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포 영화를 못 보는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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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공포물도 보는 겁니다... 땀이 쫙 나면서 좋아요. 저는 문 기자님처럼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보고 나면 자꾸 쫓기는 꿈을 꿔요...

이번 주 일기 예보를 보니 낮 기온이 참 일관되게 34도를 넘는다고 예고되고 있습니다. 더워도 참 무지하게 덥습니다! 바다로 산으로 계곡으로 남쪽에선 더위를 피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데요. 소연 씨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소름 돋는 공포 영화를 보는 것도 남한에서 인기 있는 피서법입니다.

오늘 <세상 밖으로> 공포 영화 얘깁니다.

박소연 : 저는 남한에 와서 공포영화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막 칼로 찌르고 하는 영화... 북한에는 그런 영화 자체가 없어요. 명령공 27호라고 '따단'하며 싸우는 영화, 그게 제일 스릴 있었습니다.

문성휘 : 맞지...!

박소연 : 그런데 남한에 와서 그걸 유튜브로 봤는데 촌스러워 보지를 못 하겠어요. (웃음) 제가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무섭다기보다는 깡패들이 싸우다가 칼로 찌르고 피가 나고... 이런 장면이 있었는데 제가 그걸 보다가 영화관에서 토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무서운 영화를 못 보고요. 가끔 영화를 보다가도 무서운 장면이 한 장면씩 나오면 눈을 가리고 그 장면이 지나가야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공포 영화나 무서운 영화에 대한 공포감이 있어서 남한에서 무서운 영화가 더위를 날린다면 이해를 못 하겠어요.

문성휘 : 확실히 소름 돋아서 더위는 좀 덜해집니다.

박소연 : 꿈에 나타날 것 같아요...

진행자 : 저는 사실 그런 생각까진 못 했지만 지난 시간 문 기자가 얘기하신 대로 북한에서 또는 탈북 과정에서 했던 체험들이 영화 장면과 겹쳐져서 고통스러울 수 있겠습니다...

문성휘 : 분명 있습니다. 제가 알 포인트라는 공포영화를 보고 무슨 꿈을 꾸었냐면 옆에 숲이 있고 잔디가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는 공지(공터)에 내가 혼자 서 있는데 누군가가 숲에서 나를 찾아 따라 오고 나는 도망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아요. 꿈속의 장소는 중국이고 나를 쫓는 사람은 공안, 그런데 내 발은 묶여 놓은 듯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가위에 눌리는 꿈이죠. 그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한동안 이런 꿈도 꿨는데 지금은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박소연 : 탈북자들은 다 같은 것 같습니다. 저는 주로 잘 때 편안하니까 다리를 까들이고(구부리고) 자는데요. 예전에 쫓기는 꿈을 꾸며 가위를 눌리니까 아버지가 그럴 때는 다리를 구부리지 말고 똑바로 펴고 자라고 하시더라고요. 한국에서 와서 하도 보위부한테 쫓기는 꿈을 꾸어서 한동안 다리를 구부리고 못 잤습니다. 죽 펴고 잤어요. 꿈에서도 빨리 도망가려고요. 이게 4년 밖에 안 돼서 그런지 정말 며칠에 한번 씩은 북한에 가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좀 괜찮을까?

문성휘 : 그건 아마 10년이 가도 안 변할 겁니다... 우리 집 사람 그리고 북한에서 어릴 때나온 우리 아이들도 꿈에서는 한 번도 남한을 경험한 적이 없답니다. 항상 북쪽에 가있다고요. 그리고 꿈도 항상 누가 잡으러 오는 꿈을 꾼다고 말합니다. 내 꿈은 항상 이런 식인데... 어떻게 해서 북한에 갔는데 다시 나와야한다, 나오려면 물을 건너야 하는데 경비대에서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물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정말 안타깝고...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이렇게 오래 북한에 머물러 있으면 한국에서 받았던 내 집이...

박소연 : 어떻게!! 저랑 꿈이 똑같아요!

문성휘 : 그 집이 다 없어지지 않을까... 나 북한에 갔다고 집을 뺏들어서 남을 주면 어쩌나... (웃음)

진행자 : 다른 탈북자도 비슷할까요?

박소연 : 맞아요. 다 비슷해요. 저도 맨날 똑같은 꿈을 꿉니다. 게다가 집을 새집으로 이사하고 나니 걱정이 더 해졌어요. (웃음)

문성휘 : 진짜...왜 그럴까요? (웃음) 막 헤매다 꿈을 깨면 그렇게 허탈 할 수가 없어요.

박소연 : 정말 맥이 탁 풀리죠? 그 때의 그 감정은 뭐라고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요. 야... 꿈이라서 너무 다행이다 그러죠. 그러니까 이렇게 꿈이 가뜩이나 자꾸 달려죽겠는데 공포영화를 볼일이 뭐가 있겠어요? 못 봅니다.

진행자 : 두 분 다 이해를 못 하시겠지만 공포영화만 찾아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웃음)

문성휘 : 공포 영화는 사람의 심장에서 나오는 엔돌핀을 촉진시킨다고 합니다. 긴장되거나 하면 엔돌핀이 더 많이 나온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볼 때 긴장하면 혈액 순환이 빨리 되는데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진행자 : 공포 영화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귀신영화, 좀비영화, 유령 흡혈귀부터 살인마까지. 이런 공포 영화는 여름에 집중적으로 영화관에 걸리는데 지금이 딱 그 시기입니다.

문성휘 : 지금 1위를 하고 있는 부산행이라는 영화도 공포영화이고 재난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그렸다는데...

박소연 : 저는 그래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진행자 : 영화를 단순히 무섭자고 만드는지... 그 이유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닐텐데요?

문성휘 : 한국에서 독감 비루스가 전염돼서 난리가 나는 영화 '감기'를 본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공포를 위한 공포 영화도 많지만 보통 이런 영화들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그립니다. 필사적으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데 혼자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 친구.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살리려는 피타는 몸부림이 있습니다.

진행자 :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랑과 희망을 보여주며 영화가 끝나죠...

문성휘 : 물론 무맥한 영화도 있습니다. 인류가 서글프게 멸종되고... 이런 영화도 있지만 그런 영화에서도 자기를 먼저 희생시키고 세상을 구하는 인류애를 보여줍니다. 따지고 보면 공포 영화의 공통점은 세상엔 나 혼자가 아니며 결국엔 살아남는다는 것.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선혈이 낭자하고 사람이 죽어가고 좀비가 쫓아오는 공포 속에서도 결국 사람들이 기다리는 건 희망과 평화인 것 같습니다.

오싹하는 건 영화보다 항상 현실이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희망과 평화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 시간 인사드립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