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스승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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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저희는 학교 때 교사와 학생이 불구대천의 원수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회주의라는 게 교원에게 배급, 노임을 이런 걸 제대로 안 주니 선생님들도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죠.

남한의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지나면서 남과 북, 우리가 만난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연 씨, 문 기자 모두 학창 시절 그리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만난 선생님에 대한 기억, 대부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번 만난 좋은 스승이 수 만 가지의 나쁜 기억들을 덮어주는 것 같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남북의 스승, 선생님들에게 대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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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그런데 우리 혁이도 대안 학교에 간다고 얼마나 저에게 애원했는지 몰라요. 일주일을 학교를 다니고 나더니 거기는 북한 말을 해도 웃지 않고 선생님도 탈북자래... 이런 말을 막 하기 시작해요. 그때 고민이 참 많았어요. 열 살짜리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하는데 안 돼, 그냥 남한 학교 다녀! 이렇게 말할 엄마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러다가 그냥 남한 학교를 다녀보자. 어차피 탈북자이기 때문에, 어린 나이지만 네가 꼭 넘어야할 산이다! 그래서 2-3개월은 아이보다 제가 더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가슴 아프죠... 말을 못하니, 아이들이 말만 하면 웃는다고 하고...

진행자 : 얘들이 악의가 있어서 그러지는 않았을텐데...

박소연 : 걔들이 무슨 악의가 있었겠어요. 그냥 신기한 거예요. 북한말이 억양이 세고 그러니까. 얘는 너무 싫죠. 그런데 그게 시간이 지나니까 해결이 되더라고요. 남한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는 것이 배우는 것이고 선생님도 많이 신경을 써주셨습니다. 애들을 따로 모아서 혁이한테 잘 해줘라, 우리는 같은 동포야... 하여튼 그래서 혁이도 지금 그때 얘기를 하면 웃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웃음) 당시 선생님이 정말 고맙게 큰 역할을 해주셨죠.

진행자 : 혁이는 대체적으로 남한에 와서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 좋은 선생님... 우리 인생에서 정말 좋은 선생님, 스승을 만나는 일, 큰 복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인생의 여러 복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진행자 : 그런데... 저도 지금까지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겪었지만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은 아주 극히 드문 것 같아요. (웃음)

박소연 : 저는 없었어요. (웃음)

진행자 :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나이가 이제 먹을 만큼 먹었지만....(웃음) 지금도 스승을 찾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문성휘 : 사람들이 끌리는 정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북한 대학원 대학교에 다닐 때 제가 아주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빨갱이라고 욕을 먹는 분이셨죠. (웃음)

진행자 : 거부감 있으셨을텐데... (웃음)

문성휘 : 근데 제가 그 선생을 좋아했어요. 이 분은 진보 쪽이지만 스스럼없이 북한을 비판하고 솔직하게 평가해요. 이런 건 이제 비판을 해야 한다, 이런 것까지 비판을 못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하고. 대학에 가보니까 인기를 끄는 선생은 애들이 한 무리씩 따라다니고 정치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훈수를 하는 선생들... 저는 교육자는 적어도 정치적인 편향이 있으면 안 되고 이념적으로 편향된 얘기를 교단에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제가 빨갱이라는 그 선생을 대개 좋아하고...(웃음)

진행자 : 그런데 빨갱이로 불리신다는 건 어떻게 아신 건가요?

문성휘 : 남들이 그렇다기에...(웃음)

진행자 : 소연 씨는 어떻게, 있으십니까? 인생의 스승?

박소연 : 저는 남한에 와서 만났다고 할 수 있어요. 자주 뵙지는 못하는데... 제일 존경하는 분, 신부님. 그냥 내가 남한에 와서부터 저희하고 이제 6년이라는 시간이 있죠. 스승이라는 건 무엇을 배워주는 사람뿐 아니라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도 스승인 것 같습니다. 내가 남한에 와서 처음에 모든 게 원망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처음 면접을 보러 갔는데 나이가 많다고 취업이 안 됐을 때, 사람들이 나를 탈북자라고 무시하는 것 같다고 엉엉 울 때도, 외롭고 고독해서 왜 왔을까 생각했을 때도 신부님은 한 번도 안 끊으시고 제 얘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셨어요. 그리고 끝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제가 전라도 사람인데요, 서울에 올라오니까 벌써 전라도 사람이라고 촌놈 취급을 하더라고요. 당신도 그래서 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보니 사람이 어떤 아픔을 가져야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고. 그리고 사람들이 저를 보고 북한식으로 직설적으로 말하니까 그렇게 살면 손해 본다고 했다, 내가 고쳐야 할까 물었을 때 사람이 태어난 대로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공감도 해주고 제가 가야할 길도 제시해주고. 그래서 아직도 저의 최고의 스승입니다.

진행자 : 두 분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스승이라는 건 뭔가 학문이나 철학을 배워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의지할 수 있고...

박소연 : 내가 힘들 때 찾아가면 내 끝없는 말을 들어주며 힘을 주는 사람,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

문성휘 : 그러고 보면 오늘 정말 예상 밖으로 선생님들, 스승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해보게 됩니다. 나를 배워준 선생님들... 사람이라는 게 복이 있다면 태어나면서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 아내를 잘 맞아야 한다, 좋은 스승을 만나야한다는 게 원칙인데... 부모야 나를 낳아줬으니 어떻게 하든 존경하며 감사하며 살아야할 것이고. 그리고 아내를 정말 딴 문제에요. 상당히 머리가 아픈 문제고... (웃음) 스승은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생각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게 됩니다. 북한에서도 그래요, 선생님들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면 애들은 선생이라는 건 저런 재미에 살겠구나, 그 애들이 자라면 선생을 하면? 똑같이 행동하게죠. 제가 앞에서 말했던 가난하고 없는 아이들을 배려하던 선생. 제가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선생님, 스승이 될 기회가 있다면 정말 그 선생님처럼 하고 싶어요.

진행자 : 그 스승을 만난 사람은 다음에 또 그런 스승을 닮고 싶어 할 것이고...

문성휘 : 아... 그 때 그 선생이 안타까워서 책상을 교편대로 두드렸는데 하필이면 제가 맨 앞에 앉아있 다가 부러진 교편대에 수지로 만든 제 필갑이 박살이 났어요.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음날 수업에 선생님이 내 책상 앞에... 당시에는 엄청 인기 있었지만 지금 보면 완전 눅거리죠. (웃음)

박소연 : 지남철 붙이는 거?

문성휘 : 아니 그냥 깡통으로 된 거. 그 필갑을 가져다주는데... 아이 참! 선생님은...! 그냥 플라스틱을 사주고 몇 달에 한번 씩 필갑을 바꿔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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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에 대한 두 가지 격언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은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지인들을 많이 갖는 일이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경영의 신이라는 칭송을 받는 일본의 기업인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한 말인데요. 나는 하늘로부터 3가지 은혜를 받았다. 가난한 것, 허약한 것, 못 배운 것. 가난했기에 부지런해졌고 허약한 몸 때문에 건강에 유의했고 초등학교 중퇴 학력 때문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스승으로 여겨 배우는데 애썼다.

우리는 누구의 제자이자 동시에 스승이며 좋은 스승은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진행에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