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 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먼저 이 시간을 함께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할게요.
클레이튼 :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 온 클레이튼인데 남한에 온 지 6년 됐습니다. 지금 한국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일곱 살이고,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강예은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있어 이렇게 함께 하게 됐습니다.
광성 : 안녕하세요, 정광성입니다. 저는 2006년까지 북한에서 살다 탈북해서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북한전략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청춘 만세>에서도 지난 시간부터 책을 읽는 것에 대해 함께 얘기 나누고 있는데요. 책을 접하는 경로는 다양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나 책 하면 바로 도서관이 떠오르죠? 남한에는 2014년 기준,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 930여 곳에 이르는데요. 이밖에도 대학 등 학교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고, 사립도서관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온 클레이튼과 북한에서 온 광성 군이 남한의 도서관에 처음 갔을 때 무척 놀랐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 그리고 남북한의 도서관은 어떻게 다른지 세 청년의 얘기, 계속해서 들어보시죠.
진행자 : 광성 군 남한 도서관을 처음 보고 했던 생각 기억해요?
광성 : 깜짝 놀랐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느라 도서관에 거의 간 적이 없는데 대학 가서 학교 도서관에 갔더니 책이 정말 많은 거예요. 몇 개 층을 책으로 진열돼 있잖아요. 대학에 가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과제가 있어서 그 책을 찾아야 하는데 체계가 잘 갖춰져서 컴퓨터로 책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는데도 책이 너무 많으니까 찾기가 힘든 거예요. 그런 부분에서도 놀랐고, 분야별로 책이 다양하다는 것에도 놀랐어요. 남한 책뿐만 아니라 외국 책, 번역 안 된 원서도 많고.
남한에서 누군가의 책장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책이 많잖아요. 북한에 있는 저희 할아버지 책장에는 김일성 전집, 김정일 전집, 주체사상 10대 원칙, 사회주의를 위하여 이런 책이 대부분이었어요. 일반 소설책은 잘 못 읽었던 것 같아요. 물론 소설책도 있지만 그 내용도 결국은 김일성 찬양이고.
진행자 : 세계적인 위인... 예를 들어 인도의 평화주의자인 간디 얘기를 책으로 쓴다고 해도 10권 나올까요? 그런데 김일성 한 인물로 그렇게 쓸 게 많은지.
광성 : 정말 많아요. 회고록 자체가 제 기억에는 8권이었고, 두껍고 글씨도 깨알 같아서 분량이 엄청났어요. 최근에 한 권 더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김일성 부하들이 썼다는데. 관련 책이 많아요, 내용은 거의 비슷하지만.
예은 : 분류하자만 소설이 아닐까요(웃음)?
진행자 : 광성 군 할아버지 책장을 보면 주체사상에 관한 책이 대부분이라고 했는데 도서관에 가도 마찬가지인가요? 좀 전에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를 얘기했을 때 다양한 나라의 작가들이 언급됐잖아요. 남한의 도서관에 가면 이 작가들의 책을 다 볼 수 있고, 없을 경우 신청하면 (도서관 측에서)사서 비치를 해두잖아요.
광성 : 북한에서는 외국 책을 볼 수 없어요.
예은 : 러시아 책은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공산주의 관련된.
광성 : 러시아 책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대학교 도서관에 가야 볼 수 있어요. 일반 도서관에는 없어요.
진행자 : 예전에 어떤 탈북자에게 들었는데 '생의 한 가운데'라는 책을 쓴 루이제 린저라는 세계적인 작가가 북한에 간 적이 있대요. 그 작가가 '왜 북한 도서관에는 외국도서가 없느냐?'고 물어서 그나마 외국도서를 좀 비치했다고 해요.
광성 : 제가 어릴 때 외국도서 태우기 운동이 있었어요. 선배들한테 들은 얘기인데, 대학 다닐 때 도서관에 가서 외국도서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외국도서를 다 태우고 외국도서가 있더라도 보려면 신청을 해야 하잖아요. 그 외국도서를 본 학생은 보위부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는 거죠.
진행자 : 자, 왜 없는 걸까요? 왜 못 보게 할까요?
광성 : 사상적인 게 가장 크겠죠. 왜냐면 책 안에도 자유가 있잖아요. 책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자아를 만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하니까 북한 정부에서는 막는 거죠.
진행자 : 드라마와 같은 거죠. 다른 나라의 문화나 사상을 알 수 있으니까. 그럼 남한 책은 한 권도 없겠네요?
클레이튼 : 미국 책은요(웃음)?
광성 : 상상도 할 수 없죠. 북한 정권에서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해요. 북조선에 있는 것만 잘 읽고, 김일성만 잘 따르면 우리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논리인 거예요. 외국의 책이나 문화를 들여오지 않으니까 세뇌교육이 가능한 거고요.
예은 : 그럼 정말 세상이 돌아가는 걸 전혀 알 수가 없겠네요. 읽기도 싫을 것 같아요. 맨날 똑같은 말만 하니까.
광성 : 그런데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또 다른 게 없으니까.
예은 : 성경책도 금서잖아요.
광성 : 금서를 떠나서 총살이에요.
진행자 : 성경책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힌다는데.
광성 : 그 책을 소지하면 총살이에요.
진행자 : 미국에서는 호텔에 가면 모든 방에 성경책이 있지 않나요? 그렇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게 성경책인데.
클레이튼 : 네, 어떤 단체가 모금운동 하면서 거의 모든 호텔에 성경책이 놓이게 됐어요.
