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 생겨난 것(3) 이산가족&탈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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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먼저 이 시간을 함께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할게요.

클레이튼 : 안녕하세요, 미국 켄터키 주에서 온 클레이튼입니다. 한국에 거주한 지 7년 됐고, 한국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예은 : 안녕하세요, 강예은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제가 살아갈 세상과 통일 한반도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많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 이해를 넓혀갔으면 좋겠습니다.

광성 :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회사 다니고 있는 정광성입니다.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시고, 남한에 온 지 11년 됐습니다. 북한 청취자 여러분을 위해 좋은 소식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계사에서 빠지지 않는 수많은 전쟁. 그 절박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생겨나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게 많은데요. <청춘 만세> 시간을 통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적의 암호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 통신 체계가 파괴되더라도 어디에서나 똑같은 정보를 볼 수 있도록 만든 인터넷 등이 대표적이죠. 또 붕대 대신 만들어졌다 고급 종이 위생지로 사용되고 있는 티슈, 부상병들에게 입혔던 카디건이나 병사들의 비옷이었던 트렌치코트는 이제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는 옷이고요. 이동하면서 간편하게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통조림, 6.25전쟁 때 미군부대에서 나온 것들로 만들기 시작한 부대찌개,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피난 와서 만들어 먹었던 밀면, 냉면, 아바이순대 등은 남한에서 지금까지도 많이들 먹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6.25전쟁으로 생겨난 것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텐데요. 청년들의 얘기 계속해서 들어보시죠.

진행자 : 지금까지 저희가 전쟁 중에 생겨난 중에 유용한 것, 아직도 잘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얘기했는데 6.25전쟁만 놓고 봐도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들도 많이 생겨났거든요. 무엇보다 사상자를 얘기할 수 있겠죠. 6.25전쟁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숨지고 다치고. 6.25전쟁만 해도 남북한은 물론이고 세계 많은 나라에서 참전했잖아요. 2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해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예은 : 일단 전쟁고아나 미망인이 많아졌죠. 그래서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았고. 피난길에 가족이 헤어져서 결국 이산가족으로 남은 경우도 많았고요. 가정에 가장 아픈 기억이 많을 것 같아요.

진행자 : 전쟁고아가 10만 명이 넘고, 이산가족도 10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까.

광성 : 이산가족도 슬프지만 북한에는 월남가족도 있어요. 전쟁 때 가족 중 한 명이 남한으로 갔으면 월남가족이라고 해요. 월남가족이라고 해서 빨간 딱지를 붙이는 거예요. 아예 토대가 안 되고, 시골이나 탄광마을에 유배처럼 보내놓고 평생을 살게 하는 거죠.

진행자 : 사실 예전에는 남한에서도 그 당시 남한에서 생활하다 북한으로 자진해서 갔든, 돌아오지 못했든 월북자라는 말이 있었어요. 그래서 예술계에서 활동했던 사람들도 월북자일 경우 잘 조명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월북자에 대해서도 훌륭한 작품에 대해서는 발굴해서 소개하고 있거든요. 북한에서는 아직까지도 차별이 있는 거군요.

또 전쟁 중에 생겨난 것들 어떤 게 있을까요?

광성 : 남한은 잘 안 하죠, 땅굴. 땅굴도 전쟁 때 생겨났는데, 북한에는 비행기가 많지 않았지만, 미군 비행기가 많아서 공습을 많이 받았대요. 평양이 거의 초토화될 정도여서 김일성이 외출할 때 공습을 피하려고 땅굴을 파기 시작했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군수품, 폭탄이나 총, 탄을 만들어야 하는데 공습을 하면 망가지니까 모두 땅굴로 들어간 거예요.

예은 : 땅굴 사실 강원도로 연결돼 있고, 그런 기사 많이 나오잖아요.

광성 : 제1땅굴, 제2땅굴 등 북한에서 파서 내려온 거죠. 발각돼서 지금은 전시관, 박물관으로 활용돼요.

진행자 : 6.25전쟁으로 북한에는 땅굴이 많이 생겼다고 했잖아요. 남한에는 지상으로 뭔가 많지 않나요? 6.25전쟁 이후 생겨난 것 중 남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주한미군기지 아닌가요?

예은 : 아, 그렇죠!

클레이튼 : 지금은 2만8천 명 정도 남한에 있어요.

진행자 : 빼놓을 수 없는 현실이에요. 그리고 의정부, 동두천, 평택, 용산 등 그 지역을 말하면 미군기지부터 생각나는. 전쟁 이후에 주둔하기 시작한 미군이 지금까지 계속. 북한과는 단절됐지만 미국과는 지속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또 뭐가 있을까요?

예은 : 문화적으로 영화도 6.25전쟁을 많이 다루고 있고, 문학작품도 많죠.

진행자 : 남북한에 공통적으로 생긴 것도 있죠. 병역의 의무! 특히 남자들한테는 정말...

클레이튼 : 한국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거(웃음).

진행자 : 20대 초반에 지금까지 생활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남한에서는 2년을 군대에서 생활해야 하는 거잖아요.

광성 : 북한에서는 10년.

예은 : 청춘을 다 바치는 거죠. 사실 평화적이라면...

