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그 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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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친구 애들이랑 놀아주고 짐이나 봐주겠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미끄럼틀이 얼마나 좋은지 10번도 넘게 탔네요...

소연 씨가 친구 가족과 수영장 다녀온 얘기를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문 기자도 올해는 계곡에서 반두로 물고기도 잡고 물놀이다운 물놀이도 했다는데... 입추도 지났으니 이제 지난여름 얘기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여름과 물 하면 이런 즐거운 추억만 있는 건 아니죠. 문 기자는 여름에 강을 건넜고 소연 씨가 이중 영웅을 넘어 삼중 영웅 칭호를 얻어 들은 것도 여름입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그 여름, 그 강 두 번 째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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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휘 : 저도 여름에 강을 건넜습니다. 굉장히 넓은 강이었는데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사람이 급하면 구명대를 잡는 게 아니라 놓아 버린다는 것을요. 다행히 누가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우리가 강을 건너고 난 뒤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다 앉아서 끌어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정말 물만 건너면 안전한 것이었는데 잡힐 것도, 더 이상 피해 다닐 것도 아닌데... 너무 힘들었던 것이죠.

진행자 : 배를 타지 않고 걸어서 건너셨어요?

문성휘 : 네, 거기서 사람도 안 살고요. 그리고 멀리서 봤을 때는 부드러운 잔디밭이고 물이 사이에 흐르는 것 같았는데 그 사이에 진펄이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발을 잘 못 디디면 다시는 못 나올 지도 모르는데 얼마나 깊은지 찔러볼 막대기도, 손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공안에 잡히면 안 되니까 그래도 무작정 앞으로 나갔죠. 그러고는 뭍이 시작됐는데... 생각 외로 강이 넓고 물살이 쎘어요. 그때 정말 무서웠던 기억이 나네요.

진행자 : 다 건넌 다음, 부둥켜안고 울기만 했네요.

문성휘 : 정말 소리 내서 울었다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박소연 : 탈출할 때도 이렇게 물에 목숨을 거는데 밀수할 때도 그렇습니다. 저도 밀수장사를 했는데 한번 죽을 뻔 한 적이 있어요. 장마철에 물이 불어나면 저쪽에서 배를 띄우지 않고 줄 끝에 무거운 추를 달아 북한쪽까지 던집니다. 그럼 거기다가 구리, 늄 같은 물건을 마대 자루에 담아 달아 보내죠. 근데 그쪽에서 잡아당기다가 걸렸어요. 저쪽에서 바위 걸렸다, 바위 걸렸다 그래요. 하필 제 물건이었습니다. 앞으로 몇 걸음만 걸으면 될 것 같은 거리였어요. 그 때 제가 생각한 건 내가 죽으면 자식은 어쩌나... 부모보다도 자식이 걱정이었죠. 근데 누구도 안 들어가요. 어쩔 수 없죠, 내 전 재산이 걸렸는데요. 그걸 팔아서 다시 물건을 해야 또 살 수 있는데... 제가 무슨 힘에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강에 들어가서 바위에 걸린 끈을 풀었어요. 근데 돌아오다가 떠내려가서 수비대에 잡혔습니다. (웃음) 이제 뭐 물건을 보냈으니 잡혀도 내 배 째라죠. 손은 안 묶더라고요. 이 안까이 뛰어야 어디로 뛰겠냐... 그랬겠죠.

진행자 : 그럼 큰 일 나는 거 아닙니까?

박소연 : 너무 추워서 덜덜 떨리고 이빨도 부딪히고... 물을 뚝뚝 떨구며 병실에 들어섰더니 소대장이 이게 뭐이가? 그래요. 기왕이면 몸을 좀 녹이고 싶어서 어디 좀 들어갈 때 없냐니까 빨리 아줌마 집 가오... 그러더라고요. (웃음) 우리 북한 사람들은, 아까 문 기자 얘기에 좀 울컥했어요. 그 탈북 할 때.... 저는 겨울에 건넜지만 3월이어서 낮에는 물이 녹고 밤에는 얼어 버리니까 물 위에 또 물이 흐르는 그런 상태였어요. 중국 사람이 저를 훌 안아서 강을 건너는데 그 발소리가 저버덕 저버덕... 얕을 물을 밟고 건너는 그 발자국 소리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북한을 건너오면서 들은 소리도 물소리고, 그 다음엔 악어 강을 건넜고. 그래서 저는 물에 대해서는 아픈 추억이 많습니다.

