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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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17평보다 더 큰, 그것도 2012년도에 지은 아파트여서... 산이 마주 있어서 공기가 너무 좋고. 아파트 14층인데요...

소연 씨가 지난주 이사를 했습니다. 남한에 와서 처음 받았던 방 하나짜리 작은 아파트를 반납하고 크기가 2배나 되는 새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목소리 톤이 두 배는 높아졌고 자다가도 웃을 것 같이 좋아하네요.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답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소연 씨의 기쁨, 함께 들어주시죠. 두 배가 돼서 청취자 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세상 밖으로> 소연 씨의 이사 얘깁니다.

진행자 : 국가에 내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모르게 해서 세금을 안 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금을 안 내면 이렇게 돈이 필요할 때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가 없어요.

문성휘 : 소연 씨는 그래도 대출이 가능하니 다행입니다.

박소연 : 근데 저는 죽기 전엔 빌어먹어도 돈은 안 꾸겠다는 맹세를 하고 살았습니다. 예전에 이자돈 을 꾸어서 장사를 하다가 폭삭 망했어요. 다 떼었어요... 사람이 욕심이 한계가 있어야 했는데요. 제가 처음에 한두번 성공을 하고 나서는 차 판들이를 했습니다. 화물차 하나를 끌고 가서 차로 밀수품을 실어오는. 차 하나는 움직이자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큰돈을 꿨습니다. 보름을 기한으로 15% 이자 돈을 꾸었는데 그게 다 망했습니다. 단속돼서 물건은 모두 빼앗기고 사람은 뇌물을 고이고 살아나왔지만 돈이 다 물이 된 것이죠... 그 때,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아마 빚을 져본 사람만이 제 심정을 이해할 거예요. 머리가 잡들이 하고 싸운 것처럼 빠지고. 지금 축구하는 저 아들녀석은 그런데도 배고프다고 자꾸 어미의 머리를 잡아당기는데 쌀은 없고... 저는 방바닥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햇빛을 보고 싶지 않았어요... 친정아버지가 도와주셔서 다시 장사를 했고 그 돈을 2년 동안 갚았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가족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고 또 자식도 있는 사람이 어딜 뛰겠냐, 그래서 갚게 뒀는데요. 그 돈을 무는 2년 동안 내가 얼마나 뼈는 깎는 고통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막 속으로 울면서 돈을 줬어요... 그래서 이번에 돈 빌리면서도 마음이 참 이상했습니다. 죽기 전에는 꾸지 않으려고 했던 그 돈을 내가 꾸다니! 대신 세상이 바뀌니까 의미가 달라져요. 이자도 적고 10년,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갚아도 된다니 누워서도 갚겠다는 배짱이 생겼습니다. (웃음)

문성휘 : 북한에선 꾸어준 돈을 받아내는 사람을 공화국 영웅이라고 하지 않아요? 지금 돈 꾼 사람의 속 타는 심정을 얘기했지만...

박소연 : 저 그건 하루 종일 말해도 끝이 안 나요.

문성휘 : 꾸어준 돈을 못 받은 사람의 심정도 하늘이 노랗습니다. 나도 다 망할 판이니까... 그 사람에게 돈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내가 죽겠으니까 그 사람을 긁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소연 : 진짜 마른나무에서 물 짜내는 심정이죠...

문성휘 : 정말 안타까운 거죠. 북한에서는 남한에선 대학생들이 대학 등록금이 없어서 피를 판다... 옛날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진행자 : 옛날엔 피를 파는 게 있었답니다. 60-70년대 얘기죠.

문성휘 : 그래요? 그 옛날 얘기가 갖고 정말 엄청 우려먹었네요. 지금도 그렇게 배워주니까... 하여튼 나는 그 때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남조선처럼 피를 팔면 돈을 주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박소연 : 맞아요. 저도 막바지에 다다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문성휘 : 그 녀석 목을 잡고 거기를 가서... 그런 억하심정이 들었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의 돈 거래는 삶과 죽음의 거래입니다. 돈을 주는 사람이 얼마나 비장하게 말하는지 몰라요... 이 돈은 내 심장과 같다, 목숨과 같다. 열심히 장사해서 빨리 물어라. 여기 한국의 은행처럼 웃으며 주질 않습니다. (웃음) 그러니까 받는 사람도 손이 떨리고... 또 남한은 그렇습니다. 내가 분명 은행에서 4천만 원을 빌렸는데 내 손에 쥐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진행자 : 내가 돈을 줘야하는 업체... 그러니까 돈을 빌려주는 은행에서 집주인이나 주택공사에 바로 쏘아줍니다.

박소연 : 그래서 저에게는 문자 한자 달랑 넘어오더라고요. 단,시,백,천,만... 4천만 원 맞네! 이러면서 핸드폰 문자에 동그라미만 세어 봤습니다. (웃음) 그래서 더 돈을 꾼다는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북쪽에서는 돈을 손에 받아드는 그 순간부터 시간이 돈인 겁니다. 그러니 사람이 바질바질 끓죠. 돈을 준 사람도, 돈을 받은 사람도.

진행자 : 지금 소연 씨는 그래도 혜택을 받아서 좀 싼 금리로 집을 빌렸고.. 그래서 좀 느긋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남쪽에도 그렇게 속 타는 마음에 돈을 빌리고 갚는 사람들, 있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오죽하면 저희 회사에 함께 일하는 동료가 남한 사람인데요. 이번에 저 집 받는 것보고 너무너무 부럽다고... 그래서 제가 북한에 가서 살다오면 가능하다 했습니다. (웃음)

문성휘 : 저는 대출받고 집을 사고... 이러면서 인식이 많이 변했습니다. 소연 씨에게도 될수록 그 집에서 그냥 살라고. 집을 재산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내 이름으로 된 내 집이 가장 큰 재산이라는 생각이 너무 확고하고 그만큼 집에 대한 집착이 큽니다. 저도 그 집착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서 집을 샀고 그러면서 기왕 살 때 큰 것을 사자했는데 지금은 엄청 후회를 합니다.

진행자 : 저희가 문 기자가 집 살 때 지금 임대 아파트에서 좀 더 살아야 돈을 모일 수 있다고 많이 말렸는데 굳이 사셨죠. (웃음) 그런데 우리 누구나가... 집을 사고 또 집을 꾸릴 때 본인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많이 방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리도 하고 후회도 하게 되고요.

문성휘 : 맞아요. 이제 생각해요.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구나. 내 이상은 내 이름으로 된, 제대로된 번듯한 집이었는데 사놓고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박소연 : 저는 지금이 제 이상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작은 집에서 살 때는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없었습니다. 일어나서 두 발자국 가면 부엌이고 세발자국 가면 화장실이었습니다. 지금은 빙빙 돌아다닐 수 있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그리고 나갈 일도 별로 없는 베란다마저 넓으니 좋습니다. 괜히 주말에서 나가 서있습니다. (웃음) 저는 지금 상태에서 이상했던 것 이상입니다.

문 기자의 예언에 따르면 소연 씨는 곧 자동차를 사고 싶을 것이며 그 다음엔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이 갖고 싶을 것이랍니다.

소연 씨는 이 예언이 틀리며 자신은 다르다! 장담했지만... 두고 볼 일이죠.

사람의 욕심은 항상 더 많고 더 나은 것을 바라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우리는 발전하기도 하니까요. 항상 비우는 것만이 최선은 아닌 것 같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