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청춘만세> 권지연입니다.
오늘 서울도 영하의 날씨였습니다. 올해 추위가 빨리 와서 두꺼운 동복을 꺼내 입은 지도 한참인데요. 남한 기상청의 분류대로라면 아직 '가을'입니다.
기상청에서는 9월부터 11월까지를 '가을' 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가을이 딱 이틀 남은 셈입니다.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오늘은 서울의 낙엽길을 걸어봅니다. 자칭 감성청년 지철호 씨와 함께할게요.
권지연: 안녕하세요.
지철호: 안녕하세요.
권지연: 철호 씨! 두 번째 보니까 더 반갑네요.
지철호: 네, 저도 많이 반갑고 그 새 잘 지내셨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권지연: 저는 잘 못 지냈어요. 외로워서....
지철호: 외로운 건 다 마찬가집니다. (웃음)
권지연: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던데 낙엽이 막 떨어지는 이때쯤 되면 어때요?
지철호: 저는 눈이 오는 것보다도 낙엽이 떨어지는걸 보면 한 해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요. 고향 생각도 많이 나고 가을이 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권지연: 저도 그렇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 길에서 만난 시민들은 어떨까요?
INS - 가을하면?
시민 인터뷰 : 가을하면 마음이 슬퍼요. 싱숭생숭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낙엽 떨어진 것들을 보면 첫 사랑이 생각나고 외로움의 계절이다. 겨울의 초입니다. 지금부터 옷을 껴입기 시작하고 자상한 남자 친구 사귀고 싶어요! 신사동 가로수길 보면 낙엽이 떨어질 때 무척 멋있잖아요. 그런 길을 걷고 싶어요. 낙엽을 밟으며...시몬 너는 아느냐.
시몬, 나무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덥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색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레미드 구르몽'의 '낙엽'이라는 시입니다. 만물이 모두 소멸해 가는 게 자연의 이치이고 사람 또한 늙고 언젠가는 사라져갈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시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이 우리 인생과 같다는 생각, 이 계절이면 누구나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낙엽에 대한 이런 낭만적인 생각은 잠시, 단풍도 떨어지면 쓰레기가 되고 애물단지로 변합니다.
INS 환경 미화원 - 이 낙엽은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어요.
서울 시내를 청소하는 환경 미화원들에게 낙엽은 골치 아픈 존재입니다. 서울에 떨어지는 낙엽만도 해마다 1만여 톤, 5만 포대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이런 낙엽이 관광 상품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떨어진 낙엽들을 포대자루에 담아 산책길에 깔아 놓는 거죠. 마치 황금빛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곱고 푹신합니다.
권지연 : 남쪽은 사색하기 좋은 낙엽 길들이 곳곳에 조성돼 있습니다. 낙엽을 쓸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밟고 가라고 쫙 깔아 주는 겁니다. 혹시 그런 길 걸어 봤어요? 지철호 : 아직 못 걸어 봤어요. 여기서는 낙엽이 떨어지면 관리하시는 분들을 보면 두 가지 종류잖아요. 깨끗하게 치우는 분들이 있고 깨끗하게 자연 상태로 두기 위해 관리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권지연 : 서울에만도 그런 길들이 여러 군데 있는데 우리는 덕수궁 돌담길 한 번 걸어 볼 거예요. 그 곳은 연인끼리 걸으면 헤어진다는 전설이 있는 길입니다. 우린 연인이 아니니까 갑시다!
'정동길'이라고도 불리는 덕수궁 돌담길은 남쪽의 산책 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가로수가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곳은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됐고 인근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극장을 비롯한 문화시설이 위치해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지철호 : 북한에서는 덕수궁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거든요. 그런 곳이 어떤 곳인지 좀 얘기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덕수궁은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와 불타버린 경복궁을 대신해 왕족의 사가였던 이곳을 행궁으로 삼으면서 궁궐의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선조가 이곳에서 머물다 승하했고 이어 다음 왕인 광해군이 즉위한 곳이기도 하죠. 200년 동안 비어 있다가 고종 때부터 다시 궁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고종은 당시 머물던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환궁을 하게 되는데 경복궁으로 가지 않고 경운궁 그러니까 지금의 덕수궁으로 피신을 왔던 거죠. 파란만장한 역사를 안고 있는 덕수궁은 높지 않은 돌담으로 둘러싸야있는데요. 이 돌담길은 조선시대엔 양반들의 거주지였고 개항기엔 '양인촌'으로 불이며 신문물들의 집성지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아름다운 길로 꼽히기도 했는데요.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편안해 보입니다.
INS - 덕수궁 돌담길 걸으니 어떠세요? 시민 인터뷰 : 옛날 추억이 많이 떠오른다. 헤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불안한대 우리는 끝까지 함께 할게요..
권지연 :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지만 연인들이 무척 많습니다.
지철호 : 그런 속설을 넘어선 분들 인거죠.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들이 사이좋게 걸으면서 하고 싶었던 얘기를 집에서 말고 이렇게 걸으면서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권지연 : 북쪽도 이렇게 손잡고 사람들이 걷는 것이 흔한가요?
지철호 : 아직 손을 잡고 걸어가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되고 팔짱 걷고 걷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그냥 나란히 걷죠. 여기 와서 자연의 생명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자연을 대할 때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는 것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권지연 : 낙엽 진 길을 걷고 자연을 접해 보니까 한 해 계획을 얼마나 세웠나 반성하게 되지 않나요?
지철호 : 저 같은 경우는 낙엽을 밟다 보니까 고향 생각 하게 됐어요. 내가 목숨을 걸고 남쪽에 왔는데 나태하게 산 것은 아닐까?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말 시험도 있고 하니까 좀 더 신념을 확고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는 가을은 아쉽지만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12월엔 모두가 기다리는 성탄절,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가을이 가는 것이 그리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북에 계신 분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조금 생소하신가요?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탄생을 기리는 날인데요. 이제 종교는 넘어선 대중적인 기념일입니다. 서로 편지나 선물을 주고받고 덕담을 나누며 즐거운 날로 보낸답니다.
권지연 : 크리스마스 계획도 있다고요?
지철호 : 제가 친한 동생 둘이 다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여자 친구 소개 해 주겠다고 해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 계절 우리에게 왔다가지만 많은 생각과 가르침을 주고 가는 낙엽처럼 한 번 사는 인생, 누군가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오늘 <청춘 만세>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지철호, 권지연 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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