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8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제가 얼마 전에 남조선을 한 바퀴, 다 돌았습니다. 차에 휘발유를 여러 번 넣기에 도대체 우리가 몇 리를 왔다, 갔다 했느냐 물었더니 집에까지 도착하면 사천리라는 겁니다. 1,600킬로래요.
5월초 4일 동안 이어진 연휴기간, 소연 씨가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2박 3일 동안 강원도부터 동해 바닷가를 거쳐 한반도 지도의 꼬리 부분인 포항을 찍고 부산으로 가서 서울로 올라오는 무려 4천리에 달하는 긴 여정이었다고요.
남쪽에 와서 첫 여행, 근 사십 평생 만에 해보는 여행다운 여행이었다는데요. 소연 씨의 여행 얘기 마지막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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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여행을 갔다 와서 회사 동료에게 자랑을 했더니 북한에서는 여행을 안 해봤냐, 여기 와서 처음이냐고 물어요. 그래서 저도 한참 생각을 해봤네요. 북한에는 밥에 쌀이 없이 감자만 있어도 감자밥이라고 합니다. 쌀알이 안 보여도 밥이라고 하거든요. 그거랑 똑같이 떠난 날이 여행의 시작이고 오는 날이 여행의 끝이지 남한처럼 2박 3일이다, 3박 4일이다 정해놓고 떠나진 않습니다. 차가 떠나면 길에서도 정차되고, 연착도 계속 되고 그 여행길이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진행자 : 여행을 가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남쪽은 이동증, 여행증 제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남쪽 사람들은 단순하게 북쪽 사람들도 여행을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성휘 : 여행은 있죠. 북한은 여행이라고 안 하고 답사라고 합니다. 국가가 정한 곳으로 정해진 길을 따라 가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경치를 구경하는 답사는 묘향산, 백두산 답사.
진행자 : 의미가 있는 곳을 일부러 답사 시키는 건가요?
문성휘 : 혁명 전적지랑 사적지만 답사하는 거죠.
진행자 : 식구들이랑 묘향산에 1박 2일, 2박 3일로 놀러 갔다 오고 싶다... 이런 거 아예 허용이 안 되는 건가요?
문성휘 : 그것 말고 휴양도 있는데요. 지금은 다 없어졌죠. 옛날에는 휴양소가 곳곳에 있었고 한번 휴양가면 열하루씩이었는데.. 근데 이거 뽑혀 가기 힘들어요.
진행자 : 그럼 두 분 다 가족끼리 어디 1박2일, 2박3일 여행 다녀오신 적은 없으시겠습니다.
문성휘 : 북한에는 가족들이랑 같이 가는 건 없습니다. 집안 통째로 어디 여행 목적? 증명서 자체가 안 나옵니다. 단체별, 소속별로 나옵니다.
진행자 : 그건 아예 불가능해요?
박소연 : 우리 아이 때 원족은 본인들만 가고 우리 가족끼리는 한번 움직인 적은 있었는데... 그건 아마 온 나라가 다 움직였을 거예요. 문 기자님, 한번 맞춰 보세요. 여행은 아니지만요. 우리 전쟁 훈련할 때는 가족들이 다 함께 산 속으로 들어가잖아요! (웃음)
문성휘 : 아, 맞다... (웃음) 있긴 있다. 대피 훈련!!
박소연 : 전시 훈련할 때 가족들이 함께 움직여요. 그 때는 3-4십리 떨어진 산 속에 가족들이 함께 들어가죠.
진행자 : 근데 그건 소풍이 아니잖아요. (웃음)
박소연 : 그런데 가족이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건 대피 훈련 밖에 없어요. 그리고 대피 훈련 가면 사람들 많이 모이고 재밌어요.
