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1) 탈북자라고 소개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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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그리고 해외 청년이 함께 하는 청.춘.만.세

강남 : 안녕하세요. 섹시한 남자 김강남입니다. 북한에서 왔고요, 저의 꿈은 경찰청장입니다. 대학에서 경찰행정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남한 대학생 강예은입니다. 남한 청년이 소소하게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어요. 반갑습니다.

클레이튼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국 캔터키주에서 온 촌놈 클레이튼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거주한 지 5년 됐는데 몇 주 전에 대학원 졸업하고, 지금은 월급의 노예 다 됐습니다. 반갑습니다.

정민 : 반갑습니다. 저는 한 아이의 엄마, 북한에서 온 이정민입니다. 오늘도 좋은 이야기로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진행자 : 그리고 저는 이 청춘들과 함께 하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Insert. '다문화 청소년들의 자기소개' 방송 중

청소년 1 : 나비라고 하고요. 지금 현재는 광주에서 살고 있고, 콩고에서 왔어요.

청소년 2 : 이게 파키스탄 전통 옷인데, 평상복이에요. 아빠 나라를 조금 더 알리기 위해서 입고 왔어요.

청소년 3 : 저는 안젤리카입니다. 저는 러시아에서 왔어요. 엄마와 같이 한국에서 살아요.

청소년 4 : 안녕하세요. 저 어느 나라 사람 같아요?

청소년들 : 태국, 중국, 몽골.

청소년 4 : 아닌데, 저는 북한에서 왔어요. 북한 아시죠? 북한 사람 봤어요? 여기 있어요!

청소년 5 : 북한에서 왔대요, 신기했어요.

내레이션 : 국제결혼이나 취업, 학업 등을 통해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 많습니다. 겉모습은 외국인이지만 남한에서 태어나 유창하게 한국말을 잘 하는 사람들도 있죠. 최근 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다양한 국적, 또는 다양한 겉모습의 청소년들이 어우러지는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처음 만나게 되면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죠.

오늘부터 <청춘만세>에도 새로운 친구들이 함께 합니다. 남북청년들이 함께 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김강남, 강예은 씨를 비롯해 이정민 씨가 오랜 만에 다시 <청춘만세>를 찾았고요. 미국에서 온 클레이튼 윌리그 군도 새로 인사를 드릴 텐데요. <청춘만세> 시간에도 자기소개 좀 해볼까요?

진행자 : 안녕하세요. 오늘 <청춘만세>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두 분이 자리를 함께 했는데요. 청취자 여러분께 인사 좀 부탁드릴까요?

정민 : 저는 북한에 있었으면 아마도 아우지탄광에서 탄을 캤을지도 모르는데 용기와 운이 따라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남한에 정착하게 됐고, 지금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학생으로서, 또 엄마로서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고요. 여러분을 만나게 된 건 아마 3년은 된 것 같아요. 요즘에 더 책임감을 느끼면서 (방송에)다시 복귀하게 됐습니다.

클레이튼 :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켄터키 주에서 온 클레이튼이라고 합니다. 남한에 거주한 지 5년 넘었고요. 미국에 있을 때 직업 군인 되고 싶어서 사관학교도 다녔고 기초 훈련 다 받았지만 교통사고로 부상이 심해서 군인생활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국에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어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제가 한국어 잘하게 되면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진행자 : 그렇군요. 클레이튼 씨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아요(웃음).

클레이튼 : 난생 처음 방송을 해서 영어로 하든 한국어로 하든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웃음).

정민 : 영어로 한 마디 해줘요.

클레이튼 : 하이(웃음)!

진행자 : 분위기가 굉장히 좋은데요. 남한에서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자기소개를 많이 하잖아요.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볼까요?

정민 : 남한에 온 지 5년이나 됐는데 한국 여자는 안 만나봤어요?

클레이튼 : 우리 슬픈 얘기 하지 맙시다(웃음).

진행자 : 강남 씨가 생각할 때는 미국인이면 한국 여자 친구 잘 만날 것 같지 않아요?