진행자 : 예전에 탈북자 중에 국문과 다니던 분이 있었는데, 남한에 오니까 책이 많아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예은 : 제가 그 입장이라면 정말 신기할 것 같아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책들을 읽는 거니까. 왜냐면 저도 한국서적을 읽을 때는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런데 해외서적을 읽으면 이해 안 될 때가 많아요.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생활 방식이 다르다 보니까 '아, 이 사람들은 이렇게 사네?' 라고 생각하면서 신기해해요.
진행자 : 그리고 그런 문화가 확실히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외국서적을 제한하는 것이겠죠.
광성 : 그렇죠, 책이나 문화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거든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남한의 책은 보지 못했지만 드라마는 많이 봤거든요. 그걸 보면서 생각을 한 거죠. 18살이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아예 생각을 못하게 해요. 말만 잘 듣고, 정해진 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니까 생각할 기회가 없어요. 그런데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생각할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저는 북한에서 남한의 '올인'이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자유로움을 많이 느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드라마에 미국의 라스베이거스가 나와요. 막연하게 가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건 상상할 수도 없어요. 북한에 있는 청소년이 남한의 드라마를 보고 남한의 제주도와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를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그런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정말 남한에 와서 제주도와 라스베이거스를 가게 된 거예요. 충격적이었죠, 그때 텔레비전으로 봤던 장소에 실제로 내가 있다는 게. 그러니까 책이든 영화나 드라마든 사람의 생각을 많이 바꾸는 것 같아요.
진행자 : 사실 책이 원작인데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들도 많고요.
클레이튼 : 제가 좋아하는 책이 '사구'라는 공상과학소설인데 먼저 책 읽고 영화로 만들어진 걸 봤어요. 그런데 영화보다 책이 훨씬 재밌어요. 정말 비교할 수가 없었어요.
광성 : 책이 훨씬 자세하죠.
예은 : 상상할 수 있고요.
진행자 : 그런데 왜 책을 안 읽느냐고요(웃음).
진행자 : 클레이튼은 남한 도서관 갔을 때 어땠어요?
클레이튼 : 저도 처음에는 충격 받았죠. 책이 많아서가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서관이 책을 빌리고 읽는 곳인데 한국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공부를 하고 있어요. 미국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거의 90% 책을 빌리러 가는데.
광성 : 그런데 미국 영화 보면 도서관에서 많이들 공부하고 있던데요.
클레이튼 : 그렇기도 한데, 한국은 공부하는 공간이 따로 있잖아요. 미국은 그런 거 없어요. 여기저기 책상이 많이 놓여 있어서 물론 공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서관이라고 하면 보통 책을 보러 가요.
예은 : 정말 저희 인식 속에는 도서관이라고 하면 책을 빌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다들 공부하러 많이 가거든요.
클레이튼 : 다들 공부기계처럼 외우고 있고.
예은 :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곳을 열람실이라고 해요. 열람실이 성인, 중고등학생 전용 나뉘어 있어서 일반적으로 책을 빌리는 곳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고 하면 열람실은 대부분 밤 12시까지 문을 열고, 24시간 하는 곳도 있어요.
진행자 : 특히 중고등학생들이 독서실에 많이 가잖아요. 독서라고 하면 정말 책을 읽어야 하는데, 다들 공부를 하고 있죠. 그런 건 좀 안타까워요.
어쨌든 남한에서는 노벨문학상이나 맨부커상 같은 세계적인 문학상 수상작이 나오면 거의 바로 사서 볼 수 있거든요. 그리고 아까 말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세계적인 작가의 새 책이 나온다고 하면 일주일 전부터 예약판매를 합니다. 책은 아직 남한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로 세계의 책을 접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는 제한되는 거죠?
광성 : 제한이 아니라 그냥 없다고 보시면 돼요. 일반 주민들이 외국 도서를 접할 기회가 아예 없어요. 더 나아가서 일반 주민들은 책을 읽을 여유도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힘들게 살아가는데, 한가롭게 앉아서 책 읽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예은 : 책 읽는 게 사치일 수도 있겠네요.
진행자 : 책 읽을 여유가 없는 건 남한도 마찬가지 아닌가요(웃음)?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연구회라는 곳에서 독서율을 조사했더니 지난해 기준, 성인 가운데 1/3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대요. 그 이유가 '바빠서' 35%, '습관이 들지 않아서' 23%,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13%예요. 바쁘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비슷한 표현이잖아요. 결국 절반 정도는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거죠.
미국은 어떤 것 같아요?
클레이튼 : 미국도 비슷해요. 제가 찾은 조사결과에서는 미국 독서율이 76%였어요. 아마 비슷한 이유일 거예요. 마음의 여유 없거나 너무 바빠서.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 일하다 보니까 한국 사람들이 더 바쁜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대부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니까 자유시간이 훨씬 더 많아요.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책을 좀 더 많이 읽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진행자 : 여러분은 한 달에 책을 몇 권 정도 읽나요?
클레이튼 : 한 달 말고... 1년에 몇 권 읽죠(웃음).
청취자 여러분은 한 달에 몇 권 정도의 책을 읽으세요? 도서관을 비롯해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한 남한에서 정작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뭔지... 그리고 남한에서는 어릴 때 대부분 위인전을 읽게 되는데요. 과연 어떤 사람들의 삶이 책으로 엮여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지 다음 시간에 계속 얘기 나눠보죠. <청춘 만세>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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