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은 신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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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청춘만세>의 김인선 입니다.

남한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면 저마다의 위치가 조금씩 바뀝니다.

1학년은 2학년으로 2학년은 3학년으로... 인민학교(초등학교)에서 중학생으로 또 대학생으로, 사회인으로 새로운 신분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신분증을 또 하나 갖게 되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올 봄, 새로운 신분증... 갖게 되나요?

오늘은 '신분증'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정민, 김재동, 김강남, 최철남 씨와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인사 나눈 후) 일단 신분증의 의미에 대해서 남과 북의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 나누어 볼게요.

최철남 : 남한에서는 신분증이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공민증이라고 해요.

이정민 : 배우자 관계도 공민증에 들어가 있어요.

김강남 : 태어나서부터 17살까지는 출생증이 나의 증명서이고, 17살이 되면 공민증을 발급받아요. 그랬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까지 추가되는 거죠. 그리고 공민증 외에도 신분증이 있어요. 보위부라던가 청년 동맹부 비서라던가 특정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신분증을 부여해요. 그게 공민증보다 더 나은 권력을 행사하게 만드는 신분인 셈이죠.

내레이션 : 북쪽의 공민증은 남한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의미인데요, 이름과 사진, 거주지, 발급일자가 표시됩니다. 주민등록증은 17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발급 받고 북쪽에서 온 강남 씨와 정민 씨 그리고 철남 씨도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습니다.

김재동 : 다만 북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권력이나 수준에 상관없이 한 줄의 추가나 과감 없이 모두 똑같이 만들어요. 성인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주는 한 장의 카드이기도 합니다. 또 학생들의 경우에는 중학교 학생증, 고등학교 학생증, 대학교 학생증까지 있는데요, 대학교 학생증의 경우에는 교통카드 기능과 학교 건물의 입출입이 가능한 기능까지 장착이 돼있습니다.

김강남 : 아마 카드라고 해도 청취하시는 분들은 모르실거예요. 그 카드가 뭔지요. 그런데 북한에도 학생증은 있지만 재동 씨가 말한 것처럼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 있지 않아요. 북한에서는 대학생만 학생증이 있고 고등학생, 중학생은 학생증이 없습니다. 그게 좀 차이인 것 같아요.

이정민 : 저는 얘기를 들으면서 느낀 게 남한의 신분증은 본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용도 외에는 제출할 필요가 없잖아요? 북한은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어요. 국가의 공무원들이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를 했을 때 보여주지 않는다면 처벌이 가능하거든요. 그 신분증은 한마디로 말해서 국가에서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져요.

최철남 : 맞아요. 어디 여행갈 때도 꼭 들고 다녀야 해요.

이정민 : 남한에 비교하면, 사원증과 비슷한 공장 출입증이라는 게 따로 있어요. 그게 없으면 군수품 공장 같은 곳에 출입을 못하는 거죠. 신분증의 쓰임새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동일하게 쓰인다고 보이는데, 거기에 내가 이곳을 무사하게 통과할 수 있다는 특권도 부여되잖아요. 북한은 신분증의 권한이 남한보다 훨씬 많죠. 남한은 이 신분증에 한해서 받아야 할 특혜나 특권이 정해져 있다면 북한의 경우에는 중앙당 신분증을 가졌다하면 무소불위라고 해야 되나요? 아무거나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용권한이 대단하지만 정말 우리 같은 사람이 가졌던 신분증은 국가에서 인구수를 점검하고 어디로 이동하는지 확인하는 감시용일 뿐이었죠.

최철남 : 왜냐하면 탈북할 때도 그런 것 때문에 통제가 되잖아요. 이 사람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되기 때문에 중국에서 잡혀갈 수도 있어요. 그렇게 본다면 일반 주민들에게는 신분증은 족쇄와 같죠. 우리에겐 굳이 없어도 되는 거예요.

이정민 : 저는 중국에서는 그 신분증이 목숨줄과 같다는 절박감을 느꼈습니다. 북한에서는 감시라고 한다면 남한에서는 신분증을 받는 날에는 '아~ 나도 이제는 보호해 줄 나라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생각 덕분에 많이 뿌듯했던 것 같습니다.

김강남 : 또 신분증에 있어서 남북한이 다른 게 있다면 발급의 차이요. 한국에서는 북한의 공민증인 주민등록증을 '주민 센터'라는 곳에서 발급받는데요. 북한에서는 한국의 경찰서인 보안서에서 발급을 받습니다.

내레이션 : 주민 센터는 북쪽으로 치면 동사무소입니다.

쭉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신분증이라는 말의 뜻은 남북이 같지만 그 의미는 확실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한의 신분증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단순한 문서 이상의 의미가 없지만 북쪽의 신분증은 감시 수단이 되고 있고요. 이 차이는 발급기관이 어디인가를 보면 잘 나타납니다.

이정민 : 제가 지난해 8월인가에 운전면허증을 갖게 됐는데 정말 놀랐어요. 북한은 신분증을 경찰서에 신청을 하면 한달 내에 나와요. 그러면 신분증이 없는 동안에는 아무 곳에도 다닐 수가 없게 돼요. 남한에서는 만약 오늘 신분증을 신청했을 때 일주일 후에 나오게 되는 경우, 일주일 동안 신분증을 대신해서 쓸 수 있는 종이라도 주잖아요. 하지만 북한에는 그런 것도 없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아무데도 못가고 기다려야 되는데 대한민국은 여권도 3일 만에 나오잖아요. 운전면허증은 선 자리에서 만들어줘요.

