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직장에 출근했더니 눈이 왔다고 옆자리에 앉은 선배가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서울에 눈 온 것도 아니잖아요? (웃음) 아니, 이건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눈이 왔는데 왜 마음이 설레요?
지난 15일, 단풍이 한창인 설악산에 첫 눈이 내렸습니다. 이제 겨울이 코앞이라는 얘긴데요. 첫눈 소식에 소연 씨의 심정이 복잡합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첫눈 얘깁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잘 들 지내셨습니까?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문성휘 : 벌써 설악산인가에 눈이 왔다면서요. 어휴...끔찍해.
진행자 : 첫눈이 왜 끔찍해요...
문성휘 : 저는 눈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으슬으슬해지고 별로에요. 저는 눈이 정말 싫습니다.
진행자 : 눈 많은 고장에서 오셔서 그러신 것 같네요.
문성휘 : 그런 면도 있고요. 한국에서도 겨울에 대한 별로 좋은 인상은 없습니다. (웃음) 정말 놀라운 게 남쪽은 겨울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진행자 : 남쪽엔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도 있잖아요? 스키 같은 운동이요. 눈 많이 오길 기다리는 사람도 꽤 있을 겁니다. (웃음) 문 기자님은 그냥 추운 게 싫으신 거 아니에요? 소연 씨는 어떠세요?
박소연 : 저는 15일 날에 설악에 눈이 왔다고... 직장에 출근했더니 눈이 왔다고 옆자리에 앉은 선배가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서울에 눈 온 것도 아니잖아요? (웃음) 난 너무 이상해서 선배님 눈이 오면 좋아요? 물었더니 마음이 설렌대요.... 아니, 이건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눈이 왔는데 왜 마음이 설레요?
진행자 : 소연 씨는 안 그래요?
박소연 : 예전엔 그랬죠. 설레기 보단 기분 좋았어요. 우리 무산은 지대가 높아요. 첫눈도 땅바닥에 좀 깔릴 정도로 옵니다. 어린 시절엔 동화(겨울솜신발)를 신고 뒤축 붙이고 뛰기 놀이를 해요. 그럼 길에 뜨락또르(트렉터) 바퀴자국 같은 게 죽 나는데 신나게 밟고 다녔죠. 그 때는 옆 자리의 그 선배처럼 눈이 오면 마음이 그랬었죠. 그런데 결혼을 하고 못 살고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나무 값이 오르고... 무산도 점점 추워져서 제일 추운 때는 영하 30도에요. 이젠 막 첫눈이 온다면 진짜 맞다... 문 기자 말대로 끔찍합니다. 이 겨울을 또 어찌 보내나 하는 근심이 눈처럼 쌓이죠.
문성휘 : 그래도 이젠 남한에 왔으니까 그런 근심을 툭툭 털지 않았어요...
박소연 : 맞아요. 솔직한 심정을 말하라면 남한에 와서 첫눈을 맞게 돼서 다행입니다... 남한에선 겨울에 대해 큰 근심은 별로 없더라고요. 옷이나 좀 두껍게 입자는 생각을 하지 나무를 사서 여야겠다, 김장을 해야겠다는 근심은 없더라고요.
문성휘 : 전 겨울 근심이 많습니다. 한국에 오니까 겨울이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나와서 사무실에서 글 쓰고 일하는 거 말고 휴식일이라든가 쉬는 시간에 하는 취미 생활을 얘기하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스키장 이용권을 떼서는 휴식일마다 출근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저는 가끔 탈북자 단체들을 따라 스키장을 가게 되는데 나 혼자 기다리며 방을 지킵니다. 술 마시는 날이죠. (웃음)
진행자 : 글쎄요... 겨울에 근심하는 사람이 전혀 없진 않죠. 저도 겨울이 오면 좀 걱정합니다. 일단 난방비가 여름보다 많이 나오잖아요? 여긴 도시 가스나 석유로 보일러를 돌리고 또 어떤 가정들에선 연탄난로를 놓는데 그 연료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여름보다는 가스비도 더 나오잖아요?
문성휘 : 근데 보면 그렇지도 않아요. 가스비보다 전기료가 더 높고 개인 주택들은 모르지만 탈북자들이 사는 임대 주택들은 값이 아주 저렴합니다.
