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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양말이며 옷이 전부 물감이 묻어 있더라고요. 이틀 동안 무대에서 작품을 만들었다는데... 도대체 뭘 했나 싶었습니다.

소연 씨의 자랑, <세상 밖으로>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소연 씨의 아들은 축구를 합니다. 얼마 전 뉴스 보도에도 나왔는데... 축구 선수로써가 아니라 축구공으로 그린 미술 작품으로 전파를 탔습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볼 수 없지만 그 그림 얘기... 들어보죠.

진행자 : 안녕하세요. 추석 연휴 끝나고 만났네요. 연휴 잘 들 보내셨습니까?

박소연 : 잘 지냈습니다. 지겨웠습니다. (웃음) 너무 길었어요.

문성휘 : 북쪽은 추석 명절을 하루 노는데 이번에 남쪽은 한 5일 놀았나요? 일요일엔 끝나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너무들 마셨어요...

진행자 : 다들 많이 모이셨습니다.

문성휘 : 맞습니다. (웃음)

진행자 : 소연 씨 덕이 이런 얘기를 또 해보게 되네요... 저는 소연 씨 아드님을 뉴스에서 만나게 되면 축구 잘 한다, 이런 얘기일 줄 알았는데 미술 작품으로 먼저 만나게 됐네요. 본인에게도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처음에 작가님이 전화 왔을 때 아들을 꼭 미술 작품에 쓰고 싶다고 해서 진짜 이상했습니다. 우리 아들은 볼을 차지 그림은 그릴 줄 모르는데... 북한식 표현으로 하자면 정말 시끄러울 정도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알아서 하시라고 아들과 연결을 해드렸는데 만나서 작품을 만들고 온 날 양말이며 옷이 전부 물감이 묻어 있더라고요. 이틀 동안 무대에서 작품을 만들었다는데... 도대체 뭘 했나 싶었습니다.

진행자 : 언뜻 드는 생각은 그냥 공 차는 걸 사진으로 찍어서 조각을 만들거나 그런 식일 것 같은데...

박소연 : 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대에서 공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고. 또 미술 작품이라는 게 공개되기 전까지는 비밀이 샌다고 보여주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걸 했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전시관에 꼭 오라고 해서 회사도 하루 휴식 받아 갔습니다. 큰 대형 무대에 천장엔 대형 텔레비전이 설치해 아이가 이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 그 과정을 다 찍어 동영상으로 보여주고요. 작품은 물감을 칠한 볼을 아이들이 가슴 치기도 하고 머리 박기도 하며 도화지에 낸 물감 자국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진행자 : 그러니까 축구공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말씀이신가요?

박소연 : 그런 셈이죠. 축구공이 무대에 펼쳐진 도화지에 맞으면서 여러 가지 선을 그렸는데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가 좋았습니다. 어린 소년이 탈북을 해서 두만강을 넘고 악어강을 넘고 라오스 산을 넘었던 그 과정을 그 선으로 그리고 싶으셨답니다. 그러니까 아들아이가 공을 차서 만든 그 선들이 다 그 여정들인 것이죠. 저도...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제가 엄마가 돼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 한 개, 한 개의 선이 우리 아들이 힘들 게 넘어왔던 그 길이라고 생각하니까 코가 찡했습니다. 그래서 어렵다만 생각했던 미술에 대해서 공감을 하게 됐습니다.

진행자 : 그런 의미를 알고 나니 저도 이해가 되네요.

박소연 : 그러게요. 그런 문학적인 의미도 또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런 설명이 없이 그 그림만 봤으면 이게 뭣 짓이야 그랬을 수도 있겠습니다. (웃음)

진행자 : 현대 미술이 그런 작품들이 많습니다. 설명이 없으면 이게 뭐지? 싶지만 알고 나면 이해도 되고 공감도 되는 그런 작품들...

문성휘 : 북한에서는 모더니즘, 현대주의... 이런 것들을 굉장히 비판합니다. 이자 소연 씨가 얘기한 그런 그림을 모더니즘 중에서도 추상파라고 부르지 않나요? 전 아직도 추상파 그림에 대한 이해는 없습니다. 제가 금방 탈북해 왔을 때 저보다 몇 년 빨리 온 선배가 외국 노래를 듣더라고요. 혹시 여기서 와서 영어 공부를 했느냐 물었더니 자기는 전혀 영어는 모른데요. 그런데 왜 외국 노래를 듣느냐 했더니 노래가 듣기 좋잖아요... 그러더라고요. 당시에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노래가 가사를 함께 들어야 이해가 되지 어떻게 그걸 그냥 듣느냐 했었는데 제가 이제 그 말을 이해합니다. 그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미술에 대해서는 옛날 고등 중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본 것이 다입니다만. 요즘 보면 입체파 같이 완적히 입체적인 그림도 있고 눈동자의 가늘고 세밀한 선까지 그리는 그런 그림도 있고...

진행자 : 옛날에 우리 교과서에서 배웠던 무슨 무슨 파... 요즘은 그런 것이 망라하고 파괴해서 자기 마음대로 붓가는대로 그리는 그림도 많고요. 그게 추세인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래도 문 기자는 잘 아십니다. 저는 그런 이름 전부 처음 들어봐요.... 어려운 얘기보다는 그림하면 저는 또 아들 얘기를 하게 되는데요. 아이가 온 뒤 2년 반 정도가 지나서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가 너무 그림을 잘 그렸다고 칭찬을 해주라고. 집에 와서 그림을 봤더니 엄마와는 또 너무 다르게 그림을 잘 그렸더라고요. (웃음) 운동장에 골대가 있고 그 옆으로 축구 선수들이 많고 골대 앞에 9번을 단 자기 모습을 그렸습니다. 머리가 노란... 염색했습니다. (웃음) 손에는 대한민국 국기를 쥐었더라고요... 자기는 그렇게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얘기라는데 저는 그게 왜 기쁘기도 하고 약간 슬프기도 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그런 나라였지만 거기서 태어나서 인공기를 사랑하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신나하는 아들아이를 보니 좋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참 말로는 표현 못 할 그런 감정이었습니다.

소연 씨의 그 감정을 그림 위에 옮겨 보면 어떻게 표현될까요? 슬픔의 검은 색과 허망한 회색, 뭔지 모를 여러 색을 섞어 도화지 가득 그리면 그것도... 여기선 작품이 됩니다.

마르셀 뒤샹이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인데 미국으로 건너왔고요. 1917년 뉴욕에서 열린 전시회에 '샘'이라는 작품을 출품입니다. 정말 별것 아닌 작품이었는데 미술계에 폭풍과 같은 논란을 불러옵니다. 막 제 맘대로 유명 화가 작품을 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철물점에서 파는 남자 소변기 였습니다. 그걸 사서 뒤샹이 변기에 수표 하나 해서 그냥 작품이라고 낸 것입니다.

뒤샹은 작가가 직접 작품을 그리거나 만들지 않아도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미술이다... 이런 의미였다는데 청취자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다음 시간... 나머지 얘기 이어갑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