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선생님들이 지나다니며 만나면 꼭 인사를 그렇게 합니다.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속으로 이밥인데 맛있게 먹지 않고... 별걸 다 물어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 생소하고 낯설었어요.
밥 때 만나면 식사를 하셨습니까? 아침에 인사했어도 만나면 다시 한 번 목례하고 길을 비켜 달라고 할 때는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먼저 붙이는 남쪽의 인사법... 청취자 여러분들도 시끄럽고 유난스러운가요?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부터 남북의 다른 인사법에 대한 얘깁니다.
===================================
박소연 : 경제적인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벌어 우리 사는데 왜 쟤네한테 굽실거리니? 인사를 한다는 것을 굽실거린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왜 쟤네한테 굽실거리니? 별 일 다 많재?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문성휘 : 북한에서도 소학교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복도에서 선생님 만나면 어떻게 해라 알려주는데 옆으로 한 발짝 비켜 서 있다가 선생님이 지나가면 지나가라. 그것이 예절입니다. 인사는 아침 시간에만 하는 것이고 둘째 시간이 시작했는데 처음 보는 선생님이라도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인사는 한번만. 아침에만!
문성휘 : 오히려 아침이 아닌 때 인사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할걸요?
박소연 : 인사에 대한 교육은 옛날보다는 말랐죠. 저희 어렸을 때 소년단 넥타이 매고 다닐 때는 간부 승용차만 가면 딱 인사를 했어요. 지금 애들은 간부 승용차 지나가면 진흙덩이를 던집니다. (웃음) 장난이죠. 그런데 부모들도 그걸 보고 별 말을 안 하거든요. 같이 보고 웃죠. 간부들은 백성의 등을 쳐 먹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문성휘 : 이젠 북한도 승용차도 너무 많이 늘어나서 누가 탔는지 모르니까 그런 교육을 안 주는데 옛날엔 그렇게 교육했죠. 생각해보면 그 승용차 안에 누가 탔는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인사를 하라니 웃기는 얘기였죠.
박소연 : 우리 때는 216이라고 쓴 차는 손을 양옆에 붙이고 90도로. 지금은 216이든 727이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웃음) 근데 그 반대로 남한은 또 인사가 너무 과도합니다. 부작용이 있다니까요. 지금도 어떤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딱 받으면 안녕하세요. 고객님, 사랑합니다. 홈쇼핑인데요 보험 상품이 나왔습니다... 전화를 미처 끊을 새도 없고 너무 사랑스럽게 말을 하니까 끊을 수도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5분이고 10분이고 받아줬습니다. (웃음) 이제는 화가 나요. 그래서 받자마자 안녕하세요, 고객님... 이러면 딱 끊어버립니다. 그런데 저랑 같이 일하는 남조선 친구는 그걸 끝까지 다 받아주더라고요. 아... 남조선 사람들은 인내력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진행자 : 그 전화 거는 사람도 하루에 수 백 명에게 전화를 할텐데 그 사람들이 다 그냥 끊으면 기분이 어떨까... 이 생각을 하면 그냥 끊어버릴 수가 없어서 그러는 거죠.
박소연 : 그래도 저는 어쩔 수가 없어요. (웃음)
문성휘 : 저도 적당히 받아치죠. 이미 있다, 다 했다 이러면서... 근데 남한은 사람만 인사하는 게 아니고요. 사람을 대신해서 인사하는 기계 같은 것도 있지 않습니까?
진행자 : 저는 남한 사람이지만 과하게 느껴지는 건 백화점이요. 아침에 매장 문 열 때 문 앞에 직원들이 일렬로 서서 인사하잖아요. 그건 과하게 느껴집니다.
문성휘 : 저도 아침에 은행가서 돈을 찾아야 해서 은행 문 열기를 기다렸어요. 두 사람이 나와서 철문을 열기에 아무생각 없이 걸어들어 갔더니 양쪽에 사람들이 줄을 죽 서서 90도로 딱 인사하는데 제가 처음에는 뒤를 돌아봤습니다. 나 말고 누구 다른 사람한테 인사하는 줄 알았거든요. (웃음)
진행자 : 누구 높은 사람이라도 따라오나 하셨군요. (웃음) 우리는 고객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표현을 이렇게 하는 것이겠죠?
문성휘 :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나 놀랐는지...(웃음)
박소연 : 근데 인사성 밝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남한에 와서 초기에 아울렛이라고 대형 할인 매장에 들어갔는데 거기 판매원 아주마이들이 고객님 너무 예쁘세요, 잘 어울리세요. 내가 얼굴이 주름이 자글자글한테 20대 같아 보여요...(웃음) 제가 거기 옷을 하나 안 사면 낯이 뜨거워 못 나올 것 같더라고요. 결국 사가지고 나오는데 머리가 무거웠습니다. (웃음) 북한처럼 그냥 인사를 안 하는 게 좋은 거구나 했다니까요.
진행자 :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잖습니까? (웃음) 근데... 인사를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좋지 않아요?
박소연 : 돈을 썼잖아요!
문성휘 : 저는 그래서 이제 상점에 들어가면 무자비 합니다. 따라오지 말 것!
박소연 : 문 기자는 온 지 오래 됐으니까 그렇죠. 저처럼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상점에 들어가서 판매원들이 그렇게 인사하고 설명하는 게 귀찮은 겁니다. 내 마음대로 보고 싶은데! 금방 온 한 탈북자가 어느 날 옷 매대에 가서 구경을 하는데 판매원이 막 열성껏 설명을 하더랍니다. 이 점퍼가 너무 좋습니다. 모자도 탈부착이 되고 좋습니다... 갑자기 이 탈북자가 눈이 엄청 커지더니 따졌습니다. '이보오! 우리 탈북자인걸 어떻게 알았어!'
문성휘 : 아!! (웃음)
박소연 : 탈북자가 아니라 탈부착, 뗐다 부쳤다 하는 게 된다고요! 너무 따라다니며 인사성이 밝으니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겁니다. (웃음) 그래 탈북자들이 모여 앉으면 그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내 그때 깜짝 놀랐다, 글씨... 내 얼굴, 내 이마에 탈북자라는 말도 아니 썼는데 탈북자라서 해서! 이런 일들이 꽤 많다니까요.
진행자 : 저도 서비스 업종에서 인사를 과도하게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탈북자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 없어요. (웃음) 근데 남한 사회는 왜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인사를 하는 것일까요?
문성휘 : 저는 금방 와서 보고는 그랬습니다. 아직 이 한국은 식민지 잔재가 남아있구나... 주로 총련 귀국자들이 그러거든요? 북한 사람들이 싫어하는데요...
박소연 : 일본 사람들은 갑삽거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요. 그거와 비슷하게 느꼈던 것이죠.
문성휘 :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까 식민지 잔재라기보다는 서양 문화가 많이 섞여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
어떤 목적 때문에 하는 인사는 과도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웃는 얼굴로 건네는 인사는 언제든 기분 좋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버스를 탈 때 운전기사가 건네는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 또 직장에 출근하면서 동료들과 나누는 인사 잘 자고 일어난 아이의 하품 섞인 인사까지...
5천년에 걸친 유대인의 사상을 총망라한 책, 탈무드에는 이런 문구가 있네요.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축복도 먼저 받는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저희도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