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큰 무대 였고요. 대형 텔레비전을 천장에 달아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찍어서 보여줬습니다. 큰 도화지에 물감을 묻힌 공으로 아들이 발로 차기도 하고 가슴으로 쳐내기도 하면서 물감이 자연스럽게 선을 그렸는데... 작가는 어린 소년이 두만강을 넘고, 악어강을 넘고 라오스 산을 넘었던 그 여정을 그 선들로 보여주고 싶었다고요.
소연 씨의 자랑, 공식적인 출연진은 아니지만 <세상 밖으로> 이 프로그램에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연 씨의 아들은 축구를 합니다. 그가 축구공으로 그렸다는 그림은 어떨지... 상상은 잘 안 가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뭘 전달하려 했는지는 알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부터 그림 얘기 하고 있습니다.
문성휘 : 제가 미술 작품으로 처음 감동을 받을 것은 강선의 저녁노을...
박소연 : 아! 맞아...
문성휘 : 미술이 사람에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서도 최고의 명화로 꼽히는 작품인데요. 1973년 정영만이라는 화가가 그린 것입니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의 남포 강선 제강소를 그렸는데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노을빛에 물길이 이글거리고... 멋있습니다. 저는 정영만의 그림은 조선화(수채화, 수묵화)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우연히 미술 창작사에 갔다가 누군가가 이 그림을 그대로 유화로 그려놓은 것을 봤습니다. 와... 정말 그림이 웅장하고 상상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어요. 단지 그림 한 장에.... 그 그림은 거의 한 가지 색으로 그렸습니다. 원작에는 푸른색 등이 사용됐지만 유화에서는 전부 붉은 색을 강약 조절해 표현했는데 참 잘 그렸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냐, 정영만보다 더 잘 그린 것 같다, 더 재간 있는 것 같다 제가 물었더니 웃으면서 자기네도 그렇게 생각한대요. 그런데 발전 못 한다고... 왜 발전 못 하나? 토대가 나쁘다고.
진행자 : 아, 그림을 그리는데도 토대가 걸립니까?
문성휘 : 아... 무슨 말씀이세요!
박소연 : 최고로 걸리죠. 얼굴을 그리는데요.
문성휘 : 4.15 창작사, 만수대 창작사... 이런 곳은 순수 그런 작품만 그리기 때문에 어림도 없습니다. 누구도 못 들어 갑니다.
진행자 : 그렇지만 그림이라는 건 재능의 문제이지 않습니까?
문성휘 : 재능에도 사상이 있답니다. (웃음)
진행자 : 참 그렇군요. 사실 초상화를 그려야하니까 그것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남쪽에선 북한 그림 하면 떠올리는 것이 초상화 보다는 선전화입니다. 군인들이 팔을 뻗어 앞으로 나가는...
박소연 : 총 돌격 앞으로! 이런 구호 써있는 포스터 말씀하시는 거죠?
진행자 : 맞죠. 그 다음이 풍경화, 무용가 최승희... 같은 유화로 그린 인물화까지. 북한 그림만이 갖는 화풍이 분명 있어요.
문성휘 : 지금은 단동에랑 가면 북한이 돈벌이를 위해서 만수대 창작사에서 직접 예수 초상화도 그리고 노아의 방주도 그리고... 마구 그려서 팔지 않습니까? 어떤 호텔에 (만수대 창작사가 그린) 추상화도 걸려있다 이런 보도도 나왔습니다. 최근에 이런 추세는 모두 돈 벌이를 위해서, 사람을 끌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결국 자본주의입니다. 이제 북한에 사회주의 체제라는 건 없습니다. 단지 그저 권력을 대물림하는 독재 국가 일뿐. 아마 주민들은 북한이 그런 그림을 그려서 돈 벌이를 한다는 사실도 모를 겁니다. 철저히 비밀일 것이고... 그리고 북한도 보석화라던가... 이런 걸 개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보석화는 유리 가루나 천연 모래로 그리는데 선명하고 보기 좋습니다. 비둘기 춤 같은 것...
박소연 : 금강산 그린 보석화도 있었고요...
문성휘 : 보석화는 뭐가 좋으냐면, 이 그림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사상이 없는 그림이었어요. 그러나 지금 북한은 사상이 없는 그림을 안 내보니까 어디 보관은 하고 있겠죠.
진행자 : 북한 내부용 그림과 외부용 그림은 따로 있네요.
박소연 : 문 기자님 지금 북한도 변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제가 탈북하기 전에 대흥단에 올라가서 들쭉을 땄습니다. 중국에다 밀수 하느랴... 그러면서 삼지연 못가를 통과하게 됐습니다. 거기서 쉬면서 도시락을 먹게 됐어요. 거기가 대노천 혁명 박물관이잖습니까? 못가 물 안에 김정숙이 조국의 진달래를 향기 맡으며 우는 동상이 있는데 구리, 동? 이런 것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처녀 적에는 그걸 보면서 어머니가 조국의 진달래를 맡으며 우셨구나... 사상적으로 동감을 했는데 고난의 행군을 겪고, 정권에 대해서 다 거짓말 장이라고 알게 되니까 거기서 우리 아줌마 들이 뭐라고 말했나...저거 중국에 내다 팔면 얼마 받을까? (웃음) 이런 얘길 했습니다. 적어도 30키로 될끼다? 북한 당국도 팔기 위해 미술품을 그리지 않습니까? 우리도 혁명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만든 선전물도 구리라고 돈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도 변해요. (웃음)
문성휘 : 삼지연 못가도 가봤고 평양 만수대 기념비도 봤는데 북한은 뭐든 게 그렇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그림... 글씨도 김일성, 김정일은 크게 써야하지 않습니까? 미술도 그렇고요. 북한의 풍경화가 좋더라??? 92년에 김정일이 주체문학론이라는 걸 내놓고 문학, 예술 이론을 내놓으면서 과거 시대의 것도 살려야 한다, 우리가 딱딱하다, 생활적인 것도 있어야 하는데 노래도 다 혁명적이고...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휘파람, 반갑습니다 이런 노래가 쏟아진 것이죠.
진행자 : 그럼 미술도 그때 풍경화 같은 것이 나왔습니까?
문성휘 : 그렇죠! 그때 한꺼번에 풍경화 같은 것들이 많이 나오고요.
진행자 : 그때가 문화적으로 그래도 좀 풍요로웠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문성휘 : 새로운 것이 탄생할 뻔 했는데...! 김정일이 자기가 열어놓고 자기가 닫아 버렸죠. (웃음)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을 시작으로 남북이 활발히 교류하던 시기, 북한 미술 작품도 남쪽으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게 과연 진품인가 하는 논란도 많았지만 만수대, 415 창작단의 작품도 많고 그걸 수집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예술적 가치보다는 북한 그림이 지니는 희귀성에 주목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남쪽엔 사실 훨씬 더 많은 북한 미술품들이 들어왔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는데... 이유는 골동품 때문입니다. 간장과 설탕으로 만들어진 청자와 조선 시대 그림 또 식민지 시대를 견뎠다는 12자 짜리 병풍.... 북쪽에서 한 때 두 집에 한집씩 만들었다는 그 물건들이 다 어디 가있을지...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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