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낮에 35도가 넘는 여름에 타 죽을 사람만 밖으로 나와 걸어 다녀라... 정말 죽겠습니다. 더워서.
2일 저녁엔 비가 조금 내렸습니다. 그래서 26도, 대신 습도는 70 퍼센트가 넘습니다. 내일 한낮 기온이 33도, 폭염 주의보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북쪽은 좀 시원하신가요? 오늘 <세상 밖으로> 소연 씨, 문 기자의 피서법, 더위를 피하는 법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문성휘 : 안녕하세요. 요새 너무 덥고, 습하고... 휴가철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웃음)
진행자 : 그렇습니다. 남쪽은 7월 말부터 8월 첫 번째 주에 직장인 휴가의 60% 정도가 몰려있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다들 휴가 가는 철입니다.
박소연 : 북한이랑 정말 반대입니다. 저희는 추운 겨울이면 죽을 놈만 밖에 나오라고 했는데 여기는 낮에 35도가 넘는 여름에 타 죽을 사람만 밖으로 나와 걸어 다녀라... 정말 죽겠습니다. 더워서.
진행자 : 그래서 남한에서도 이맘때 직장에서 휴가를 주는 거죠. 직장을 쉬고.
박소연 :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어떻게 북한에서 살았는지 상상이 안 갑니다. 지금 밖에 10분 서 있으라면 폭동 일으킬 것 같아요. 그런데 북한에서 감자 장사를 할 때 낮 기온이 이렇게 뜨거운데 감자가 시든다고 사람이 앉아 있어야 하는 그늘에 감자포대를 쌓아놓고 저는 자리가 없어서 뙤약볕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성휘 : 이것도 참 이해가 안 가는데 6월에 햇볕이 정말 쨍쨍 내려쬘 때 소년단 연합단체 대회...
박소연 : 아! 66절.
문성휘 : 또 8월 달 청년절에 궐기 모임하면 그 무더운 철에 나가서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을 모자도 못 쓰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차렷하고 그냥 서 있죠. 아마 여기 남한에서 그랬으면?
박소연 : 그 행사를 총괄하는 사람이 아작 났을 겁니다. (웃음) 근데 남한은 8월이 더워서 힘들지만 북한은 8월이 일 년 중에 가장 행복한 달입니다. 8.15가 지나면 찬바람 불고 가을이고, 햇보리를 걷고 일찍 심은 집들은 이삭 강냉이를 따요. 항상 8월 달이 되면 8.15만 오나, 8.15만 오나... 이걸 노랫소리처럼 불러 그런지 8월은 우리에게 행운의 달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한은 참 8월이 더워 견디기 힘든 달이네요.
문성휘 : 북한은 8월 중순만 되면 칼로 자른 것처럼 찬 기운이 느껴지는데 남한은 9월 중순이나 돼야 밤에 좀 서늘합니다.
박소연 :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까 남북의 여름이 차이가 좀 있긴 있네요. 남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항상 물어보는 게 있어요. 여름에 전기도 안 오고 선풍기도 없는데 어떻게 사느냐. 저는 더우면 김치굴에 들어갔고요.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다 살아가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습니다.
문성휘 : 저는 북한에선 학교 다닐 때 여름철이면 가장 좋았던 것이 창고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놀았던 일이네요. 겨울에는 땔감을 해놓아서 창고가 나무가 가득이었는데 여름에 자리가 나면...
박소연 : 맞아. 창고에! 가마니를 깔고!
문성휘 : 네, 나무를 넣어 침대를 만들어 놓고 같은 또래끼리 모여서 몰래 아버지 담배를 훔쳐서 피기도 하고...(웃음) 정말 좋았습니다.
박소연 : 저희도 맨날 그렇게 놀고 그랬네요. 기억이 납니다. (웃음) 밖은 덥지만 창고 바닥은 시원하고...
진행자 : 더위도 피하고 여름밤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북한 청년들이 찾은 방법이네요. (웃음) 남한에서도 더운 여름, 더위도 피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문성휘 : 물에 들어가 노는 것 아닙니까? 바닷가에 찾아가고 한강에 가면 물놀이 장 많고.