최철남 : 남한에서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 여권이지만 북한은 여권도 함부로 가질 수 없어요. 받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요. 뇌물을 줘야 겨우 받을 수 있는데, 뇌물을 준다 해도 쉽지 않아요. 북한은 여행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중국에 친지방문인데 그것도 엄격하게 선발돼서 나가요. 간혹 가능한 경우는 노동자가 해외에 파견되는 건데 이 경우엔 국가에서 노동자들에게 여권을 만들어줘요. 그러나 일반주민들은 죽을 때까지 여권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

내레이션 : 이런 이유 때문에 남쪽에 와서 우정(일부러) 여권을 발급받는 탈북자들도 많은데요. 철남 씨와 강남 씨, 정민 씨도 모두 여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세 사람은 여권을 가졌다는 사실도 좋지만 여권에 있는 단 한 줄의 글에 가슴 찡했다고 말합니다.

최철남 : 북한에 있을 때는 말 그대로 신분증이라고 주니까 받은 게 다였어요. 하지만 남한에서는 특히 여권의 경우에 보면 제일 앞에 이런 글귀가 있어요. '이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며'... 이렇게 되어있는데 그걸 볼 때면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내가 국제 미아가 되더라도 이 여권을 가지고가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나를 보호해주는구나! 이런 것을 볼 때마다 비교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여권을 받았을 때 의미가 남달랐어요. 대학생 때 여행가기 위해서 20살에 여권을 처음 만들었었는데 저는 여권을 처음 받았을 때 너무 좋아서 잘 때에도 옆에 놓고 수시로 펼쳐보고 그랬어요.

이정민 : 저는 여권을 발급 받아서 지금까지 외국에 6~7차례 다녀왔는데, 비행기 타는 것만으로도 꿈같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느 나라에 가서도 대한민국 여권이라고 당당하게 내 놓을 수 있었던 게 참 좋았어요. 처음에 신분증 받는 날도 굉장히 좋았었는데요, 여권을 받아서 외국에 나갈 때는 '내가 북한에 있었다면 죽을 때까지 못해볼 일을 지금 내가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 여권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남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탈북자들은 그 신분증과 여권 때문에 목숨 걸고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중국에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신분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남한 행을 택한 사람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던 거였고요. 그래서 그런 여권에 대한 의미나 신분증에 대한 의미도 특별했죠.

김강남 : 저는 여권 받을 때보다 신분증 받을 때가 제일 짜릿하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주민등록증을 받으니까 '내가 요거 한 장을 가지기 위해서 내가 목술 걸고 남한에 왔구나. 나는 이제 당당하게 살 수 있구나. 대한민국 국민이 됐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다른 분들도 앞에서 얘기했지만 여권 앞에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합니다'라는 글귀 속에 대한민국을 읽을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같은 민족인데 북한에서는 이런 글귀도 못 읽어보고 자기의 권리도 없이 사는데 남한에서는 북한의 고위층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쉽게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싶어요.

내레이션 : 목숨을 걸고 얻은 신분증과 꿈만 같던 여권을 갖고 있는 세 사람... 이들은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을까요? 하지만 여전히 갖고 싶은 신분증이 남아있다고 말합니다.

이정민 : 학생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원증을 제일 갖고 싶을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국방부에 출입해 본 경험이 있어요. 북한에서는 국방부라는 곳에 가보지도 못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가볼 수 있었다는 게 굉장히 뿌듯했어요. 그런데 가니까 일일 출입증을 발급해 주더라고요. 그런데 대한민국 어디나 다 같은 것 같아요. 어느 기관에 가더라도 일일 출입증을 발급해서 출입이 가능했어요. 해당 기관의 사람들을 보니까 출입증 하나로 문을 여는 것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람이 있다면 저도 외교부처럼 큰 부서에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증명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어요. 북한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특권을 누려보고 싶어요. 북한에서는 그런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미웠었는데 남한에 오게 되니까 저도 그렇게 돼 보고 싶네요.

김강남 : 저는 그건 좀 무서워요. 솔직히 그런 특권을 갖고는 싶은데 그것보다는 아직 미혼이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요. 아내와 자식을 돌봐주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까 직업에 대한 신분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대기업 신분증으로요. 급여를 많이 주는 회사로요. (웃음)

김재동 : 제가 아직 취직을 못하고 있고 취업면접을 대비하고 있는데요, 제가 갖고 싶은 신분증은 대중문화 평론가라는 신분증입니다. 평소에 음악이라든가 영화를 감상도 많이 하고 글을 남기고 있거든요. 평론가라는 신분증이 생긴다면 그런 경력들을 더 있어 보이게 해줄 것 같아요.

최철남 : 저 역시 사원증을 갖고 싶어요. 저는 보안 업체에 취직을 원하기 때문에 그런 회사의 신분증이 있었으면 합니다. 요즘 남한 청년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어디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신분증이라고 생각해요.

내레이션 : 남쪽 청년이나 탈북 청년들이나 모두 다음에 받고 싶은 신분증은 직장에서 주는 신분증이네요...

별다른 노력 없이 태어나는 순간 주어지는 출생증과 같은 신분증도 있지만 어떠한 노력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신분증도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조직이 요구하는 신분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또 다른 신분증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탈북 청년들의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들렸는지 궁금해집니다. 지금까지 청춘만세의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