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 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먼저 이 시간을 함께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할게요.
클레이튼 :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 온 클레이튼인데 남한에 온 지 6년 됐습니다. 지금 한국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일곱 살이고,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강예은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있어 이렇게 함께 하게 됐습니다.
광성 : 안녕하세요, 정광성입니다. 저는 2006년까지 북한에서 살다 탈북해서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북한전략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북한에서는 조선글이라고 하죠?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민족이 사용하는 고유의 말을 글로 표기하기 위해 만든 훈민정음을 남한에서는 한글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지난 10월 9일 570돌 한글날을 맞아 남한은 물론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계 곳곳의 어학당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남한의 드라마나 노래를 들으면 외국어가 참 많이 나오는데요. 우리 청년들은 한국어, 한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얘기 나눠보죠.
진행자 : 안녕하세요. 지난 10월 9일이 한글날이었죠? 서울 도심도 그렇고 전국적으로 한글날 행사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여러분에게 퀴즈 하나 내볼까요?
예은 : 네, 준비됐습니다(웃음)!
진행자 : 아는 사람은 손을 들어 주세요. 상품으로 전시회 표를 드리겠습니다! 올바른 표기법, 그러니까 맞춤법에 맞는 걸 고르는 거예요.
'나 이거 하기가 좀 꺼림직해. 이거 하기가 좀 꺼림칙해.' 어떤 걸까요?
광성 : 저요, 1번?
진행자 : 땡!
예은 : 2번(웃음)! 그런데 '꺼림칙하다'예요?
진행자 : 우리가 '꺼림직하다'로 많이 말하는데 올바른 맞춤법은 '꺼림칙하다'예요. 어렵죠? 그런데 또 북한에서는 '꺼림직하다'가 맞답니다.
또 하나 내볼까요? '나 어제 휴대전화를 잊어버렸어, 잃어버렸어.' 어떤 게 맞죠?
클레이튼 : 잃어버렸어!
진행자 : 역시 클레이튼!
예은 : 이번에는 제가 내볼게요.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켰다, 가르쳤다.'
광성 : 가르쳤다!
진행자 : 맞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 무승부네요(웃음). 사실 이렇게 바로 정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한국어를 틀리게 말하고 표기하는 사람들이 많죠. 한글날을 맞아서 이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봤는데 10월 9일 한글날에 대해서는 예은 씨가 설명해줄래요?
예은 : 한글날은 1926년에 한글학회, 당시에는 조선어연구회에서 지정했어요. 그때가 일제강점기라서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 제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글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한글은 '하나 밖에 없는 글자'라는 뜻이에요. 1443년에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만들었고, 1446년에 반포했어요.
진행자 : 청취자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그 전까지는 한반도에 말은 있었지만 글이 없어서 한자를 썼죠.
진행자 : 그럼 당연히 북한에도 한글날이 있겠죠?
광성 : 그렇죠. 그런데 지금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들께서는 한글날이 있는지 잘 모르실 것 같아요. 왜냐면 북한에도 한글날은 있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북한에 있을 때는 몰랐거든요. 남한에 와서 알게 됐어요. 북한에서는 한글을 조선글이라고 해서 조선어를 지키려고 노력은 하는데 그게 어떻게 만들어졌고,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진행자 : 그럼 북한에서도 한글날이 10월 9일인가요?
광성 : 아니에요. 북한에서는 1월 15일인데, 왜 다른지는 모르겠어요.
진행자 : 제가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더니 예은 씨가 말한 것처럼 한글이 1446년 음력 9월에 반포됐잖아요. 이걸 양력으로 하면 10월 초가 되니까 남한에서는 반포일을 기준으로 해서 10월 9일을 한글날로 하고, 한글이 만들어진 달은 음력으로 12월 말이라고 해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만들어진 날을 기준으로 1월에 '조선글날'이라는 게 있는데 별다른 행사를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광성 : 행사는 전혀 없고요, 북한에서 온 사람들에게 한글날을 들어봤는지 물어봤더니 20~30대는 거의 못 들어봤다고 하고, 40~50대는 알고는 있지만 중요한 날은 아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심지어 한글을 김일성이 만들었다고 아는 사람도 있고, 세종대왕이 누군지도 몰라요.
예은 : 남한에서는 세종대왕이라는 조선의 왕이 가장 업적이 많다고 생각해서 광화문광장에 가면 세종대왕 동상도 볼 수 있거든요.
광성 : 그런데 북한에 가면 김일성 동상밖에 못 봐요(웃음).
진행자 : 미국에 존에프케네디 공항이 있는 것처럼 예전에 인천국제공항이 생길 때 공항이름을 세종공항으로 하자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한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왕이죠. 사실 군주가, 그러니까 왕이 백성을 위해 글을 만든 나라는 흔치 않다고 해요. 이 세상에는 많은 말이 있지만 그 말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나라도 많지 않고요.
미국에도 영어날이 있나요?
클레이튼 : 없습니다. 영어는 미국에서 만든 게 아니라 영국에서 만든 거잖아요. 미국식 영어가 있기는 하지만 한글날 같은 기념일은 아예 없습니다. 그래서 영어에 대한 자부심도 없고. 예를 들어 외국인이 미국에 오면 영어로 말하라고 잔소리는 하는데 영어가 최고이고 과학적이라는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아요.
진행자 : 우리는 영어 배우겠다고 돈 내고 미국을 그렇게 가는데.
예은 : 저는 자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세계 공용어니까. 그럼 한글이 창제됐다는 얘기를 한글을 배우면서 들으셨을 텐데 처음 들었을 때 어땠어요?
