '~꼬'로 불리는 일본식 이름이죠.
예은 : 북한에서는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명이 자유롭지는 않은 거예요?
광성 : 보통 못하고, 안 하죠. 굳이 할 필요가. 남한에서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나중에 커서 촌스럽다고 생각되면 바꾸잖아요. 북한에는 그런 게 없어요.
예은 : 이름으로 놀리는 것도 없어요?
광성 : 많죠, 그런데 놀린다고 해서 굳이 바꾸지는 않아요.
예은 : 예전에 남한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어요. 저희가 생각하기에 '삼순'이라는 이름이 너무 촌스럽잖아요. 그래서 여자 주인공이 그 이름을 갖고 살면서 겪어온 마음고생들로 나중에는 개명을 한다는 내용이거든요. 그 드라마를 보고 개명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았고, 그동안 이름으로 고생했던 사람들이 법원에 가서 개명을 많이 신청했대요. 그래서 1990년대에 1~2만 건이라면 요즘은 16만 건이라고 하더라고요.
진행자 : 사실 이름을 바꾸면 범죄자 같은 경우는 찾아내기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이름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는데, 2005년에 대법원이 사실상 개명을 허용하면서 해마다 10만 명 정도가 개명을 신청한다고 해요.
광성 : 북한에서 오신 분들도 이름을 많이 바꾸죠. 일단 촌스럽다는 이유, 다음으로는 남한에서 이름이 알려지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신변이 위험하기 때문인데. 그런데 대부분은 촌스러워서 바꾼다고 하더라고요.
진행자 : 바꿨는데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바꾸고 싶은 분들도 있지 않을까(웃음). 남한의 유행이라는 게 있으니까.
광성 : 주변에 바꾼 사람들이 많은데 적응이 안 돼요.
예은 : 자기 이름이 한순간에 바뀌면 이상할 것 같아요. 제 친구도 작명소라는 곳에서 돈을 내고 이름을 지었어요. 사주를 보고, 이름에 기운이 있다, 이름을 잘 지으면 복을 받는다... 한국에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광성 : 북한에도 있어요. 공식적인 작명소는 없지만 점을 보는 사람들한테 부탁해서 지어요.
클레이튼 : 너무 웃기지 않아요?
진행자 : 미국에도 운을 말해주는 사람 있잖아요.
클레이튼 : 있긴 있는데 이름까지 짓는다는 건 처음 들었어요.
진행자 : 그런데 외국 사람들 중에도 유명 가수나 배우들은 이름 많이 바꾸잖아요. 그런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
클레이튼 : 그것보다는 평범한 사람이 유명해지면 예전 이미지, 모습 버리고 다른 느낌 전달하고 싶어서 그래요.
광성 : 서양 같은 경우는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많이 쓰잖아요. 그렇게 보면 남북한도 토속신앙 때문에 이름을 바꾸기도 하는 게 아닐까.
진행자 : 그럴 수 있죠. 왜냐면 이름 자체에 뜻이 있잖아요. 뜻은 좋게 만들었는데 부르는 어감이 이상할 수도 있고, 뜻 자체가 사주 등과 맞지 않거나 그래서 집안에 누가 아프다거나 나쁜 일이 생긴다거나. 특히 사업하는 사람들이나 연예인들이 많이 바꾸는 것 같아요.
클레이튼 : 상상할 수 없어요. 몇 년 동안 사람들이 저를 클레이튼이라고 불렀는데, 오늘부터 밥이라고 불러(웃음). 너무 이상하고, 정체성 잃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 : 그런데 그 친구들한테는 자격지심이라 이름 하나를 바꿔서 굉장히 떳떳해지는 거죠.
예은 : 제가 재밌는 이름들을 알아봤는데 김노동, 이학교, 장려상, 제 지인 중에는 교수나 시인이라는 이름도 있어요. 그리고 이건 욕처럼 들리는 김시발이라는 이름도 있더라고요(웃음). 이런 이름들은 아무리 부모님이 지어주셨어도 바꾸고 싶을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런가하면 남한에는 요즘 왜 아빠 성만 따라야 하느냐며 아빠, 엄마 성을 같이 넣는 사람도 있잖아요. 윤김하정 이런 식으로. 그런 것도 신기했을 것 같아요.
광성 : 엄청 신기하죠. 북한에서는 상상 못해요. 당연히 아빠 성을 따라가야 하고. 남한에서는 엄마 성도 따잖아요.
진행자 : 예를 들어 이혼하거나 할 경우에.
광성 : 북한에서는 엄마 성을 못 따고 이혼을 해도 무조건 아빠 성을 따라가야 해요.
