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친구들과 말썽을 부리면 선생님이 자주 내리시던 벌칙이 있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던 벌칙! 다름 아니라 운동장 10바퀴 뛰기였습니다.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모교를 찾았었는데요. 선생님의 벌칙이 큰 벌로 느껴질 만큼 넓고 컸던 그 운동장이 왜 이리 작아 보이는지... 이제는 나의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커다란 운동장이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그리움을 잔뜩 안고 오늘 <청춘만세> 시작합니다.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주영, 최철남, 김강남 씨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학창 시절 기억 중에서도 '가을 운동회' 얘기 해보죠.
진행자 : 안녕하세요.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 가을이면 학교에서 늘 했던 것이 있습니다.
이주영 : 운동회?
진행자 : 네! 북한에도 운동회가 있어요?
김강남 : 네,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학교마다 다르지만 봄, 가을로 운동회가 있고 김일성, 김정일 생일날도 운동회가 있어요.
진행자 : 운동회가 그렇게 많아요?
최철남 : 북한은 체력을 중시하니까요.
북에서는 1년에 3-4번은 운동회가 치러지는군요. 최근 남쪽에서는 초등학교 운동회는 거의 형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90년대까지만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가을 운동회만큼 신나는 기억도 없습니다.
박 터트리기, 장애물 넘기, 이어달리기 등...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들과 청팀 이겨라! 백팀 이겨라! 신나는 응원전도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청춘 만세 구성원들도 높고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지던 가을 운동회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주영 씨는 운동회 때마다 빛을 발했을 것 같습니다.
이주영 : 네, 제가 운동 신경이 좋아서 항상 선수하고 그랬습니다. 계주 선수도 하고 농구도 했습니다.
진행자 : 농구요? 와! 갑자기 존경스러운 눈으로 보게 되네요.
진행자 : 주영 씨는 운동을 잘 하셨으니까 열심히 뛰는 모습에 반하는 남학생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주영 : 그런데 그 모습이 그리 아름답진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중 고등학교 때 여중, 여고를 나와서 저를 좋아하는 후배들이 많이 있긴 했죠. (웃음)
진행자 : 저는 응원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남쪽은 청, 백 팀으로 나누곤 했었는데 기억나세요?
이주영 : 네, 기억나요. 청백 팀으로 나눠서 줄다리기 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고요. 계주 같은 것도 제가 대표로 나가니까 정말 긴장이 많이 했었어요.
진행자 : 철남 씨와 강남 씨는 남쪽에서는 운동회를 해 본 적 없으시죠?
최철남 : 저는 고등학교를 남쪽에서도 다녔어요. 그래서 남쪽에서도 운동회 해봤어요. 비슷한 점도 많은데 하는 방식이 다르죠. 남한은 학교 운동장에서 하지만 북한은 주로 산에 올라가서 해요. 또 남한은 학생들이 북한 학교에 비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녔던 학교는 청팀, 백팀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반 별로 나누었습니다.
진행자 : 북한에서는 운동회 때 어떤 경기를 하나요?
최철남 : 계주도 하고 줄다리기도 하는데요. 줄다리기를 북한에서는 밧줄 당기기라고 합니다.
진행자 : 이름만 다른 거네요.
최철남 : 네, 이름만 다르고 경기 방식은 똑같이 하는 겁니다. 그리고 외발뛰기, 북한에서는 깨코뛰기라고 하는데요. 한 발로 뛰는 겁니다. 또 열 명이 다리를 묶고 뛰기도 하고 여자와 남자 두 명이 다리를 묶고 뛰기도 하고요.
이주영 : 남한에도 그런 비슷한 경기가 있어요. 2인 삼각이요.
최철남 : 아, 그래요? 그 경기 할 때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뛰니까 굉장히 부끄러워하지만 그런 재미가 또 있죠. (웃음)
진행자 : 강남 씨도 운동을 참 잘할 것 같아요.
김강남 : 네, 저도 운동신경이 나쁘지 않은데요.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는데 귀 잡고 열 바퀴 도는 경기요.
최철남 : 저는 축구부였어요. 달리고 힘쓰는 거에는 자신이 있어서 매 종목마다 빠지지 않고 나갔습니다.
진행자 : 오늘 <청춘만세>는 다들 한 운동 하시는 분들로 구성이 됐네요. (웃음)
남쪽의 운동회는 온 가족이 총출동하는 가을 행사였고 전국 체전 버금가는 성대한 동네 체육대회이기도 했는데요. 북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진행자 : 남쪽에서 초등학교 운동회에는 부모님도 참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철남 : 북한도 인민학교, 지금은 소학교죠... 집안이 괜찮은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따라 오셔요. 그래서 선생님한테 도시락을 잘 싸와서 우리 애 잘 봐달라고 뇌물로 고이곤 하죠.
