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미안해 (3)

0:00 / 0:00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남한에서 생활 5년차를 맞고 있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2012년 아들도 남한으로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북한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운동을 하면 한국에선 돈이 좀 들어요. 자본주의 사회이지 않습니까? 제가 그게 굉장히 부담이었는데 곁에서 아들을 지켜봐주시던 분들이 소문을 냈어요. 이런 학생이 있는데 도와주자... 저는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후원자가 나타났습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한 달에 5만원 씩, 약 50달러 씩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 동안 후원한다...

소연 씨 아들을 후원해주겠다고 나선 후원자는 3명이지만 소연 씨에는 천군만마보다 든든합니다. 경제적 지원보다는 마음의 응원이 더 큰 보탬인 것 같은데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세상 밖으로> 남한의 후원 문화에 대한 얘깁니다.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도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박소연 : 대북 방송하는 곳에 후원을 하는데요. 제가 한번 갈 일이 있었는데 진짜 사명감에 보수도 바라지 않고 열심히 일하시는 걸 제 눈으로 봤거든요. 그래서 큰 금액은 아니라 당당하게 말은 못 하지만 매달 후원하고 있습니다. 매달 후원해줘서 고맙다는 문자가 오는데요. 이것으로 이제 북한 인민들에게 진실을 전달하고... 매달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식상할 때도 있지만 반드시 끝까지 읽어봅니다. 내가 낸 돈이 전파가 돼서 우리 가족에게 내, 무엇이라도 알려줄 수 있겠구나 이런 긍지가 있습니다.

진행자 : 소연 씨가 하는 것처럼 방송국 같은 곳도 후원을 하기도 하고 소연 씨 아들처럼 개인을 후원하기도 하고 소년소녀 가장, 아픈 어린이들... 또 정치인이지만 정당에 후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문성휘 : 이런 것도 있습니다. 인천 상륙 작전, 연평해전... 이런 걸 만들 때 돈이 없어서 무척 애를 먹었는데 이 사람들이 클라우드 펀딩이라는 걸 해서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일종의 투자 형식으로 돈을 받아 영화를 만들고 나중에 영화가 성공하면 갚겠다는 것인데 연평해전 같은 경우엔 그냥 후원이었고요.

진행자 : 연평해전 같은 경우엔 상업성이 보장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투자자가 없으니까 후원금으로 만들었고요.

문성휘 : 지원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서면 십시일반이라고 개미 모래 한 알씩 모아서 산을 이루는 것과 같은 거죠.

진행자 : 작은 힘이 모여 만들어내는 힘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근데... 이자 북한에서 우리가 살았다면, 문 기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저는 저라는 인간을 잘 압니다. 남을 단 일 전을 주는 인간이 아닙니다. 주면 내 새끼가 굶어요.

진행자 : 그건 안 주는 것이 아니라 못 주는 것이잖습니까?

박소연 : 안 주기도 하고 못 주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제가 여기 와서 스스럼없이 기부를 하고 후원을 하고... 이 사회라는 게 있잖아요? 만약에 강압적으로 강요를 한다면 불만이 있겠지만. 이거 또 자랑이 될텐데...(웃음) 누가 아들에게 왜 축구 선수가 되고 싶냐 물어봤어요. 아들 녀석이... 얘는 말 시키지 않으면 안 하는 아이인데 갑자기 그런 얘길 해요. 축구로 성공을 해서 넓은 운동장을 사서 못 살아서 축구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아이들을 가르쳐 주고 싶다... 저에게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집에 와서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예전에 강원도 시골 선수단과 경기를 했는데 운동복을 단체로 맞춰 입고 나오질 않았더래요. 다 제각기 입고 나왔더랍니다. 같은 팀은 원래 같은 운동복을 입어야 하는데... 왜냐고 물었더니 돈이 없어서 맞추질 못 했다고. 축구화도 정말 눅은 축구화. 자기가 다음 경기가 없었으면 자기 운동화를 벗어주고 싶었다고...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이게 엄마가 교양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잖습니까? 이 사회가 아이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진행자 : 그럴 수도 있습니다. 취미로 운동하는 학생들이나 엄마들이 단체복까지 맞춰주지 않았을지도... (웃음)

