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 만세>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저와 함께 이 시간을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합니다.
클레이튼 :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 온 클레이튼인데 남한에 온 지 6년 됐습니다. 지금 한국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일곱 살이고,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강예은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있어 이렇게 함께 하게 됐습니다.
광성 : 안녕하세요, 정광성입니다. 저는 2006년까지 북한에서 살다 탈북해서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북한전략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벌써 5월 중순입니다.
그런데 5월은 굉장히 숨 가쁘게 흘러가는 게 5월에 행사가 굉장히 많죠?
광성 : '어린이날'부터 시작해서 '어버이날'...
진행자 : 직장인들에겐 좋은 거 아니에요? 평일인데 쉬는 날이 많으니까.
클레이튼 : 엄청 좋아요(웃음). 친구들도 볼 겸 자전거도 탈 겸 전주에 다녀왔습니다.
진행자 : 그래서 목이 많이 쉬었네요?
클레이튼 : 노래방도 가느라(웃음).
진행자 : 지금 결혼한 사람은 없으니까 어린이날에 대한 부담은 덜하겠지만.
광성 : 저는 조카들이 있어서 조카들 선물 사주고 해야 하니까 좀 부담스럽긴 해요.
진행자 : 어버이날에도 선물을 하거나 마음을 표현해야 하고.
클레이튼 : 저는 그냥 통화하면서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웃음)
예은 : 한국식으로 해요?
클레이튼 : 미국 사람도 그렇게 하죠. 부모님한테 전화하고, 그런데 미국은 '어버이날'이 아니고 '아버지날', '어머니날' 따로 있어요. 5월 8일이 어머니날이었고, 6월 19일이 아버지날이에요.
진행자 : 5월 8일 날짜는 같아요?
클레이튼 : 딱 그날이 아니라 5월 두 번째 일요일이요.
광성 : 선물은 드려요?
클레이튼 : 보통 꽃 드려요. 친형이 사드렸으니까.
진행자 : 형한테 묻어가는 거예요(웃음)?
예은 : 남한에서는 카네이션 많이 드리죠.
클레이튼 : 사실 카네이션은 좀 싼 편이라고 생각해요.
예은 : 싸다고요? 남한에서는 5월이 되면 정말 비싸져요.
광성 : 그런데 카네이션을 원래 만들어서 드리는 거죠? 사서 드리는 게 아니라?
예은 : 아,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는 편지랑 같이 카네이션을 접어서 드리기도 하는데 지금 접어서 드리기는 나이가(웃음). 사서 생화로 꽂아드려요. 그러면 하루 종일 그걸 달고 다니세요.
진행자 : 꽃만 드리면 안 되거든요. 직장인들은 실물, 뭔가 선물이나 현금을 같이 드리죠.
클레이튼 : 특이하네요. 미국에서는 부모님께 돈 드리면 이상해요.
진행자 : 남한에서도 선물을 하는데 마음에 딱 드는 걸 고르기 힘드니까 '그냥 현금으로 주라, 내가 알아서 사마!' 이렇게 되는 거죠(웃음).
예은 : 저희 부모님도 현금을 가장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광성 : 인터넷에 보니까 어버이날에 가장 좋은 선물 1위가 상품권이더라고요.
클레이튼 : 미국 사람에게 그렇게 선물하면 '약간 성의 없다, 나를 별로 생각하지 않고 노력하기 싫어서 돈 주는 거구나' 생각할 수 있어요.
진행자 : 그런데 광성 씨는 부모님이 대구에 계셔서 다녀왔다고 했잖아요. 북한에도 어버이날이 있어요?
광성 : 어버이날은 없어요. 국제 부녀절이라고 엄마의 날만, 3월 8일인가.
진행자 : 그건 '세계 여성의 날'인데요.
광성 : 그런데 북한에서는 그걸 통해 엄마나 여성들이 쉴 수 있고, 남자나 아버지를 위한 날은 없어요.
진행자 : 그러니까 부모님의 은혜에 따로...
광성 :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날은 생일도 있고 다른 날도 있는데 부모님에 대한 그런 날은 없어요.
예은 : 그럼 가족을 위한 날은 아예 없는 거예요?
광성 : 네, 없는 것 같아요. 오직 김일성이나 당 창건 그런 것들만.
진행자 : 그러면 남한에 왔을 때 광성 씨도 부모님에게 표현하는 게 낯설고 부모님도 받는 게 어색하셨겠네요?
광성 : 지금도 익숙하지 않아요.
예은 : 부모님 입장에서는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웃음).