강남 :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마 형이 눈이 높아서 그런 게 아닐까.

진행자 : 직접 얘기를 들어보죠. 미안해요, 슬픈 얘기 조금 더 해주세요(웃음).

클레이튼 : 한국에 온 지 5년 됐는데 남한 여자 친구 두 번 사귀었어요. 예전 여자 친구가 독재자처럼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헤어지고 나서 1년 동안 다른 사람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은 마음이 반반이에요. 어떨 때는 내 옆에 여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다를 때는 자유를 즐기고 있으니까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혼자서 여행하는 거 무척 좋아해요. 자전거 타고 시골 여기저기 다니는 거 좋아하는데, 그런데 만약 여자 친구 있으면 아마 '나 사랑하지 않아? 같이 가고 싶은데...' 그렇게 말해서 부담스러워요.

진행자 : 정민 씨한테도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볼까요?

클레이튼 : 기본적인 질문인데 남한에 와서 가장 충격 받은 게 뭐예요?

정민 : 저 같은 경우는 휴대전화를 소유했죠, 처음으로. 북한에서는 아예 몰랐던 거고, 중국에서는 알았지만 가질 수 없었고. 돈도 없고, 신분 자체도 안 되니까. 남한에 하나원이라는 정착교육기관이 있는데 거기 나오자마자 바로 주민등록번호 받고 나면 휴대전화부터 만들거든요. 그걸 받고 나면 전화번호 주소록에 누가 있을 것 같아요? 아무도 없죠. 아무도 없었는데, 은행에 가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았거든요. 북한에서는 은행에 가는 사람이 정해져 있어요. 일반인은 가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계좌를 개설하는 것 자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데, 남한에서는 아무 은행에서나 돈 안 넣어도 다 내줘요. 그래서 은행마다 다니면서 계좌를 다 만든 적도 있어요(웃음).

한 은행에 가서 계좌를 발급받았는데, 생일에 문자를 보내주더라고요. 남한에 와서 첫 번째 생일이었는데, 아무도 제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정민 씨의 몇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고 문자가 온 거예요. 너무 고마운 거예요. 그때부터 그 은행을 쓰고 있어요. 상업적인 거라고 해도 당시 저한테는 감동이었어요. 여권을 발급받고 외국행 비행기에 탔을 때도 그랬고...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고 해야 하나?

진행자 : 생각해보면 남한에서는 자기소개라는 걸 할 일이 많잖아요. 학교에 들어가서도 하고, 동아리에 들어갈 때도 하고, 취업 준비생들은 직장을 구할 때도 끊임없이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데,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거나 휴대전화를 만들거나 여권을 만들 때 자기의 주민번호와 사진을 넣잖아요. 자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데, 그런 걸 통해서 특히 탈북하신 분들은 정체성이나 내가,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것 같아요.

정민 : 네, 솔직히 지금도 저는 정체성의 많은 혼란을 겪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20년 동안 북한에서 받은 교육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에 제 부모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나는 과연 북한 사람인가, 남한 사람인가, 내가 대한민국에 살면서 북한을 잊어도 되는가, 잊지 말아야 하는가, 이런 것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게 되고, 북한의 예술이나 음악을 들으면 제 몸이 먼저 반응을 하거든요. 그래서 탈북자들이 많은 고민을 할 테고, 자기소개를 하면서도 나는 탈북자지만 대한민국 사람으로 완벽하게 적응했는가 이런 것에 대해 질문한다면 사실 적응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적응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진행자 : 클레이튼은 '나는 미국에서 왔다'라고 말하잖아요. 그럼 두 분은 '나는 북한에서 왔어요!'라고 말하나요?

정민 : 거기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과연?

강남 : 저 같은 경우는 상황에 따라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밝힐지, 안 밝힐지를 결정해요. 북한 사람이라는 걸 밝히고 싶지도 않고, 안 밝힌다고 안 밝혀지는 것도 아니에요. 왜냐면 사투리가 있어서 남한 말을 한다고 해도, 여러분 제 말이 남한 말 같나요? 남한 사람들은 바로 알아보거든요. 그런데 나는 북한 사람이 아니라고 계속 부정하는 거죠. 대체로 하루 만나는 사람한테는 북한 사람이라는 걸 절대로 말하지 않아요. 이 사람과 좀 오래 만나야 한다면 가능한 한 말하고, 아니면 숨기는 사람들도 있고.

