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전화를 해서 그 사람이 알려주는 계좌에 돈을 보냈습니다. 이게 단 며칠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명절 비용이라는 게 있습니다. 남쪽 사람들은 세뱃돈, 제사 음식 마련하는 비용, 본가나 처가에 과일, 고기라도 사들고 가는 비용을 생각하지만 탈북자들의 경우엔 명절 즈음 걸려오는 가족의 전화가 바로 명절 비용이 됩니다.
북쪽 가족들에게 남한에 있는 탈북자들이 돈을 보내는 그 지난한 과정, 오늘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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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안녕하세요. 설날들 잘 보내셨습니까?
박소연 : 안녕하세요. 잘 보냈죠.
문성휘 : 저도 잘 보냈습니다. 소연 씨는 진짜 설날 뭐했습니까?
박소연 : 친구와 함께 천주교 성지에 다녀왔습니다. 해남이라고 남한의 거의 끝이죠. 그곳에 가면 바닷가에 성지가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제가 성지라는 곳에 가본 것이 두 번째 있데요. 가면 정말 숭엄합니다. 예전에 고향에서 조국 해방 전쟁 영화를 보면 마음이 숭엄해졌어요. 지금은 그것과는 다르지만 역시 숭엄하다고 느낍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신자들이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 처형당한 그 옛날의 역사가 다 남아 있는 장소에요.
문성휘 : 봉건시대, 일제 침략 이전부터 기독교를 가혹하게 탄압했죠. 그래서 성지를 가면 숭엄한 분위기도 있지만 종교 시설이라기보다는 역사의 현장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요.
진행자 : 설에 임진각을 안 가고 성지에 가셨단 말입니까? (웃음)
박소연 : 임진각을 많이 다녀오기도 했고 그래서 이번엔 양력설에도 성지에 갔고 음력설에도 갔었네요. 근데 참 기가 막힌 게... 아마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청취자분들은 이 여자, 미신에 꽉 쩔어있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요. 제가 양력설에 성지에 가서 초를 켜면서 세 가지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소원이 이뤄졌어요...
진행자 : 어떤 소원을 비셨는데요?
박소연 : 북한은 장마당에서 장사한다면 보통 그 일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쪽은 투잡, 쓰리잡해서 부업으로도 일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업 외에 부업으로 글 쓰는 게 있는데 이 일은 일 년 단위로 계약을 합니다. 마침 재계약 하는 때였는데 정말 감사하게 일 년 더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진행자 : 재계약하게 해주십시오 하는 것이 첫 번째 소원이었을 것이고....
박소연 : 네, 두 번째 소원은 올해가 다 지나야 알겠고 이룰 수 없는 소원도 빌었네요.
진행자 : 뭔지 알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맞습니다. 그게 세 번째 소원이었네요.
진행자 : 문 기자는 어떻게 보냈습니까?
문성휘 : 술을 마시고... (웃음) 아들 녀석이 사준 무인조정 헬리콥터를 들고 나가 공원에서 신나게 띄어보고...
진행자 : 어쨌든 잘들 보내신 것 같네요. 저는 설이면 돈이 많이 나갑니다. (웃음) 세뱃돈을 저에게 주는 사람은 없고 부모님, 아이들 모두 드려야하는 쪽이라서요.
박소연 : 그걸 꼭 줘야해요? 저는 한 번도 줘 본 적이 없는데요.
문성휘 : 남한 사람들은 꼭 주더라고요.
박소연 : 그럼 저도 내년 설엔 문 기자님 집에 한번 가겠습니다. 아들과 함께.
문성휘 : 어휴, 오지 마세요! (웃음)
진행자 : 남한 사람들은 설이 되면 이렇게 세뱃돈이나 음식 마련, 선물값 등이 걱정인데 북쪽에서 오신 분들도 이런 명절이 되면 다른 고충이 있으시던데요. 가족들에게 돈을 좀 송금해줄 수 있나 그런 부탁이 많이 들어온다고 들었습니다.