클레이튼 : 놀랐죠. 어떤 분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니까 신기했어요. 왜냐면 영어는 누가 알파벳 만들었다는 게 없으니까. 제가 알기로는 다른 언어들도 옛날부터 진화된 거고. 세종대왕에게 감사해요. 덕분에 한국어 배우기 쉬웠어요. 제가 한국어 처음 공부할 때 발음이나 문법 때문에 정말 어려웠는데 한글 덕분에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읽을 수 있거든요.
진행자 : 북한에서는 한글보다 훈민정음이라고 많이들 아실 거예요. 훈민정음이 한글창제의 원리나 방법들을 써놓은 책인데 훈민정음 자체가 남한에서는 국보 70호이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도 등재돼 있거든요. 거기 보면 실제로 세종대왕이 한글이 굉장히 쉽다, 백성들을 위해 쉽게 만들어서 어리석은 사람은 일주일 만에, 똑똑한 사람은 하루 만에 깨우칠 수 있다고 적혀 있대요.
클레이튼 : 네, 영어는 알파벳 있어도 상황에 따라 외워야 하는 게 많아요. 그런데 한글은 그런 불규칙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예은 : 과학적으로 연구해서 만든 거잖아요. 예를 들어 자음은 입모양을 보고 만들었고, 모음은 하늘이나 사람 등의 조합으로 만들어서.
진행자 : 그런데 한글이 정말 쉽고 과학적인지 사실 한반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배우게 돼서 잘 모르거든요. 클레이튼은 다른 나라 언어와 비교가 되나요?
클레이튼 : 네, 어렸을 때는 불어도 공부했는데 불어보다 한글 읽는 법, 소리 내는 법이 훨씬 쉬워요. 불어는 영어와 알파벳이 비슷한데도.
광성 : 그런데 제가 들었을 때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어려움이 많다고 하던데.
클레이튼 : 그런데 어려움 중에 쉬운 게 딱 하나 있는데 바로 한글이에요. 문법이나 발음은 너무 어려워요. 한국에 온 지 6년 됐는데도 어려워요. 그런데 한글이 있어서 기사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물론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읽을 수는 있어요.
진행자 : 예은 씨 남자친구도 외국인이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잖아요. 어떤 게 가장 쉽고 또 어렵다고 하던가요?
예은 : 클레이튼 오빠가 말한 것처럼 한글 자체를 배우는 건 쉬운데 단어나 어감의 차이, 문법적인 부분, 그리고 한자어가 많이 사용돼서 어렵다고 해요. 왜냐면 글자는 한글로 표기하지만 아직도 한자어가 많이 혼합돼 있잖아요.
진행자 : 혼합이라는 말처럼(웃음).
진행자 : 한반도에서 자란 두 친구는 오늘 한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나요? 우리가 그동안 영어에 좀 밀렸잖아요(웃음).
예은 : 저는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해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 자부심을 가지고 한글을 소개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광성 : 저 같은 경우는 한글에 대한 자긍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게 북한에 있을 때는 외국어, 다른 언어를 배울 기회조차 거의 없었어요. 물론 영어도 가르치고 한자도 가르치지만, 조선말이 더 위대하다고 가르치니까. 그래서 처음 남한에 왔을 때는 '왜 영어를 배워야 하지?' 라는 생각도 했어요. 영어를 좀 배우면서 비교해 봐도 한글이 표현력도 풍부하고 좋은 언어라는 자긍심은 있어요.
진행자 : 그런데 북한에서는 조선어라고 해서 민족성을 강조하면서 왜 세종대왕이나 한글의 우수성은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걸까요?
광성 : 김일성 독재체제니까 김일성을 신으로 받들어야 하고, 그 사람밖에 없어야 하는데 그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이 나오면 안 되는 거죠.
진행자 : 역사 속의 인물이라도?
광성 : 네, 역사 속의 인물이라도 김일성보다 위대하면 안 돼요.
예은 : 그리고 조선시대 역사도 제대로 안 가르치니까. 저희는 학교에서 훈민정음을 배웠어요.
진행자 : 나랏말씀이...
예은 : 네, 그 당시에는 그걸 다 외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까먹었어요. 북한에서도 배우나요?
광성 : 훈민정음 자체를 안 배우는 것 같아요. 국어라고 해서 한글을 배우는 거지. 가끔 책이나 영화를 보면 한글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언급하지 않고 김일성이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김일성이 한글을 만들 걸로 착각할 수 있죠.
예은 : 백성들이 쉽게 읽고 쓰도록 한글을 만들었잖아요. 1945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문맹퇴치운동을 했대요. 그 당시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자가 더 많이 쓰이던 때여서 문맹률이 78%였어요. 그런데 1958년에 4.1%까지 떨어졌고, 1980년 이후로는 아예 조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읽고 쓰기는 다 한다고 해요.
클레이튼 : 미국도 거의 다 읽을 수 있어요.
진행자 : 북한은 어때요? 집계가 잘 안 되겠죠?
클레이튼 : 제가 인터넷 검색했는데 북한은 100%로 나왔어요(웃음).
광성 : 그런데 사실이 아닌 게 물론 저희 세대, 1980년 이후 세대는 문맹률이 낮아요. 무상교육이라고 무조건 학교를 가야 했으니까. 그런데 저희 아버지 세대만 해도 아버지 친구 중에도 두세 분은 말을 하시는데 글을 쓰거나 읽지 못하는 분들이 계세요.
세종대왕이 만든 쉬운 한글 덕분에 이제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은 남북한에 거의 없겠죠?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데요. 반면 남북한의 말과 글을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나눠보죠.
<청춘 만세>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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