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에서 한 학생이 교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에서 한 학생이 교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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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여전히 높고, 푸르고 5월답게 화창하더군요.

그런데 흔히 부모님과 선생님의 마음을 하늘에 비유하잖아요? 그 분들의 마음은 대체 얼마나 높고 얼마나 넓어서 이처럼 하늘에 비유되는 걸까요?

오늘 <청춘만세>에서는 스승의 날에 대한 얘기 나눠 볼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권지연입니다. 남북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주영, 최철남 씨와 함께 할게요.

진행자 : 안녕하세요.

이주영, 최철남: 안녕하세요.

진행자 : 어떻게 지내셨어요?

최철남 :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우'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서요.

진행자 : '나우'는 늘 바빠요. 이번엔 무슨 행사인가요?

최철남 : 5월 24일에 북한의 시장, 장마당을 청계천에서 재현해 놓기로 했거든요.

진행자 : 그런데 북쪽의 장마당이 남쪽의 시장과 다른가요? 남쪽도 재래시장, 벼룩시장이 있잖아요.

최철남 : 달라요. 재래시장과 조금 비슷하긴 한데 물품들이 다르고 판매 행위가 다르고요.

진행자 : 궁금하면 가 봐야 하는 거네요. 가보겠습니다! 지난주, 저희가 부모님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요. 이번 주에는 제2의 부모님, 스승님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5월 15일, 남쪽의 스승의 날인데요. 이날 학생들이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아 드리고 편지도 쓰고 선물도 드리고 노래도 부릅니다.

INS - 스승의 날 노래

지금 흐르고 있는 노래가 바로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입니다. 남한 사람들 누구나 이 노래와 스승의 날이 언제인지, 뭐하는 날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 유래까지는 잘 모르는데요.

1958년 5월 8일,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세계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위문하면서 스승을 날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1963년 제12차 청소년적십자사 중앙학생협의회에서 5월 24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였고 1964년에는 '은사의 날'을 '스승의 날'로 명칭을 바꿨고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날짜를 옮겨 오늘의 스승의 날이 됐습니다.

북한에도 9월 5일 '교육절'이 있다죠? 북한의 '교육절'이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고 찬양하는 국가 주도의 기념일이라면 남쪽의 스승의 날은 스승의 은혜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게 더 중요한 날입니다.

진행자 : 살면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이 계시죠?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과 6학년 때 선생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를 예뻐해 주셨거든요. (웃음) 주영 씨는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을 것 같은데요?

이주영 : 아니에요. 저는 선생님들로부터 귀여움을 별로 못 받았던 것 같아요. 모범생이긴 했지만 선생님이 예뻐하는 아이들에 끼지는 않았어요.

진행자 : 선생님들한테 가서 말도 걸고 그래야 하는데...

이주영 : 네, 제가 그런 붙임성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진행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있어서 지침이 되고 도움이 된 선생님이 계실 겁니다.

이주영 :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세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집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서울에 살다가 전학을 가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전학 가는 날 저를 따로 불러서 수학 문제집을 다섯 권 정도를 챙겨 주시면서 안아 주셨었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안아주실 때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최철남 : 저는 선생님들마다 다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북한은 남한처럼 선생님이 바뀌지 않아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거의 제2의 부모님이 맞아요.

이주영 : 와... 더 좋을 것 같아요.

남쪽은 초등학교 그러니까 인민학교 6년 동안 담임선생님과 한 반의 구성원들이 매 해 바뀝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역시 매 년 담임선생님이 바뀌고 과목마다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다 따로 있어서 정말 많은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게 되는데요. 고등학생 때 남한에 왔던 철남 씨에겐 남한의 이런 모습이 참 생소했다고 하네요. 철남 씨의 얘기를 계속 들어보죠.

최철남 : 제가 북한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학생이 많지 않았고 북한이 많이 힘들 때라서 부모님이 저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어차피 저처럼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졸업해 봤자 농사나 지을 건데 공부는 해서 뭐하냐는 거죠. 부모님은 집에서 일이나 거들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이 몇 번이나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아이들은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부모님을 설득해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학교에 안 나갔던 시간들이 있어서 공부를 못 따라가니까 선생님 집에서 따로 과외를 시켜 주셨었어요. 그리고 중학교 때 만났던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정말 많이 챙겨주시고 못하시는 게 없었어요. 북한은 생활이 어려우니까 선생님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진행자 : 선생님이 학교를 안 나오신 다고요?

최철남 : 네.

진행자 : 그러면 누가 가르치나요?

최철남 : 다른 선생님이 대신 가르치는 거죠. 그런데 저희 선생님은 먹을 것이 없어도 저희를 끝까지 책임지려고 애쓰셨었어요.

이주영 :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네요.

최철남 : 네, 그래서 선생님이 힘드실 때 우리가 알아서 집에서 옥수수나 감자를 몰래 드리곤 했었어요.