박소연 : 어휴... 뭐 저도 북한 말로 심장이 쪼라들었다가 다시 펴지는 것 같아요. 좀 거슬러 올라가... 작년 봄에 오빠한테 돈을 백만원 보냈습니다.
진행자 : 달러로 하면 한 1천 달러 되는 돈이네요.
박소연 : 네, 수수료 30% 제하면 오빠한테 중국 돈 4천원이 넘어갑니다. 몇 번 잘 갔던 선인데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이 분이 돈을 들고 튀었더라고요. 봄에 보낸 돈이 안 들어갔다는 얘기를 여름에야 들었습니다. 뭐랄까... 돈이라는 건 우리 옛날 어른들이 그랬잖아요? 건강해라, 돈은 없다가도 생긴다... 저는 그 말에 반기를 들고 싶습니다! 돈은 없다가 생기는 게 아니라 벌어야 생기는 거라고요. 정말 그걸 제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가을에 또 연락이 왔죠. 추석을 전후해서. 도와 달라 해요. 그래서 똑같이 보냈고 이번엔 잘 갔어요. 그러면서 부탁을 했습니다. 정말 힘들 때, 그때만 연락을 해달라. 나도 생활하면서 돈을 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근데... 물보다 진한 것이 피라고 설 앞두고 또 전화가 왔는데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한 번 더 도와달래요. 이번에는 아예 연락처를 알려줬습니다. 이 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이 사람이 알려주는 계좌에 넣어달라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화를 해서 그 사람이 알려주는 계좌에 돈을 보냈습니다. 이게 단 며칠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10분 있다가 다시 국제 전화가 들어와요. 우리 오빠가 북한 말로 밑꽁지에 불이 달린 사람입니다. 소연아, 소연아 그 돈 넣지 말라 뽑으라 뽑으라... 화가 나다 못해 분노에 치밀어 오르는데 국제 전화로 고생하는 오라비에게 욕을 할 수도 없고 일단 전화를 끄고 그 중국 사람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아요.
문성휘 : 차단 시켰을 수도 있고...
박소연 : 열 번을 넘어했는데 마지막에 한번 받았어요. 근데 돈이라는 게 참 무섭죠. 저는 잘 못 한 게 없는데도 전화를 그 사람이 딱 받는 순간 그랬습니다. 선생님, 제가 너무너무 잘 못 했는데요... 혹시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돌려줄까봐. 이 사람은 그 번호는 자기 계좌가 아니고 자기는 전화만 받는 사람이라면서 전화를 끊어요. 세 시간을 계속 전화를 해서 도와달라 울었더니... 그 사람이 그렇게 험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계좌 임자를 대주더라고요. 그 사람한테 다시 전화해서 부탁했더니 그 중국 특유의 말 있지 않습니까? '으... 진짜 시끄러 못 살겠다 쯧쯧쯧! 좀 기다리오' 그럼 이제 돈을 넣어주시나 물었더니 '알게 뭐야' 이러면 끊어버렸는데요... 남한은 은행 거래를 핸드폰으로 하니까 은행 계좌에 입금이 되면 핸드폰에 문자가 들어오면서 뽕뽕 소리가 나거든요. 두 시간쯤 지나서 돈이 들어왔다고 전화기가 뽕뽕 울렸는데 그 걸 안고 제가 통곡을 쳤습니다. 한번 당했는데 이번까지 당한다는 게 가슴이 아프고 어쨌든 그래도 찾았으니 다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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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송금 수수료가 비싼 나라입니다. 미국에서 수만 달러를 남한으로 보내도 송금 수수료를 몇십달러면 됩니다. 날짜로 딱 하루, 빠르면 반나절이면 되고요. 은행에 가서 바로 찾아 쓸 수 있습니다. 북쪽은 일단 송금 수수료가 30%에 돈을 갖고 튀어버리는 위험 부담까지 합하면 송금 수수료가 받아야할 돈보다 비쌀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보냅니다. 물보다 진한 피 때문이지만 오늘도 많은 탈북자들은 고민합니다. 과연 이게, 내 가족을 도와주는 길이 맞는가?
나머지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오늘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 함께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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