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청춘만세의 김인선입니다. 12월 25일은 전 세계적인 축제의 날이라고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닌 크리스마스입니다. 남한에서는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각자의 선호에 따라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날인데요, 누군가에게는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이 참으로 외롭고 쓸쓸하고 춥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12월은 그저 ‘겨울’일 뿐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정민, 김재동, 김강남 씨와 우리들의 ‘겨울이야기’ 라는 주제로 함께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정민, 김재동, 김강남 :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 잘 지내셨어요? 오늘 주제가 ‘겨울이야기’에요. 여러분들에게 겨울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리고 겨울에 관한 추억 등 다양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겨울이란 어떤 계절인가요?
김재동 : 겨울하면, 남자가 극한의 외로움을 느끼는 계절이 아닌가 싶어요. 눈이 내리고 나서 눈이 쌓여있고 조용한 창밖의 풍경을 볼 때 특히 외로움을 느껴요. 보통 다른 분들은 가을에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하는데 저는 가을에는 책도 읽고 영화도 많이 보는 편이라 가을에는 외로움을 못 느끼고 오히려 요맘때 극한의 외로움을 느낍니다.
이정민 : 저는 겨울하면 참 싫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태어난 곳이 1년에 6개월은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추운 곳이었거든요. 6월에도 강에 가면 얼음이 남아있을 만큼 추웠어요. 그래서 제 마음 속에는 눈이 오지 말았으면, 찬바람이 불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겨울이 싫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겨울에 딱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는데 겨울방학이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겨울방학만 여름으로 옮기고 겨울은 아예 없어졌으면 할 정도로 정말 겨울은 싫은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렇다면 강남 씨에게는 겨울이 어떤 의미인가요?
김강남 : 좋게 말하면 나를 검열하는 시기인 것 같고 평상시로 말을 한다면 그냥 추워요. 저는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북한에서 겨울에 눈이 오면 애하고 강아지가 제일 좋아하고, 비가 오게 되면 어른들이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비가 오면 가뭄을 이기고 농사가 잘된다는 의미인데 갑자기 생각났어요.
이정민 : 저는 싫은데 저희 엄마도 겨울이 꼭 필요한 계절이래요. 집에 가마목(아랫목)에 행주를 물에 적셔서 꼭 짜서 놓으면 아침에 그게 땡땡 얼어붙어요. 그렇게 추운 집이거든요. 그리고 가족구성원이 4명인데 한꺼번에 꼭 모여서 자야해요. 한사람만 발을 펄럭여도 찬바람이 들어오는데 그런 경우 엄마에게 따귀를 딱 맞고 그랬었거든요. 그만큼 추워서 “나는 겨울이 없었으면 좋겠어” 이러면 엄마가 “겨울이 있음으로써 모든 세균들이 죽게 되고, 병도 막아주고, 한 해 동안 고생했던 땅이 겨울동안에 비옥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기간을 가지는 농사꾼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간이야” 말해줬어요. 항상 북한에서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항상 그런 얘기 많이 하거든요. 그러고 보니까 지금 추위에 떨고 있을 가족 생각이 나네요.
진행자 : 남한에서도 이런 말이 있어요.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다가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다. 북한의 겨울이 얼마만큼 추운지 정확히 모르지만 남한도 충분히 춥거든요. 북한에서 느낀 겨울과 남한에서 느껴본 겨울의 차이가 있나요?
이정민 : 그럼요. 굉장한 차이가 있죠. 북한에서의 겨울에 강에 나가서 빨래를 한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수도시설이 있어도 얼어버려서 물을 길어다가 빨래를 해야 하는데 그게 힘드니까 빨래를 강에 내려가서 하거든요. 그런데 너무 추우니까 빨래를 꺼내면서부터 얼어버려요. 그래서 집에서 따뜻한 물 약간에 비누를 풀어서 비누칠을 한 다음에 강물에 내려가서는 헹궈서만 오죠. 헹궈서 짜는데, 짜는 동안에도 얼어요. 손이 얼 정도이기 때문에 재빨리 하고 오는데 집에 와서 보면 손이 얼었던 자리가 3~40분 정도 퉁퉁 부어있어요. 그렇게 하면서도 그 겨울을 이겨내고 살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남한에 처음에 왔을 때 접해본 겨울이 제가 살던 고장의 봄 같았어요. ‘그래서 따뜻한 남쪽 나라구나’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느꼈는데 지금은 남한 사람들보다 더 추위를 타요. 사람은 정말 환경의 지배를 가장 빨리 받아들이는 동물이라는 말을 제가 계속 느끼거든요. 제가 북한에서는 영하 30도도 이겨냈었는데 지금 남한에서는 영하 10도라도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요. 그래서 20년 동안 산 겨울이랑 앞으로 살게 될 4~50년의 겨울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되겠는데 슬프게 생각해야 되는지 기쁘게 생각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진행자 : 강남 씨에게는 어때요?
