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실패, 고민, 고통 따위를 견디기 힘들 때에는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한다. 담담하게 인생의 길목에 놓인 걸림돌들을 뛰어넘은 다음에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 들판을 만나게 된다. 인생은 그 걸림돌들로 인해 더욱 멋이 나고 풍요로워진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청춘만세에 김인선입니다. 오늘은 중국시인 장쓰안의 책 ‘평상심’에 있는 글귀로 시작해봅니다. 장쓰안의 글처럼, 청춘의 시기에는 수많은 걸림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청춘들은 그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기도 합니다. 성공의 맛을 보게 된 거죠. 그렇다면 청춘만이 맛볼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주영, 최철남 씨와 ‘청춘의 맛’이라는 주제로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주영, 최철남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오늘은 ‘청춘의 맛’ 이라는 주제로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맛’은, 일부는 감각적이고 일부는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맛에 대한 느낌은 개인차가 크고 같은 사람이라도 조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본적으로 맛에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이렇게 4가지가 있는데 이 4가지를 청춘의 관점으로 이야기 나눠볼게요. 청춘에게 있어서 단맛이란 어떤 것인지 어떤 것들이 단맛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 두 청춘들에게 들어볼게요.
최철남 : 청춘들이니까요. 거창한 성공보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교를 갔다 그러면 성공일 수 있겠고요,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났다거나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났을 경우가 단맛이라 느낄 수 있는 그런 게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주영 : 아무래도 단맛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연애 같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과 느끼는 감정,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경험들 그런 게 가장 달콤하지 않나요?
진행자 : 청춘에게 있어서 단맛이란 사랑, 연애 이런 쪽으로 지금 두 사람 다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은데요. 나온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북한에서의 연애, 남한에서의 연애. 단맛으로 표현된 연애에 대한 얘기를 풀어볼까요?
최철남 : 제가 있을 때만 하더라도 북한이라는 나라는 남녀 간의 연애가 남한처럼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남한은 내성적인 사람도 있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고 사귀잖아요. 그런데 북한은 그게 쉽지 않거든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고 표현할 때도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귀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남자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되게 쑥스러워 해요. 그래서 좋아한다는 것을 다른 식으로 돌려서 말을 해요. 굳이 ‘내가 널 좋아해, 사귀자’ 라는 말을 안 해도 은근히 잘해주면 여자도 알아차리고 좋으면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하는 거예요. 남한 연애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이주영 : 북한 분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남한에서도 눈치를 많이 보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냥 서로 눈치를 보면서 ‘쟤가 나를 좋아하나?’ 아니면 누가 먼저 말을 하나 그런 자존심 싸움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진행자 : 북한에서는 은근히, 서서히 사랑이 시작된다면 남한에서는 뭔가 명확해야지 연애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으로 비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철남 : 북한도 그렇고 남한도 그렇고 유교문화다 보니까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자기를 뒤로 숨기고 뭔가 확실해진 다음에야 연애를 하려는 게 있잖아요. 그 와중에 남한에서 말하는 남자답게 말하는 상남자가 있어요. 그래서 꼭 북한, 남한 나눠서 보기보다는 사람 차이입니다. 문화적 차이로 본다면 북한이 남한보다는 연애에 있어 더 보수적이죠.
이주영 : 제가 보기에는 남한은 북한과 달리 남녀가 친구로 지내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남녀가 내외하는 게 좀 강하더라고요. 남녀가 사귀기는 하는데 친구로 친하게 지내는 게 남한처럼 자연스럽지 않더라고요.
최철남 : 연애라는 게 남한처럼 자유롭지 않으니까 남한보다 훨씬 더 달콤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북한은 남한처럼 사람들이 연애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남자들은 군대에 가고 남자가 거의 없어요. 젊은 층이 없어요. 보통 10년씩 군대에 나가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돌아와야 남자가 생기는 거죠. 그 사람들이 돌아올 때는 서른 살, 서른한 살 이기 때문에 바로 장가가야하거든요. 그래서 보통 보면, 고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 연애를 잠깐해요. 많이 해야 두 번 인거죠. 대도시는 모르겠는데 지방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더 순수하고 더 달콤하고 말 그대로 예쁜 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달콤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주영 : 달콤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남녀 간이 서로를 더 특별하게 느낄 수는 있는 것 같아요. 워낙에 남자인 친구가 많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남자친구라고 해서 특별히 남녀 간의 이성 이런 거는 없는 것 같아요. 탈북자 친구가 있었는데 남자였어요. 여자애가 잘해준 거예요. 원래 남한에서는 친구에게 잘해주잖아요. 그런데 이 남자친구는 오해를 한 거예요. 북한에서는 이런 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서 오해하고 나중에는 화를 냈대요. ‘너는 나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한테 왜 잘해줬냐, 왜 오해하게 만들었냐’ 이런 식으로요. 남녀가 둘이 같이 있는 것을 되게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남녀 간에도 친구처럼 얼마든지 같이 있고 둘이 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그런 게 다른 점이 있어도 연애의 달콤함은 똑같지 않을까요?