박소연 :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바다를 눈으로만 봤어요. 원산 앞바다를. 파란 것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바다에 들어가 본 것은 남한에 와서 처음이었어요. 파란 것이 너무 예뻐서 막 뛰어 들어갔는데 짠 바닷물에 눈이 시려서 한참 고생한 이후에 이제 바닷물에 들어갈 생각은 안 합니다. (웃음)
문성휘 : 나도 바닷물에서 놀아는 못 봤는데요. 워낙 북한은 바닷가 휴양소가 있지만 너무 좁고 또 해안가마다 간첩을 잡는다고 흔적선이라는 걸 만들어서 사람들을 못 들어가게 합니다. 그러니 바닷가가 있어도 어디 들어가 놀 곳이 없죠. 한국은 바닷가가 다 해수욕장으로 열려있고 그래서 저도 처음 바다에 들어가봤습니다. 근데 저는 동해에서 물이 빠져 죽는 줄 알았어요. 북한에서 책을 봐서 동해 바다는 몇 걸음만 들어가도 바다가 깊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아... 좋구나 하는 기분에 훌쩍 뛰어 들었다가 아무리 헤엄을 쳐도 기슭으로 몸이 나아가지 않는 거예요. (웃음) 막 주변에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다가 주변을 보니까 가족 단위로 와서 여자들도 많고 아이들도 구명대에 매달려 많이 놀고 있었는데...
진행자 : 아이들도 잘 놀고 있는 곳에서 그랬다는데 창피하셨군요. (웃음)
문성휘 : 맞아요. 그래서 그날은 다시 바다에 못 들어갔습니다. (웃음)
진행자 : 어쨌든 이제 피서 하면 두 분도 물에 들어가는 것, 바다에 가는 것을 생각하시는 군요.
박소연 : 바다는 말만 들어도 시원하지 않습니까?
문성휘 : 어... 난 시원하지 않아.
진행자 : 섬뜩하니까 시원하신 거죠. (웃음) 섬뜩한 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남쪽에선 섬뜩한 영화, 공포 영화를 보는 게 싸고 좋은 피서법라고 얘기합니다.
박소연 : 저는 억년 살아도 이해 못 할 것 같아요. 너무 무서워서 꿈에 나타날 것 같은데 그걸 왜 보나요.
문성휘 :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됐는데... 저도 처음에 한국에 와서 공포영화를 한 편 본 적이 있어요. 알 포인트라고...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 겪었던 괴이한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것인데 영화 자체도 무서웠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자꾸 북한에서 쫓기던 생각이 나는 겁니다. 내가 쫓기던 그 상황과 영화 장면이 막 겹쳐지고...
박소연 : 저도 너무나 공감합니다.
문성휘 : 그 다음부터 공포 영화를 잘 못 봤는데 요즘은 괜찮아졌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땀이 한번 죽 나면 그게 그렇게 시원하더라고요.
박소연 : 저는 문 기자처럼 남한에서 좀 더 살면 없어지겠는지 몰라도 저는 며칠 전에도 달기는 꿈을 꿨습니다. 몸은 북한에 있는데 빨리 집으로 오고 싶어요. 집에다가 돈, 쌀이고 동생들에게 주고 내가 항상 쫒기고 있고 눈을 뜨면 너무 다행이고.
올 여름 남한에선 '부산행'이라는 영화가 아주 인기입니다. 죽은 시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좀비가 돼서 사람을 공격하고 사람들은 유일한 안전 도시 부산까지 살아가기 위한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의 영화랍니다.
보고난 사람들이 시원한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영화는 끝이 있어서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무서운 영화도 100분이면 끝나니까요. 현실이 무서운 건 그 끝을 모르기 때문인데요.
소연 씨도 문 기자도 악몽을 꾸는 모든 탈북자들이 이제 정말 끝이고 안전하다, 마음을 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운 여름... 시원한 피서 얘기, 다음 시간에 다시 이어갑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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