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상황에는 119 (2)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8년 차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박소연: 응급비가 엄청 나왔어요. 저 화를 냈어요. 왜 나를 가만두지 여기까지 데려와서 돈을 쓰게 하느냐. 그랬더니 여기는 사립병원이어서...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연 씨는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지난 시간에 얘기했듯이 남한에서는 각종 응급상황에 119에 전화하면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요. 소연 씨는 전국 어디에서나 24시간, 또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119가 무척 신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려 간 병원이 사립이어서 높은 진료비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하는데요. 그 뒤로 소연 씨는 탈북자들이 누릴 수 있는 의료혜택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얘기는 직접 들어보시죠.

진행자 : 119라고 하면 남한에서는 화재나 재난, 구조, 병원에 가야 할 때 달려오는 응급 차량인데요. 119를 이용해 본 적이 있으세요?

박소연 : 네, 저도 모르게 119에 실려 갔더라고요. 눈을 떠 보니 119에 실려 왔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 응급실에 갔을 때는 의식이 없는 상태라서 119 대원들이 알아서 가까운 병원으로 간 거예요. 다음날 눈을 뜨니까 링거, 북한 말로 점적을 달고 있더라고요. 아, 나는 금방 남한에 와서 기초수급자니까 다 해결되겠지 했는데 17만 원(170달러) 정도가 나왔다는 거예요. 거기가 북한식으로 말하면 개인이 운영하는, 남한 식으로 말하면 사립병원이어서 응급진료비가 엄청나게 비싼 거예요. 그래서 화를 냈어요. 그냥 두지 왜 나를 여기 데리고 와서 돈을 쓰게 만드느냐고.

그 다음부터는 아프면 그 순간에도 생각해요. 탈북자들이 가야 하는 병원이 있거든요. 아들이 다쳤을 때도 서울 보라매병원에 가달라. 보라매병원은 시립이래요. 그래서 저희 아들 엑스레이도 찍고 치료 다 받았는데도 7천 원 정도 나왔어요. 이제부터 아파도 당장 숨이 떨어질 정도가 아니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성휘 : 병원비 나온 걸 북한이탈주민후원재단에 신청해봤어요?

박소연 : 아니요. 거기에 내면 돈이 나와요?

문성휘: 네, 탈북자에 한해서 특별한 배려가 5년 동안 적용되는데, 1~2년은 탄력적으로 더 받을 수 있어요. 사립병원에 가거나 해서 병원비가 나올 경우 재단에 영수증을 보내면 그 비용의 70%를 국가가 보상해줘요. 그런 제도가 있어요.

진행자 : 사립이든 국립이든 상관없이 어떤 진료비든 간에 지원된다는 거죠?

문성휘 : 네, 저도 119에 실려 병원에 갔는데 딱히 병원에서 진단을 못 내리는 거예요. 그런데 대개 40대 중반부터 심혈관 질환들이 많이 온대요. 그래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게 손목으로 주사를 꽂으면 주사 자체가 실처럼 생겨서 심장까지 가는 거예요. 조영술이라고 하던데, 신기한 게 제가 천장에 설치된 화면으로 그게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돈이 정말 많이 나오더라고요. 거의 2백만 원(2천 달러)이 나왔어요. 하지만 저는 37만 원 밖에 안 물었어요. 북한이탈주민후원재단에 보내서 국가가 다 면제해 주고, 저는 30%만 낸 건예요.

진행자 : 굉장히 유용한 정보인데요.

문성휘 : 네, 그리고 저희 집사람은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는데 수술비가 5백만 원(5천 달러)이 나왔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물었어요. 북한이탈주민후원재단에 신청을 해서 70%가 나오고, 나머지도 만만치 않았는데, 남한에는 자선단체가 많잖아요. 제가 거기에 직접 편지를 썼어요.

구구절절 사연을 썼더니 다음날로 병원비를 지불했다고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병원비를 하나도 안 냈어요.

그때 제가 컴퓨터를 배우고 복지관에 많이 드나들다 보니까 복지관 선생님들이 여기저기 문의해보라고 알려주더라고요. 그때 감동적이었던 게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환경이 잘 갖춰져 있구나.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 한국보다 훨씬 발전한 나라도 있다지만, 내가 살아온 북한과 남한의 환경을 비교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잘 돼 있는 거죠.

진행자 : 탈북자들의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재단은 특별한 절차가 있습니까?

문성휘 : 남한에 온 지 5년 미만인 사람들만 적용이 돼요. 그리고 탈북자들은 한국에 나올 때 의료보험 1종을 가지고 나와요. 남한에서 1종은 몸이 정말 안 좋은 장애인들에게 주는 거래요. 그래서 거의 무료예요. 탈북자들은 5년 동안 직업을 갖고 정상적인 돈을 벌 때까지는 의료보험 1종이 유지돼요. 그러니까 병원비가 거의 무료죠. 그러다 직장을 갖고, 월급이 사회생활을 할 정도로 나오면 중지돼요.