내레이션 : 맛이라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이어서 비슷하면서도 다를 수 있다고 했는데 ‘단맛’에 대한 이야기부터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탈북을 통해 북한과 남한에서의 생활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철남 씨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단맛의 기억이 있다고 하네요.
최철남 : 어렸을 때 고모네 집에 갔던 적이 있어요. 고모네 집이 북한에서 좀 먼 곳에 있어요. 저희는 옥수수밥을 먹는데 거기는 쌀밥을 먹더라고요. 과일도 엄청나게 많고요. 꿈꿨던 천국 같은 곳이 있는 거예요.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다가 4, 5년 지나서 탈북 했죠. 중국에 갔는데 훨씬 좋은 거예요. 지나다니던 강아지도 좋은 것을 먹고 다니고 매일 아침 고기를 먹고 시장에 나가니까 과일이 너무 많아서 썩어 나가고 있잖아요. 이런걸 보니까 중국이 천국 같다 했는데 남한은 촌 동네에서도 그만큼 먹거든요. 먹을 것이 풍부하고 더 좋아요. 그때 북한에서 느꼈던 달콤함은 ‘남한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구나, 중국에 비해도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행자 : 단맛에 대해서는 사랑, 연애 이런 쪽으로 정리가 된 것 같아요. 그렇다면 두 번째, 청춘에 있어서 어떤 맛을 쓴맛이라고 할까요?
최철남 : 북한에서는 곰 열(쓸개) 같은 맛이라고 하는데요, 실패한 맛. 예를 들면 학교에 떨어졌다거나 연애에 실패했다거나 생각보다 성적이 안 나와서 실패를 맛봐서 쓴맛을 느끼는 것 같아요. 쓴맛은 다양한 것 같아요.
이주영 : 쓴맛하면 단맛의 반대말 같으니까, 단것이었는데 그게 없어졌을 때 혹은 그게 안됐을 때 쓴맛을 느낄 것 같고요. 인간관계에서 씁쓸함을 느끼거나 배신을 당하면 씁쓸하죠. 보통은 실연이 가장 크지 않을까요?
최철남 : 맞아요. 집안이 망한다거나 이런 경우가 아니면 큰 쓴맛은 없는데 안 좋은 의미로 따진다면, 부모님이 이혼하거나 돌아가신다거나 어떤 아이들은 버려진다거나 이런 사람들도 쓴맛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북한에도 아이들이 버려졌어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부모들이 많이 탈북을 했잖아요. 예를 들면 어머니가 먼저 탈북을 하면서 아버지한테 맡겨놨어요. 그런데 북한은 남자들이 가정을 지탱할 능력이 없어요. 왜냐하면 남자들은 나가서 국가 일을 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국가에서는 월급이나 배급을 안줘요. 그러다보니까 자식들을 부양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애들이 집에 먹을 것이 없으니까 집을 뛰쳐나와 꽃제비가 되거나 그런 애들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어떤 집은 먹을 것이 없다보니까 흩어지자 하는 거예요. 나중에 살만하면 다시 모이자했는데, 이런 애들이 부모도 잃고 자기 집도 잃고 거리로 나앉으면서 쓴맛을 느끼고 국가에 대한 쓴맛도 느끼고 그래요.
진행자 : 북한에서는 아이들이 버려지는 쓴맛을 경험했다면, 그 아이들이 단맛을 경험할 수 있나요?
최철남 : 북한 내에서는 단맛을 느끼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국가가 애들을 돌봐줄 능력이 없어요.
이주영 : 북한에 비하면 버려지는 비율은 훨씬 낮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씁쓸한 게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가족끼리 같이 자살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사실 북한하고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면 남한이 훨씬 먹을 것도 많고 쫓아와서 죽이려는 사람도 없고 고문하는 사람도 없기는 한데 심리적인 압박감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자살을 해서 씁쓸함을 주변 사람들이 경험하기도 하고 그런 경우는 있어도 고아원에 커서 오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진행자 : 남한에서는 혹여라도 버려지는 아이가 있다면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북한과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부가 아니더라도 종교단체, 봉사단체를 통해 버려진 아이들도 충분히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어요. 철남 씨가 쓴맛은 좌절의 맛이다, 실패의 맛이다, 실연의 맛이라고 표현을 해줬어요. 남한으로 왔을 때 쓴맛을 경험한 적은요?
