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진달래 (2)

0:00 / 0:00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솔직히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외국에 나 혼자 뚝 떨어진 것 같았고 그런데 작년에 코스모스 보고, 진달래 보고, 민들레 보고 하니까 여기도 우리 고향에 있던 꽃들이 있구나, 고향이 될 수 있구나...

5월도 벌써 끝나갑니다. 진달래는 벌써 지고 철쭉이 활짝 폈는데요.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꽃꽃꽃! 꽃 얘기 이어갑니다.

문성휘 : 북한에서 온 사람들에게도 다 물어봐도 봉선화는 모른다고 할 겁니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꽃은 꽃바구니를 만들어 키우는데 바구니에 꽂으려면 꽃이 탐스럽고 크고 면적이 좀 있어야 하는데 봉선화 꽃은 좀 초라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도 안 심는 거죠.

진행자 : 여름에 봉선화 꽃이 나오면 그걸 빻아서 손에 물을 들이는데 여름 방학이 끝나고 오면 애들 손톱이 다 빨갛죠...(웃음) 그 물 들인 게 겨울까지 남아 있으면 좋은 일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문성휘 : 그런 건 안 해요. 천수국, 만수국 같은 건 꽃이 면적이 있으니 바구니에 장식하는데 좋으니 심지만 봉선화는 누가 어디에 심겠습니까?

진행자 : 씨만 뿌리면 잘 자라는데요...

문성휘 : 꽃도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김일성 동상에 올리는 게 꽃을 키우는 목적이거든요.

진행자 : 북쪽에서는 꽃도 역시 한 가지 목적으로 존재하는 건가요? (웃음) 사실 이런 손톱에 물들이고 이런 건 재미인데요. 안타깝네요.

박소연 : 그리고 우리 공부할 때 김정일 어록이 이런 게 있습니다. 장자산에 있을 때 김정일이 은방울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었다고 얼마나 선전을 했지 모릅니다. 실제 봤는데 정말 볼품이 없어서 좀 실망했습니다. 우리 북한 인민들이 기억하는 꽃이라고는 김정일 화, 김일성 화, 진달래는 김정숙과 연관돼서 기억을 하고 은방울꽃은 김정일하고 연관되고요... 그러니까 이자 얘기한 그런 봉선화 같은 꽃은 노래에서나 들을 수 있고 영화, 드라마로 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죠.

문성휘 : 근데 저 여기 와서 깜짝 놀란 게 왜 한국 사람들은 김일성 화(花), 김정일 화를 이렇게 많이 기르지? (웃음) 그래, 물어보니까 그게 김일성화가 아니고 그저 그런 난초꽃 종류다 그러더라고요.

진행자 : 그 두 가지 꽃이 다 기존의 꽃을 개량한 것이니까요.

문성휘 : 맞아요. 개량한 꽃이니까 비슷한 꽃 종류가 너무 많은 것이죠. 그리고 제가 이건 김정일 화인데? 그러니까 여기 사람들이 그건 베고니아라고...(웃음) 김정일 화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눈이 동그래지더라고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생각도 못하고 무슨 소린가 한 거죠. (웃음)

진행자 : 저라도 그랬겠네요.(웃음) 게다가 남한 사람들 생각하기엔 영 희한하죠.. 그 꽃을 만든 사람도 아니고 왜 꽃에 사람을 붙이냐고요.

박소연 : 지방에도 김정일화 온실은 다 있거든요. 저도 그거 많이 가서 봤는데요. 가서 보면 꽃을 감상한다는 생각이 안들고 그저 종이로 만든 꽃 같이 자연미가 없어요. 잎사귀도 잘 보이지 않고요... 근데 몇 년 전부터 평양에서 김정일화 국제 축전을 열어요. 외국 사람들까지 초청해서 김정일 화로 탑을 쌓아 놓고 조명을 비추고, 장식을 해놓고 분수도 해놓았던데 그게 돈이 얼마나 들어가겠습니까? 그거 보면서 우리 수령님 인덕이 높아서... 이런 생각 하는 사람들이 이제 거의 없습니다. 저걸 하는데 돈을 얼마나 많이 들어갔겠나, 그 돈으로 배급이나 주지. 겉으론 표현 못 해도 속으론 그렇게 생각하죠.

문성휘 : 1월 달에 딸아이가 갑자기 우리를 차에 타라더니 꽃구경을 가자고 해요. 겨울인데 무슨 꽃구경이냐 그러면서 차에 타서 2-3시간 달려... 그 동네가... 아 가평! 엄청 큰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 산도 있고 연못도 있고 정말 한겨울인데도 꽃동산이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아야, 온실이라면 이래야지, 한 가지 꽃만 심어놓고 구경하라면 질리는 거죠. 서로 다른 꽃을 보고, 여러 가지 꽃향기가 어우러져야 진짜 꽃을 구경하는 게 아닙니까? 이건 비방하자는 게 아니라 진짜 너무 딱딱하고 따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을 줄을 지어 똑같은 옷을 입혀 세워놓은 거랑 그저 딱 같은, 북한 체제 바로 그 모습이죠.

