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만세] 감기야 물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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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춘 만세> 이 시간 진행에 권지연입니다. 추운 겨울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음식은 어떤 음식인가요?

온몸이 나른하고 무기력할 때, 입맛도 떨어질 때 생각나는 음식들.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듣다보면 다들 그리 거창한 음식은 아닌 것 같죠? 뭐니 뭐니 해도 밥이 보약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춥고 건조한 요즘 감기 환자가 속출합니다.

<청춘 만세>를 함께 하는 구성원들도 온통 감기에 걸렸다는데요. 오늘은 탈북 대학생 이정민 씨와 따끈한 점심 한 끼 함께합니다.

권지연 : 안녕하세요.

이정민 : 네. 안녕하세요,

권지연 : 감기 걸리셨다고 들었는데 아직 안 나았나보네요.

이정민 : 네. 오늘 같은 날은 뜨끈뜨끈 한 걸 먹고 싶습니다.

권지연 : 오늘 제가 삽니다. 말씀만 하세요.

이정민 : 정말요? 지난번에 우리 먹으려고 하다가 못 먹었던 강된장 먹고 싶습니다.

강된장이란 쇠고기나 표고버섯 등의 건더기에 된장을 많이 넣고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되직하게 끓인 것을 말하는데요. 밥에 비벼 먹으면 한 그릇은 뚝딱입니다.

권지연 : 북한에도 강장이 있나요?

이정민 : 청국장은 썩 장, 재래식 된장은 토장이라고 하는데요. 그 외에는 고추장 정도가 있습니다. 여기 와서 쌈장을 처음 봤고요. 북한도 양념장이 있긴 한데 여기처럼 포장된 것은 없고요. 제가 자란 고장은 워낙 가난한 곳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서 밥에 비벼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던 된장이 있었습니다.

권지연 : 아마 비슷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갈 곳은 무척 유명한 곳입니다. 이정민 : 연예인을 볼 수도 있을까요?

권지연 : 하하. 그건 모르겠습니다. 식당으로 향하면서도 우리의 수다는 이어집니다. 주제는 민간요법... 감기에 걸렸을 때 병원에 가지 않고도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권지연 : 저는 어릴 때 감기에 잘 걸렸어요. 감기에 걸리면 엄마가 배의 속을 파서 그 안에 꿀을 넣어서 중탕을 해 주곤 했습니다. 이정민 : 북한에도 그런 비슷한 게 있어요.

저희 집에서는 병원에 가려면 하루 종일 걸어서 다녀와야 했어요. 그래서 감기 걸리거나 급성 설사를 하거나 하면 엄마가 해 주던 민간요법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지방엔 배가 없습니다. 북한에 배는 흔치 않아서 배 대신에 무를 채 칼 쳐서 꿀을 넣고 가마에 중탕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웃음) 게다가 감기 걸려서 열나고 하면 모든 음식이 쓴 맛으로 느껴지잖아요? 엄마한테 미안하지만 정말 먹기 싫었습니다.

권지연 : 저는 배 중탕이 너무 맛있어서 일부러 먹고 싶을 땐 아픈 척 꾀병을 부린 적도 있는데요. (웃음)

이정민 : 혀를 깨물면 엄마가 고기 먹고 싶어서 그런가보다 하면서 돼지고기를 조금 얻어다가 삶아 주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 나 오늘 혀 씹었다"고 거짓말 할 때도 있어요. 남쪽에서는 소주에 고춧가루 타먹으면 감기 기운이 달아난다는 속설이 있는데요. 진짜 효과가 있는지 장담할 순 없습니다. 어쨌든 남이나 북이나 감기엔 뜨거운 음식을 먹어 몸에서 찬기를 내보내고 기침이 심하면 배를 중탕해 먹이는 건 비슷하네요. 정민 씨랑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식당 앞입니다. 점심시간을 조금 지난 때라 식당 안은 한산합니다.

권지연 : 이 가게가 무척 작게 시작했던 가게인데 맛이 있으니까 가게가 커졌습니다. 아주머니, 그렇죠?

주인아주머니 : 여기는 12평부터 시작했었지... 이제 20년도 넘었는데 많이들 찾아 주셔서 이렇게 가게가 커졌습니다.

권지연 : 어떤 걸로 드시겠어요?

이정민 : 강된장하고 순두부찌개요.

<분위기 전환>

INS - 이 음식 먹으면 힘이 나죠. 고향의 맛이라고나 할까요?

권지연 : 음식 나왔네요. 어때요?

이정민 : 된장은 무척 양념이 많이 들어간 것 같네요. 그런데 냄새가 무척 고소해요. 이제부터 먹어보겠습니다. 강된장은 북에서 말하던 양념 된장이네요. 정말 맛있었습니다. 북쪽에선 두부 먹는 날이 명절이었습니다. 저희 동네는 물도 멀리서 길러 와야 하고 두부 만드는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해야 합니다. 맷돌로 갈아서 해야 하는데 그 때 만드는 순두부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물에 고추장을 풀고 호박, 감자, 달걀 같은 재료들을 순두부와 함께 넣고 끓여낸 순두부찌개는 남한 가정에서 자주 밥상에 오르는 서민 음식입니다.

이정민 : 영양적으로 따지면 정말 좋지만 손이 많이 가고 힘들어서 어머니가 잘 안 해줬습니다.

권지연 : 여기서는 가장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계란과 두부잖아요.

이정민 : 그렇죠.

권지연 : 남쪽도 예전에는 계란 하나 밥 위에 올려주면 최고였던 시절이 있긴 했지만 이제는 정말 가장 쉽게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이죠.

이정민 : 북한은 아직도 그래요.

권지연 : 이렇게 오늘 여기서 이 음식 먹으면서 엄마 생각도 났겠어요.

이정민 : 그렇죠. 음식점이 성공하려면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집 김치는 정말 맛있네요.

권지연 : 다음에 오면 다른 것도 먹어보죠.

이정민 : 우리 안주 시켜서 술 하죠. 낙지 돌 판에 동동주 한 잔 하죠.

권지연 : 좋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다 먹고 배가 부르니 가게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커다란 벽걸이 텔레비전과 주인아주머니의 사진, 배우 정치인 등 유명인들의 친필 서명지가 액자에 넣어 벽에 걸려있습니다. 남쪽에선 이런 사진이 유명한 식당의 표시처럼 붙어있습니다.

권지연 : 식당마다 요즘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는 곳이 많아요. 2002년 월드컵 할 때 사람들이 같이 모여 응원하려고 이렇게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는 가게를 많이 찾았거든요. 그래서 너도나도 주인들이 커다란 텔레비전을 장만해 걸어두었죠.

이정민 : 아주머니도 참 인자하게 생기셨네요.

계산하고 나가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맛있는 밥에 대한 인사도 잊지 않습니다.

이정민 : 정말 맛있었어요. 혹시 고향이 전라남도세요? 주인아주머니 : 충청도예요.

이정민 : 아, 틀렸다.

권지연 : 아까 그 나물 이름이 뭐예요?

주인아주머니 : 유채나물이에요. 여긴 아가씨들이니까 아줌마들도 몰라... 시금치 주세요. 그런다니까요.

권지연 : 나중에 만드는 비결 좀 알려주세요.

주인아주머니 :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음식의 맛도 맛이지만 친절한 미소에 더 기분이 좋아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음식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 정민 씨는 감기를 물리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청춘 만세> 이 시간 진행에 이정민, 권지연 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