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구두닦이를 하던 진태와 그가 아끼는 동생 진석, 그리고 진태의 약혼녀 영신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피난 행렬을 따라 대구까지 내려갑니다.
그러나 대구역에서 진석이 강제로 징집되어 군용열차에 오르자 진태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군용열차에 따라 오르게 되고 무공훈장을 받으면 동생을 제대시킬 수 있다는 대대장의 말을 믿고 진태는 오로지 동생을 위해 전쟁 영웅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갈수록 전쟁의 광기에 휘말리는 진태와 그런 형의 모습을 바라보는 진석 사이에 갈등과 증오가 싹트기 시작하죠.
이후 진태의 약혼녀 영신이 인민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국군에게 죽음을 당하고 진석 역시 국군에게 죽음을 당한 것으로 믿은 진태는 이번에는 인민군의 붉은 깃발 부대의 부대장이 되어 국군의 표적이 됩니다.
형이 인민군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진석은 제대를 하루 앞둔 날, 형을 구하기 위해 전선으로 나가 우여곡절 끝에 형을 만나게 되는데... 결국 진태는 전쟁터에서 끝내 죽음을 맞고 5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유골로 돌아오게 됩니다.
2004년 개봉한 장동건, 원빈 주연의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 의 줄거리입니다. 당시 1천174만 명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고 아직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고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던 이유... 바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겠죠.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아픔 많은 6월입니다.
<청춘만세> 오늘은 6.25에 대한 얘기 나눠봅니다. 남북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정민 씨와 함께 합니다.
권지연 : 안녕하세요.
이정민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권지연 : 저는 오늘 달력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정민 : 왜요?
권지연 : 벌써 6월 말이거든요.
이정민 : 6월은 아픈 달이죠.
권지연 : 남쪽에선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합니다.
이정민 : 북한에서는 추모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승리했다는 자화자찬의 분위기가 더 큽니다.
권지연 : 그래요? 남쪽에서는 누가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해서 무척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데 북쪽에는 승리라고 하는군요. 또 북쪽에서는 6.25를 북침이라고 배운다고요?
이정민 : 네, 60여년이 된 일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남과 북이 다르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어느 것이 진실일까 혼동도 되고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완전히 북침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미국이 먼저 쳐들어와서 일으킨 전쟁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권지연 : 지금도 그렇게 배우고 있는 거죠?
이정민 : 그렇죠. 지금도 북쪽에서는 그렇게 배우죠.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해 3년 1개월간 계속된 동족상잔의 비극입니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후 5년만에 일어난 전쟁... 민족통일을 표방한 전쟁이었지만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키고 분단체제를 고착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며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권지연 : 같은 민족끼리 이런 아픔이 있었다는 것이 일제 치하에 있었던 것보다 더 아픈 역사인 것 같아요.
이정민 :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확실히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아픔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대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하고 북한에 있는 2천 500만 인민들이 북침이라고 알고 있는데 오해하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북에서는 남한의 북한 침략으로 남쪽에서는 북한의 남한 침략으로 알고 있는 6.25,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일까요?
권지연 : 1950년 5월 25일 일요일 아침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새벽 시간에 북한의 침략이 있었다고 저는 배웠거든요.
이정민 : 북한도 똑같이 배워요. 평화로운 북한 땅에 일요일 아침, 미국군이 포탄을 떨어뜨리며 전쟁이 시작했다고요. 그런데 북한군이 대처를 잘했고 부산까지 내려갔었다고 배웁니다.
권지연 : 아니, 대처를 잘했는데 어떻게 부산까지 밀고 내려왔을까요?
이정민 : 그것만 봐도 전쟁 준비를 했던 곳과 안 했던 곳의 차이가 있는 거죠. 아무리 반격을 빨리 한다고 해도 먼저 준비를 했던 곳과는 다르잖아요.
권지연 : 앉아서 당했다면서 부산까지는 밀고 내려왔다는 주장은 너무한 거죠.
