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아니 먹고 사는 일 걱정이 없는데 내가 왜 점쟁이한테 내 돈 들여서 가나 했는데 5년 만에 처음 아들래미 때문에 제 발로 찾아갔네요.
남쪽에 90년초 유행했던 만화, 그것도 소녀들에게 인기 있던 순정만화에 이런 유명한 대사가 나옵니다. "삶은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예측할 수 없다는 불안함... 그 불안감 때문에 사람들은 점집을 찾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혹시 다녀오셨습니까? 소연 씨가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점집에 다녀왔답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그 얘기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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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안녕하세요.
박소연, 문성휘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잘들 지내셨어요?
박소연 : 네, 뭐...
문성휘 : 잘 지냈죠. 미세 먼지도 많고... (웃음) 어쨌든 벌써 한국은 벚꽃이 피고 여의도 벚꽃축제도 한다고 하고...
진행자 : 벚꽃은 벌써 지기 시작했습니다.
문성휘 : 벌써요? 세월 빠르네요. 저는 핀 것도 제대로 못 봤는데요.
진행자 : 요즘 한반도 정세가 긴장돼서 꽃 타령이 한가하게 들리긴 하겠지만...
박소연 : 물론 사는 게 항상 꽃처럼 기분 좋지 않잖아요? 그냥... 사는 게 이리 저리 일들이 많지만 꽃을 보는 순간만큼은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그 순간만큼은 내 머릿속 근심이 잠깐 옆으로 놀러간 느낌? 그러다가 꽃을 안 보면 옆집 갔던 근심들이 다시 돌아오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입니까? (웃음)
문성휘 : 시간만 있으면 꽃도 보고 음악 듣고 영화 보고 그렇게 살면 좋겠는데... 이제 병원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운동을 해서 살을 까라고 해요. 그냥 두면 당뇨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옛날에 북한에서 갔던 점쟁이가 저 보러 꽤나 오래 산다고 했습니다! (웃음)
진행자 : 핑계 참 좋으십니다. (웃음) 그런데 북쪽에서 점 보십니까? 미신이라고 금지했잖아요.
박소연 : 아이고.... 주체사상은 안 믿어도 점은 믿습니다! (웃음) 왜 웃으세요. 진짜라는데요? 저도 북한에서 여든 몇 살까지 산다고 점쟁이가 그랬었어요. 노망나면 어쩌나, 깨끗하게 죽어야겠는데 그런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그런 걸 자랑 하고 다녔는데 남쪽에 오니 그게 평균이라서 얘기꺼리가 못 됩니다. (웃음)
진행자 : 남북의 점 보는 방법도 그렇고 궁금한 게 많은데... 그 전에, 소연 씨! 남한에 와서는 점 본 적 있어요?
박소연 : 제가 이제 5년 째 되는데요. 한 번도 없었다가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요 며칠 전에 다녀왔어요. 내 걱정이야 뭐가 있겠습니까? 아들 때문에 너무 속상하니까 제 발로 찾아가게 되더라고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한 달에 두 번은 갔습니다. 장사를 나갈 때마다 갔습니다. 나이든 사람들은 점쟁이에게 가서 내가 몇 살까지 살 것 같으냐, 오래 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묻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희같이 자식들 데리고 하루하루 자력갱생하는 사람들은 백년을 바라보지 않죠? 차를 끌고 장사를 가야하는데 어느 날이 좋을 것 같으냐를 묻습니다. 그러면 미신쟁이가 날짜를 정해주죠. 몇 일 날 떠나서 물 옆을 향해서 온나, 물 하고 같이 달려라, 물 하고 마주 오지 말라.... 그러면 기가 막히게 맞았습니다.
진행자 : 미신쟁이라고 부르시네요. 남쪽에서는 보통 점쟁이 그러는데요.
문성휘 : 맞아요. 남쪽은 점 보는 것도 세분화 돼 있는데요. 철학관이라고 해서 관상, 손금, 사주팔자 보는 곳이고 무당이라고 신 내림을 받아서 점을 보는 사람, 타로 점이라고 카드로 보는 점도 있고요. 북쪽도 책으로 공부해서 보는 사람과 신점이 나뉘어 있는데 제가 점쟁이에게 74살까지 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같이 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조상 핑계를 대면서 그런 얘기를 안 해주더라고요. 한 10년 있다가 다시 와봐라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남한에 오고 몇 년 뒤에 그 친구가 굶어죽었습니다. 그러는 것을 보면 점.... 그냥 넘길 건 아니죠. 잘 맞아요.
진행자 : 남쪽도 그렇지만 좋은 일 있을 때 점 보러 가지는 않잖아요? 아까 소연 씨 말했듯이 답답할 때 보러가는 게 점인데 그만큼 인민들 살기가 답답하다는 의미 아니겠어요?
문성휘 :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데... 올해 김원홍이 1월까지 금수산 기념 궁전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 후에 숙청됐다고 하니 이 고지식한 양반이 점을 안 본 게 아닐까...?
진행자 : 아이고... 그건 알 수 없는 것이고요. 그렇지만 그런 운명을 점으로 또는 점쟁이가 알려준 방토로 막을 수 있을까요?
박소연 : 그건 모르죠.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겁니다. 희망이 없으니까 점을 보러 간다는 거... 저도 미신쟁이에게 가면 30대 초반에 힘들다, 40대 중반쯤부터 니 재산을 일궈서 니 노후가 너무 좋다! 사실 그 말이 맞는지 보장이 안 되죠. 당시엔 남조선에 온다는 보장도 없었고요. 그렇지만 그냥 그 말 자체가 그렇게 힘이 나더라고요. 나라도 믿을 게 못 되고 배급도 안 나오고 장사도 안 풀어주고 하는데 미신은 나중에 괜찮다잖아요. 그 순간만큼이라도 내가 지금은 좀 힘들어도 나중에 잘 산다니 힘을 내자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그것만이라도 없으면 거기서 어떻게 살았겠어요? 너무 앞이 안 보였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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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힘들어도 노후는 괜찮다... 점쟁이에게 이 말 안 들어본 사람이 없는 거보면 그냥 힘내라고 해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말이 지금의 고비를 넘어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죠. 누가 그러더라고요. 점은 니 마음을 읽어, 네가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 나머지 얘기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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