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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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만 살다가 무심코 깨닫고 화들짝 놀란 사실! 벌써 10월 10일 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느새 불쑥 찾아온 이 가을에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신지요?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에 마음이 설레고 울긋불긋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은 자연의 경이로움에 호흡을 잠시 멈추게 된다면... 그리고 스리슬쩍 책장 속 옛날 사진을 들춰보며 추억에 잠긴다면... 그건 분명 가을을 타고 있다는 증거겠죠?

가을을 타고 있는... 이 가을에 중독된 모든 분들과 함께 합니다. 여기는 가을의 낭만이 있는 곳, <청춘만세>고요. 저는 진행에 권지연입니다. 남북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가을여자 이주영, 가을남자 최철남 씨와 함께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이주영, 최철남 : 안녕하세요.

진행자 : 가을입니다. 가을은 흔히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잖아요. 가을을 많이 타세요?

최철남 : 네. 저도 가을을 많이 탑니다. 조금 쓸쓸하고요. 감상에 잠깁니다.

진행자 : 그런데 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 걸까요?

최철남 : 가을에 남자들을 보면 우중충하지 않나요? 목소리가 낮게 깔리고 조금은 퉁명스러워지는 것 같고요. 그런데 연애하시는 분들은 예외인 것 같습니다. 날마다 행복하니까요.(웃음)

진행자 : 그런데 정말 가을은 남자의 계절? 여자도 만만치 않게 가을을 타지 않나요?

이주영 : 여자도 가을을 많이 타요. 남자들은 우중충 해진다는데 여자들은 더 감성적이잖아요. 가을의 낙엽 색 같은 옷, 스카프도 많이 하고 화장도 짙어지고요. 저는 찬바람이 불면 제 마음까지 싸늘해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허무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차갑고 어두운 기운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가을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네요. 가을을 타는 것은 일조량이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계절성 우울증입니다. 쉽게 피로해지고 만사에 흥미가 떨어지고 예민해지기도 합니다. 지나치면 병이될 수도 있지만 가을 때문에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이 추억이 되기도 하죠.

진행자 : 가을 타다가 생긴 '에피소드'가 있나요? 제가 먼저 고백을 하자면 저는 학창시절 가을만 되면 성적이 떨어졌어요. 늘 창밖을 보고 있고. 그래서 늘 선생님께 불려가서 꾸중을 듣고 그랬습니다.

최철남 : 저는 가을에 차를 타고 가다가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맞으며 낭만을 즐기고 있었는데 단풍잎이 날아와서 볼을 때렸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행자 : 단풍이 정신 차리라고 하는 거였군요.(웃음)

이주영 : 저도 요즘 무척 싱숭생숭해요. 공부가 하기 싫고 연구실에서 자꾸 나가게 되요. 보통은 밤 10시까지 연구실에서 공부를 했는데 나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8시쯤이면 나갑니다.

진행자 : 나가서 어디를 갑니까?

이주영 : 갈 데도 없어요. 집에 갑니다. (웃음)

어딘가를 하염없이 무작정 걷고 싶을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시원한 사람이 불면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은 나뭇잎들이 자꾸만 '날 보러 와요' 라며 손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저만의 느낌이 아니겠죠?

진행자 : 남쪽엔 특히 가을에 걷기 좋은 길들이 있잖아요. 가을 낙엽길이 예쁜 곳들... 여러분 주변에는 어디가 있으세요? 저는 저희 집 앞에 '석촌 호수' 라는 곳이 있습니다. 8자 모양의 호수길인데 가을이면 단풍이 무척 예쁘거든요. 그 길을 걷기 위해 다른 지역 분들도 무척 많이 오더라고요.

최철남 : 저희 집 앞도 아파트 길 따라 나무를 쫙 심어놓았는데요. 잎이 크고 높게 자라는 나무인데요. 이름을 모르겠어요.

이주영 : 플라타너스인가?

최철남 : 맞는 것 같아요. 그 나무 잎이 많이 떨어지는데 그 낙엽을 밟으면서 걸으면 울적해지고 그랬습니다.

이주영 : 저는 저희 집 앞에 시민의 숲이 있습니다. 집에 갈 때 한 정거장 정도 앞에서 내려서 걷죠.

진행자 :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세요?

이주영 : 오만가지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들도 하고 공상도 많이 하고요.

의학적으로도 야외에서 밝은 햇빛을 쐬고 산책이나 조깅을 하면서 산소 섭취량을 늘리는 것이 가을에 나타나는 우울한 감정을 없애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하염없이 걸으며 가을의 낭만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남쪽의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이웃들과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가을도 무척 매력 있습니다.

진행자 : 남쪽은 축제가 정말 많습니다. 요즘 어떤 축제들이 열리고 있는지 아세요?

최철남 : 구리 코스모스 축제, 여의도 불꽃 축제도 있고요.