진행자 : 꽃 하면 꽃바구니, 꽃 전람회 이런 얘기를 하지만요. 따져보면 꽃이 우리 생활도 영 거리가 있는 게 아닙니다. 봄에 진달래 보고, 여름에 봉선화로 물들이고 가을에 코스모스 길 걷고요. 꽃도 우리 삶이자 생활인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근데 이 기자님, 남한 사람들은 어떤 꽃들을 생각하며 고향 생각합니까? 어렸을 때 어떤 꽃을 많이 보고 자랐어요?

진행자 : 남쪽도 여전히 진달래입니다. (웃음) 산에, 들에, 집에도 있는 게 진달래고요. 또 철쭉, 개나리, 하얀 찔레꽃도 있고...

문성휘 : 아, 찔레꽃도 있네요. 저는 노래만 들어봤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습니다.

진행자 : 목련은 아시죠?

문성휘 : 아, 북한에서는 작약, 목단 그러죠. 그건 많이 봤어요. 북한에서도 많이 키우는데요. 그게 약재가 아닙니까? 그리고 목련은 꽃이 크니까 가끔씩 꽃바구니에 넣으면 보기 좋아요...

진행자 : 북한의 꽃은 키우는데 일관되고 단일화된 목표가 있군요. (웃음) 진짜 진달래는 남이나 북이나 고향하면 떠올리는 꽃이네요.

박소연 : 저는 남한에 와서 적응하는데 꽃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경제적인 도움 같은 건 아니고요. (웃음) 한국에 처음 와서는 모든 게 다 걸리잖아요? 문화도 너무 달랐고요. 처음엔 말도 끝까지 못 하겠더라고요. 북한 말씨 쓴다고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도 같고 음식도 다르고요. 남들은 나를 다르게 안 보는데 저는 너무 주눅이 드는 거예요. 솔직히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외국에 나 혼자 뚝 떨어진 것 같았고 솔직히 배를 곯아도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 속에 있었던 때가 좋았구나 생각한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 작년에 코스모스 보고, 진달래 보고, 민들레 보고 하니까 여기도 우리 고향에 있던 꽃들이 여기도 있구나 생각이 들고 큰 위안이 됐습니다. 이런 꽃이 나는 걸 보면 우리랑 한 땅이다, 그러니까 차츰 차츰 익히며 살아야겠다...

진행자 : 여기도 고향이다, 고향이 될 수도 있다...

박소연 : 맞아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문성휘 : 안타깝게도 남한에는 있는데 북한에는 없는 꽃들도 있어요. 첫째는 무궁화요. 무궁화 꽃도 예전에 평양을 비롯한 도시들의 도로 주변에 많았데요. 그런데 김일성이 어느 날인가 무궁화가 남한의 국화다, 다 없애버려라 그랬답니다. 지금은 북한에 무궁화가 없습니다.

박소연 : 그러네요. 저도 못 봤습니다.

문성휘 : 두 번째 벚꽃이요. 일본이 벚꽃을 국화라고 한다... 그래서 없앴지만 일본의 국화가 벚꽃이라고 해도 벚꽃이 일본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일본 때문에 한반도에도 벚꽃이 생겼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일본 때문에 왜 벚꽃은 다 없앴을까요... 조선에서 나온 꽃은 다 조선의 꽃이죠. 그래서 북한엔 벚꽃 찾아보기 힘들죠. 대신 목란이 국화라고, 김일성이 목란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는데 사실상 북한에 목란을 못 본 사람들 엄청 많을 겁니다. (웃음)

박소연 : 저는 그림으로 봤네요.

문성휘 : 저도 그림으로 봤습니다. (웃음) 김일성화, 김정일화는 많이 봤어도 조선의 국화를 목련이라면서 실지 본 사람은 없고요, 또 북한 사람들 애국가를 부르라면 모르지만 대신 김일성,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모르면 반동으로 몰리는 거죠. (웃음)

진행자 : 웃을 수만은 없는 얘기네요. 앞으로 우리 고향의 진달래 다시 볼 날이 있겠죠?

문성휘 : 네, 그때쯤 되면 북한도 생활이 나아지고 고향 땅에 진달래꽃도 많이 회복 되겠죠.

그냥 평범한 꽃 얘기를 해볼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북쪽에선 어떤 주제도 정치 얘기를 비켜갈 수 없네요. 꽃과 정치권력,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는 의외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긴 시간과 공을 들여 한 번에 피어나고 그 결실은 더 없이 화려하지만 어느 날 한줄기 바람에 흩날리며 사라질 수 있는 무상한 길을 간다는 점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봉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흐드러진 고향의 봄을 기대해보면서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