진행자 : 탈북자 같은 경우엔 생활수급자로 도시 가스비, 전기료 다 할인이 되잖아요? 그리고 임대 주택은 아파트니까 층간에 서로 보온이 되고요. 중간층은 한 겨울에도 보일러 안돌려도 괜찮다고 하던데요? 단독 주택들은 틀립니다... 한 달에 연료비가 200-300달러도 더 나옵니다.
문성휘 : 아파트로 이사 가십시오! (웃음)
박소연 : 아까 문 기자님 스키 소리 했잖아요? 북한에도 마식령이던가? 스키장 세운다면서요? 그 보도 보고 아니,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아버지고 아들이고 눈, 겨울 좋아하는가 싶더라고요. 김정일 위원장도 백두의 눈보라에 백마 타고 사진 찍고 서리꽃도 좋아했어요. 다 자기들이 먹고 사는 근심이 없어서 그래요. 우리는 진짜 눈보라만 보면 싫어요. 겨울이라는 게 끔찍하고요. 스키장 돌아보고 그런 보도를 보고 내 속으로 그랬어요. 아니, 주민들은 근심이 태산처럼 쌓이겠는데 저게 누구를 위한 스키장이야...
문성휘 : 에이 그러니까 마식령 스키장이고 무식령 스키장인지... 스키장비가 남한도 비싼데 북한에서 그걸 탈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러니까 아마 중국, 한국 관광객들을 목적으로 한 것이겠죠. 또 스키장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고위층들도 이용할 수 있겠죠. 근데 제발, 북한에 뭘 좀 할 때 그 인민이라는 말 좀 떼버렸으면 좋겠어요. 그 인민, 인민... 인민들은 도무지 이용할 수 없는데 마식령 스키장에서 무슨 돈으로 인민들이 스키를 탑니까? 인민이 입버릇인 것 같아요. 그 양반들 말하는 인민이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겠는데 분명한 건 그들이 말하는 인민은 북한의 일반 대중은 아니라는 거죠. 저들만의 몇몇을 '인민'이라고 이름 지어놓은 것 같습니다.
진행자 : 밖에서도 북한 스키장 건설 보도를 보면 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남쪽조차 스키가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그런 취미가 아니잖아요...
문성휘 : 맞아요. 그래서 저, 마식령 스키장 보도를 보고 남한 스키장을 좀 봤거든요. 남쪽에 스키장이 많긴 하지만 마식령 스키장의 규모가 훨씬 더 큽니다. 근데 경제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스키장을 어느 한 곳에 지어놓으면 돈을 못 벌어요. 적당한 크기의 스키장을 필요한 곳에 지어놓아야... 아니 서울에 있는 사람이 스키를 타겠다고 강원도 끝에 어떻게 주말마다 가겠습니까? 실속 있게 지어야 하는데... 아, 정말 나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진행자 : 저는 그것보다도 인크라(리프트)도 돌려야 하고 야간에 조명도 켜야 하고요...
문성휘 : 사실 그것보다 더 한 건 인공눈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남쪽을 보면 초겨울이 오기 전에 인공눈을 만들어서 스키장을 합니다. 그게 돈이 장난이 아니래요... 그리고 3월말까지, 북한에서도 눈이 다 녹을 때까지 한국은 스키를 타잖습니까? 그게 인공눈이거든요.
진행자 : 북한은 추워서 인공눈을 안 만들어도 되나요?
문성휘 : 그걸 잘 모르겠어요. 왜냐면 마식령이면 북한에서도 제일 추운 곳입니다. 남한의 강원도처럼. 근데 강원도도 매년 눈이 많이 오진 않죠? 어떤 때는 또 눈이 좀 덜 올 때도 있고 많이 올때도 있고요. 또 남보다 좀 일찍 스키장을 열어서 사람들을 끌려면 인공눈을 꼭 만들어야 하죠. 북한도 분명 그걸 갖춰야 할 것이고 그 주변에 호텔도 여러 개 짓는다 하던데... 난 정말 그 젊은 지도자의 생각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공부했던 스위스의 스키장 같은 걸 짓고 싶은 건지... 서울 코앞에 그런 스키장이 있다면 한국도 아마 꽤나 돈 벌이를 할 겁니다. 아, '한국도'가 아니라 '한국은'이네요. 한국은 돈벌이가 될 겁니다. 분명 말할 건 북한은 아니에요... (웃음)
진행자 : 그렇지만 지금 얘기가 많이 나오니까 지켜봐야할 일이고요... 소연 씨는 북쪽에서 혹시 스키 타보셨어요?
