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3)

0:00 / 0:00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한국에 처음 와서 하나원에 나오면 하나 센터에 다니지 않습니까? 제가 거기에서 단체로 소양댐, 소양 저주지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는 정말 아들을 고향에 두고 온 때라서 앉으나 서나 아들 생각밖에 없을 때였습니다. 동전을 얻어서 저희 아들이 무사히 들어오게 해주세요 하면서 동전을 딱 던졌는데 들어간 겁니다! 그때 다리에 동그랗게 섰던 사람들이 우와... 박수를 쳐주고요. 그 다음에 별나케 위안이 간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 우리 아들은 오겠구나. (웃음)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소원들... 그 소원을 비는 방법도 참 갖가지인데요. 터무니없는 방법들도 많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간절하다는 얘기겠죠? 소연 씨는 자물쇠도 걸어보고 동전도 던져보고 소원 댕기도 써보고 성당에 가서 기도도 하는데요. 항상 똑같은 소원을 빕니다.

아들의 건강과 북쪽 가족들의 건강, 그리고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서 소원 얘깁니다.

문성휘 : 좋다는 건 사실 다 해보죠. 좋다는데 왜 안 합니까?

박소연 : 저희는 북한에서 장사를 많이 하는데 도로가 비포장이다 보니까 타이어가 많이 찢어져요. 차 사고도 많이 나니까 그러니까 떠날 때는 자동차 타이어에 소금을 뿌리죠. 이번 길 무사히 다녀오게 해달라고. 이사 갈 때도 소금을 뿌린 다음에 궤짝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궤짝이 들어가기 전에 밥 가마가 들어가면 안 됩니다. 하여튼 어딜 가나 소금을 쥐고 살야요.

진행자 : 남북이 이건 참 비슷하네요.

문성휘 : 북한에선 고난의 행군 썩 전부터 미신 행위가 굉장히 성했습니다. 80년대 말이 되니까 종교를 욕하고 미신을 없애겠다고 난리를 쳐도 다 보러 다녔고요. 북한에선 십자로에 떨어져있는 애기 옷이랑 봉투를 쥐지 말아라...

박소연 : 돈도 쥐지 말라고 하죠. 액막이 한 것이라고. 저희 때는 제비가 강남 갔다 와서 좋은 기운을 전해준다고 집안에 들어오면 좋다고 했어요. 새 소리가 나면 집안에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놓고 기다렸는데 가끔 들어왔어요. 그럼 막 손을 비비며 빌고 그랬죠. 그 덕이었는지 저 탈북하기 전까지 집안에 별 큰 일 없이 근근이 살 수 있었습니다. 정말 이런 거 수 없이 많아요... (웃음)

문성휘 : 맞아요. 북한에선 늘 그러죠. 우리 인민의 일심단결, 주체형의 인간... 그러나 주체형의 인간도 다 같은 인간이고요. 주체형의 인간일수록 밤에 몰래 뒷문으로 더 많이 점쟁이 집을 찾아가고요. 다 주체형의 인간들이 하는 짓입니다.

진행자 : 그런데 주체형의 인간은 왜 미신을 믿으면 안 됩니까?

문성휘 : 주체사상, 당만 믿어야죠. 그리고 사실 북한이 아무리 욕을 하고 어쩌고 해도 나도 그곳에 살았을 때는 주체형의 인간이었고요. 일심 단결된 인민이었고요. 그러나 나도 이렇게 오게 된 거죠... (웃음) 사실 이게 남북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공통인 것 같습니다. 어디엔가 기대고 싶고 무엇인가 내 바람을 들어줬으면 좋겠고. 이런 심리가 소원의 벽, 소원의 바위 같은 만들어내는 것이고요.

