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1) 사투리를 쓰면 무시한다?

광주 광산구 송정동 1913송정역시장을 찾은 방문객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디자인에 활용한 엽서와 문구용품을 구경하고 있다.
광주 광산구 송정동 1913송정역시장을 찾은 방문객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디자인에 활용한 엽서와 문구용품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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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 만세>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오늘은 어떤 얘기가 준비돼 있을까요? 먼저 이 시간을 함께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합니다.

클레이튼 :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 온 클레이튼인데 남한에 온 지 6년 됐습니다. 지금 한국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일곱 살이고,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강예은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있어 이렇게 함께 하게 됐습니다.

광성 : 안녕하세요, 정광성입니다. 저는 2006년까지 북한에서 살다 탈북해서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북한전략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광성 씨는 고향이 함경북도 회령인데 사투리는 안 쓰네요?

광성 : 처음 남한에 왔을 때는 저도 함경도 사투리를 무척 많이 썼어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서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친구들과 말투가 너무 차이 나니까 불편하더라고요. 당시에는 많이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텔레비전을 보면서 따라 했더니 많이 바뀌었어요.

진행자 : 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다닌 거잖아요. 대구도 사투리가 있는데.

광성 : 신기한 게 대구에 가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또 대구 사투리가 나와요.

진행자 : 그럼 부모님을 만나면?

광성 : 함경도 사투리를 쓰죠(웃음).

진행자 :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10년 정도 살아도 억양이나 특정 발음이 잘 안 바뀌더라고요.

광성 : 저도 가끔 흥분하거나 빨리 말할 때는 특정 단어가 나와요.

예은 : 클레이튼 오빠도 한국어 사투리를 약간 쓰잖아요?

클레이튼 : 그죠잉, 1년 정도 전라북도 전주에서 살았어요. 사실 전주 사람들은 사투리 많이 안 쓰는데 전주 나와서 아래쪽으로 갈수록 심해져요. 특히 '~잉, ~당께, 오매~'(웃음).

진행자 : 사투리 쓰는 외국인은 참 보기 힘든데.

클레이튼 : 그런데 한국인 앞에서 사투리 쓰면 놀리는 것 같아서 요즘은 잘 안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어떤 친구한테 '지난 주말에 어디 갔는디...'라고 말했더니 귀엽다고 해서 그때부터는 안 쓰고 있습니다.

진행자 : 기분이 좀 나빴어요?

클레이튼 : 네, 주목 받으려고 사투리 쓴 게 아니라 친숙한 느낌이 좋아서 쓴 거였어요.

광성 : 사투리가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처음 대구에 갔을 때 함경도 사투리와 대구 사투리가 많이 비슷하더라고요. 억양이 세요. 과거 북방정책으로 대구 주민 2천 가구 정도를 함경도에 보낸 적이 있대요. 그래서 그때 억양이 남아 있어요. 발음과 억양이 세다 보니까 평상시에 말할 때도 싸우는 것처럼 들려요.

클레이튼 : 경상도 사투리 처음 들었을 때는 중국어인줄 알았어요(웃음).

예은 : 북한은 저희가 매체를 통해 많이 접하잖아요. 매체에서는 다들 평양말을 쓰는데 실제로 탈북자들을 만나보면 함경북도 출신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분들이 쓰는 말투가 낯설지 않은 게 정말 대구와 비슷해요.

광성 : 억양은 비슷한데 단어가 달라서 북한 사투리라는 걸 알게 되죠. 사실 북한에서는 저희도 잘 몰라요. 왜냐면 이동의 자유가 없으니까 내가 사는 지역만 알죠. 저도 북한에 있을 때는 평양에 사는 고모가 올 때만 말투가 다르다는 걸 느꼈지 다 똑같이 함경도 말인 줄 알았어요. 남한 텔레비전에서 북한말 흉내 낼 때 '동무 날래날래 오라우' 하잖아요. 처음에는 놀랐어요. '뭐지 저건? 북한말이 아닌데?'

진행자 : '고조, 내래' 이런 것도 있잖아요(웃음). 어디 말이에요?

