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이 6년 차입니다. 도착한 다음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저는 사고라는 건, 남한에 살면서는 저와 먼 일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소연 씨가 얼마 전에 승강기에 갇히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단 8분, 그러나 본인에게는 8시간, 80시간 같은 시간이었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우리들이 겪은 사건, 사고에 대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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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휘 : 북한 사람들 다 그렇게 알고 살거든요.
박소연 : 그러니까 남조선에는 이런 보험들이 많고 그것이 돈을 빨아내기 위한 자본가들의 수단이다. 그래서 내가 회사가 다 망하게 됐으면 일부러 산에 불을 놔서 보험금을 받고 아까 문 기자 말대로 잘못해서 운전하다 사람을 치면 그 사람을 벌어 먹이기 싫어서 차를 아예 거꾸로 돌려서 그 사람을 깔아 뭉겨 죽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징역 갔다오면 모든 것이 끝이다...
진행자 : 남한 사회에서 평생 산 저도 잘 들어 못 본 사례를 어디서 찾았을까요...
박소연 : 그래서 저희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진짜 무섭다. 사람을 살려야하는데 어떻게 산 사람까지 죽이냐. 이런 얘기 때문에 정말 부정적으로 생각했어요.
진행자 : 그럴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사실 남한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한 상황이고 이미 자동차 보험을 가입해놓았다면, 자동차 보험에서 병원비 같은 걸 보상해주고요. 사고 낸 사람은 보험회사에 보험료를 다달이 납부하면 됩니다. 또 제가 운전을 하다가 인명 사고를 크게 냈으면 내가 그 사람의 치료비 등을 대주었더라도 처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산재 보험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산재 보험이라는 것은 산업 현장의 재해, 말하자면 일터에서 내가 일하다 다쳤을 때를 대비해 들어놓는 보험입니다.
문성휘 : 아 그건 의미는 같아요. 북한에서도 그걸 산재 보험이라고 부릅니다. 북한의 경우 의무적으로 노임에서 가져가는데 다쳐서 보험금을 받으면 딱 낸 만큼만 되돌려줍니다. 그런 걸 보험의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것도 80년대 얘기지 90년대에는 그냥 떼우는 돈이다 생각합니다.
진행자 : 지금은 어떻습니까?
박소연 : 노임을 줘야 보험료도 떼어가죠... 그마저도 없습니다.
진행자 : 그런데 얘기하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어느 국가든 사고가 없는 국가는 없잖아요? 사고는 어디서나 나죠. 그런데 그런 사고가 그냥 조용히 묻히면 그것에 대한 반성이 없어서 보완되지 않아요. 반면에 사람들이 사고에 대해 많이 알고,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고 여론이 조성되면 국가에서는 어쩔 수 없더라도 이것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사고가 재발하지 않게 하는 대책과 안전망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박소연 : 아, 정말 완전히 공감합니다. 저희 회사 엘리베이터가 좀 늘어지는 편이에요. 사람들이 불만을 많이 호소했는데 주인이 엘리베이터를 바꾸지 않더라고요. 그 찰나에 제가 갇히는 사고를 당했고요. 제가 그 상황에서도 너무 화가 나서 휴대 전화를 꺼내서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남한에서 와서 제가 그래도 좀 많이 깨인 것이... 만약에 내가 여기서 나갔는데 건물 관리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사과를 안 하고 말을 히뜩 뒤집고 그러면 내가 이 동영상을 갖고 대형 언론이랑 방송국에 달려가겠다, 벌을 받게 하겠다! 그런데 제가 무사히 나오고 나서 건물측이 상상외로 사죄하고 병원비도 다 대주고 하니까... 동영상은 지웠죠 뭐. (웃음) 그렇지만 당시에는 정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걸 찍어서 세상에 공개해서 이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빨리 고치게 해야겠다!
진행자 : 하지만 관리 사무소에 제대로 고치라고 말씀을 하셔야죠.
박소연 : 그럼요. 가서 한바탕 고았습니다. 그래, 내가 죽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는가! 직원이 가만히 듣더니 혹시 교포분이시냐고 묻더라고요. 교포는 무슨 교포! 대한민국 사람이지... 이래 가며 고았는데 제가 탈북자인지 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아, 근데 진짜 이 기자님이 그 말 하니까 생각났는데 저 정말 폭로시킬라고 했다는데요...