문성휘 : 네, 진짜 재밌습니다. (웃음) 그리고 북한은 지금 소연 씨가 말하는 그런 여행은 아예 못 합니다. 여행증명서라는 것이 있는데 방문지 한 곳만 딱 지정해 줍니다. 함흥이면 함흥, 청진이면 청진. 그리고 거기에 가서 도장을 받아와야합니다. 가서 숙박 등록이라는 걸 해야 하고요. 지금 소연 씨가 여행한 것처럼 몇 개도를 뛰어 넣고 막 자고 싶은데 가서 자고, 애초에 이렇게 안 된다는 겁니다.
진행자 : 사실상 여행을 즐겨본 사람이 없다고 봐야하는 군요. 그렇다면 남쪽에 와서는 이런 여행 문화도 낯선 일이겠습니다.
박소연 : 낯선 게 아니라 신기한 일이죠. 제가 백두산 답사를 간 적이 있어요. 그 때가 딸기 철이었는데 백두산 청봉 옆 죽 가는 길에 딸기밭이 있었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눈이 커서 그런지 시력이 밝아요. (웃음) 하여튼 저는 딱 딸기를 봤어요. 저걸 따먹어야겠는데 옆에서 사로청 위원장, 소년단 지도원이 줄을 맞춰서 소리를 막 지르는 겁니다. 아, 좀 앞으로 가지... 그러는 와중에 딸기밭은 이제 거의 끝나겠는데. (웃음) 문제는 이 딸기라는 게 하나를 따면 줄줄이 엮어 올라오더라고요. 그러다 나니까 그날 저녁, 숱한 학생들 앞에서 제가 사상 투쟁의 대상이 됐어요. 장군님의 혁명 업적을 배우러 가면서 그 딸기를 뜯느냐고 대열을 흩트려 놓았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던 게 잊혀 안 져요. 여기 오니까 가다가도 산이 좋다 하고 차를 딱 세워놓고 보고, 바다 옆을 지나다가도 세워놓고 보고. 아, 그래 너무 신기하고 너무 좋았습니다. 이게 여행이죠. 답사는 여행이 아닙니다. 강제노동 수준입니다...
문성휘 : 그래도 떼어주기는 여행증명서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남한 오니까 그런 건 좋아요. 난 남한도 북한에서 평양 가는 것처럼 서울에 들어오려면 승인 번호가 있고 특별 증명서가 나와야 들어올 수 있는지 알았습니다. 이렇게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을 줄 몰랐죠...
박소연 : 재밌는 얘기가 있는데요. 제가 성류굴에 갔을 때 사람들이 막 옆을 지나가는데 사투리를 써요. 저도 사투리를 쓰는 주제에 같이 간 사람들에게 저 사람들 사투리 쓰네... 그랬다니까요. 내가 심히 과하다 싶으면서도 나는 서울에서 왔지... 뭐 이런 심정이요? 뿌듯했어요. (웃음)
진행자 : 남쪽은 지방 사람들도 얼마든지 서울에 올라와 살 수 있기 때문에 서울 사는 게 큰 자랑이 아닙니다.
박소연 : 우리는 평양에서 산다는 그런 생각이 아직 있거든요.
문성휘 : 그게 대단한 긍지, 자부심이니까요. 그러니까 탈북자들도 자기 평양 출신이라면 다시 쳐다보고 그러지 않아요?
진행자 : 그래서 일부러 평양 출신이라고 거짓말 하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문성휘 : 맞아요. (웃음) 근데 남쪽에서 서울 산다는 의미는 북쪽에서 평양 산다는 의미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탈북자 남쪽에 오면 그렇게 서울에 살고 싶어 하죠...
박소연 : 저도 참 착각을 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대전에 강의갈 일이 있었는데 갔더니 그쪽에서 그러세요. 여기 서울 아가씨 오셨네... 사실 그 사람은 북한식으로 여기 평양 아가씨 왔네... 이렇게 얘기한 게 아닌데 나 혼자 그렇게 들었어요. (웃음)
문성휘 : 아이고... (웃음)
박소연 : 제가 정말... 형편없이 모자랍니다.
