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우리는 선생님이 오면 안녕하십니까! 아니면 준비! 이렇게 인사를 했었는데 남한 아이들은 복도에서 선생님과 스쳐 지나면서 안녕하세요, 선생님~ 말을 하며 지나갑니다.
남한의 5월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그리고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학생과 부모들이 선물을 준비하고 기념행사도 하고 가슴에 카네이션 꽃도 달아주던 것이 스승의 날 풍경이었는데 요즘 스승의 날은 꽃 한송이 보내지 말라, 감사한 마음만 받겠다... 학교에서 아예 통지문을 보내왔네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남한 스승의 날을 지내면서 생각해보는 남북의 스승, 선생님들에게 대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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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휘 : 아니! 최고의 스승 김정은 동지가 딱 있는데 어떤 스승이 있겠습니까? 그 밑에서 스승이라고 하고서리 사람들이 모이면 그 사람은 목이 잘려나가죠. 그러니 스승의 날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죠.
진행자 :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북쪽에는 없고 남쪽에 있는 스승의 날이지만 남쪽에서도 스승의 의미는 많이 변했습니다.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라 그런 말도 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박소연 : 옛날의 선생님은 훈장, 지금의 선생님은 친구 같습니다. 우리 아들도 남한에 와서 학교 다니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아들아이 학교에 한번 간 일이 있었어요. 우리는 선생님이 오면 안녕하십니까! 아니면 준비! 이렇게 인사를 했었는데 남한 아이들은 복도에서 선생님과 스쳐 지나면서 안녕하세요, 선생님~ 말을 하며 지나갑니다. (웃음) 그런데 선생님들이 그걸 이상하게 보시는 것 같지 않아요. 북한 기준으로 한다면 이건 부도덕한 행위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친구 같고 간격이 가까운 사람으로 선생님이 느껴지고요. 그런데도 엄마보다도 아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사람입니다. 엄마가 백번을 말해도 안 듣던 걸 선생님 말 한 마디는 듣습니다. 스승의 날을 정한 것은 잘한 일 같습니다. 그만큼 가치가 있고 존재의 의미가 있는 분들이니까요.
진행자 : 친구 같은 선생님일지라도 선생님의 말 한 마디의 무게는 큰 것 같습니다. 엄마의 백마디 말보다... (웃음)
박소연 : 그렇지만 지금보면 북한 선생님들도 가부장적인 모습이 많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친구처럼 지내는 선생님이 있고요. 그런 선생님과 제자들이 끈끈했습니다. 틀은 차리지 않는데 선생님 생일 때는 돈 모다 손목시계도 해주고. 사실 사회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아주 문란한 현장이지만요. 속을 들여다보면 친근하고 끈끈하고.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그냥 선생님으로가 아니라 선배로 속 깊은 충고도 해줍니다. 너 왜 공부 안 해, 대학 안 가고 돌격대 갈거냐... 진심으로 말해줄 때는 학생들도 그걸 받아들이고요. 저는 보기 좋았고 이제 북한도 많이 변했죠.
