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졸업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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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벌써 졸업 사진을 찍었고요. (벌써 졸업이에요?) 그럼요!

소연 씨는 올해 사이버 대학, 소연 씨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합니다.

저희가 소연 씨가 처음 대학을 입학한다고 말하던 때를 떠올리는 것처럼 소연 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처음 학교 갔던 그 날을 잊지 못하는데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졸업식 얘기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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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시간이 참... 나는 3년 전에 아들 손목 잡고 지금 졸업하는 그 학교에 갔을 때 애가 머리를 안 드는 겁니다. 선생님들이 뭐라고 물어보는데 자꾸 북한 말씨가 나오니까 말을 안 해요. 선생님도 저에게 애가 탈북자인 것을 밝히는 것이 좋습니까, 안 밝히는 것이 좋습니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학교에 탈북자가 거의 없었거든요. 제가 생각을 해보니까 굳이 아이들에게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아들은 그 때 정말 도살장에 들어가는 소였습니다.

문성휘 : 정말 기가 죽죠...

박소연 : 그야말로 끌려 들어갔죠. 안 가겠다고. 하나원에서는 북한에서 온 아이들끼리 모여 있으니까 좋았죠... 이 새끼야 오나! 이런 말투를 쓰던 아이가 갑자기 서울 말씨를 쓰는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니까 문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기가 죽어서 어깨가 축 늘어지고 제가 그야말로 끌고 들어갔어요. 선생님을 쳐다도 안 보고... 그게 꼭 3년 전이네요. 남한은 학년마다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이 다 바뀝니다. 친구가 많아 질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이제 전 학년을 아우르는 친구가 있고요. 그리고 주말이면.... 저는 진짜 죽겠습니다. 왜 남의 집에 와서 자요? (웃음) 2주 전에는 5명이 와가지고. 우리 아들은 딱 친구들이 오니까 치킨, 피자 시켜달랍니다. 시켜줬더니 먹고 니네 집에 안 가? 자고 간답니다... 밤에 얼마나 뛰었는지 아랫집에서 민원이 올라왔어요. (웃음) 그만 뛰라고. 애들아 제발 뛰지 말아라! 막 야단을 치는데 제 말 속에 그 애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더라고요. 우리 아들 같은 탈북자 아이도 이렇게 와서 놀아주는 것이 너무 고마운 겁니다...

진행자 : 네?

문성휘 : 무슨 소리에요....

박소연 : 아니에요. 저는 항상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진행자 : 그런데 아드님이 그렇게 생각하나요?

문성휘 : 아니죠. 그건 엄마의 생각이지.

진행자 : 근데 아마 아드님에게 물어보면 그 아이들이 놀아주는 게 아니라 자기도 놀아주는 것일 겁니다.

박소연 : 가만 보니까 대장이긴 해요. (웃음) 핸드폰에서 영상을 틀어서 텔레비전 화면에 연결해 볼 수 있어요. 세계 이름난 축구 선수들 경기만 찾아보는데 이건 어떤 선수인데 연봉이 얼마다, 어느 팀에서 뛴다 해설을 해주고. 애들은 막 물어보고. 기가 살아서 그걸 장 저녁 연설해주고 웃방, 아랫방 뛰는데... (웃음) 저는 그 아이들이 그저 고마웠습니다.

진행자 : 우리가 애들한테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왔다, 왜 왔나... 뭘 따지고 그런 게 거의 없고. 또 마음도 금방 열고.

박소연 : 그래요... 방송국에서 나와서 우리 아들 친구들에게 막 마이크를 들이댔습니다. 네가 보기에 혁이가 어떤가, 처음에 탈북자라고 말했을 때는 어떤 감정이었나 물었는데요. 처음에는 탈북자라서 좀 이상했어요. 교과서에서 배웠던 북한에서 왔구나. 그런데 같이 있어 보니까 우리랑 똑같아요. 공부도 똑같이 하고 말도 똑같이 해요. 아무것도 다른 것이 없어요... 최근에는 아들 친구 엄마가 저한테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공부를 안 하기로 학교에서 소문이 난 녀석인데...(웃음) 이번에 글짓기 경연 대회에서 1위를 해서 상을 탔답니다. 다문화 가족을 보는 편견에 대한 글짓기를 했는데 우리 혁이에 대해 썼답니다. 이런 아이가 북한에서 왔는데 같이 공부하고 같이 놀았다고.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와 똑같았고 볼도 잘 차서 학교에서도 스타가 됐다고. 그 성장 과장을 썼다는데 1위를 했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에게 고맙다고요.

