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졸업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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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벌써 졸업 사진을 찍었고요.

매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말을 다시 녹음합니다. 한 해가 갈 때마다 박소연 씨의 정착 연한이 바뀌니까요. 소연 씨도 벌써 정착 6년차가 됐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소연 씨에게 일어나고 어떤 얘기들을 청취자 여러분께 전하게 될지...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섭니다.

여러분의 좋은 한 해를 기원하면서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졸업식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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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학교는 학교이고 전문 볼을 차던 축구단이 졸업식을 얼마 전에 했습니다. 큰 식당을 빌려서 커다란 화면에 영상을 보여줬는데요. 졸업 사진도 사진으로 보는 것과 화면으로 보는 것이 느낌이 달랐습니다. 1년 동안 아이들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 볼 차는 모습. 엄마들이 내 아이, 네 아이 가릴 것 없이 응원하고 땀을 닦아주고 하는 모습. 그걸 보니까 저절로 눈물이 막 떨어지더라고요. 그리고 애들이 감사하다고 엄마들에게 감사패라는 걸 줬는데 저는 그런 건 김일성하고 김정일한테만 주는 줄 알았습니다. (웃음) 하얀 보석 같은 돌에 11명 축구팀 애들의 얼굴을 새겨서 감사패를 주고요. 그리고 감독님이 아이들에게 큰 우산을 하나씩 선물했는데 거기다가 직접 이름을 다 써주고 볼에다 사인을 하고. 이게 졸업식이구나... 했습니다. 감동했다는데요. 북한에 졸업은 일단 걱정꺼리입니다. 졸업을 하겠는데 한 학생당 얼마씩 내라... 아니 중학교 가면 되지 무슨 또 돈을 내라냐... 일단 부담입니다. 남한 졸업에서는요. 그 자리를 떠나질 못 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일년 동안 볼을 열심히 찼다는 증거가 되고 고맙고.

문성휘 : 저도 그 심정이 이해됩니다. 북한이 말하는 판형 컴퓨터에 사진들을 잔뜩 저장해놓는데요. 또 음악 파일들도 저장해놓고요. 어떤 때는 그 컴퓨터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사진 돌리기를 해봅니다. 그럼 사진들이 2-3초에 한번씩 싹싹 번져지면서 참 감성적이 되죠.

진행자 : 페이스북이라는 인터넷 서비스에서도 이 맘 때 쯤 일 년 동안 제가 올린 사진들을 자동으로 편집해서 올려주는데요. 그걸 보면 참... 그렇죠? (웃음)

문성휘 : 그거 진짜 좋죠? 그런 서비스들은 정말 좋습니다.

박소연 : 이제야 공감을 하시네요. (웃음)

진행자 : 소연 씨가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일년동안 열심히 노력한 아들의 사진들을 죽 모아 봤으면 정말 감동할만 했겠습니다.

박소연 : 다른 엄마들도 여기저기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인 13살짜리 아이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그 축구가 뭐라고. 그게 좋아서... 영하 20도에 남쪽 끝 해남에서 엄마들도 추워서 벌벌 떠는데 반팔 차림으로 뛰고. 그래 너희들이 이런 시간이 오늘의 너희를 만들었구나... 엄마들이요. 다 끝나고도 헤어지질 못해서 커피집에 가서 3시간이나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들하고 제가 처음으로 그렇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한 것인데요. 느꼈습니다. 그냥 남북 엄마들, 아줌마들은 똑같구나! 수다가...(웃음)

진행자 : 애들이 참 장하네요.

박소연 : 그리고 엄마들도 대단하고요. 나는 그렇게 못 했지만 연습하는 곳이 얼마나 멀던지 거기까지 따라가고. 남의 아이가 골을 넣어도 내 아이가 넣은 것처럼 응원해주고 박수 쳐주고 얼음주머니 문질러주고. 그게 막 화면에서 보이는 겁니다... 저는 직장을 다니니까 한 번도 따라가지 못 했는데 사진에서 다른 엄마들이 우리 애한테 얼음주머니를 뒤에 대주고 그런 장면이 보여요. 한 없이 고맙고... 아마 그 화면이 아니었으면 저는 몰랐고 잊었을 일인데...

문성휘 : 좋게 보면 아주 감동적이고 나쁘게 보자면 애들 운동함네 하면서 엄마들끼리 모여서 무리지어서 커피집에 가서 하루 종일 수다...

진행자 : 문 기자 또 아스피린 타 먹은 인상이네요. (웃음)

박소연 : 왜 그렇게 세상을 삐뚤게만 보세요! (웃음)

진행자 : 그런데 처음에 시작할 때 소연 씨도 남한 엄마들 너무 드세고 치마 바람도 쎄고 유난스럽다고 굉장히 불만이었잖습니까?

박소연 : 엄청 불만이었죠. (웃음) 그리고 경기만 시작하면 엄마들이 막 까라, 까라 소리를 치고... 무서웠어요. 제가 체구도 작은데 이 엄마들은 감독하고도 삿대질 하고 싸웁니다. 이 엄마들 틈에 끼었다가는 나는 시체가 되겠다... 그랬죠. (웃음) 그런데 그 엄마들도 제 첫인상을 말하는데요. 너무 차고 웃음기 하나 없고. 탈북자라서 너무 힘들게 넘어와서 그런가? 그래서 인정도 메말랐나? 그런 생각도 했다고 하네요. 근데 자주 보니까 아니더랍니다. 웃기도 잘 웃고. 이제 친해질만했는데 졸업이네요. 아쉬워요...

진행자 : 문 기자도 남한에 와서 졸업식 여러 번 해보셨잖아요? 기억에 남는 졸업식 있으세요?

문성휘 : 제주도 가니까 좋더라고요.

박소연 : 졸업식을 제주도에 가서 해요?

문성휘 : 졸업 여행으로 제주도를 가는 거죠.

박소연 : 졸업 여행이라는 것도 있습니까?

문성휘 : 그럼요. 저도 그때 처음 제주도에 가본 것이에요. 온실에 들어가니까 선인장도 있고. 그리고 남한 사람들이 참 많아서 잘 말을 섞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에 가니까 아쉽게도 졸업할 때 말을 확 섞게 됐습니다. 이 사람 귤나무 처음 본데요 하면 옆에서 아줌마가 막 설명도 해주고... 그 때 제주도가 제 마음을 확 열었고 그 사람들의 마음도 열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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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문 기자도 제주도에서 함께 마음이 확 열렸고 소연 씨도 엄마들과 함께 술잔도 아닌 커피잔을 앞에 놓고 친해졌다는데요. 그 동안 무엇이 마음을 그렇게 꽁꽁 닫게 했을까요?

우리는 꼭 중요한 걸 끝에서야 깨닫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건 그 끝은 또 시작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한 해가 가면 다음 새해가 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고 다음 시간에 다시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이현주, 박소연, 문성휘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