클레이튼 : 미국에서는 항상 아버지 성을 따라가요. 결혼할 때 여자들도 남편 성을 따라요. 그런데 연예인이나 방송인은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진행자 : 그러면 클레이튼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면 한국에서는 본래의 성을 갖고 있는 거고, 미국에 가면 클레이튼 성으로 바꿔야 하는 거예요?
클레이튼 : 당연하죠(웃음).
진행자 : 그리고 요즘은 세계적으로 활동하잖아요. 대학 때 영어학원을 다닐 때 자꾸 영어이름을 만들라는 거예요.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는데 예전에 영국 어학원에서도 영어이름을 만들라고 하기에 '내 이름이 하정인데 왜 바꿔야 하느냐'고. '하정은 이름에 자부심이 많구나!' 하더라고요. 클레이튼한데 한국 이름 만들라고 하면?
클레이튼 : 없는데, 대부분 친구들이 클이라고 불러요.
예은 : 만든 적 없어요?
클레이튼 : 고민했는데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안 만들었어요.
진행자 : 똑같은 거죠, 내 이름은 하정인데 다른 사람들이 영어 이름으로 부르면 내가 아니잖아요.
예은 :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배울 때 학원이나 해외에서 외국이름으로 많이 바꿔요. 저도 있었어요. 너무 많아서 기억도 안 나요(웃음). 제가 러시아에 갔을 때도 러시아 이름으로 바꿨거든요. 왜냐면 그쪽 사람들도 제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해서 소냐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겠네요.
진행자 : 그래서 요즘 이름 지을 때 필립처럼 한자로도 쓸 수 있고 영어로도 쓸 수 있는 이름으로 짓거나 아니면 발음하기 쉽게 받침이 없는 이름을 많이들 짓는대요.
클레이튼 : 제가 초등학교에서 영어 가르쳤는데 그때 진짜 놀랐어요. 출석부에 홍에스더가 있는 거예요.
진행자 : 에스더는 천주교 세례명일 거예요.
예은 : 그리고 이름이 엄청 긴 사람들도 있어요. '황금독수리세상을놀라게하다' 이게 이름이에요. 황 씨고 나머지가 이름이에요.
진행자 : 이름이 숫자 '0'인 사람도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아빠가 개명을 못하게 해서 고민이라고 사연 신청을 한 거예요. 특히 남한은 요즘 다 전자화가 돼 있으니까 글자가 아니라서 인식을 못한대요. 그래서 자기는 유령인간이라고.
예은 : 남한에서 유행하는 이름을 갖고 북한에 간다면 북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요?
진행자 : 요즘 북한에서도 남한 드라마 많이 보니까 '저 이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광성 : 글쎄요, 말씀 하신 것처럼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봐서 바뀐 것 같더라고요.
예은 : 그래서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 친구들 보면 특히 여자들은 예쁜 이름이 정말 많아요. '이 시대 유행하는 이름을 그 친구들도 예쁘다고 생각하는구나' 싶더라고요.
광성 : 남한에 와서 대부분 바꿨어요(웃음).
진행자 : 여러분도 각자의 가치관이나 집안의 돌림자, 유행에 따라서 만약 내 이름을 바꾼다면 아니면 내 아이를 낳는다면 어떤 이름을 짓고 싶은지요? 클레이튼은 특히 한국인과 결혼한다면 이름을 영어로 지어야 하는지, 한국어로 지어야 하는지... 혹시 생각하는 이름들이 있는지, 여기에서도 서로 차이가 보일 것 같은데요.
예은 : 저는 여자이름 밖에 생각을 못했는데 한자 말고 한글로 짓고 싶어요. 사랑이나 기쁨이. 사랑이는 귀엽고 사랑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한자를 외울 필요가 없어서 편하더라고요.
광성 : 저도 한글로 짓고 싶어요, 하늘이.
클레이튼 : 저는 한 번도 생각 못했는데 현우?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근사한 느낌이에요. 영어로는 뭐라고 하지... 가족들과 얘기할게요(웃음).
진행자 : 북한에서도 이름의 변화들이 있을 거예요. 사상도 바뀌고 있고, 남한이나 외국 문물도 많이 들어가면서 이름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셨을 텐데 오늘 저희와 함께 '만약 내가 이름을 바꾼다면, 아이 이름을 짓는다면?' 생각해보시면 재밌겠네요.
클레이튼 : 연애 못하면 왜 이런 거 생각해야 하는 거죠?
진행자 : 저는 그래서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다함께 인사드리면서 이 시간 마무리할게요.
다함께 :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진행자 :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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