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김치 버스라고 들어 보셨나요? 27개국, 130개 도시를 400일간 달려온 김치 버스가 있다고 합니다. 젊은 요리사 세 명이 우리의 김치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라고 하는데요. 김치 버스 안의 모습이 상상이 가시나요? 저는 생각만 해도 군침부터 도는데요. 오늘은요...맞습니다. 김치, 김장 얘깁니다.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정민, 김강남, 김재동 씨와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이정민, 김강남, 김재동 :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 가을하면 떠오르는 것들 많죠? 남자?
이재동 : 저는 여자...
진행자 : 그리고 또 하나 있죠. 주부님들의 고민이기도 한데요. 김장!
겨우내 먹기 위해 김치를 한꺼번에 담그는 김장은 북쪽은 물론이고 남쪽 주부들에게도 숙제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남쪽에서는 김장을 안 하는 집들도 꽤 있답니다.
진행자 : 요즘 김장 하나요? 저희 집은 어머니께서 김장을 안 담그신 지 오래됐어요. 사서 드시더라고요. 그래도 남쪽도 11월 전 후로 해서 김장철이죠. 재동 씨네 집은 어때요?
김재동 : 저희 할머니가 요리 전문가로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그랬었어요. 할머니가 솜씨가 좋으셔요. 당뇨나 병으로 힘드셔서 지금은 적게 담그십니다. 할아버지가 워낙 그 맛에 길들여져 있고 까다롭다보니까 김치를 안 담글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민 씨와 강남 씨는 남쪽에 와서 김장을 해 본 적이 있었을까요?
진행자 : 북한 얘기는 잠시 후에 여쭙기로 하고요. 두 분은 남쪽에서 김장 해 본적 있으세요?
이정민 :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원래 음식도 잘 못하고 해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더 경제적이더라고요.
진행자 : 요즘은 맛도 좋아요. 강남 씨는요?
김강남 : 저는 사 먹지도 않아요.
진행자 : 담가 드시진 않을 것 같고.. 얻어먹나요?
김강남 : 네, 식당에 가든 어디가든 김치는 있으니까요.(웃음)
진행자 : 그러면 우리 네 명 중에 김장을 하는 집은 재동 씨네 집 밖에 없네요. 북한은 김장철이 언제인가요?
이정민 : 남쪽보다 조금 더 빨리 담굽니다. 11월 초에서 중순사이 담굽니다. 그것도 김장 전투라고 합니다.
진행자 : 용어도 참 전투적이네요.
이정민 : 네, 전투적이고요. 남편들도 그 때는 휴가를 냈었어요. 북한에서는 김치가 밥과 먹는 반찬 정도가 아니고 일 년치 식량이라고 해요. 김장을 담가서 그 다음 해 4월, 5월까지 먹는 집은 정말 잘 사는 집이고요. 저희 집은 2월이면 떨어졌었는데 그것도 1톤씩 담근 거였는데요.
진행자 : 1톤이요? 상상이 안가요.
이정민 : 장독으로 11개, 12개 이렇게 돼요.
진행자 : 김장하고 나면 앓아눕겠어요. 정말 전투가 맞네요.
이정민 : 그렇죠. 어떤 해에는 소금이 없어서 절임을 못한 적도 있고 절임은 했는데 고춧가루가 없어서 백김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다른 게 없으니까 맛있었어요.
진행자 : 우리 민족의 김치는 원래는 백김치였다고 해요.
이정민 : 그리고 남쪽처럼 김치 냉장고가 없으니까 땅에 묻어요.
진행자 : 그게 더 맛있을 것 같은데요? 옛날에 할머니 댁에 가면 땅에 묻어 두었던 김치를 주셨는데 정말 맛있었거든요. 정민 씨도 김장 할 때 한 역할을 하셨겠네요?
이정민 : 물을 길어 먹었어요.
진행자 : 이 연약한 몸에?