문성휘 : 진짜 자랑거리가 맞네요. (웃음)

박소연 : 상은 그 집 아들이 탔다는데 제가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웃음) 아이에게 그 메시지를 보여주니까 좋아하더라고요. 여러 가지로 참 좋은 12월이었습니다.

문성휘 : 한국 학교를 가서도 적응 못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요. 한국에 와서 사는 중국인들도 중국인들끼리만 몰리는 사람도 있고 한국 사람과 많이 섞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체도 하고 교회도 다니면서. 그런 사람들이 적응이 빨라요. 탈북자들도 딱 같습니다. 틀을 막고 탈북자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탈북자들끼리만 알고. 이것도 사실 개인의 성격의 문제가 큽니다. 아이들도 몇 학년에 남한에 도착했느냐가 아니라 아이들의 성격에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저희 딸애 같은 것도 어느 날 들어오는데 친구 애들이 줄줄 따라 들어오는 겁니다. (웃음) 아빠 엄마 우리 오늘 여기서 잘 거야 그러는데 오히려 우리가 쪼그라들더라고요. 쟤네들은 집이 어느 만큼 사나, 혹시 우리 사는 거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깔보지 않나. 숨소리도 못 냈어요...

진행자 : 아휴... 뭘 그렇게까지... 문성휘 : 그래서 막 다음에도 친구를 데리고 오면 딸애를 보면서 막 눈을 올리뜨고 내리뜨고....

박소연 : 아, 북한 아버지! (웃음)

문성휘 : 불편하잖아요. 우리가 구석에 있어야 하고 걔네 세상이 되잖아요. (웃음)

진행자 : 아니 근데 문 기자는 딸애 친구를 놓고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셨어요... 우리 사는 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까지요.

문성휘 : 그러게요...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얘기를 한 건데요. 우리 애들은 좀 어디 가서 쉽게 사람을 사귑니다. 잘 어울리고...

진행자 : 남한 친구, 북한 친구 가리지 않고?

문성휘 : 그렇죠... 저도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는 처음엔 외제차 타는 사람 앞에서는 주눅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외제차라는 건 중고차 시장에 들어가면 헐값에 파는 것도 있다는 것도 알고 요즘은 아무리 비싼 차를 타고 고급차를 타도 운전하는 사람이 못 되게 놀면 어디서 뭐하던 사람이야? 요즘은 대통령도 나가라하면 나가야하고 국회의원도 잘 못 했다면 싹싹 빌어야 하지 않습니까?

진행자 : 이제는 주눅이 드는 것 없다?

문성휘 : 그렇습니다.

진행자 : 그런데 북한에서 처음 오면 왜 그렇게 주눅이 들까요?

문성휘 : 북한 사회는 모든 게 눌리는 시스템입니다. 례하면 농장원들. 리장이 누구를 불렀다... 북한은 농촌은 아직까지 휴대전화라는 게 없으니까 굉장히 복잡하죠. 심부름 하는 사람들이 한 십리를 뛰어가서 그 사람을 찾아 초급당 비서가 너를 찾는다... 전합니다. 그 다음엔 이거 무슨 죽을 죄를 지었나... 걱정이 되고 사무실 들어갈 때 눈도 마주 못 봅니다. 그리고 조직 지도부 같은 곳에 들어가면 새파랗게 젊은 게 환갑이 넘은 기관 책임 비서에게 야! 이 새끼야 눈 똑바로 떠! 그럽니다. 뭔가 잘 못 하면 보름씩, 열흘씩 사상 비판이라는 걸 하는데 비판서를 써서 이렇게 바치면 보지도 않고 다시 써! 10번씩 다시 씁니다... 이렇게 되면요. 기가 죽어서 벌벌 떨고요... 펜을 쥔 손이 벌벌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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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눅을 떨치는데 남한에 와서도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60대 비서에게 소리를 치던 지도원이 남한에 온다면? 그에게도 역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다. 남한 졸업식에서 많이 나오는 말인데요. 그런 북쪽의 습관들을 졸업하고 나면 어떤 새로운 시작을 만날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에 얘기 이어 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 함께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