진행자 : 그렇습니다... 두 분 다 강을 건너오신 분들인데 그걸 제가 잊고 있었네요. 수영장이나 물 얘기 하면 여름에 관련된 신나는 일화를 기대했는데...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는 군요.

문성휘 : 산골에서 살던 사람들은 다 물이 무서운 줄 압니다. 장마가 지면 밀수를 당분간 안 하죠. 물골이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그 전에 쉽게 건널 수 있었던 곳이 막 키를 훌쩍 넘어버리는데 거기다가 배낭에 구리나 철 같은 것을 넣고 건너다가는 죽는 거죠.

진행자 : 문 기자는 북에서 중국으로 강을 언제 건너셨나요?

문성휘 : 여름이에요. 물은 많지 않았는데 끔찍했어요. 밤에 물이라는 게 얼마나 섬뜩한지 상상을 못 합니다. 더욱이나 며칠 눅눅하면 밤에 강 위로 안개가 끼는 때가 있습니다. 안개 낀 강은 끝이 안 보입니다. 거기를 들어가야 하니 끔찍하죠... 누구도 상상 못 할 겁니다.

진행자 : 그야말로 목숨 걸어야 들어갈 수 있겠어요.

문성휘 : 경비대랑 다 약속을 해놓았으니 안 들어갈 순 없어요. 아마 지금이라면, 안개가 자욱이 껴서 달이 어스름 하게 보이는 강가에서... 참 멋있는 풍경이다 할 수 있겠는데 그건 눈으로 보는 때고 거길 들어간다는 건 얘기가 다르죠.

박소연 : 밤물이 정말 무섭죠. 저도 그 물에서 2시간 서 있은 적이 있어요. 그때 국경 여단에서 검열이 심한 때였는데 우리 담당 구역 군부대 애들은 돈을 벌어야겠으니 밤에 물건을 넘기라고 하더라고요. 카바비를 물건 하나당 만원, 이렇게 받거든요. 그래서 그날 밤 물건을 넘기려고 풀숲에 잠복을 했죠. 저 말고는 다른 사람들은 다 남자였고요. 저는 혼자였으니 제 물건은 제가 했습니다. 근데 일이 안 되려고 했는지 국경 여단 간부들이 들이 닥쳐요. 그러니까 경비대가 우리를 버리고 달아난 겁니다. (웃음)

문성휘 : 어이구야...(웃음)

박소연 : 문 기자는 아시겠지만 강엔 사람들이 내려갈 수 있는 공통 층계를 만들어 놓아서 담벼락이 있어요. 밤에 몽땅 까만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려고 귀신처럼 머리를 풀어서 입에 물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 둑 아래서 대기하고 있는데 중국 사람은 안 오고 보니까 경비대 얘들은 없어, 꼭대기서 전지불이 휙휙 비추며 가고요. 앗따, 떼었구나. 야야야 일단 담벼락에 붙어라. 아마 개구리면 그렇게 못 붙었을 거예요. 마대를 물에 넣고 그 끈은 손에 쥐고 2시간 넘게 버텼습니다... 위에선 어떤 인민군대가 오줌도 싸더라고요... 오줌은 또 왜 그렇게 길게 싸는지... (웃음) 그냥 가고 싶었지만 이대로 가면 물이라는 게 무서워서 내 물건이 어디 있는 지 나중에 그 행방을 찾을 수가 없어요. 2시간 쯤 되니까 남자들은 더 못 견뎌요. 솔직히 제가 마지막까지 버텼습니다. 서있으면서 내내 그 생각했어요. 내가 이걸 떼우면 우리 아들이 굶고 나도 굶는다, 내가 어떻게 마련한 밑돈인데. 한 참... 있으니까 위에서 경비대가 우리 아들 이름을 불러요. 혁이야, 혁이야... 우리가 달아난 줄 알고 집으로 찾아 갔더니 없어서 다시 왔다고 하더라고요. 대답을 해야 하는데 덜덜 떨려서 정말 목소리가 여여기기기있어어.... (웃음) 그날 물건은 결국 못 넘기고 경비대가 우리 집까지 물건을 들어줬는데 저한테 그래요. 아주마이는 삼중 공화국 영웅이라고... (웃음) 정말 물에 얽힌 얘기는 무지하게 많습니다.