문성휘 : 형편없이 모자라네.
박소연 : 언젠가 채워지겠는지... (웃음)
진행자 :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행도 사실 가본 사람이 즐길 줄 아는 거죠. 그리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추천되는 것도 여행입니다. 이제 한번 여행의 맛을 보셨으니 계속 즐기면서 사셨으면 좋겠네요.
문성휘 : 솔직히 일부러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 외국에 배낭을 둘러매고 배낭여행을 하기도 하고요. 국내에서도 배낭여행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옆에 사람들의 방해도 없이...
박소연 : 혼자 다닌다는 얘기세요?
문성휘 : 혼자 다니는 사람 많습니다. 혼자 여행하는 여성들도 많고요.
진행자 : 이제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데요. 두 분, 내가 여기는 꼭 좀 가보고 싶다... 이런 곳 있으십니까?
문성휘 : 저는 제주도는 가봤고...
박소연 : 저는 또 좀 모자라게 얘기해서 죄송해요. 저는 외국 여행 가고 싶어요. 호주요. 그렇게 좋다고...
문성휘 : 아이고... 비행기 타는 거 힘듭니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하니까요.
진행자 : 그리고 여행도 아는 게 있어야 더 많이 보입니다. 비싼 돈 쓰고 외국 나갔는데 제대로 못 보고 아깝지 않습니까? 남한 내에서 예행연습 많이 해보고 나가세요.
문성휘 : 한국 사람들은 그럽니다. 여수에 가보고 싶다면 인터넷에 들어가서 무엇이 유명한지, 어떤 곳을 가봐야 하는지 다 찾아보고 숙소도 예약합니다. 그리고 외국도 다 그렇게 할 수 있고요. 또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 얼마 전 홍콩을 가는 걸 보니까 홍콩에 관한 책을 사더라고요. 거기에 관광 명소들도 다 있고...
박소연 : 영어로 된 책 아닌가요?
문성휘 : 서점에 가면 다 있어요. 한국말로 돼있고 주요 도시별로 다 있고요.
진행자 : 소연 씨는 호주. 문 기자는 어디 가소 싶은지 안 물어볼게요. 가고 싶은 데가 없을 것 같아서...
문성휘 : 아니, 왜요. 저도 여수가 가보고 싶어요. 엑스포 할 때도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갔거든요.
진행자 : 아직도 주요 전시관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가시죠.
문성휘 : 그런데 난 정말 가보고 싶은데, 우리 집사람하고 시간이 안 맞아요. 딸은 또 시험시간이라고 하고... 나는 운전도...
진행자 : 내가 이래서 안 물어본 댔는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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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은 80년대 해외여행 자율화가 됐습니다. 그 전에는 해외여행이라는 건 일하러 출장 가는, 굉장히 특별하고 부러운 일이었는데요. 자율화가 되면서 많은 대학생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비행기 표 사고 배낭에 온갖 짐을 꾸겨 넣고 떠난 길. 돈 아끼려고 기차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값싼 숙소를 찾고 빵을 뜯어 먹으며 기차로 연결된 유럽의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를 건너 한참을 돌았습니다.
여행 경비를 벌려고 잠깐 일을 하기도 하면서 어떤 사람은 2주 예정하고 갔던 여행길이 한 달이 훌쩍 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세계에서 모여든 같은 여행객들과 국경을 넘어 친구가 되기도 했고 저녁 무렵이면 개와 가족과 산책을 하는 그들의 여유를 부러워하기도 했고요. 이런 사람들과 기죽지 않고 살 수 있게 언어를 배우고 열심히 살겠다는 욕심도 부렸습니다. 이 학생들이 여행길에서 그려온 미래의 모습은 가만히 앉아서 머릿속으로 그린 그 미래와 같지는 않겠죠? 이게 바로 여행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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