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간식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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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을 나가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엔 수 없이 많은 유혹 거리들이 있습니다. 계란 하나를 톡 깨뜨려 밀가루 반죽 속에 넣어 기계로 찍어낸 계랑 빵, 팥 앙금이 잔뜩 들어간 붕어 빵, 쥐포와 땅콩, 군밤 등... 지나칠 수 없는 길거리 음식들의 유혹이 지(하)철을 탈 때까지 이어지는데요.

오늘 <청춘 만세>에서는 '겨울철 간식' 얘기 해봅니다. 저는 진행에 권지연이고요.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정민, 김강남, 김재동 씨가 함께 합니다.

권지연 : 안녕하세요.

이정민, 김강남, 김재동 : 안녕하세요.

권지연 : 이 맘 때가 되면 길가다가도 생각나는 간식들이 많지 않나요?

이정민 : 많죠. 여기 오니까 너무 많더라고요. 떡볶이, 붕어빵, 군고구마, 군밤... 셀 수 없이 많은 것 같아요.

권지연 : 그래서 오늘 주제는 겨울철 간식의 모든 것입니다. 간식, 군것질을 좋아해요?

김재동 : 그럼요. 평소에는 간식보다는 밥을 많이 먹지만 겨울철에 특히 제가 다니는 학교 주변에는 유난히 맛있는 간식을 많이 팔거든요. 닭꼬치, 군밤, 구운 오징어도 있고요. 그 중에서 저는 떡볶이가 최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권지연 : 떡볶이는 사시사철 많이 먹게 되죠.

가래떡을 손가락 크기로 잘라 각종 남새를 넣은 후 고추장에 볶아 만든 떡볶이는 남쪽에서는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간식입니다. 그리고 이젠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류 음식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죠. 많은 간식 중에서도 떡볶이를 제일 좋아한다는 재동 씨! 그렇다면 정민 씨와 강남 씨는 어떨까요?

권지연 : 군것질은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좋아해요. 정민 씨도 군것질을 좋아할 것 같은데요?

이정민 : 저는 군것질을 안 해요. 하루 세 끼 밥만 먹으면 끝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북한에는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나 여력이 없으니까 밥만 먹으면 끝인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아요.

권지연 : 강남 씨도 오로지 밥만 좋아할 것 같긴 합니다.

김강남 : 맞습니다. 저도 북한에서부터 간식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습니다.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거였고 한국에서 와서 다양한 간식을 접했어도 별로 먹게 안 되더라고요.

권지연 : 그런데 간식하면 생각나는 것이 떡볶이라고 공통적으로 말했는데요. 처음 남쪽에 와서 떡볶이를 처음 먹어봤을 때 어땠어요?

김강남 : 북에도 그런 비슷한 음식은 있어요. 떠덕국이라고... 황해남도, 강원도 그런데서 동지죽 비슷하게 먹는 거예요. 그런데 처음엔 떡에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것이 이해가 안 갔습니다. 안 어울리는 재료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먹다보니까 맛있더라고요.

이정민 : 저는 아직도 떡볶이는 별로입니다. 제가 아직 정착이 덜 된 것 같아요. (웃음) 통일이 되서도 북한 사람들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떡볶이입니다.

권지연 : 그런가요? 이건 또 새로운 시각인데요. (웃음) 북한에도 꽈배기 공장이 있고 김일성 위원장도 꽈배기를 좋아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걸 보면 분명 북한에서도 간식이 있는 것 같은데요?

김강남 : 평양의 공동 간식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군고구마입니다. 남쪽에도 군고구마를 둥근 통에 넣어서 팔더라고요.

권지연 : 남쪽은 옛날엔 많았는데 요즘은 보기가 힘들어졌어요.

김강남 : 북한에는 국가에서 방침으로 군고구마를 국가에서 국정 가격으로 싸게 팔았습니다. 그래서 배고프면 군고구마를 먹고 그랬습니다.

권지연 : 군고구마는 맘껏 먹을 수 있었던 거예요?

김강남 : 돈만 있으면 먹을 수 있었어요. 그 때 당시에 100원에 500그램 이었고 200원에 한 킬로였어요. 우리 같은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돈에 배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권지연 : 남쪽에 와서도 군고구마 먹어봤어요?

김강남 : 네, 먹었습니다. 추억의 고구마! 따끈따끈 한 것을 호호 불면서, 북에서 먹던 생각이 나서 짠하더라고요. 그래서 배는 불렀지만 그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여러 번 사먹고 그랬습니다.

이정민 : 저는 군고구마 구경도 못했거든요. 왜냐하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고구마 농사가 안 돼요. 제가 살던 곳은 추워서 고구마를 재배할 수가 없었어요. 평양 쪽은 고구마가 되지만 저희 쪽엔 없었고요. '콩닦게'(콩 볶음), '강네닦게'(강냉이 볶음)라는 간식이 있는데 두부콩을 높은 열에서 가열하면 반으로 쪼개져요. 이걸 뻥튀기처럼 해서 먹는 겁니다. 그런데 뻥튀기 기계가 없으니까 집에서 밥솥에 해먹는데 고소하고 맛있어요. 그런데 허한 상태에서 많이 섭취하게 되면 설사를 하곤 했는데 한국에 와서 그 생각이 엄청 났어요.

권지연 : 고소해요?