이주영 : 그 때 부모님이 못 오는 아이들은 얼마나 슬프겠어요.
최철남 : 그렇죠. 그래서 생활이 안 되는 애들은 못 오는 거예요. 북한은 쌀 밥 먹기가 쉽지 않아요. 그 날은 쌀밥에 계란 같은 걸로 도시락도 잘 싸 주고 그러는데 생활이 안 되는 아이들은 그렇게 못 싸니까 아예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들도 그걸 통제는 못 했어요. 뻔히 사정을 아니까...
진행자 : 함께 즐거운 운동회여야 하는데 그건 너무 아쉽네요... 사실 운동회 하고 나면 반 친구들이랑 더 친해지지 않나요?
최철남 : 제 기억에는 꼭 싸웠던 것 같은데요. 진 쪽에서 꼭 시비를 거니까요. 그러지 않았어?
김강남 : 원래 목적은 친목이나 체력 단련을 위해서 하는데 꼭 그렇게 되지는 않죠. 북한에선 운동회를 가장 기다리는 사람은 담임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은 월급이나 배급을 주는 제도가 없어요. 유일하게 운동회 때 뇌물을 받을 수 있으니까 선생님들은 그 날에 많이 집착합니다. 또 애들도 그런 날을 기다리는데 애들은 도시락 때문이죠. (웃음)
진행자 : 혹시 혈액형 운동회라는 거 들어보셨어요? 혈액형으로 나눠서 ...
얼마 전 남쪽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에서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색적인 운동회가 열렸는데요. 혈액형으로 조를 나눠 경기를 하는 혈액형 운동회였습니다. 혈액형으로 조를 나눈다... 신선한 발상이죠? 학창 시절 가을 운동회를 추억하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조직위원회를 만들고 서울시에 제안해서 열리게 됐다는데요. 선수로 자원한 시민이 무려 1천2백 명... A형, B형, O형, AB 형으로 나눠서 신나게 운동회를 치렀습니다. 저희도 한번 해볼까요?
진행자 : 세 분은 무슨 형이세요?
김강남 : O형이에요.
최철남 : 저는 AB형입니다.
이주영 : 저도 O형이에요.
진행자 : 그럼 남자 분이 두 분이니까요. 주영 씨가 심판을 봐주시고 AB형 대 O형의 즉석 팔씨름 대회를 가져 보겠습니다. 두 분 각오를 들어보죠.
김강남 : 이기고 보겠습니다. 그런데 양해를 구할 점은 제가 오른팔을 다쳐서 왼 팔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최철남 : 저도 꼭 이기겠습니다!
즉석에서 펼쳐진 혈액형 팔씨름 대회! 철남 씨 대 강남 씨 의 대결로 펼쳐질 텐데요. 누가 이길지 여러분도 한 번 점찍어 보시겠어요?
진행자 : 주영 씨는 누가 이길 것 같아요?
이주영 : 청취자 분들은 안 보이시겠지만 두 분 다 남자답고 강하거든요. 누가 이길지 잘 모르겠어요. 한 명을 고르자니 무척 곤란한데요. 저는 키가 좀 더 큰 철남 씨에게 걸겠습니다. 진행자 : 저는 강남 씨에게 걸겠습니다...
자, 그럼 즉석 팔씨름 대회가 시작됩니다.
이주영 : 준비 시작! 오!! 힘줄이 장난이 아닙니다.
진행자 : 결과는요?
이주영 : 철남 씨가 이겼습니다.
진행자 : 철남 씨는 팔씨름을 무척 잘하시네요.
최철남 : 저는 양손잡이라서... 그리고 제가 유도를 했었어요.
김강남 : 저는 왼팔로 하니까 확실히 힘드네요. (웃음) 그래도 최선을 다했는데 워낙 철남 씨가 힘이 센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운동회를 하고 받는 공책, 필통, 지우개, 과자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선물 때문에 더 신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긴 사람에게 상품이 빠지면 재미없겠죠?
진행자 : 자, 그러면 게임에서 이기신 철남 씨에게 상을 주겠습니다. 상은 노래로 오늘 방송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부르실 곡은?
최철남 : 우리의 소원은 통일!
진행자 : 박수!
최철남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 바쳐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진행자 : 트로트 버전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들어봤습니다. (웃음)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이주영, 최철남, 김강남 : 감사합니다.
점수판에 최종 점수가 올라가면 승리한 쪽의 환호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던 그 뜨거웠던 가을날의 추억들을 되새기면서 이제는 북에 계신 분들과 함께 발을 묶고 뛰어도 보고 영차 영차 밧줄도 당겨보고 싶습니다.
오늘 <청춘만세>는 여기까집니다. 함께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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