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그리고 해외 청년이 함께 하는 청.춘.만.세
강남 : 안녕하세요. 김강남입니다. 북한을 떠나온 지도 어느덧 5년이 됐습니다. 저의 꿈은 경찰입니다. 앞으로 통일된 한반도에서 약자의 편에 서는 경찰이 되고 싶어서 경찰 관련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예은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강예은입니다. 남한의 청춘들처럼 호기심 많은 평범한 학생이고요. 남북통일과 북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함께 하게 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들 즐겁게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네요. 반갑습니다.
빌 :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국에서 온 빌 스미스입니다.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한국으로 온 이유는 한미관계 개선이나 한반도 평화, 그리고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자 왔습니다.
진행자 : 그리고 저는 이 청춘들과 함께 하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INSERT. 남한 술 마시기 게임 영상
한국에서는 술 마실 때 게임(오락)도 하고 술 안 마시면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지금 나를 봐, 탈골됐잖아. 원샷 할 때까지 발로 차, 발로차!' 이렇게 아주 밝게, 신나게 놀아요.
내레이션 : 남한의 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외국인들에게 술 마실 때 게임, 그러니까 오락하는 문화를 알려주고 있는데요. <청춘만세> 식구들도 최근 새로 방송에 참여하게 된 빌 군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회식을 했습니다. 남한에서는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이렇게 회식이라는 이름으로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는 자리가 많은데요. 그럴 때면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술이죠.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는 물론이고 친구나 연인 사이에도 자연스레 술을 마시곤 합니다. 남한의 술 문화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활성화돼 있는데요. 남북청년들이 함께 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김강남, 강예은, 그리고 미국에서 온 빌 스미스 군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청춘만세> 함께 들어보시죠.
진행자 : 안녕하세요. 우리가 처음으로 빌과 방송을 하고 빌을 환영하기 위해서 회식을 했잖아요.
빌 : 무척 재미있었어요, 좋았어요(웃음).
진행자 : 회식에는 빠질 수 없는 게 술인데, 미국이나 북한에도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오면 환영해주고 회식 같은 걸 하나요?
강남 : 네, 있어요. 북한에서도 새로운 손님이 오게 되면 먼저 술부터 꺼내서 한 잔 하면서 얘기하는 게 가장 친해지는 방법이죠.
빌 : 미국에서는 특별한 술 문화, 처음 만나서 같이 회식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미국 사람들은 회사에서는 일만 하고 따로 술 마시는 건 친구들과 해요. 회사에서 회식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봐 상사들이 걱정해서 술과 일은 구분해요.
진행자 : 남한은 사람들이 모이면 대부분 술자리가 많잖아요. 그런 것들은 어땠어요? 낯설거나 당황하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면 술을 억지로 먹이는 것도 있잖아요.
빌 : 처음에는 무척 궁금했어요. 참가하고 싶었고, 그 문화를 어느 정도 좋아했어요. 그런데 억지로 술 마시는 건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저는 남한에 와서 회식을 너무 많이 해서 살이 쪘어요(웃음).
진행자 : 남한에서는 직장에서는 상사가, 학교에서는 선배가 술을 마시라고 좀 강하게 권하죠. 그래서 피하기가 힘든데, 그런 건 예은 씨나 강남 씨도 겪어 봤겠죠?
강남 : 저 같은 경우는 학교 들어갔을 때 나이가 좀 있어서 선배들이 저보다 어렸어요. 그래서 술을 일반 후배들처럼 권하지는 못했고, 그리고 저는 술이 몸에 안 맞아서 맥주만 마시는데, 맥주 마셔서는 취하지 않잖아요.
진행자 : 취하던데요, 지난번에 보니까(웃음).
강남 : 술 마시면 기분이 좋으니까 좀 달라지겠죠. 남북한 술의 농도가 달라요. 북한은 일반 술이 25% 이상이고, 남한은 보통 17%, 맥주는 5~6% 정도 밖에 안 돼서. 오히려 양주나 농도가 높은 술은 마시는데, 남한 술을 마시면 물 같아서 '이것도 술이야?' 그렇게 많이 마시다가 무척 취하더라고요.