박소연 : 어렸을 때 한번 타봤는데 다리가 자꾸 직선으로 못 가고 자꾸 다리 오그라들면서 넘어지고... 저는 별로 재밌지 않더라고요. 작년에도 같이 온 동기생들이 스키장에 간다고 사진도 올리고 그러던데 저는 북한에서 겨울에 떨었던 그 기억에 때문에 부럽다,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 잘 안 들더라고요.
문성휘 : 저도 운동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스키장에 대한 편견을 버리세요. 그렇지 않아요. 탈북자들 북한에서 스키타본 사람이 몇 명이게요... 그래도 다 여기서 스키 잘 타고요. 여기 스키장엔 초보 중의 초보가 타는 곳이 따로 있고 중급, 상급 올라갑니다.
진행자 : 근데 소연 씨는 본인이 싫어해도 아드님 때문에 가게 될걸요? (웃음)
문성휘 : 제가 보기엔 소연 씨 성격을 보면 스키 좋아할 것 같습니다. (웃음)
박소연 : 이제 계속 스키 소리만 나오는데 진짜 행복한 소리에요. 제가 첫눈 온 다음날, 하나원에서 만나서 계속 연계를 갖는, 저번에 에버랜드 데려다 주신 그 신부님께 연락을 했어요. 신부님 첫눈이 왔대요... 그러는데 신부님 목소리가 너무 어두운 거예요.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저번에 얘기한 탈북자 죽었다 그러시더라고요. 저도 그 전에 얘기는 들었거든요. 아이를 셋 데려와서 혼자 키우는 애기 엄마인데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쉼터에서 아이 둘을 봐 준데요.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몸이 아파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넘겼는데 추석 즈음에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보니 담낭암 말기라고요. 아이들이 엄마를 이렇게는 못 보낸다고 많이 울었다는데 애기 엄마가 첫눈 온 다음날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이 얘기 듣고... 가신 분께는 안 된 말이지만 그래도 여기서 죽어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북한에는 눈이 오면 땅이 얼어요. 사람 죽어서 땅 속에 묻는 것도 돈이 얼마나 드는지 모릅니다. 그게 지나가는 말 같지만 누가 겨울에 죽으면 따뜻한 날에 죽지... 그런 얘기도 합니다. 눈이 오기 전에나 가지 왜 이렇게 산 사람을 고생시키나... 없으니 그런 말도 하죠. 그 분, 좋은 나라로 가셨을 겁니다... 그래도 다행이죠. 북한에서 죽었으면 없는 살림에, 언 땅에 어찌했을까요?
문성휘 : 북쪽에는 겨울에 60 센티까지 얼어요. 근데 남쪽은 그렇게 얼어도 땅을 팔 거예요. 기계로 파잖아요? 북한은 그럴 장비도 없고요... 우리 탈북자들이 워낙 의료 제도가 허술한 북쪽에서 오다나니 웬만히 아파서는 병원도 잘 안 가고 그러니까 암 같은 걸 너무 늦게 발견하죠...
눈이 오면 제일 좋아하는 게 강아지, 그 다음은 어린아이들, 학생들, 젊은 처녀 총각들... 절대 나이 순입니다. 생활에 치이고 현실이 먼저면 눈은 그냥 추운 겨울을 더 힘들게 하고 차나 막히게 하는 골치 덩어리 이상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소복소복 내린 눈이 바꿔버린 하얀 세상, 눈이 주는 낭만을 원래부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이 우릴 변하게 한 거죠... 그러나, 세상이 바뀌면 우리도 또 변할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은 아직 눈이 반갑지 않지만 살면서 소연 씨도 눈에 설레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릴게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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