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포 영화를 못 보는 이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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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공포물도 보는 겁니다... 땀이 쫙 나면서 좋아요. 저는 문 기자님처럼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보고 나면 자꾸 쫓기는 꿈을 꿔요...

16일, 더위가 끝난다는 말복이었습니다만...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5도였습니다. 22년만의 최고 더운 여름이었다는데 북쪽은 어떠십니까?

남쪽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데요. 공포와 소름으로 무더위를 잊게 하는 공포 영화도 그 중 한 가집니다. 이쯤에서 저도 궁금해지네요... 북쪽에도 공포 영화라는 게 있습니까?

지난 시간에 이어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공포 영화 얘깁니다.

박소연 :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공포 영화를 못 봤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한국에 와서도 제일 시원하고 좋은 게 막 웃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코믹 영화라고 하잖아요? 저는 텔레비전도 드라마보다는 그렇게 웃기는 방송이 좋아요. 너무 잘 웃기고 아하하하 웃으며 박수치면 시원해요. 무서운 영화보다는 그런 영화가 시원하지 않을까요?

진행자 : 생각보니 북한에 공포 영화가 있나... 이런 생각은 처음 해봤네요.

문성휘 : 없죠. 북한에는 예전에 신상옥 감독이 만든 SF 영화, 불가사리 정도가 그게 유일하게 달랐죠.김정일이 비판하고 그래서 없앴죠...

진행자 : 남쪽에선 외국에서 상도 받고 인기도 있었다고 알려졌는데요.

문성휘 : 북쪽에선 그 영화가 외국에서 상을 받았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고요.

박소연 : 신상옥 감독이 북쪽에서 17편 정도 영화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나중에 신 감독이 남한으로 돌아간 뒤에 그 영화를 다 없앴죠. 다 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인데요. 우리가 봤던 북한 영화 중에서도 유일하게 사상이 안 섞인 영화였고 이런 영화도 있구나 했었죠.

문성휘 : 신상옥 감독 영화는 파격적이었어요. 홍길동 같은 영화. 그때 저에게 그 영화는 엄청난 자랑거리였는데요. 당시엔 영화 필름이 매 시, 군 단위로 3일씩 그 다음엔 촌까지 돌고 했습니다. 영화를 보자면 힘들었습니다. 영화표를 떼는 그 구멍은 사람 손 하나 밖에 안 들어가는데 사람 위에 사람이 서고...

박소연 : 신필름 영화 볼 때 우리가 그랬습니다. (웃음)

문성휘 : 영화 보급소라는 것이 있는데요. 필름이 도착하면 그 곳에서 불량 필름이 아닌가 한번 돌려보는데 거기서 제가 먼저 그 영화를 봤습니다. 그걸 본 것이 얼마나 자랑이었는지... (웃음) 굉장히 떠들고 숱한 애들이 내 책상 주변에 모여서 그 얘기를 멍하니 듣고.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네요. 여기는 그런 영화들이 흘러 넘치고...

박소연 : 또 얘기가 옆으로 새긴 하는데 진짜... 한국에선 영화관에 아이를 데려오는 엄마는 못 봤어요.

진행자 : 못 들어오게 하죠. 아이들 영화가 따로 있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선 영화관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옵니다. 아이가 으앙 하고 영화 중간에 울면 사람들이 때려 죽일 기세로 욕을 하죠. 아이 안고 나가라고. (웃음)

문성휘 : 북한에서 유일하게 저항할 수 있는 공간은 영화관이었습니다. 왜냐면 깜깜해서 누가 누군지 안 보이지 않습니까? (웃음) 그때도 당과 수령을 욕하는 게 아니라 개인들을 욕하지만요. 중간에 영화가 딱 끊기면 휘파람을 불매 욕을 하매...

박소연 : 야! 켜라, 켜라 난리죠.

문성휘 : 영화관에서 담배도 핍니다. 영사기 근처에서 담배를 피다가 연기가 영화 화면에 보이면 담배 끄라고 또 난리고.

박소연 : 그냥 다 새끼죠. (웃음) 그리고 새까만데 오줌이 마려워서 문을 열고 나가면 사람들이 또 엄청나게 소리를 치죠. 한번 나간 사람은 몰매 맞을까봐 다시는 못 들어옵니다. 그 정도로....

진행자 : 지금도 그럴까요?

박소연 : 지금은 아예 영화관 자체를 운영을 안 하죠. 집에서 영화를 보는데!

문성휘 : 몰래 외국 영화들이랑 볼 수 있으니까 북한 영화라는 건 얼마 전에 학생들부터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까지 다 의무적으로 보라고 했던 그 '뿌리 깊은 나무' 같이 동원하지 않으면 안 봅니다. 나중에 배우가 장성택하고 어떤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영화를 없애 버렸다지만 한동안 의무적으로 보게했거든요. 그렇게 강제로 보라고 해야 북한 영화를 보지 우리가 올 때 즈음에도 벌써 사람들이 영화관을 가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 영화관 얘기도 정말 옛날 소리군요.

박소연 : 그리고 지금은 DVD도 안 봅니다. 우리 때만해도 USB로 영화를 봤습니다. 남조선 영화 같은 걸 보니까 새까맣게 불을 죽였다가 갑가기 그 구역에다 불을 딱 켜줍니다. 그럼 사람들이 CD알 넣어서 막 영화를 보죠? 그럼 조금 있다가 전기를 딱 끊고 집집마다 검열을 다닙니다. 그러면서 축전지를 넣어서 CD를 뽑아서 잡는 거죠. 그렇게 걸려서 추방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USB에 영화가 40개씩 들어가고 불이 안 오면 딱 뽑으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렇게 단속을 못하죠.

문성휘 : 저는 그때 화가 난 것이... 남조선의 안기부를 엄청 욕했는데요. (웃음) 그때 당시에는 그런 알판을 안기부가 사회주의를 허물어뜨리기 위해서 들여보낸다 막 그랬죠?

박소연 : 맞아....

문성휘 : 아, 그런데! 그렇게 들여보내겠으면 북한 사정을 똑바로 알고 들여보내야지 정전이 되도 뚜껑을 열고 시디알판을 뽑을 수 있게 보내야지! (웃음)

진행자 : 말도 안 되는 욕을 하셨군요. (웃음)

박소연 : 문 기자님, 처음엔 그랬지만요 나중엔 발전을 해서 녹화기 뚜껑을 따고 봤습니다. (웃음)

문성휘 : 맞아요!

박소연 : 많이 그랬죠. (웃음) 그 영화를 보느냐고...

진행자 : 그 영화가 뭐라고 그렇게들 봤을까요?

박소연 : 영화가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남한 영화가 너무 와닿았습니다. 시어머니, 며느리가 싸우고 남자가 바람을 쓰고. 북한 영화에서 못 보던 장면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봐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습니까? 영화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났어요. 당 정책만 말하던 영화를 보다가 그런 영화를 보니까 너무 좋았고 그게 정말 낙이었습니다.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서...

남한에선 오싹한 공포 영화가 저렴하게 더위를 피하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하지만 딱히 공포를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영화관에 가는 것 자체가 피서가 됩니다. 시내에서 가장 냉방기를 시원하게... 돌리는 곳이거든요. 지난 주 남한의 공포 영화 부산행이 가장 인기있는 영화 1위였는데요. 이번 주는 터널이라는 영화입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굴을 말하는 건데 자동차를 타고 다가다 이 굴이 무너져 갇힌 세대주의 탈출기입니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여름이라는 힘겨운 터널도 끝이 있겠죠? 남쪽도 이제 바람이 불긴 합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