예은 : 남한에서는 대학 들어갈 때부터 술을 마실 수 있거든요. 스무 살, 만19세 이상이죠.
진행자 : 왜 웃죠? 미국에서는 조금 더 일찍 마시나요?
빌 : 부모님 없는 집에서 친구들이랑 몰래 마시는 거예요(웃음).
진행자 : 법적으로는?
빌 : 법적으로는 우리도 스물한 살 때부터 마실 수 있어요.
강남 : 북한은 좀 더 빠른 것 같아요. 열일곱 살에 졸업이니까 그때부터 술을 마시고, 열다섯, 열여섯 살에도 빈집이나 학교에서 숨어서 마시곤 하죠.
진행자 : 남한도 그건 마찬가지겠죠(웃음).
예은 : 그럼 저는 성인이 된 다음부터 얘기를 할 텐데요. 대학에 가면 선배들과 같이 술을 마실 자리가 많아요. 처음에 가면 오리엔테이션이라고 해서 처음 선후배가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거든요. 거기 가면 저희 학과 특성상 술을 약간 강요해요. 그런데 요즘은 좀 변해서 안 마시겠다고 하면 안 마셔도 되는데, 그러면 분위기에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되죠. 남들은 다 즐겁게 노는데 술이 안 들어가면 사실 그렇게 놀기 힘들거든요. 그리고 선배들이 눈치도 좀 줘요, 너 왜 안 마시느냐! 그러다 보니까 안 마셔도 되지만, 사실 마셔야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죠.
진행자 : 각자 술을 좋아하기는 해요?
예은 : 저는 술을 별로 안 좋아해요. 술은 맛이 없더라고요.
진행자 : 아직 술의 깊은 맛을 잘 모르는군요(웃음).
강남 : 저도 북한에 있을 때는 술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 또래와 비교하면 많이 마시거나 좋아하지는 않아요.
빌 : 저는 타고난 재능이 술을 많이 마시는 거예요. 맥주나 소주를 마셔서 얼굴이 빨개지지도 않고 정신이 나가지도 않고. 강남 : 북한에서 술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남성이고,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여성이에요. 그 이유가 가난이 뒤따르기 때문에 남편들이 국가에 무보수로 일하잖아요. 그래서 아내가 조금씩 삯벌이해서 모은 돈으로 술을 사오라고 하면 잔소리를 하는 거죠.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애들이 굶고 있는데, 너는 술 마시면 되느냐!' 이런 식으로. 그래서 그런 걸로도 많이 싸우고. 남한에서 술을 누가 더 많이 먹느냐 그런 얘기를 하고, 술을 물처럼 마시는 걸 보면 북한 아버지들한테 갖다 주고 싶어요.
그리고 또 다른 점은 남한은 남자나 여자나 누구나 공유하고 마시는 게 술이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여자들이 그렇게 흔하게 술을 마시지 않아요. 남존여비 사상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젊은 사람들은 여자들도 같이 마시긴 하지만, 엄마들은 술을 안 마셔요.
예은 : 그러면 여자들한테는 술이 사치일 수도 있다는 거네요?
강남 : 남자들한테도 술은 일단 사치입니다. 당에서도 술을 제한하고 있고요. 생일이나 그럴 때 조금씩 먹어라, 식량 사정이 안 좋으니까. 하지만 사람이 친해지고, 기분 나쁘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찾는 친구가 술이잖아요. 그걸 막는 거죠.
예은 : 여자가 술을 싫어해서 안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을 먹고 싶지만 돈도 없고,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들을 생각해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해서 참으면서 못 마신다는 얘기는 무척 안타깝게 느껴져요. 나중에 부부가 서로 한 잔씩 나눌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진행자 : 그런데 왜 이렇게 회식이나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는 술을 찾는 걸까요? 즐거운 자리는 물론이고 기분 나쁠 때도, 아니면 기분 나쁜 걸 풀기 위해서도 술자리를 하는데, 술이 어떤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럴까요?
강남 : 아마도 고정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술을 부르지 않나 싶어요.