진행자 : 그렇죠, 남북이 대치하지 않고 있다면 군인을 하고 싶은 사람만 직업적으로 하면 되는데 남북한의 꽃다운 청춘들이 군대에서... 6.25전쟁이 없었다면 강제로 군대에 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예은 : 가장 큰 건 이념이라는 것이 갈리지 않았나. 이데올로기라고 하죠. 민주주의냐 아니냐 갈려지는 게 아직까지도 북한 문제, 통일 문제와 함께 정치적인 문제로 이용이 돼요. 여당이나 야당이 싸울 때 가장 큰 문제가 안보 개념이거든요. 북한에 대해 어떻게 정책을 펼 것인가, 햇볕 정책이라고 하죠, 북한에 많이 퍼줄 것인가, 아니면 북한을 좀 더 압박할 것인가. 그런 정책에 지지를 하느냐 안 하느냐로 많이 갈려요. 이런 것들이 이념 전쟁으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클레이튼 : 그것 때문에 남한과 미국이 이렇게 친해졌죠, 똑같은 이념.

광성 : 6.25전쟁 자체가 이념 차이 때문인데 그게 지금까지 오다 보니까 예은 씨가 말한 것처럼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북한에 우호적이면 '빨갱이'... 솔직히 정치 안에서 좌파적이고 우파적, 보수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데 미국도 있잖아요. 민주주의 안에서 충분히 논의돼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데 남한도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그런 논의는...

진행자 : 그리고 한민족이라고 항상 말은 하지만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거나 총격을 가해오거나 그런 도발이 있으면 '북한' 이렇게 바로 분리해서 생각하게 되죠.

예은 : 네, 적이라고 생각해요.

광성 : 그런데 6.25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가장 서글픈 건 저 자신인 것 같아요. 물론 전쟁 후 한참이 지났지만 전쟁이 없었더라면... 요즘 제2의 이산가족이라는 말도 있는데, 저 같은 경우 북한에서 살다 남한에 와서 가족과 헤어진 상태니까 마음이 아프죠.

예은 : 그러니까요.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돼버렸으니까.

진행자 : 광성 군이 제2의 이산가족이라는 말을 했는데 전쟁으로 생겨난 이산가족도 있지만, 탈북민이라는 또 다른 신분이 생긴 거죠. 광성 군처럼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 온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앞에 탈북민이라는 말이 따라 붙잖아요. 남한에는 3만 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있죠. 평소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말했듯이 생활해 온 것이 너무 다르고 남한 사람들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원을 해야 하고, 그래서 탈북민을 위한 정책을 따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사회에서 분명히 구분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이겠죠. 물론 외국인을 위한 정책도 있습니다만...

예은 : 시민은 아니잖아요. 외국인을 남한의 국민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클레이튼 : 탈북자들이 한국에 처음 오면 하나원 가잖아요. 거기 가서 남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한국 사람처럼 살 수 있도록 이런저런 걸 배우는데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그런 거 없죠. 그래서 탈북자들이 하나원에 먼저 간다는 말 들었을 때 슬펐어요. 같은 나라 사람인데 차이가 그렇게나 커졌다는 게.

진행자 : 사실 외국 사람은 말도 다르고 문화도 전혀 다른데. 글쎄요, 광성 군과 클레이튼 중에 누가 남한에서 적응하는 게 더 편했을까 생각해보면...

예은 : 남북이 공유하는 건 아주 오래 전 역사와 언어 정도. 그런데 언어도 지금은 너무 많이 달라져서 알아듣기는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말은 영어가 알아듣기 쉬울 수도 있어요. 외래어가 많으니까.

클레이튼 : 그리고 미국과 한국은 언어와 문화가 다르지만 어쨌든 똑같은 기술을 사용하고 있잖습니까. 지하철 탈 때, 텔레비전, 전자결제 등 똑같은 기술을 사용하니까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언어의 벽 때문에 힘들었지만, 한국어 배운 뒤로는 쉬웠습니다.

진행자 : 광성 군은 어때요?

광성 : 적응할 때는 당연히 클레이튼 형이 빨랐죠. 왜냐면 말씀하신 것처럼 예를 들어 컴퓨터나 인터넷, 미국에서도 썼고 언어만 다른 거니까.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통장 개설, 휴대전화 개통, 공공기관 이용 등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큰 불편함을 못 느껴요.

진행자 : 지금 전쟁 중에 생겨난, 생활에 유용한 것들을 얘기하는데 클레이튼과 우리는 다 알아들으면서 '맞아맞아' 하는데, 광성 군은 알지만, 광성 군이 생각하기에 북한에 계신 분들은 거의 모를 것으로 예상되니까. 그만큼 차이가 있는 거죠. 전쟁이 일어난 지 67년이 됐고, 휴전 중이지만, 정말 전쟁이 끝난 게 아닌 것이 여전히 남북은 계속 분단된, 분리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재밌는 얘기를 했지만 그 이면에는 굉장히 씁쓸한 결과가 남아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통일이 돼서 언제쯤이면 우리가 얘기하는 데 서로 벽이 없이 바로바로 자연스레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광성 : 그런데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젊은 세대가 계속 자라고 있으니까. 세대가 바뀌면서 많이 동화되고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지금 북한에서 오는 친구들을 보면 어린 친구들이 사회나 문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무척 빠르거든요. 40~50대보다는 확실히 빠르니까 그런 희망은 있는 것 같아요.

진행자 : 네, 우리가 얘기하는 데 있어서 따로 설명하지 않고 따로 통역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분단의 벽이 훨씬 좁아지겠죠? 6.25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단어는 아니지만, 남북한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통일'이 아닐까 합니다. 통일이라는 단어를 언젠가는 남북한이 실제로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67년의 긴 골이 하루 빨리 어딘가에서 만나기를 바라면서 오늘 이 시간 마무리하겠습니다.

다 함께 :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진행자 : <청춘 만세>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