진행자 : 지난 시간에 소연 씨가 김영란 법에 대해서 얘기했는데요. 부폐방지 법안입니다. 서로 일정 금액 이상 비싼 선물, 밥 등 대가성 있는 것들을 주고받지 못 하고 하고 국가 공무원 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그 대상이기 때문에 이 법이 제정된 이후 스승의 날 행사는 거의 없습니다만 저희 때만 해도 스승의 날 행사는 아주 중요했어요. 학급에서 학생들이 돈을 조금씩 내서 반대표가 시장에 가서 선물을 사오고 작은 행사를 준비해요. 그리고는 그날 선생님에게 선물 증정식을 한 뒤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 조르죠. 수업 좀 안 해볼까 해서...(웃음)
박소연 : 그런 걸 보면 한국은 다정해요. 저희는 학교 때 교사와 학생이 불구대천의 원수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회주의라는 게 교원에게 배급, 노임을 이런 걸 제대로 안 주니 선생님들도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죠. 그래서 잘 사는 집 아이들에게는 평가서도 잘 써주고 다 좋지만 못 사는 집 아이들, 학교에서 내라는 것 잘 못 내는 아이들은 벌써 선생님이 왕따를 만듭니다. 그 애들은 정말 찬밥 신세였죠. 그 아이들도 자기네들이 똑똑하지 못 해서 밀리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로 그러니까 항상 분노가 가슴이 차 있습니다. 모여 앉으면 졸업 만해봐라, 저 선생 다리를 부러뜨리겠다... 이런 막 말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저희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요. 제가 딱 고난의 행군 시기에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저희 학급의 한 아이를 유별나게 선생님이 못 살게 굴었어요. 왜 그랬냐면 졸업을 앞두고 돈을 모아서 선생님에게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같은 것을 해주는데 애네 엄마가 못 내겠다고 한 것 같아요. 걔네집이 워낙 못 살아서 꼬마계획도 못 하고 토끼가죽도 못 냈거든요. 부모도 학부모 총회 때 비판을 받고 그랬답니다. 그러던 와중에 선생님이 걔를 트집을 잡아 우리들 다 보는 앞에서 귀 쌈을 때렸고 그 일 있고 얼마 안 돼서 교실로 보안원이 와서 그 아이를 잡아갔습니다. 조용히 데려갔어요. 졸업 때까지 참지 못 하고 너무 화가 나니까 선생님 아파트로 가서 돌에 천을 감아 던졌답니다. 유리창을 깼다고 해요. 그 아이는 소녀 교양소에 보내졌습니다. 보편적으로 선생님과의 사이가 그렇게 좋지 못 해요.
진행자 : 선생님의 사정도 있겠지만 집이 가난한 것이 그 아이의 잘 못은 아니잖아요? 근데 그렇게까지 하나요...
박소연 : 그게 저희에게도 막 알릴 정도로 유별나게 미워하고 그랬어요. 그 선생님이...
문성휘 : 그런데 선생님들이 마음먹고 자기 마음에 안 들거나 부모의 관계 때문에 아이를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부모와의 관계 때문이죠. 한 몇 달 동안 계속 되기도 해요. 오늘 나머지 교실 청소를 다 해라 그러면 톱밥을 가져다 물에 적시어 그게 걸레로 다 쓸어내고 엄청 힘들죠. 그러지 않으면 변소 청소. 그러면 쟤 변소 청소야 이러면서 다른 학급 아이들도 우습게 여기죠. 그런 아이들은 대부분 선생과 직급이 비슷한 집 아이가 많습니다. 친척이라도 좀 직위가 높으면 그렇게 대놓고 못 하죠.
진행자 : 그리고 돈도 내겠죠...
문성휘 : 그렇죠. 그리고 선생도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만 괴롭힙니다. 것도 몇 달 그러면 풀리는데요. 부모들이 워낙 눈치가 있으니까 애들한테 얘기를 들으면 주머니에게 뭘 싸갖고 가서는 우리 애를 잘 못 키우고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그 때 일처리를 잘 못 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그러면 그 다음 날부터 확 바뀌죠.
박소연 : 그리고 그렇게 바뀌는 계기가 봄, 가을 등산입니다. 그때 벤또를 잘 싸줘야 아이에게 선생님이 한 마디라도 더 물어봅니다.
진행자 : 이런 상황에서 스승에 대한 존경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요?
박소연 : 그 중에서도 좋은 스승이 있습니다. 지금 문 기자 나이또래 선생님 이었는데요. 등산을 갔는데 못 사는 아이들은 도시락 뚜껑을 열기를 부끄러워해요. 그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갑자기 자~ 보자, 너희들 어떻게 싸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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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선생님은 사정이 좀 괜찮은 아이들 집들에서 보낸 선생님 벤또를 동그랗게 모여 앉은 그 아이들에게 넌지시 건네줬다고 하는데요. 소연 씨는 아직 그 선생님의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기억나는 이름 있을 것 같은데요. 그 힘든 세월 속, 그래도 다들 살아왔던 것은 이런 선생님도 계시기 때문이 아니었나... 짐작해봅니다.
선생님, 스승님, 부르고 싶은 그 이름... 다음 시간에 나머지 얘기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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