광성 : 나중에 알아보니까 평안도 사투리였어요. 심지어 그런 표현은 예전 어르신들이 쓰는 사투리고 요즘은 좀 간드러진. 주변에 평양에서 온 친구들도 있는데 들어보면 생소해요.

예은 : 보통 남한에서는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 경우 사투리를 고치려고 해요. 왜냐면 클레이튼 오빠가 말한 것처럼 사투리를 쓰면 좀 놀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서울말을 쓰려고 고치는데 북한에서도 평양말을 쓰고 싶어 하나요?

광성 : 평양말을 쓰지 않으면 좀 무시해요. 평양 사람들이 '저 사람 촌놈이구나' 하니까. 그런데 남한에서는 대구에 살던 사람이 자유롭게 서울에 가서도 살 수 있으니까 사투리를 고치려고 하는데 북한은 회령에서 살다 평양시민이 되는 건 정말 힘들기 때문에 굳이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진행자 : 남한에서도 '사투리를 쓰면 약간 무시한다' 느끼나요?

광성 : 저는 좀 느꼈던 것 같아요. 처음 탈북해서 대구에 갔는데 무시하더라고요. 자기들도 대구 사투리를 쓰면서(웃음). 그리고 의사소통이 잘 안 됐어요. 물론 남한에는 외래어가 많기도 하지만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저와 대구 사투리를 쓰는 친구들이 서로 얘기를 하면 잘 못 알아들어요.

진행자 : 클레이튼도 사투리 쓰면 무시한다고 생각해요?

클레이튼 : 무시하는 건 잘 모르겠는데, 첫 한국인 여자 친구가 대구사람이었거든요. 처음 서울에 왔을 때는 사투리 고치려고 노력했대요.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놀릴 수 있어서. 또 전주에 살 때 전주 친구와 서울에 놀러온 적이 있는데 지하철 타면서 그 친구한테 뭐라고 얘기했더니 '야, 사투리 쓰지 마. 무시하는 사람 있으니까!' 하더라고요.

광성 : 보이게 안 보이게 있는 것 같아요.

예은 : 그래도 요즘은 매체에서 사투리를 많이 다루니까 오히려 사투리를 좋아하고 따라하려는 사람도 많아요. 특히 부산 사투리는 최근 많이 뜨고 있거든요. 그런데 다른 지역 사투리는 많이 안 알려진 것 같아요.

진행자 : 흔히 북한 사람 흉내 낼 때 강원도 사투리를 많이 내는 편이고, 전라도 사투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직이나 깡패 나올 때(웃음), 경상도 사투리는 좀 무뚝뚝한 남자 특징을 잡을 때 많이 쓰는 편이죠.

사투리를 쓰다 서울에서 살게 되면 무시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르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게 되니까 고치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게 가장 심한 분들이 탈북자들이 아닐까 싶어요. 그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나요?

광성 :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죠. 저도 느꼈던 것이지만, 매점에서 물건을 살 때 사투리 억양 때문에 쳐다봐요. 다른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다시는 그 가게에 못 가겠대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는데 상대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봐서. 그래서 다른 데 가고, 또 다른 데 가고, 결국 집에서 멀리까지 가봤다는 얘기도 들었거든요. 또 탈북자 중에 함경도에 사시던 분이 많은데 함경도 사투리 자체가 연변, 조선족들과 거의 비슷해요. 그래서 오해를 받는 분들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참 안타까운 게 사투리는 지역 고유의 특색인 만큼 잘 보존해야 하는데 남한 사회에서는 사투리를 없애려고 하니까.

진행자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예은 : 없애려고 하지는 않고요. 서울에서 살 때는 아무래도 이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고치려고 하는 것이고, 또 계속 살다 보면 억양이라는 게 비슷해져서 자연스럽게 고쳐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탈북자들이 하는 사투리는 우리한테 너무 생소하고, 평소에 개그 프로그램에서 재밌게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투리이고, 또 조선족들이 주로 사용하는 사투리라서 사람들의 인식이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상처를 좀 받으실 수도 있겠다 싶어요.