이정민 : 그래서 제가 키가 안자란 것 같아요. (웃음) 물지게를 매고 다니는데 보통 때는 여섯 번 정도 길었다면 김장 할 때는 제가 서른 번 엄마가 서른 번, 이렇게 60번을 길었어요.
진행자 : 김장이 싫었겠어요?
이정민 : 싫었죠.
진행자 : 북한에서는 남자들도 김장을 다 돕는다고 하니까 강남 씨도 경험이 있겠어요.
김강남 : 그렇죠. 북한의 김장철이 되면 물을 길어다가 배추를 씻어야 하잖아요. 1차, 2차, 3차로 씻어야 하는데 그걸 이동시키는 일을 했어요. 북한은 아직도 남존 여비 사상이 있지만 김장 때 만큼은 잘 도와줘요.
진행자 : 본의 아니게 실수 한 적은 없나요?
김강남 : 독을 하나씩 깼었어요. (웃음) 누나가 작고 작은(적은 량의) 속을 넣는 것이 안쓰럽고 내가 남자라는 자존심이 있어서 독을 못 들게 했는데 누나가 애써 양념까지 다 묻혀서 담근 걸 깨뜨린 거예요.
진행자 : 맞지는 않으셨어요?
김강남 : 맞지는 않았어요.
진행자 : 누나가 성인군자네요. (웃음)
김강남 : 그래도 무섭긴 무서웠어요.
이정민 : 그리고 남과 북이 김장할 때 분위기가 서로 다른 것 같아요. 김치 하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북한의 엄마들은 빨간 양념을 그냥 손으로 하는데요. 여기서는 고무장갑을 끼고 비닐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하더라고요. 담그는 풍경도 다르구나 생각했어요. 북한은 머리 비듬도 떨어지고 그래도 그냥 하거든요. (웃음)
진행자 : 양념에 그런 것도 들어가는군요.
이정민 : 그럼요. (웃음)
강남 씨와 정민 씨 모두 김장에 대한 추억이 참 많습니다.
진행자 : 재동씨도 대가족에서 살았으니까 김장하는 건 많이 봤을 것 같은데 왠지 구경만 했을 것 같아요. 일 좀 거드셨습니까?
김재동 : 저는 예상대로 간만 봤습니다. (웃음) 주는 대로 잘 먹고 간이 어떠냐고 물어 보시면 대답을 잘 해 드렸죠. 돌이켜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소한 맛이었어요. 진행자 : 김치 속을 너무 많이 먹고 설사 하고 그랬던 거 아닙니까? 저는 그랬었거든요.
김재동 : 저는 적당히 먹었습니다.
진행자 : 네... 저만 그랬던 걸로...(웃음)
김장하는 날 남쪽에서는 보통 돼지고기 수육을 삶습니다. 뜨거운 김이 솔솔 올라오는 수육 한 조각을 노란 배춧잎에 얹어 빨갛게 버무린 속과 함께 싸먹으면... 정말 끝내줍니다.
진행자 : 남쪽은 지금도 시골에 가면 김장하는 날은 마을 잔치에요. 그리고 김장 할 때 꼭 함께 하는 것이 있거든요.
이정민 : 네, 수육 삶더라고요.
진행자 : 북한도 그렇게 해요?
이정민 : 없죠. 돼지고기가 얼마나 귀한대요. 명절에도 먹기 힘든 건데. 배추에 옥수수 죽을 끓여서 먹었어요. 김장 끝나고 나면 배추를 한 포기 씩 나눠가져서 쭉 쭉 찢은 후에 농태기(밀주)와 함께 먹는데 여자들은 술을 못 먹는 것이 북한의 풍조여서 많이는 못 먹고 남자들은 잔치를 벌이죠. 김장 때는 정말 옥수수를 팔아서라도 술을 먹었어요.
진행자 : 재동 씨네 집은 특별한 걸 먹었을 것 같아요. 김장하는 날.