진행자 : 여의도 불꽃 축제하는 날은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가 주차장이 됩니다. 직접 보셨어요?

최철남 : 네. 저는 올 해도 가서 봤습니다.

진행자 : 저는 한 번도 가서 본 적은 없습니다. 깔려 죽을까 봐요.<웃음>

최철남 : 자리를 잘 잡으면 됩니다. 불꽃 축제가 한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조금 멀리서 봐도 되니까요.

진행자 : 주영 씨는 어떤 축제 알고 계세요?

이주영 : 저는 불꽃 축제 말고는 잘 몰라요.

진행자 : 그래요? 북에서 온 철남 씨보다 더 모르는 거예요? <웃음>

이주영 : 네, 저는 잘 놀러 다니지 않아서요.

진행자 : 주영 씨가 유일하게 아는 불꽃 축제에 가보기는 하셨어요?

이주영 : 네. 가봤어요.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불꽃 보러 갔는지 사람 보러 갔는지(웃음)

진행자 : 불꽃이 정말 다양하잖아요. 형형색색으로... 기억에 남는 불꽃 없어요?

이주영 : 무척 작게 올라가서 꼭대기에서 엄청 크게 터지는 불꽃이 예쁘더라고요.

2000년도부터 남쪽에서는 매 년 가을이면 여의도에서 불꽃놀이를 하는데 세계 각국의 특색 있는 불꽃들을 감상할 수 있기에 그 날 여의도는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그 현장을 소리로나마 감상해 보실래요?

INS - 불꽃놀이 현장

그 광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보지 않아도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환호성 소리가 말해주는데요.

이 밖에도 남쪽의 가을 축제는 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진행자 : 이천 도자기 축제, 남양주 슬로푸드 축제, 자치구마다 하는 축제들도 많고요. 처음에 남쪽에 와서 남쪽은 무슨 축제가 이렇게 많나 하는 생각 안하셨어요?

최철남 : 했죠. 놀고먹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라는 것이 경쟁이 심하니까 이런 시간들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행자 : 또 축제를 통해서 주변 상권도 살아나는 것이 있으니까요. 북한도 축제가 있나요?

최철남 : 북한도 축제가 있긴 있어요. 국가적으로 하는 축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직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적으로 조직된 명절에 그 때마다 학교나 큰 공터에서 무도회를 엽니다. 그 날은 여자들은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남자들은 양복을 입고 춤을 추며 놀아요. 야외에서 가운데 모닥불을 켜 놓고 녹음기를 틀어 놓고 놉니다.

이주영 : 저는 북한 영화에서 본 적이 있어요.

진행자 : 그런 모습은 남쪽에서는 생소한 모습이죠.

최철남 : 빼는 사람도 없습니다. 온 몸을 흔들면서 같이 춥니다.

진행자 : 재밌겠네요.

통일이 되는 어느 가을 날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춤추며 놀아보는 것도 참 즐거울 것 같습니다.

진행자 : 북한의 가을은 어때요?

최철남 : 북한의 가을은 조금 더 빨리 오잖아요. 북한에는 한국처럼 단풍나무나 은행나무가 없어요. 저희 집 앞에는 침엽수림만 많았어요. 소나무 같은 거요. 낙엽을 보려면 산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가을에 가을걷이를 해야 하니까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그러면 남쪽 사람들처럼 가을을 많이 타지는 않겠네요.

최철남 : 그래도 마음은 똑 같죠. 쓸쓸하고 가을이면 외롭고.

진행자 : 감정은 같지만 환경과 여건상 가을을 즐기지는 못하는 거군요.

진행자 : 가을이 되면 사색도 많이 하게 됩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반성도 많이 하게 되고요.

최철남 : 저는 가을이 되면 거울 속의 저 자신이 참 낯설게 느껴져요. 한 해 동안 하려고 했던 것들을 못하고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주영 : 저는 대학원은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잖아요. 그리고 힘들게 공부를 했는데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격려를 스스로에게 하는 편입니다.

진행자 : 남쪽 사람들은 은행잎이나 단풍잎에 문구도 적고 코팅해서 책갈피에 끼워 놓거나 편지랑 같이 보내거나 하거든요.

최철남 : 북한도 네잎클로버 가지고 그런 거해요.

진행자 : 은행잎이나 단풍잎에 문구를 써서 책갈피에 끼워놓는다면 어떤 문구를 적고 싶으세요?

이주영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다시 달음박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철남 :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지 말라.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라. 현실에 충실해라' 그 말을 적겠습니다.

진행자 : 저는 간단명료하게 이렇게 적겠습니다. '청춘만세'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탐구하고 제 발로 서라'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말인데요. 이 가을 우리에게 주는 명언인 것 같죠?

가을이 주는 외로움과 고독을 잘 이겨낸 후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음 주에 찾아뵐게요. 지금까지 진행에 권지연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