진행자 : 5월 5일이 어린이날이잖아요. 사실 저는 대학생 때도 '아직 어리다'면서 선물을 받았거든요. 모자, 옷 이런 거(웃음). 북한에는 어린이날도 없나요?
광성 : 어린이날도 없어요. 대신 국제 소년단 명절이라고 6월 1일에 있어요. 바라보는 관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남한에서는 어린이를 위해서 가족이 선물도 주고 놀이동산도 가는데, 북한에서 6.1절은 소년 단원으로 가입하는 날이죠.
진행자 : 예은 씨 어린이날에 대해 조사를 해왔나요?
예은 : 저희는 어렸을 때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를 위해 제정한 날이라고 배웠거든요. 어린이는 미래의 재산이라고. 1919년 3.1운동 이후 1923년에 어린이에게도 민족정신을 깨우기 위해 제정했다고 해요. 1975년에 공휴일로 지정됐고요.
진행자 : 3.1절 이후에 만들어진 거면 한반도에 어린이날이 함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광성 : 제가 생각했을 때는 같이 쇠다가 북한에서는 어린이날에도 혁명성을 부여한 거죠.
진행자 : 남한에서는 어린이날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잖아요. 선물도 주고, 같이 놀이공원에 가거나 여행을 하거나. 북한에서는 소년단원에 입단하는 건가요?
예은 : 보통 저희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어린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래서 어린이날을 정말 기대했거든요. 미리 부모님께 어린이날 선물로 뭘 받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하고(웃음). 그날은 부모님이 쉬시니까 가족들이 함께 여행도 가고, 놀이공원이나 동물원에도 가고, 외식도 하고요. 저는 어렸을 때 어린이날을 많이 기대했거든요.
광성 : 남한은 사람 중심으로 명절이 만들어 지는데 북한은 체제 중심인 거죠. 어떻게 보면 북한에 제대로 된 명절이 추석, 설, 단오 등이고 그 외에는 김일성 생일, 조선 노동당 창건일 등 체제에 중심을 두는 것 같아요.
예은 : 김일성 생일처럼 지도자의 생일을 지낸다는 게 신기해요. 그날 공휴일이죠?
광성 : 최대 명절이에요. 북한에서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해요(웃음). 태양절인데 하는 것도 많아요. 외국인들 불러서 공연도 하고, 선물도 주고. 설날보다 더해요. 크리스마스처럼 신의 생일이에요.
진행자 : 미국이나 남북한이 다 같이 기념하는 날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아닌가 싶어요.
클레이튼 : 미국 사람들이 '근로자의 날' 알고는 있는데 특별히 쉬지는 않아요.
광성 : 북한에서는 다 쉬어요. 다 쉬면서 씨름대회도 하고 직장별로 체육대회도 하고 저녁에는 김일성 광장 같은 데 모여서 춤추고 노래해요.
진행자 : 남한에서는 쉬는 직장도 있고, 쉬지 않는 직장도 있어요.
광성 : 국제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들의 화합 이런 식으로 얘기되면서 북한 같은 공산권 국가에서 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나. 그런데 올해는 북한 노동자들도 못 쉬었을 것 같아요, 당 대회 때문에. 70일 전투라는 게 있어서 당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70일 동안 정해서 생산도 엄청 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진행자 : 그런데 클레이튼 당 대회가 뭔지 알아요?
클레이튼 : 뉴스 보니까 30여 년 만에 북한에서 한다고.
진행자 : 북한에서 하는 건 맞는데, 당 대회가 뭔지 알아요?
클레이튼 : 아니요, 처음 들었어요(웃음).
진행자 : 예은 씨는 알아요?
예은 : 당원들이 다 모여서 협의하고...
진행자 : 남한에서 비교할 만한 게, 전당대회? 사실 당 대회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광성 : 애매해요. 모여서 36년 동안 안 했던 총화를 해요. 국가 예산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부터 시작해서 일을 잘 한 사람한테는 영웅 칭호도 주고, 못한 사람은 잘라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총화예요.
진행자 : 총화가 뭔지는 아나요?
예은 : 사상 같은 걸 얘기하는 거 아닌가요?
진행자 : 단어 자체가 참 달라요.
클레이튼 : 잠깐 쉴게요(웃음).
광성 : 가장 기본적인 건 생활총화예요, 일주일 단위로.
예은 : 들어봤어요.
진행자 : 들어는 봤는데 남한에는 없는 거라서 뭔지 잘 모르겠어요.