진행자 : 말씀하신 것처럼 남한에서 직장을 갖게 되면 월급에서 건강보험료가 자동적으로 빠지잖아요. 그런 것들이 남한에서 5년 정도 살고 취업을 하면 탈북자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거네요.

문성휘 : 네, 남한은 직업을 가지면 꼭 4대 보험에 가입하잖아요. 일단 남한 사람들처럼 경쟁력이 생겼다, 내가 생활수준이 되는 월급을 받는다고 하면 지원이 끊깁니다.

진행자 : 그리고 제가 기사를 검색해봤더니 서울의료원 같은 경우 일정 소득이 있더라도 외래나 입원 같은 경우는 절반 이상을 지원한다고 해요. 탈북자들을 위해서 기존 사업 외에도 다양한 지원 사업이 마련되고 있으니까 열심히 찾아보시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연 씨만 해도 문 기자께서 말한 재단을 몰랐던 거잖아요.

박소연 : 네, 그때는 화를 내면서 그 돈을 다 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가게 되면 5년 동안은 만 원 아래를 낸다는 걸 알아요.

저번에 응급대원이 그랬어요. 보라매병원이 너무 먼데 애가 머리를 다쳤으니까 가까운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고. 그런데 제가 무조건 보라매병원에 가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알겠다고 토를 안 달더라고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북한으로 생각하면 제가 간부댁이 된 느낌이었어요. 119를 부려먹는 주제에 큰 소리를 치는 거예요. 일 전도 안 내면서(웃음).

진행자 : 사실상 조금 다쳤을 때는 모르지만 크게 다치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건강보험료를 내더라도 그 부분에서 다 충당이 되지 않고 굉장히 많은 의료비를 내야 합니다. 그래서 남한 같은 경우는 각종 암 보험이나 상해보험, 건강과 관련된 보험이 굉장히 많잖아요. 소연 씨도 지난 시간에 암보험에 들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가입하게 되셨어요?

박소연 : 남한에 오니까 내가 이 땅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니까 아프지만 않으면 살겠더라고요. 먹을 건 많은 나라니까. 그래서 갑자기 병에 걸리면 많은 돈을 쓰니까 보험에 들어야겠다 싶더라고요. 한 달에 150달러를 내더라고 갑자기 암이라도 걸리면 5천만 원(5만 달러)이 나오니까. 그래서 마음이 항상 든든해요. 남한에서 힘든 일에 부딪혀도 빠져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생겼어요. 아플 때 큰돈을 쓰면 빚을 지게 되고, 그 빚을 갚느라 일생을 허비하는데 이렇게 보험에 들면 대비할 수 있어서 항상 마음이 든든해요.

문성휘 : 저는 이제 탈북자로서의 혜택이 거의 없습니다. 남한에서 오래 살았고, 직업도 있고 하니까. 대신 보험에 많이 들어놓으니까 마음이 놓이는 거죠. 화재보험, 산재보험, 생명보험에 들어 놓으니까 내가 어떤 진단을 받고 이렇게 돈이 나왔다 하면 보험사에서 조사를 하고 그게 사실이면 돈을 지원해 주잖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연금보험 같은 건 늙어서 내가 돈을 못 벌게 될 때 일정하게 돈이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이 놓이는 거예요. 내가 사고를 당해도 돈이 나올 곳이 있고. 사실 119나 보험제도 모두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하고, 설령 돈 있는 사람이라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사회복지시스템, 편의제도가 아니에요.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개인들의 비밀보장을 위해서 모든 휴대전화에는 비밀번호가 있잖아요. 그런데 비밀번호로 잠갔을 때도 119를 비롯한 비상연락망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에요. 내 전화 배터리가 떨어졌는데 갑자기 길을 가다 쓰러진 사람을 봤다면 그 사람 휴대전화로도 얼마든지 119 등 비상연락망을 이용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어디를 가든 마음이 놓이는 세상이다.

안타까운 게 사람들이 급할 때는 119를 부르지만 평소에는 119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이 사람들의 위험부담에 비해 월급이나 이런 건 너무 적다는 비판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은 안타깝고 사회가 더 발전해서 수당을 높여주는 게 낫지 않나 싶고.

진행자 : 네, 급여가 오르는 건 당장 이뤄질 수는 없겠지만, 도움을 받았을 때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성휘 : 맞아요.

진행자 : 그리고 남한의 의료기술이 굉장히 발달했고, 의료시설도 잘 돼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손길도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 게 아닐까 합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십시오.

문성휘, 박소연 : 감사합니다(웃음).

진행자 : 사람이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는 주위에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닐까 합니다. 몸이 아플 때는 오죽할까요? 하지만 북한에서 혈혈단신 건너온 소연 씨는 이제 위급한 일이 생기면 119에 전화해서 도움을 받습니다. 도심 곳곳에 마련된 병원에서 언제든지 치료를 받고,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해 다양한 보험에도 가입했습니다.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형성돼 있는 만큼 스스로 열심히 생활하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셈이죠.

네, 소연 씨의 남한 살이, 또 어떤 얘기들이 준비돼 있을까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보시죠.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