정민 씨는 중국에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이정민 : 제가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건 중국에서였어요. 탈북해서 중국에 도착했는데 중국 사람들이 얘기하는 거예요. 6.25전쟁은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쳐들어온 전쟁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떻게 전쟁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들이 중국에 가서 보니 모두 거짓이었고 그걸 깨닫고 나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민족의 비극사인 6.25전쟁이 발발한 지 63주년이 지난 지금, 북침이냐, 남침이냐에 대해 남쪽의 청소년들도 혼동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최근 한 언론사가 '6.25가 남침인가 북침인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했다는 건데요. "남한이 북한을 침범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이렇습니다. '남침이냐 북침이냐'고 물었을 때는 '북침'이라고 대답한 이유는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으니 북침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용어를 혼동한 거죠. 이런 혼동을 없애기 위해 최근 남쪽의 국방부는 '남침'이라는 용어 대신 '북한의 남침'이라는 공식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는데요. 용어 해석 과정에서도 혼동이 생기는 걸 보면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이정민 : 그 전쟁 당시의 상황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전해 들으면 정말 참혹하기 그지없었어요. 그리고 항상 말씀하시는 게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 너희가 잘해야 한다는 말씀을 꼭 하셨고요. 저도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있죠.
권지연 : 비극적인 역사는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맘때가 되면 당시 전쟁 통에 먹었던 주먹밥 같은 것들을 먹어보는 등 많은 행사가 열립니다. 하지만 남쪽의 아이들은 전쟁 이후 세대이고 지금 남쪽에서는 전쟁의 흔적은 찾기 힘들기 때문에 6.25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저도 6.25를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기에 당시 상황을 피부에 닿게 느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아픈 역사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몫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권지연 : 이번에 북남살롱에서 6.25를 주제로 얘기하셨다면서요?
'북남살롱'은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 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매 번 다른 주제로 대화하고 나누는 모임입니다.
이정민 : 이번에는 어떤 내용으로 얘기했냐하면요. 6.25당시에 남한으로 넘어 온 사람들 중에 실향민의 아픔을 책으로 쓴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나와서 6.25를 보는 자신의 시선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요약한다면 남과 북이 헤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가슴 아픈 일인데 다시 합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분단이 오래 지속됐기 때문에 함께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는 것 같다. 이 자리에 있는 남과 북의 청년들도 하나가 돼서 서로의 감정을 전달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어떻게 화합을 이루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는 한솥밥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과의 친분도 쌓고 남과 북이 함께하는 것들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무척 뜻 깊은 시간이었죠.
권지연 : '북남 살롱'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오시던데 그 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정민 : 그 분들은 6.25에 대한 관점보다는 실향민, 탈북자에 대해 궁금해 하더라고요. 6.25에 대해 이해하기는 어렵잖아요.
권지연 : 그리고 통일에 대해 정말 관심이 없었던 분들도 다시 생각하게 됐을 것 같습니다.
이정민 : 이제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단 한 가지 마음 아팠던 것이 그 분이 이제 돌아가실 때가 다 됐어요. 연세가 많으시거든요. 그런데 제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그런 모습으로 남과 북에 대해 얘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하게될까봐 두려웠습니다.
자신이 나이 들었을 때도 남북 관계가 지금과 달라진 것이 없을까봐 두렵다는 정민 씨. 여러분에게도 같은 두려움이 있으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이제 서로에게 좀 더 관심과 마음을 주고받을 때입니다.
권지연 : '청춘만세'에서 앞 장 서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정민 : 저는 이 방송 듣고 한국에 오신 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정말 힘이 났었거든요. 작은 노력들이 분단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지연 : 지난번에 사투리에 대한 주제로 얘기도 했었는데 저만의 노력으로 저는 북한 사투리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이정민 : 그런데 저는 10년이 지나니까 다 까먹었어요. (웃음) 남북회담이 무산이 됐다고 해서 아쉽지만 중단됐던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려고 그런 것이 아닐까...긍정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권지연, 이정민 : 청춘만세!
상처는 덮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이기고 치유하는 방법은 바로 용서가 아닐까요? 6월의 끝자락에서 이제는 좀 더 서로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래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권지연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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