최철남 : 처음에 남한에 오면 친구들도 없고, 동네 아는 사람도 없고 동네 주민들이 옆에 있잖아요. 친해지고 싶어서 인사를 하면 안받아주더라고요. 휴대폰 보고 있고, 올라가는 층을 보고 있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옆집 사람이랑 인사를 안 해요. 왜냐하면 제가 아는 척 하면 더 이상해지더라고요. 뭐랄까? 얘가 나한테 얻어먹을 게 있나 하는 식으로 쳐다봐서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거 느낄 때 남한 사회의 단절된 느낌이 들어서 쓴맛을 되게 많이 느꼈어요. 그런가보다 했는데 다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진행자 : 이웃사촌 간에 인사도 제대로 안 나누는 모습에서 쓴맛을 맛봤다고 표현을 해주셨습니다. 주영 씨는요? 남한의 청년들이 맛보는 쓴 맛, 어떤 것이 있죠?
이주영 : 청년이니까 원하는 대학을 못가거나, 취직을 원하는 곳에 못가거나,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하시거나 교우나 친구 관계에서 사이가 틀어지거나 이럴 때 쓴맛을 보통 느끼는 것 같아요. 쟤는 노력해서 저기까지 올라갔는데 나는 못 올라갔다, 이랬을 때 느끼는 씁쓸함이 되게 큰 것 같아요. 내 친구는 부자고, 내 친구는 굉장히 공부를 잘하고 이런 경우에 왜 나는 공부를 못할까 이런 식으로 계속 비교하면서 씁쓸함을 많이 느끼지 않나 생각해요.
내레이션 : 쓴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생각만으로도 속상하고 기분이 가라앉나봅니다. 주영 씨와 철남 씨 두 사람은 다른 두 가지 맛, 짠맛과 신맛 이야기를 나누자하네요.
이주영 : 짠맛하면 생각나는 게 청년이니까 직장을 갖기 전에는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먹고 싶은 게 있는데 좀 더 싼 거를 먹어야 된다거나 그럴 때 짠맛을 느끼지 않나 해요.
최철남 : 맞는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하고 싶은 게 되게 많잖아요. 멀리 여행도 가고 싶고, 친구들이랑 같이 좋은데 놀러 가고 싶고 좋은 물건 사고 싶고 이런 거 있잖아요. 이런 게 말처럼 쉽지가 안잖아요. 그러니까 돈 때문에 인생이 짭짤하다는 맛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진행자 : 제가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짠맛은 단맛을 더 가미시켜줄 수 있는 맛이에요. 예를 들어서 설탕을 아무리 넣어도 음식의 단맛이 원하는 만큼 안 나올 때는 소금을 살짝 넣어주면 단맛을 더 크게 느낄 수 있거든요. 여러분들이 청춘에서 누릴 수 있는 단맛은 짠맛을 경험했기 때문에 단맛이 더 올라가는 거라 생각해요.
이주영 : 맛과는 다르지만, 굉장히 적은 소금이 바닷물을 부패하지 않게 만들어준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청년들이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이상이 높잖아요. 사회에 대해 어떤 부패나 불의를 봤을 때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청년들이 그런 이상이 있기 때문에 이 사회부패가 어느 정도 저지가 되지 않나 그런 측면이 생각나네요.
진행자 : 어떻게 보면 짠 맛이라는 것이 청춘들만이 낼 수 있는 맛이겠네요. 갑자기 짠맛이 멋있어졌습니다. (다 같이 웃음) 그럼 마지막, 신맛은요?
이주영 : 아무래도 경험이 얕고 나이가 어리니까 이것저것 실패를 많이 하잖아요. 그러면서 뭔가 떫은 느낌을 가질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어설픈 부분이 많으니까요.
최철남 : 신맛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싫으면서도 좋은 거잖아요. 청춘에다 연관시켜보면, 아직은 신맛을 내지만 꼭 필요한 존재고 나중에는 훨씬 더 달달한 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신맛은 좋은 의미로 생각해요.
이주영 : 상큼한 거랑 연관이 되어있지 않나 싶어요. 신 것을 먹으면 달거나 쓴 거랑은 다르게 상큼하잖아요. 젊은이들이 그렇게 상큼한 맛이 있잖아요. 그게 또 젊은이들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진행자 :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떤 맛을 겪고 있는 중인가요?
이주영 :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모든 것이 섞여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달달한 것을 굉장히 많이 추구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깊이 있는 맛을 추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최철남 : 제가 살아온 것을 보면 탈북하면서도 쓴맛을 많이 느꼈지만 탈북한지 8년 됐거든요. 남한에서는 8살이라 생각해요. 아직까지 어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더 쓴맛을 더 느껴보고 싶어요.
내레이션 : 사람이 느끼는 ‘맛’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저마다의 판단이 다릅니다. 하지만 탈북을 통해 남한 생활을 하고 있는 철남 씨는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 자체가 힘들었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보위부 감시원으로 돌변해서 고발하는 바람에 북에서 경험했던 쓴맛이 훨씬 더 강했다고요. 이 시간을 통해 지금 현재 맛보고 있는 청춘의 맛은 무슨 맛인지 여러분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춘만세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