진행자 : 가만있으면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얘기를 해야 합니다. 가만있으면 발전이 없어요.
진행자 : 남한도 대형 사고가 그 동안 많았습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문성휘 : 맞아요. 한국은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기자들이 달려가고 아니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고. 이런 내용이 다 인터넷과 방송에 뜨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은 언론이 통제 되니까 애초에 그걸 보고도...
박소연 : 맞아요.
문성휘 : 1988년에 평양에서 충성의 다리를 건설하다가 도중에 붕괴됐거든요. 통째로 붕괴돼서... 당시 평양시 5만 세대 건설하면서 사고가 났는데요. 군인들이 많이 사망했죠. 사망자 150명이 넘고 부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 북한도 그런 사고가 많은데 문제는 일체 보도를 안 한다는 거죠. 그리고 1992년도에는 김일성 80돌 생일이었던가요? 3월에 기차 사고가 났는데 몇 천 명이 죽었습니다.
박소연 : 강바닥으로 기차 빵통(열차의 화물칸)이 떨어져서... 여덟 빵통인가 열두 빵통인가 떨어졌다고...
문성휘 : 네, 맞아요. 지금도 열차를 타고 백암령이라는 곳을 지나가면서 보면 그 때 사고난 빵통들이 아직도 건지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진행자 : 기차가 다리 아래로 추락한 사고인가요?
박소연 : 기차가 다리에 들어섰는데 앞에가 꼬꾸라지니까 뒤에 빵통들이 따라서 떨어진 것이죠. 그 사건이 정말 유명했어요. 북한은 그걸 공개 안 했는데 중국 위성이 찍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 영화를 보려고 맨날 중국 통로를 봤는데 거기서 보도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당시 북한은 아예 보도하지 않았고요.
문성휘 : 그 때 열차가 굉장히 복잡했다고 해요.
박소연 : 정말 기가 차게 죽었어요.
문성휘 : 그래서 거기서 정말 몇 천 명이 죽었거든요.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 각도, 시, 군에 관을 몇 십 개씩 짜서 보내라 했었고... 그리고 92년이면 고난의 행군 이전이고 이런 사회가 오리라 꿈도 못 꿀 때인데 그런 사고 있었죠.
진행자 : 소연 씨는 중국 텔레비전을 통해 봤다고 했는데 문 기자는 사고 소식을 어떻게 아셨어요?
문성휘 : 소문이죠. 그리고 그 때는 전화를 사람이 교환해 줬습니다. 92년 지나서 케이블을 놓았는데... 교환수들이 너무 놀랐다고 그렇게 전화가 한꺼번에 많이 몰린 것은 처음이었다고. 그저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어디서 어느 차가 사고 났다는 걸 모르니까 외지에 나갔다면 다 확인을 하는 거죠. 체신소 전화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던 것도 기억이 나고요.
박소연 : 저희 학급 아이도 하나 죽었어요. 이모네 집에 놀러갔는데 얘가 소식도 없고 오지도 않고, 나중에 보니 그 차에 탔었다고요. 시체를 찾지는 못 했다고 들었어요. 왜냐면... 당시 얼마나 참혹했냐면 팔, 다리 제대로 붙은 사람이 없었답니다. 당시 강은 말라 있었고 바닥이 돌바닥이었는데 그 아래로 기차 빵통이 바로 떨어졌으니... 팔 다리가 제대로 붙은 사람은 관 안에 넣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집단 매장을 했는데요. 당시 친구는 짐에서 출생증이 발견이 됐었어요. 당시 북한은 미성년자가 여행할 때는 출생증을 가지고 다녔어야 했거든요. 그 얘 이름은 잊혀 지지도 않아요. 그 얘 엄마는 우리들만 지나가면 막 뛰어와서 얼굴을 막 문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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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령 구간은 워낙 기차 사고가 여러번 나기도 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혹시 청취자 여러분, 92년에 났던 이 사고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당시 북한 당국은 그 철도에 탔던 철도 보안원이 안기부 간첩이고 그가 레일의 못을 빼서 사고를 일으켰다는 소문을 냈는데요. 진실은 무엇일까요?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도 죽은 자식이 돌아오지 않고 원통함도 풀길이 없지만 적어도 또 다른 비극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몫일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 나머지 얘기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였습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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