김강남 : 당연히 차이가 있죠. 제가 살던 북한은 상당히 추운 곳 이였어요. 많이 춥다보니까 이불도 많이 덮어야하고 따뜻하게 하려면 나무를 해야 하는데 일반 산에는 나무가 없어요. 한 40리 정도를 구루마(수레)를 끌고 4시간 정도를 걸어요. 그렇게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면 또 내려와요. 그러니까 한 8시간을 걷는데 일단은 나무하는 것도 힘들고 여러 가지로 겨울은 진짜 싫었어요. 남한에서의 겨울도 역시 싫어요. 왜냐하면 추우니까요. 남한생활의 첫 해는 ‘이건 겨울도 아니야’ 하면서 속옷에 가벼운 옷만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어요.
김재동 : 질문이 있는데요, 북한에서는 겨울철에 땔감을 나무로만 하는 건가요? 연탄은 없고?
이정민 : 석탄. 무연탄은 앞쪽 지대에만 있어요. 제가 살던 곳은 갈탄이라고 연기만 많이 나는 유연탄인데 그것도 석탄매장량은 굉장히 많은데 채굴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노천으로 해요. 곡괭이나 정이라는 지렛대 같은 것으로 파거든요. 무너져서 사고도 많이 나고 폭파하면서 상처도 많이 나고 그래요.
진행자 : 정민 씨나 강남 씨의 경우에는 남북의 겨울이 비교가 됐다면 재동 씨는 남한에서의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청취자 여러분에게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김재동 : 일단 남한의 많은 청년들은 눈을 굉장히 기다려요. 특히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들이 있거든요. 또 겨울이 가장 시간이 길기 때문에 저와 같은 취업준비생이나 학생들, 직장인들에게 이 겨울은 준비의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또 최근에 남한에서는 겨울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스키장에 가서 스키를 타는 것은 기본이고 스노보드까지 즐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이정민 : 스노보드, 스키장 하니까 하는 말인데, 북한에도 눈이 많기 때문에 얼음 위에서 하는 운동이 일반화되어 있어요. 스케이트라는 것을 구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스키장비도 없어요. 스키 타러 간다거나 눈 놀이를 가는 경우 장비가 굉장히 간단해요. 동복에 장갑에 신발 신고 가면 되거든요. 그런데 남한에서 스키장가서 착용하는 장비보고 깜짝 놀랐어요. 보드에 다리 보호대, 모자에 고글안경에 장갑에 갖가지 장비를 착용하고 타는데 제가 볼 때 운동이 될까 싶더라고요.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완전무장을 하는 것 같았는데 제가 한번 타보니까 안전장비 없이 못 타겠다는 것을 바로 느꼈어요.
그리고 청취자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여기 남한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잠깐 말씀드리자면, 밤에도 낮같습니다.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반짝반짝 거리고 어디서나 눈꽃이 날리는 조명들이 너무도 화려하고 한밤중에도 초저녁 같아요. 거기에 조금만 있으면 빨간 모자에 수염을 하얗게 붙인 산타들이 길에 싹 늘어설 것 같고 이 겨울이 지나면 올해가 지난다는 의미도 있어서 굉장히 겨울에 대한 의미를 좋게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것 같아요. 참 남과 북의 겨울풍경이 한숨이 날만큼 다르다는 거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레이션 : ‘남북의 겨울이야기’ 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수록 정민 씨와 강남 씨는 씁쓸한 표정과 옅은 한숨을 내뱉습니다. 북한에서의 겨울이 너무도 춥고 힘들게 느껴졌기에 남한에서의 겨울에는 행복한 기억이 있기를 바라게 되더라고요. 강남 씨에게 남한에서 보낸 겨울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김강남 : 사람은 행복했던 기억보다 슬픈 기억을 많이 가지고 살죠. 행복했던 기억은 별로 특별하게 없어요. 왜냐하면 겨울에 여자 친구랑 헤어졌기 때문에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동 씨가 겨울을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직 애가 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슬프다는 것이 남한에서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있는데, 그 스트레스가 묘하게 겨울이 되면 찬바람과 같이 더해진다? 그런 느낌을 저는 받는 것 같아요. 겨울이 되면 ‘나는 뭐지?’하는 자책감도 들기도 하고, 찬바람을 쐬고 나면 나는 외톨이 같아 보이고 하는 감정이 실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겨울이 참 싫습니다.