김재동 : 저희 집은 할아버지가 워낙에 유난스러우셔서 국이 빠지면 난리가 났었어요. 정말 김치가 맛있으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모든 맛이 그립습니다.
진행자 : 저는 쌀밥에다가 참기름을 똑 떨어뜨려서 스팸을 구워서 먹으면.. 아, 살찌는 소리가 들리네요. 강남 씨는요?
김강남 : 김장을 집집마다 같은 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김치를 하게 되면 양념이 그 집의 수준이에요. 고춧가루가 진하고 거기에 명태, 고기가 들어가면 부자였어요. 큰 대야에다가 김치를 쌓아놓고 양념을 버무릴 때 얻어먹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밥도 그럴 때는 양재기에다 넣고 양념을 넣고 비비고 배추는 손으로 찢어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진행자 : 말씀하시는데 정말 신나하네요. (웃음) 바로 앞에 김치가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김장을 집에서 직접 하는 가정이 점점 줄어드는 남쪽이지만 이 맘 때가 되면 내 집 김장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줄 김장을 담그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일명 '사랑의 김장 나누기' 라고 합니다.
진해자 : 남쪽도 불우이웃들을 위해 곳곳에서 김장 봉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정민 : 저는 받아 봤어요. 김장때마다 적십자사나 하나은행, 지자체에서 '사랑의 김장 나누기'를 하는데 그걸로 겨울로 나고 그랬어요. 소외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신경 써주는 거죠. 저는 수혜자라서 기분이 좋았어요.
진행자 : 강남 씨도 받아봤어요?
김강남 : 저는 못 받아 봤어요.
진행자 : 이 집은 가고 그 집은 안 갔대요?
이정민 : 그게 구에 따라서 다르더라고요. 서울시에서도 복지가 잘 되 있는 곳이 제가 사는 구거든요. 말 나온 김에 올 해는 봉사 한 번 갈까요? 김재동 : 저는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좋아요. 다 함께 하면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진행자 : 대신 독 깨시면 안 되고요. (웃음)
북한이나 남한이나 김치를 좋아하는 걸 보면 우리는 틀림없는 한민족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의 김치를 외국에서는 김치를 일본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쉽게도 많다고 합니다. 이름도 기무치...라고 부른다네요.
김재동 : 지금 막 든 생각인데요. 파스타를 북쪽에선 칼파스라고 부른다고 들었거든요. 파스타엔 밑반찬이 별로 없잖아요. 반찬으로 투입을 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조금씩 소개하는 방법도 있겠고요. 저는 파스타에 백김치를 생각해 봤습니다.
진행자 : 먹었을 때 사람들이 한국 음식인 것을 알아야 하잖아요. 그걸 어떻게 홍보하죠?
이정민 : '대장금' 있잖아요.
진행자 : 북에서도 아시나요?
이정민 : 그럼요. '대장금'하면 북에서도 다 알 것 같아요. 대장금의 핵심이 뭐냐. 김치다. 그렇게 엮어서 이용하면 될 것 같아요. 김치를 독립적으로 홍보하는 것보다 그 지역의 음식들과 섞어서 알리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저는 김장 체험을 시켜주고 싶습니다. 한 번 해 보면 아는 거죠. 김치도 맛있지만 김장을 할 때 나누는 정도 있잖아요. 그런 것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강남 : 좋은 생각이에요. 말만 들어도 좋네요.
진행자 : 김치 없이 못살아... 그 노래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네요.
김강남 : 남쪽에도 그런 노래가 있어요?
진행자 : 네, 있죠. 강남 씨도 한번 불러 주겠어요?
김강남 : 김치 없이 못살아 나는 못살아. 맛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조선 김치 제일 좋구나~! (웃음)
김장...추억 속의 한 장이 아니라 여전히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가을날의 풍경이네요. 김치에 사랑을 싣고 북쪽까지 달려가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청춘만세> 진행에 권지연 이었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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