진행자 : 보통 조선족들이 불법체류가 많거든요. 남한에 정식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몰래 들어와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광성 : 그런 것도 있죠.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식당에 가서 일자리를 구할 때 말을 꺼내면 바로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본대요. 그러면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차마 못 하겠대요. 저는 이해가 잘 안 되는데,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못하고 연변에서 왔다고 한대요.

진행자 : 차라리... 그럼 광성 씨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보면 북한에서 왔다고 말 하나요?

광성 : 말하죠. 굳이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함경북도 회령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데 5년 전까지만 해도 얘기를 못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인데, 그때는 북한에서 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싫었고. 그 사투리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그런 거 없어요.

예은 :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은 그런 것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남한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처음에는 신기해서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는데 의사소통도 원활하게 안 되니까 상처를 받더라고요.

진행자 : 무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무시당한다고 자기가 느끼는 것일 수도 있어요.

광성 : 맞아요. 자격지심이 좀 많은 것 같아요.

진행자 : 예를 들어 저희 엄마도 사투리 쓰시거든요. 백화점 가면 제가 통역을 해야 하는(웃음). 점원들이 '무슨 얘기일까?'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저희 엄마는 아주 당당하게 사투리를 쓰시거든요. 어떻게 보면 자기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광성 씨도 지금은 그런 마음을 안 느끼잖아요.

광성 : 맞아요, 저는 오히려 지금이 더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왜냐면 어디 가서 북한 사투리 해보라고 하면 생각이 안 날 때가 많아요. 나의 뿌리를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내가 바꾸려고 했던 게 부끄러워요.

진행자 : 미국에서도 사투리를 쓰면 서로 무시하거나 그런 게 있나요?

클레이튼 : 특히 남부 북부 사이에는 그런 게 있어요. 남부 사람들이 북부에 가면 좀 무시당할 수 있어요. 억양만 듣고 촌놈이다, 무식하겠다 생각해요. 북부 사람들이 나쁘죠, 저는 남부 사람이니까(웃음).

예은 : 그럼 북부 사람들이 남부에 가면요?

클레이튼 : 남부 사람들이 북부 사람 예의 없다고 생각해요(웃음). 남북전쟁이 1865년에 끝났는데 아직도 문화차이, 안 좋은 느낌 있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켄터키 출신인데 뉴욕으로 이사 간다고 사투리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 얘기는 못 들어봤어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남한 왔으니까 사투리 고쳐야겠다는 소리 들으면 좀 슬퍼요. 그냥 지역의 특별한 문화인데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고치려고 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우리가 클레이튼이 영어로 말하는 건 잘 못 들어봤잖아요. 클레이튼의 말은 미국에서 표준어예요?

클레이튼 : 제가 미국에 있을 때는 켄터키 주에서 왔다고 해도 켄터키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억양에 큰 차이가 없어서.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에 와서 켄터키 사투리가 점점 나옵니다. 제가 전쟁기념관에서 해설 봉사를 하는데 끝나고 나면 외국인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봐요. 미국에서 왔다고 하면 '미국 어디?' 켄터키라고 하면 '아, 어쩐지 그런 단어를 쓰더라.'라고 말하더라고요. 왜 한국에 와서 사투리가 나오는지, 고향이 많이 그립나 봅니다(웃음).

광성 : 사투리는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다 있지 않을까요?

진행자 : 다 있죠, 영국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억양이 좀 다른데요.

예은 : 그런데 러시아는 없어요.

진행자 : 없어요? 중국만 봐도 서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잖아요.

예은 : 지방마다 쓰는 단어가 약간 다르긴 한데 공식적인 사투리는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좋은 점이 수도를 가나 지방을 가나 표준어를 배울 수 있어요.

진행자 : 어쨌든 남한에는 표준어라는 게 있거든요. 북한에서는 표준어의 정의가 뭐예요?

광성 : 글쎄요, 북한에서 텔레비전 보도하는 이춘희 아나운서가 유명하잖아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말이 표준어가 아닐까.

네, 북한의 표준어는 어떤 말인가요?

<청춘 만세> 다음 시간에는 남북한 매체에서 사용하는 말에 대해서도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