진행자 : 즐기고 노는 겨울 문화에 흥분하는 남한의 청년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는 않겠네요?
김강남 : 네. 저는 밖에 나가서 연인끼리 손잡고 눈 뿌리고 하는 모습을 보고 ‘집에서 난방 켜놓고 집에서 놀아’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름대로 추억을 만든다고 하겠지만 저는 가만히 따뜻한 곳에 있고 싶습니다.
진행자 : 재동 씨가 남한의 청년들은 겨울운동을 즐기고 좋아한다고 표현을 했어요. 강남 씨가 바라본 그런 모습은 어떤가요?
김강남 :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출발을 하면 적응을 하고 따라가요. 그런데 출발하는데 귀찮아서 선뜻 나서게 되지 않아요. 깽지근한(북한어) 그런 느낌?
이정민 : 느리다는 얘기에요. 오금을 쓰기가 싫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고 싶다는 얘기죠.
김강남 : 그런데 나가서하면 잘합니다. 남한 청년들은 겨울을 즐길 줄 아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를 보편화시키는 것은 아니고 저는 아직 이런 문화를 배워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게 인생을 즐기는 거고, 천년도 못사는 인생인데 이렇게 사는 것도 옳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조금 춥습니다.
김재동 : 겨울에 뭔가를 즐길 거리, 놀이거리를 찾는 것도, 사실 우리 삶이 어느 정도 윤택해지니까 더 나은 삶의 질을 찾기 위해서 ‘겨울에도 뭐 할만 한 거 없을까?’ 이러는 거예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할 사람들은 더 즐기고 그러는 것 같아요. 다만 겨울이 너무 춥다보니까 남한에서도 서민들에게는 공포의 계절일 거예요.
진행자 : 그러니까 북한만 추운 것은 아니에요. 남한에도 연탄이 부족해서 잠깐의 온기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의 모습은 아니라는 거죠. 북한에 비해서 많은 청년들이 겨울을 누리고 집에서는 반팔 옷을 입고 지내는 경우도 많기는 해요. 상반되는 모습이 공존하기는 합니다.
이정민 : 난방이 너무 잘돼가지고 그렇긴 하더라고요. 저도 북한의 상황을 보다가 남한의 상황을 처음 와서 볼 때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너무 넘쳐나는데 좀 나눠주지, 이렇게 낭비를 하면서 북한 사람들은 없어서 못살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저도 살다보니까 어느 날 난방을 켜놓고 문을 열어놓고 있더라고요. 또 수돗물을 예전에는 쓰는 만큼만 썼는데 지금은 수돗물이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틀어놓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남한에도 어려운 이웃이 있기는 하지만 나가서 일을 하고 자기가 노력할수록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을 지나치게 많이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북한에 비해서 겨울에 대한 부담보다는 오히려 즐기자는 그런 층이 훨씬 많지 않을까 싶어요. 남한에서 와서 본 제 느낌의 겨울은 북한의 겨울에 비해 훨씬 넓고 많고 재미있는 것도 많은 계절이라고 생각해요.
내레이션 : 겨울에 대한 느낌과 생각은 남북의 환경적인 차이만큼 달랐습니다. 기본적인 생활에서 느껴지는 차이를 시작으로 겨울에 즐길 수 있는 놀이와 운동, 그에 따르는 장비와 복장까지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남북의 차이가 많았습니다. 남북의 겨울을 모두 체감한 강남 씨와 정민 씨는 오늘따라 유난히 표정이 복잡해보입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 와서도 여전히 겨울이 추운 이유는 북녘 땅에 있는 동포들이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못 다한 우리들의 겨울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청춘만세,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