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하다 용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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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아니 먹고 사는 일 걱정이 없는데 내가 왜 점쟁이한테 내 돈 들여서 가나 했는데 5년 만에 처음 아들래미 때문에 제 발로 찾아갔네요.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아 속이 답답하다, 중요한 결정을 앞뒀다, 이사, 결혼, 승진, 입학시험... 중요한 그 날이 코앞이다... 지금 청취자 여러분들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그 곳!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점 얘기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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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휘 : 그걸 어떻게 아느냐 했더니 너 지금 그걸 물어보러 온 게 아니야? 되려 이렇게 물었습니다. 생년월일 적고 책을 한참 보더니... 초년에 엄청 고생한다. 그리고 너는 부모에게 어떤 재산도 못 물려받는다. 니 절로 재산을 일궈야한다. 그 때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저희 집이 사는 게 괜찮았고 저도 발전 전망이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은 것이니까. 그리고 남쪽으로 가면 일이 잘 된다. 남쪽이라는 게 저기 남조선 말하는가? 그게 아닐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는데 일단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가야 일이 잘 된다. 그랬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됐네요. (웃음)

박소연 : 저는 탈북을 한 2-3년을 준비했어요. 미신쟁이에게 물어보니 시기가 아니랍니다. 두만강에 얼음이 녹는 소리가 '쩡'날 때 건너랍니다. 봄이라는 얘기고 진짜 3월에 넘었는데 성공했습니다. 잡히지도 않고 문제없이... 그러니 귀신을 안 믿을 수가 없지 않아요?

진행자 : 탈북하실 때 많이들 보신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박소연 : 많은 정도가 아니고 다 봤을 걸요?

문성휘 : 보지 않으면 결정을 못 합니다. (웃음)

진행자 : 그 심정, 알 것 같아요...

문성휘 : 너무 힘들고 어려운 길이고 어려운 결정이니... 근데 저는 진짜 신기한 일이 탈북할 때 대개 사람들이 국경경비대를 끼고 넘는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 사람말만 듣고 그냥 넘었습니다.

박소연 : 깡도강하셨구만요.

문성휘 : 네, 깡도강이죠. 근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진행자 : 저희 너무 미신 찬양 방송이면 안 되는데...(웃음)

박소연 : 찬양이라기보다는... 저는 결혼해서 아들 어릴 때 시어머니 친구 분이 미신쟁이였는데 자주 놀려오셨어요. 그 녀석이 참 이상했던 것이 잘 때도, 젖을 먹을 때도 다리를 꼬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그걸 보고 이 아이는 죽을 때까지 엄마를 따라다닐 아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때 제가 속으로 아이가 엄마를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얘가 엄마를 모셔야지 아들인데! 당연한 소리다, 그랬습니다. (웃음) 그런데 우리 아들이 탈북하다가 국경경비대에게 잡혔잖아요? 그때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그 생각이 갑자기 났어요. 그래, 점쟁이가 얘는 무조건 엄마를 따라오는 얘라고 했어 올꺼야! 진짜 18일 만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미신을 칭송한다기보다는... 믿을 게 그 것밖에 없으니까. 주체사상보다 더 신봉하고 살았던 것이죠.

진행자 : 네... 힘들고 답답한 상황에서 그 한마디가 버티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역시 동의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점을 많이 보고 그것에 의지하고...

박소연 : 아마 방송 들으시는 분들도 그래, 그래... 이러면서 듣고 계실 걸요? (웃음)

문성휘 : 미신이 다 맞는다고 볼 순 없죠. 한국에서도 비슷하고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당의 유일사상 체계를 세운다고 70년대 말, 80년대 초 이맘때 아주 대단했습니다. 남로당 당원들 같은 건... 하여튼 남한 출신들은 무조건 깊은 농촌으로 추방 보내고... 사람들이 그때 할 말이라는 게 없는 겁니다. 남을 비방해도 잘 못 비방했다가는 걸리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주로 하던 말이 이런 말이었습니다. 점, 관상... 그 때는 집에서 돼지를 많이 길렀습니다. 시장에 팔려고 기른 게 아니라 집에서 잡아먹으려고 많이 길렀죠. 도둑도 많지 않을 때라 집 밖에서 길렀는데 서로 돼지죽을 주고 그 앞에 앉아서 니네 돼지 얼마나 컸니, 얼마나 됐니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는... 돼지우리 옆에 그 파리가 많이 날라 다니는 곳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아무개네 집에 작년에 어느 때 세대주가 사망했는데 그 집을 팔 때 관이 나왔다재오. 그런데 그걸 다 미신이라고 하면서 남편이 그걸 다 부셔버렸대, 그리고 남편이 죽은 뒤에 애들도 일이 생겼대... 전부 이런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겁니다. 서로 만나면 안녕하십니까, 요즘 어떻게 지냈습니까? 그리고는 욕을 하는데 그걸 안 하자면 쌍소리 아니면 이런 미신적인 얘기 밖에 없었던 거죠. 시간을 때우기에도 최고, 귀도 솔깃해지고...(웃음)