광성 : 맞아요. 일주일 동안 내가 북한 정권이나 김일성의 지시대로 살았는지 반성하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해요. 저 친구가 남한 영화 보는 걸 봤다, 그렇게 감시 체계를 만드는 거예요. 그런 걸 조선노동당원들이 모여서 하는 거죠. 하나의 퍼포먼스죠.
진행자 : 그걸 하는데 70일 전부터 준비를 하고, 걷어가고 그러는 거잖아요.
광성 : 군사, 경제, 정치 이렇게 3대 강국을 이루자. 그것의 일환으로 당 대회를 하는 건데 그래서 당 대회 전에 하루에 미사일 두 번 쏘고 그랬잖아요. 전체적으로 북한에 있는 노동당원들을 불러 모아야 되는데 그걸 하려면 돈이 필요하죠. 북한에 돈이 어이 있어요. 북한은 수출도 안 되고 안에서 일반 사람들한테 긁어모으는 거예요.
예은 : 그럼 북한 주민들은 당 대회 열리는 걸 정말 싫어하겠네요.
광성 : 싫어하죠. 돈을 내야 하지, 공사장 일해야지. 솔직히 북한 주민들 이제 거의 다 알아요. 쟤네 또 저러는구나.
예은 : 남한이랑 북한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요.
진행자 : 남한에서는 5월 1일부터 14일이 여행주간이었거든요. 자연이 아름답고 쉬는 날도 많으니까 여행 다니면서 좋은 시간도 보내고 남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돈도 좀 써라 이런 건데,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잖아요. 이 아름다운 5월에 북한에서는 당 대회를 위해서...
광성 :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놀러 못가요. 날씨가 좋아도 농번기 시작되면 농사일을 해야 하니까. 옥수수 심고 파종하는 시기라 5~6월이 가장 바쁜 시기거든요. 그 바쁜 시기에 당 대회에 동원되니까 싫어하죠.
진행자 : 북한에서 경제적인 실적을 높여야 한다고 했는데 최근 미사일도 그렇고 연 초 핵실험 때문에 세계적으로 대북 제재가 강화되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수출 길이 막혀서 돈을 더 못 버는 상황이 됐잖아요.
광성 : 그러다 보니까 주민들한테 더 손을 내미는 거죠.
진행자 : 그리고 관광수입으로 외화를 벌어야 되는데 뉴질랜드 등의 국가 정부에서 가기 위험한 나라라고 여행 주의보를 내렸단 말이죠.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 당 대회를 하는 당에서 문제는 다 일으켜놓고 뒷수습은 가진 것 없는 주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는 거죠.
광성 : 그래서 제2의 고난의 행군이라는 얘기도 나오고요.
진행자 : 여기 앉아 있는 우리는 그래도 북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얘기하지만 남한 사람들은 북한 당 대회가 뭔지도 정확히 모르고요. 왜냐면 남한에 없으니까 더 몰라요. 그리고 당 대회를 한다고 주민들에게 강제적으로 뭘 가져가는 것도 이해를 못 하고.
예은 : 상상도 못 할 일이요. 만약 남한에서 그랬다면 전 국민이 일어나서 데모하고 난리 났을 거예요.
클레이튼 :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예은 : 그리고 시기가 이래서 사람들이 북한 사정에 더 신경을 못 쓴 것도 있어요. 자기 노느라 바빠서.
진행자 : 5월 5일이 목요일인데 쉬는 날이고, 남한에서는 토-일을 쉬니까 금요일도 원래는 일하는 날인데 하루 쉬게 해주자, 정부 차원에서 이렇게 얘기가 되니까 4일 동안 쉬면서 해외여행도 많이 가더라고요.
광성 : 해외여행도 가고 놀러도 가고, 요즘 날씨도 좋잖아요.
진행자 : 그런 거 보면 광성 씨는 생각이 많겠어요. 남북을 다 알고 있으니까.
광성 : 사람 살기 좋은 세상. 물론 안 좋은 점도 있지만 북한보다는 사람 살기 좋은 세상,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진행자 : 고생하셨을 북한 청취자들 앞에서 저희가 남한의 5월을 얘기하려니까 죄송한 마음도 드는데, 이게 남한의 5월이거든요.
예은 : 북한 사람들은 안타까운 게 가족을 위해서 자신들을 위해서 지내는 날보다는 국가나 당, 이념을 따라 지내는 날이 더 많아서.
광성 : 개인적으로 지내는 건 내 생일밖에 없어요.
클레이튼 : 사람 사는 게 아니다.
5월을 지내는 남북한의 모습이 참 다른데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좀 더 나눠보겠습니다. <청춘 만세>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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