박소연 : 인간은 참 의지 할 곳이 없는 나약한 존재죠. 북한에서는 그냥 장군님 하나를 믿고 다른 데 의지하면 반혁명 분자, 자본주의 사상이 뼈 속까지 찬 사람이라고 몰림 대상인데요. 실제로 북한에서도 가정적인 싸움하면 특히 남자가 바람을 쓰면(피면) 남자 속내의를 네 등분해서 네 거리에 활 뿌리면서 우리 남편 바람 쓰지 말라고 빌어라 이런 얘기 어른들이 많이 해줘요. (웃음)

진행자 : 들어보면 아무리 북한 당국이 무섭게 단속해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문성휘 : 그렇죠. 인간은 참 이런 것에 기댈만큼 나약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북한 당국에 화가 나는 건데요. 인간의 이런 나약함을 이용합니다. 수령, 당, 최고 존엄이라고 하면서 자기들만 이 세상에 절대적인 존재인 것처럼 선전하고 하는 것. 이게 바로 인간을 우매화 시키는 겁니다. 한국에 오니까 이게 막 다 허용되는 것이 좋았어요. 한국도 정치인들이 그렇게 점쟁이한테 점을 보고 하면 구설수에 오릅니다. 그러나 윤리적인 비판이지 이것 때문에 법적인 처벌을 받진 않잖아요? 북한은 어느 간부가 그랬다고 신소가 되면 그 간부는 목이 달아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래도 다 보는 게 그 간부들이고요...(웃음)

진행자 : 그 만큼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불안하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박소연 : 근데 소원이라는 걸 한국에 와서 4년 째 살면서 너무 많이 빌었는데 그걸 해결해주는 것은 시간 밖에 없더라고요. 반 년 전에 저희 아들이 수술을 했잖아요? 처음에 진단 받았을 때 북한말로 막 하약을 쓴다? 막 소리를 지르며 울었습니다. 내 가족을 잃은 대신 아이를 내 옆으로 데려왔잖아요. 그러면서 보상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 열심히 바라니까 이렇게 소원이 이뤄지는 구나 했는데 그 아이의 목에 철심을 박아야 한데요. 제가 막 소리를 내며 울었어요. 나한테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왜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이제 소원이고 뭐고 소용없다. 다 필요없다. 그 당시엔 그랬습니다. 아무리 빌어도 죽을 사람은 죽고 아픈 사람은 아픈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제 자리에 돌아와서 여전히 볼도 차고 하니까 소원이라는 것은 내가 빌어서 그 순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구나. 시간이 가면 이뤄지는 구나. 그게 제 마음이 위로가 되고요...

진행자 : 시간이 소원을 이뤄준다는 말 좋네요.

박소연 : 네, 그리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노력이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고요.

문성휘 :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남산에 한 번 올라가야겠어요. 내 소원은 남산에 가서 빌어야해...

박소연 : 그래요. 한번 올라가요. 밤에 남산 야경이 얼마나 좋은데요. 버스도 다닙니다!

문성휘 : 가장 높이 올라서 손을 이렇게 벌리고 있으면...

진행자 : 같이 가는 것은 취소하겠습니다. (웃음)

박소연 : 우린 멀리 떨어져 있어요. (웃음)

문성휘 : 아... 정말 소원도 갖가지고 빌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게 인간인데요. 여기는 참 좋은 게 누구나 아무 소원이나 빌어도 된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진행자 : 북한에서도 소원은 마음대로 빌 수 있지 않습니까?

문성휘 : 꿈 같은 소리입니다. 소원을 마음대로 빌 수 있는 국가이면 저 땅이 변화된 지 오래죠....

박소연 : 수령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소원만 빌다 왔는데요... 이제는 김일성, 김정일의 소원이 아니라 박소연의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여기는 내가 앞으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소원도 막 말하잖아요? 북한에서 그랬다간 혁명의 이름으로 따당이죠!

진행자 : 그렇지만 남쪽으로 왔기에 생긴 또 다른 소원도 있잖아요? 우리 시작하면서 얘기한 소원. 죽기 전에 가족들 꼭 보고 싶다, 가족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이 소원, 꼭 이뤄지길 빌겠습니다.

박소연 : 새로운 소원 또 있습니다. 이 방송이 통일되기 전까지 계속 됐으면 좋겠다...(웃음)

문성휘 : 참... 소원도 여러 가지다...

진행자 :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박소연, 문성휘 : 감사합니다.

소원을 빌자마자 바로 이뤄지면 그건 매직, 마술이겠죠? 인고의 시간과 오랜 바람 끝에 이뤄지는 그것이 소원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의 소원은 어떻게 되십니까?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세 차례 걸쳐 소원에 대한 얘기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소연, 문성휘 그리고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