박소연 : 그러니까요... 저도 북한에서는 미신소리만 했는데 남조선에 와서는 또 어디 가기만 하면 소원을 빕니다. (웃음) 남조선에는 그런 데가 많아요. 한강 다리에, 임진각에, 소양강... 소원 종이도 걸어놓고 호수 같은 데 동전도 던지고. 북한에 있는 우리 아버지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그러면서 그 큰 항아리 안에 동전 딱 던졌는데 그게 들어가면 아프던 우리 아버지가 벌떡 일어난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웃음)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미신, 여기서는 소원빌기!

진행자 : 남과 북을 떠나 이건 어쩌면 우리 본능의 문제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예측 불가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래서 기댈 곳을 찾고 불안감을 없애려 노력하고.

문성휘 : 북한이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능동적이고 스스로 앞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집단을 이루고 서로를 기대며 살아가는 것이 맞죠. 사실 그렇게 수동적인 것이 인간이라는 얘깁니다.

박소연 : 저는 남한에 와서 사람들이 막 소원을 빌고 그런 걸 본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탈북자이니까, 북한에 가족이 있으니까 그게 염려돼서 그걸 던지고 소원을 빌고 그러지 먹고, 살고, 입고 아무 걱정이 없는 남한 사람들은 왜 저렇게 아까운 돈을 물에 던질까? 이해를 못 했는데요. 아들래미 때문에 너무 속상한 일이 생기니 내 발로 가더라고요. (웃음)

진행자 : 청취자 여러분들이 들으시면서 그 얘기는 도대체 언제 나오나 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그 답답한 일이라는 게 뭔가요?

박소연 : 길고 복잡한 얘긴데요. 최대한 함축해볼게요. 초등학교 가면 다음에 중학교를 다니는데요. 남한에서는 집 주변의 학교를 가야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축구를 잘 하다보니 집 멀리 있는, 축구 잘 하는 중학교에서 뽑아갔는데 그래서 문제인거죠. 집에 퇴거 신고를 해서 학교에 서류를 내야 빨리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대요. 그런데 대부분은 탈북자들이 사는 집은 자기 집이 아니라 정부에서 집을 빌려주는 형식이잖아요? 제 아들이 미성년이라 퇴거 신고를 하려면 제가 함께 퇴거를 해야 하는데 퇴거를 떼는 순간 집을 국가에 내놓아야 합니다.



진행자 : 복잡하다. 박소연 : 복잡하더라고요! 가족이 한 명이라도 집에 명의가 남으면 괜찮은데 저희는 딱 두 식구라. 그래서 같이 축구팀에 들어간 아이들은 다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혼자가 못 들어가고 있어요. 아이는 걱정이 많아지고... 숙인 머리를 들지 못해요. 말수도 없어지고.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요. 교육청에서 빨리 애를 특기생으로 지정을 해서 통보를 해주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북한 같으면 교육청에 고양이 담배 한 막대기면 해결이 되는데 여기는 또 그렇지 않습니다. 뇌물이 안 통하는 나라에요! 그러다나니 기다려야하는데 너무 안타까워서 점을 보러 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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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 씨 말이 이 점쟁이가 무지 용했고 딱 맞췄으며 아이는 점쟁이가 지정해준 여러 날 중 딱 마지막 날! 기숙사에 무사히 들어갔다는데... 기다릴만큼 기다려 자동으로 된 것인지 그 점쟁이가 용했는지는 또 신만이 알겠죠?

다음 시간에 나머지 얘기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