예은 : 보통 사람들이 탈북자라고 하면 어떻게 반응하기에...

진행자 : 예은 씨는 어떻게 반응해요?

예은 : 저 같은 경우는 '어, 신기하다'라는 마음이 들거든요.

정민 : 그게 저희한테는 상처예요. 왜 같은 사람인데 신기해요.

클레이튼 : 저도 탈북자 처음 만났을 때는 '와, 나 북한 사람 만났다, 너무 신기하다!' 했어요. 왜냐면 미국에서 텔레비전 보면 김정일, 김정은, 핵폭탄, 그런 것만 나오니까 진짜 북한 사람들 보고 정말 놀랐어요.

정민 : 클레이튼, 그럼 인도 사람 봐도 신기해요? 파키스탄 사람 봐도 신기해요?

클레이튼 : 아니요, 별로 신기하지 않아요.

정민 : 그런데 북한 사람은 신기해 한다는 게 저희한테는 상처거든요.

진행자 : 왜 신기해요, 예은 씨는?

예은 : 저희 같은 경우는 북한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잖아요. 사실 외국인들은 저희가 외국으로 가기도 하고, 남한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많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신기하지 않아요. 그런데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생활상을 많이 보지 못한 사람들이고 저희는 매체를 통해서 북한 하면 핵이나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받는 북한 사람들, 이런 느낌이 있으니까...

정민 :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죠. 저희 단체에서 하는 인권운동도 많이 퍼져 있고, 방송 매체에서 활동하는 탈북자들도 많아서 탈북자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진행자 : 확실히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정민 : 그럼요.

진행자 : 자기소개에 나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글쎄요, 예를 들어 클레이튼이 미국에서 왔다고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에 대한 지식을 동원해서 '아, 이 나라의 민족성은 이렇고, 이런 성향이 있으니까 이런 부분은 배려해줘야 한다'는 것들이 있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탈북자라고 말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은 : 그리고 저희도 나름대로 배려해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서 말도 조심스럽게 하고, 좀 더 관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민 : 그런데 저는 그런 배려, 관심으로 울타리를 쳐주는 것 자체가 싫어요. 그냥 일반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미래에는 탈북자들도 자유로울 수 있겠구나 생각한 게 대학에 가서예요. 대학에 가서 탈북자라고 소개했는데, 그 친구들이 받아들인 건 '신기하다'가 아니라 그냥 부산이나 대구에서 온 사람 이렇게 받아들여요. 그냥 북한이 고향이구나. 나이 많거나 그런 것에 대해서도 똑같이 대해주고. 이 사람은 북한 사람이라 내가 조심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안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북한에 대한 얘기도 많이 물어보지는 않고요. 오히려 남한의 30~40대, 특히 50~60대는 당시 반공교육이 심했다고 하더라고요. 교육적으로 몸에 들어온 것은 금방 바뀌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오히려 그런 현상이 있고, 지금 자라는 친구들은 괜찮은 것 같아요.

내레이션 : 남한 사람에게는 아프리카 콩고나 러시아,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보다 신기해진 북한 사람. 탈북자들에게는 조국이라고 말하기 꺼려지는 북한. 자기소개, 그저 자기를 알리고 서로 알아가는 일인데 이래저래 힘들어져 버렸네요. 청취자 여러분은 북한 밖을 여행하게 된다면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실 건가요?

Insert.

예은 : 정민 언니에게 궁금한 게 있는데, 어떻게 남편을 만났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정민 : 동국대 경찰학과에 탈북 선배들도 많을 거예요. 졸업하고 경찰이 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부담감 같은 건 없어요?

서로를 알아가는 청춘들의 재밌고도 날카로운 질문은 다음 시간에도 이어집니다. <청춘만세>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