진행자 : 삼중 공화국 영웅이 뭔가요?

박소연 : 공화국 영웅이 두 번 되면 이중 영웅이라고 하거든요. 아주마이는 삼중 공화국 영웅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보다 더 낫다. 그래서 그런 칭호를 받았습니다. (웃음)

문성휘 : 그러니까 그 고생하던 역사를 다 생각하면... (웃음)

박소연 : 남한에서는 놀자고 물에 뛰어들지만 북한에선 그런 기억이 없어요.

진행자 : 그래도 물장구 치고 놀고 어죽도 쑤어먹고 그러지 않으세요?

박소연 : 범이 담배 태우던 때죠...(웃음)

문성휘 : 그건 중학교 때고. 우리 나이가 그랬다가는 미쳤다고 하죠. 수영 같은 소리 ! 아낙네들이 강에 나와서 빨래를 하는데 수영복이 없어요. 북한에선 인민군대 빤스를 입고 수영을 하는데 그걸 입고 물에 젖으면...(웃음) 여자들은 더 들어갈 수가 없죠.

박소연 : 여기는 여자 수영복도 아래위 떨어진 건 비키니, 붙은 건 원피스 그러는데 우리는 아버지 흿허연 난닝구 밑, 정 가운데를 실로 꿰맵니다. 그러면 수영복이 되는 거죠.

진행자 : 물놀이, 어죽 이런 건 정말 어릴 때 얘기고 어른이 돼서는 물 하면 고생한 기억이군요.

박소연 : 저는 평양 답사를 가서 문수 물놀이 장에 갔던 기억이 있어요. 물놀이 장이 남이나 북이나 비슷하죠. 북한이 새로 만든 물놀이 장도 잘 만들었어요. 근데 그게 전체인 것처럼 포장을 해서 그렇죠. 남한은 수영장을 갔다가 헛걸음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없어요. 가서 표를 사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북한은 그렇지 않아요. 이미 전에 표를 배포돼요. 들어가서는 남자들이 볼까봐 한쪽 구석에 모여 있다가 왔죠.

진행자 : 그것도 옛날 얘기 아닐까요?

박소연 : 그게 10년 전 얘기니까 이제 많이 개화된 것 같아요. 그리고 우정 카메라로 찍으니까 그런 것도 있을 테고요.

문성휘 : 그 물놀이가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다... 북한에서 말하는 것 중에 제일 믿지 말아야하는 말이 '누구나 다'입니다. 선전한다는 그 자체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것이죠. 미리 약속을 한 그 장소에 가서 봤다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는다는 그게 바로 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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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은 올 여름 무더위 속에 최고 10만 명이 마전 해수욕장을 찾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 중앙 티비와 선전용 북한 웹사이트에선 올 여름, 인파로 꽉 찬 평양 문수물놀이장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 북한 당국은 강을 막았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상류 전 지역에 탈북 방지용 철조망을 설치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이 소식을 보도한 신문은 소식통을 인용해 탈북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전했습니다.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막고 보여주는 것만 보아라? 그러나 보여주는 그 사진에도 항상 빈틈은 있었습니다.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죠.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