빌 : 대화를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거나 생일이나 좋은 일 있을 때는 '기념하자, 재밌게 놀자!'는 마음으로 술을 마시죠. 술 마시면 어느 정도 벽이 없어지니까요. 좀 더 솔직히 얘기할 수 있고, 저 남한에서 처음 배웠던 노래가 '취중진담'이에요(웃음).
진행자 : 술 마실 때 진심을 얘기한다는 거죠.
빌 : 그 노래 무척 좋아해서, 남한 사람도 미국 사람들과 비슷하구나 생각했어요.
예은 : 자기가 평소에 꺼내지 못하는 얘기를 술의 힘을 빌리면 좀 더 수월하게 얘기할 수 있고, 그렇게 마음이 열리잖아요. 그래서 술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회식 문화가 많은 이유가 초반에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다 어색하잖아요. 그런데 술이 들어가면 자기 통제력을 잃으면서 마음을 내비칠 수 있으니까 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을 오래한 나이든 남자들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회식을 즐긴다고 들었어요(웃음).
진행자 : 그러면 강남 씨가 북한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도 하나의 사치이고, 특히 여자들에게는 그런 부분이 사회적으로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어요? 사실 요즘 남한에서는 여자들이 술은 물론이고 담배도 길거리에서 많이 피우거든요. 그게 좋다, 나쁘다 사회적인 시선을 떠나 일단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을 표출하잖아요. 친구든 동료든 여성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게 어색하거나 그런가요?
빌 : 저는 여자들이랑 술 마시는 거 좋아해요(웃음). (미국에서는) 남녀 구분이 전혀 없습니다, 요즘엔. 1920년대부터 여자들이 투표하게 됐는데 그때 신문에 나왔어요. 여성운동하면서 여자들이 담배를 길거리에서 피웠거든요. 우리 독립적이다, 힘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미국도 예전에는 그랬지만, 요즘에는 여자들이 술 마시는 그런 것에 별다른 시선이 없어요.
강남 : 저도 남한에서 왔을 때 여자가 담배 피우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는 인도에서 담배를 피워도 됐잖아요. 저래도 되나? 그런 시선으로 봤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고요. 남북한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인식이 아마 50년 정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예은 : 제가 생각할 때는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니까 남녀가 동등하다고 생각하는데, 강남 씨 얘기를 들으면 북한은 특이하게도 예전 가부장적인 사회를 떠올리게 해요.
진행자 : 맞아요, 사실상 사회주의면 남녀가 평등해야 하는데. 강남 : 사회적으로 남자들한테 당 간부 같은 직위를 주다 보니까 여성의 일자리가 없어요. 여자는 학교를 졸업하면 열일곱 살에서 스물세 살 사이에 다들 결혼을 해요. 가정에서만 생활을 하다 보니까 사회의 흐름을 잘 몰라요.
예은 : 남한에는 술집이 무척 많잖아요. 게임이라고 술자리에서 할 수 있는 오락거리도 무척 많거든요. 걸리면 술 한 병을 다 마시거나 이런 벌칙이 있어요. 그렇게 분위기를 띄우는 거죠. 그런데 걸린 사람을 구해주는 사람도 있어요. 남자는 흑기사, 여자는 흑장미라고 하거든요(웃음).
빌 :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강남 : 저도 경험해 봤는데 저는 흑장미를 자주 쓰거든요. 지금 여자 친구한테도 흑장미를 요청했는데 안 받아주더라고요. 그래서 대신 두 잔을 마시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던 기억이 있습니다(웃음).
BG. 전람회 - 취중진담
내레이션 : 빌 군이 남한에 와서 처음 배웠다는 노래 '취중진담'이 흐르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자기 통제력이 낮아져서 마음속에 있는 이런저런 얘기를 솔직히 꺼낼 수 있죠. 그래서 연인에게 고백할 때도 술의 도움을 빌리기도 하고요. 물론 지나친 음주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술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청춘들의 목소리가 밝은 걸 보면 술은 분명히 우리 삶에 긍정적인 윤활유 역할을 하는데요. 재밌는 술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가 볼까요?
<청춘만세>,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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