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이 시간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7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소연 씨는 남한에 도착한 이듬해 아들도 데려왔는데요.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남한에서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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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완: 안녕하세요?
박소연: 네, 안녕하세요.
노재완: 판문점에서는 지금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리고 있는데요. 오랜만에 열리는 남북회담인 만큼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소연: 저도 여기 오기 전에 TV를 통해 회담장 모습을 봤는데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고 있더라고요. 보면서 저도 회담이 좋은 결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재완: 얼마 전 MBC 프로그램 통일전망대에 나오셨다면서요?
박소연: 네, 어떻게 아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자랑하려고 했었는데..
노재완: 텔레비전 방송에는 어떻게 해서 출연하시게 됐어요?
박소연: 실은 얼마 전 MBC 작가로부터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들어 보니까 내용이 정치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북한 주민들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아주 가벼운 내용이어서 일단 해보겠다고 했죠.
노재완: 텔레비전에 출연하니까 어땠습니까?
박소연: 출연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진짜로 많이 떨렸습니다. 왜냐하면 MBC는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큰 방송국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시청하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괜히 방송에 나갔다가 말을 더듬고 대사도 잊어버리면 큰 망신이잖아요.
노재완: 하긴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좀 다르죠.
박소연: 그런데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방송하는 날이 다가오는데도 방송국에서 대본이 오지 않고 아무런 연락도 없는 거예요.. 혹시 나하고 약속하고 나보다 더 방송을 잘하는 다른 사람을 섭외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재완: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박소연: 방송촬영 하루 전까지 대본이 오지 않아 저는 결국 작가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작가님 저 내일 방송촬영 맞나요? 그런데 왜 대본이 오지 않나요.. 혹시 제가 잘못할까 봐 다른 사람을 섭외했나요.” 저는 북한 사람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작가에게 질문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니까 작가는 큰 소리로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선생님처럼 북한을 경험한 분들에게 대본이 필요 없을 것 같아 보내지 않은 거예요... 그리고 대본을 미리 보면 더 긴장되니까 마음을 비우고 방송에 임하시면 된다면서 너무 걱정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혹시 노 기자님은 텔레비전 방송에 나온 적이 있습니까?
노재완: 아니요. 저는 텔레비전에 나간 적은 없습니다.
박소연: 아, 그래요? 그러면 제가 더 세네요. (웃음)
노재완: 그러게 말입니다. 저보다 더 출세하셨는데요. 방송국에 가보시니까 어땠습니까?
박소연: 저는 MBC로 가는 내내 정말 마음이 떨렸습니다. 정말 큰 방송국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혹시 MBC에 가면 ‘가을동화’에 나오는 송혜교나 송승헌 같은 유명한 배우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방송국에 도착하니까 긴장감이 더 밀려오는 거예요. 높은 건물에 화려한 조형물들, 그리고 바깥 풍경이 환히 보이게 유리로 만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송실까지 올라가는데 모든 게 꿈만 같았습니다.
노재완: 가자마자 분장실부터 가셨을 것 같은데요.
박소연: 네, 맞아요. 방송국에 도착하니까 작가님이 집적 마중 나와 분장실로 안내했습니다. 전문 분장사들이 화장도 해주고 머리도 세련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촬영실에 들어가니 10개도 넘는 대형 카메라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창문만 한 TV가 촬영장에서 찍은 화면을 즉석에서 보여주었습니다.
노재완: 스튜디오에서 어떻게 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박소연: 밝은 조명이 눈부신 곳에 제가 앉을 의자가 있었고요. 잠시 후 TV에서 자주 뵙던 인기 있는 방송원 두 분이 들어오시더니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정말 유명한 분들과 한 자리에서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기도 전에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방송은 40분 동안 진행됐던 것 같은데요. 막상 시작하니까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노재완: 북한에서도 텔레비전 방송에 나간 경험이 있었나요?
박소연: 네, 고등중학교 때 우연히 출연하게 됐습니다. 그때가 198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북한의 북부 철길공사 당시 1고등학교 성악조 출신이던 저는 철길공사 완공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 지방에서 개통이 시작되다 보니 조선중앙TV 촬영진이 철길 개통식장에 내려와 직접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좁은 기차 안에서 대형 카메라가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땀을 흘리며 기재를 옮기느라 꽤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노래를 부르는 한 장면을 찍는데도 수십 번 정도는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노재완: 그래서 소연 씨가 텔레비전에 잘 나왔습니까?
박소연: 말도 마세요. 막상 저녁 7시 보도 시간에 상영되는 영상은 불과 10초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보도에 얼굴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유명한 스타로 인정받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는 아버지 친구들한테 우리 딸 텔레비전에 나왔다며 엄청 자랑하셨죠. 그러던 제가 남한에 와서 40분 넘게 텔레비전에 출연했으니 정말 북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거죠. 아무튼 이런 기회를 준 방송국 측에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저 같은 평범한 탈북자도 큰 방송 채널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방송을 통해 청취자분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노재완: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 박소연이었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