진행자 : 두 분 다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잘해준 선생님도 기억에 남지만 진짜 무서웠던 선생님도 기억에 남잖아요. 또 학생들이 선생님한테 별명을 붙이고... (웃음)

이주영 : 저는 그런 무서운 선생님이 저를 예뻐해 주셨었어요. 마녀라는 여자 선생님이 계셨었는데 무섭긴 했지만 애정에서 나온 행동이라 아이들이 참 좋아했어요. 다른 선생님들은 저를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저를 눈여겨 봐주는 것이 정말 고마웠죠.

진행자 : 특히 철남 씨는 사춘기 시절에 남쪽에 와서 선생님의 역할이 남쪽에 적응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최철남 : 네, 제가 19살에 왔으니까요. 저는 대안 학교가 아니라 일반 남한 학생들과 함께 일반 학교를 다녔는데요. 담임선생님이 무척 좋으셨습니다. 저에게 친구들을 붙여 주시면서 따로 저를 부탁 하셨어요. 제가 애들보다 두 살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형이니까 잘해줘라' 라고 해주셔서 애들이 형이라고 하면서 정말 잘해줬었죠.

진행자 : 선생님의 역할이 제대로 안되면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었을 텐데 선생님 복이 정말 많네요.

최철남 : 정말 제가 선생님 복은 정말 많아요.

진행자 : 자, 그럼 스승의 날 과연 찾아뵙고 그랬나요?

최철남 : 아니요. (웃음) 찾아뵙지도 못하고...

이주영 : 북한에 있는 선생님과는 연락이 될 수는 있을까요?

최철남 : 찾으면 찾을 수 있겠는데 제가 남한에 온 것이 선생님 책임이 될 수 있으니까요...

진행자 : 차라리 모르고 계신 것이 낫겠네요.

최철남 : 그렇죠.

진행자 : 살다보면 찾아뵙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아요.

자주 찾아뵙지는 못한다 해도 스승의 마음을 잊지 않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려 애쓰는 것, 그건 참 중요합니다. 하지만 남쪽에서는 안타깝게도 교권추락이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답니다.

진행자 : 예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는데 요즘은 확실히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최철남 :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맞았다고 부모가 와서 난리를 치거나 그런 것들은 지나치지 않나 싶어요. 학생들은 이제 선생님한테 맞았다고 동영상을 올리고 그러잖아요. 너무 그런 것들은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중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진행자 : '사랑의 매'는 필요하다? 아니면 '꽃으로도 때리면 안 된다?' 어떤 생각이세요?

이주영 : 제가 초등학교 때도 아이들을 엄청나게 때리는 선생님이 계셨었어요. 그런데 너무 심하게 때리는 거 있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체벌을 규제할 필요는 있는 것 같은데요. 요즘 애들은 선생님이 체벌을 하면 핸드폰으로 찍어서 신고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악용하는 아이들도 있을 거고요. 서로 고마움과 사명감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남쪽에서는 지난 2012년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학교교육과정에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각 교육청에서 학생 인권 조례를 정했는데요.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이 후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은 매를 들 수가 없게 됐습니다. 철남 씨는 교권이 추락하는 원인이 더 이상 교사들이 '사랑의 매'를 들 수 없기 때문 때문이라고 말했고 주영 씨는 선생님들이 먼저 '사랑의 매'를 들 수 있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행자 :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까요? 선생님, 학생들, 부모님들이 모두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교권이 추락한다고 하지만 두 분은 정말 좋은 스승들을 만나셨던 것 같고 그 고마움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최철남 : 제게는 고마운 선생님이 다섯 분 있습니다. 모두 좋은 영향을 주셨고 제2의 부모님이 돼 주셨는데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진행자 : 그 분들도 철남 씨 같은 좋은 학생을 가르쳤던 것이 뿌듯하실 것 같습니다.

이주영 : 제게는 정말 감사한 교수님이 계시는데 이번 스승의 날에도 이메일 드리고 찾아 뵐 수 있으면 찾아뵈려고 합니다. 교수님이 인격적으로 저를 대해 주셨고 그런 점들이 참 감사했었어요. 앞으로도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진행자 : 여러분이 더 성장해서 누군가의 좋은 스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주영, 최철남 :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자신을 가르쳐준 스승의 품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길을 떠나기 전, 그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스승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스승님, 이제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누구로부터 삶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나요?"

그러자 그의 물음에 스승이 대답합니다.

"어느 곳에도 스승이 없는 곳은 없고, 어느 순간에도 스승이 없을 때는 없다네. 자네가 접하는 매사가 삶의 스승이 되는 법이지.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 사람들의 미소를 보면서 자신의 반응하는 모습을 담담히 살피면 그 곳에 깊은 깨달음이 있을 걸세. 그보다 더한 참된 스승이 어디 있겠나?"

어쩌면 좋은 스승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내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과 북의 참된 스승님들을 응원하며... 오늘 <청춘만세>는 여기서 마칠게요. 함께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