이정민 : 엄청 고소하지만 이가 아파요. 딱딱하거든요. 그래서 남쪽의 어린이들은 안 먹을 것 같아요. (웃음)

권지연 : 재동 씨는 두 분 얘기를 들어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어요?

김재동 : 제가 정말 좋은 것을 먹긴 했네요. 저는 아버지가 워낙 만두와 찐빵을 좋아하셔서 남대문 시장에서 사오는데 손이 커서 엄청 많이 사오세요. 정말 질리도록 먹습니다.

권지연 : 저희를 좀 부르세요! (웃음)

권지연 : 북에서는 왠지 찐빵은 만들어 먹을 것 같은데요?

이정민 : 만들어 먹을 재료가 없어서 못 먹죠. 그런데 만들어 먹는 건 꼬장떡이라고 하는 옥수수를 가공하거나 가루 내서 뜨거운 물에 반죽해서 가마솥에 붙여서 먹는 거예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고향에서는 간식을 챙길 여력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정민 씨와 강남 씨가 남쪽에 와서 떡볶이 이외에 신기하게 생각했던 간식은 무엇일까요?

이정민 : 저는 한국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간식이 붕어빵이었습니다. 붕어가 안 들어있더라고요. 충격이었습니다.

김강남 : 저는 순대요. 북한에도 순대를 좋아하는데 특식으로 먹어요. 그런데 남북이 순대가 많이 달라요. 속에 들어가는 것이 다릅니다. 남쪽은 당면을 넣더라고요. 처음에 국수 같은 것이 씹혀서 이상했어요.

이정민 : 그런데 찹쌀을 넣은 순대를 찾으려고 하면 여기도 있어요. 그런데 북에서 배고플 때 먹었던 맛이 최고였죠.

권지연 : 북에 있는 친구에게 남쪽의 간식을 소개해준다면 어떤 것을 대접하고 싶으세요?

이정민 : 저는 군밤이요. 저는 북한에서 밤을 못 먹어봤어요. 그런데 여기는 밤이 엄청 맛있더라고요. 같이 까주면서 사랑도 싹틀 수 있을 것 같고요.

김강남 : 저는 여기 회를 소개해주고 싶어요. 북한에는 바다가 없는 곳에서는 신선한 회를 먹어볼 수 없는데 여기는 문어나 가자미 같은 것을 어디서나 먹을 수 있거든요. 한국식 소주와 팔팔 뛰는 회를 함께 먹고 싶습니다.

이정민 : 간식으로 회를 먹다니...

권지연 : 돈은 많이 들 겁니다.

김강남 : 그럼 안 되겠네... (웃음) 여기는 지짐을 감자도 넣고 기름을 많이 붓고 하더라고요. 빈대떡을 소개시켜 주고 싶어요.

김재동 : 저는 남쪽의 치킨과 골뱅이 무침을 함께 먹고 싶어요. 치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아할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튀김이 적응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쉽게 적응 할 것 같고요. 새콤달콤한 골뱅이 무침과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정민 : 저는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처음에 제가 남쪽에 왔을 때도 치킨에 양념이 여러 가지잖아요. 그게 잘 적응이 안됐었거든요. 그냥 닭을 삶아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고요. 골뱅이 무침도 여러 가지 양념이 들어가잖아요. 그걸 싫어할 수도 있어요.

권지연 : 저는 포장마차를 데리고 가서 닭발을 함께 먹겠어요. 이것도 싫어할까요?

남쪽에서는 닭발을 매운 양념에 묻혀 술안주로 많이 먹는데요. 닭발을 대접하겠다는 제 얘기에 정민 씨와 강남 씨가 모두 결사반대를 하네요.

이정민 : 북한에서는 닭발을 최고로 나쁜 음식으로 여깁니다. 닭을 잡으면 닭발을 그냥 버려요. 지금은 저도 좋아해요. 꼬들꼬들 한 매운 맛이 맛있는데 처음 북에서 온 친구에게는 이해 할 수 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 맛에 익숙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권지연 : 그래도 콜라겐이 많이 들어가서 예뻐진다고 하면 좋아할 겁니다.

김강남 : 아뇨, 화낼 것 같아요. 발을 먹으라고? 하면서요... (웃음)

실컷 간식 얘기를 하나보니 북에 계실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요. 언젠가 함께하리라는 믿음으로 <청춘 만세> 구성원들이 북에 계신 분들에게 음성 편지를 보냅니다.

김재동 : 어느덧 12월이 되면서 춥고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은 소망이나마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민 : 간식 얘기를 하다보니까 제가 많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는 통일이 돼서 남쪽의 간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시고 겨울도 따뜻하게 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김강남 : 잘 사는 남쪽에서도 열심히 사는 사람만 기회가 있고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연말이 되니까 올해 농사는 어떻게 지었는지, 병은 걸리지 않았는지 생각을 해 보는데 여러분이 열심히만 살아준다면 통일 후에 잔치를 할 때 서로에게 몰랐던 간식을 소개하면서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권지연 : 감사합니다.

이정민, 김강남, 김재동: 감사합니다.

실제로 통일이 되면 어떤 간식이 가장 인기가 있을까요? 어쩜 북에 계신 분들의 입맛에 맞춘 새로운 간식거리들이 쏟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북한 청년은 그 때를 대비해 요리 학원을 다녀 훌륭한 요리사가 되겠다고 하는데요.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건 간식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는 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청춘만세> 여기서 마칩니다. 함께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