박소연 : 실지로 그 친구들과 하루 밤 자면서 통성을 했대요. 너무 축구를 하고 싶어 하는데... 아들이 그 말을 하더라고요. 자기가 북한에 살 때 입고 싶은 것 못 입고, 하고 싶은 것 못하고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그 아이들을 보는데 그 때 생각이 났다고요. 자기는 좋은 축구단에 들어와서 운동복도 입고 그런 게... 제가 보기에 좀 미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애들은 한국 아이들이고, 얘는 탈북자고.

진행자 : 탈북자라고 나쁜 걸 입고 한국 애라고 좋은 걸 입고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웃음)

박소연 : 그렇긴한데... 그래도 좀 미안 합니다.

진행자 : 뭐가 미안하세요!

박소연 :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은 느낌? 한국이 이렇게 발전하는데 60-70년대를 거쳐 이 나라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렇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 걸 알면서부터 미안한 마음이 커져요.

문성휘 : 아직도 그런 얘들이 있다는 게 참 가슴 아프네요...

박소연 : 강원도 좀 깊은 산골이었다고...

문성휘 : 그 쪽은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자, 이렇게 해결합시다! 내가 내일 삼성하고 엘지에 전화해서 전화를 걸어서 메이저리그 구단을 다 해체하라, 그리고 그 아이들을 돕자!

진행자 : 문 기자, 메이저리그는 미국 야구이고... 이건 한국 축구이고....

문성휘 : 야구가 축구를 도우면 안 됩니까! 자, 이렇게 정리합시다!

진행자 : 문 기자가 또 이상하게 정리를 해주시네요. (웃음)

박소연 : 이 기자님이 말씀하신 건 대부분 개인 후원인데요. 정부에서도 후원을 해줍니다. 우리 아들도 받고 있는데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직장을 다니는데 학교가 파한 뒤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요. 그럼 나라에서 '지드림 카드'라는 걸 내줍니다. 하루에 한 끼를 밖에서 사먹을 수 있게 하루에 6천 원 씩을 지원합니다. 그 카드에 매달 1일이 되면 1달치 식사 비용이 들어오는데요. 아이는 아침은 집에서 먹고 점심은 학교에서 먹고 저녁은 '지드림 카드'를 갖고 지정 식당에서 사먹으면 됩니다. 우리 북한에서는 엄마 혼자 애를 키운다고 뭐 도와주는 게 없죠. 여기는 한 부모 가정으로 취급해서 이런 혜택들이 많습니다. 원래 부모가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한쪽 부모만 아이를 키운다고 한 부모 가정이라고 부르는데 거기다가 탈북자이고 하니까 대상이 됩니다.

문성휘 : 말도 마세요... 우리 딸애 대학에 가 있는데 문화 상품권이 많이 나오는데요. 문화 생활도 하라고 책도 사볼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게 지원이 나오고요. 보면... 부모들이 맞벌이 하는 집들, 중국 동포들 와서 한국에서 국적을 얻고 사는 분들이 주로 그런데요. 평일에는 괜찮은데 주말에도 일하면 애들을 돌볼 사람이 없고 밥도 못 챙겨주잖습니까? 그럼 이런 지원 카드가 나옵니다. 그것 가지고 편의점에 가서 쓰면 됩니다.

진행자 :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다 보니 지원 대책이 참 촘촘한데도 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게 참...

문성휘 : 그 구멍은 하나님도 못 메꿉니다!

=============================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 옛날부터 많이들 쓰는 말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남의 가난한 살림을 도와주기란 끝이 없는 일이어서 개인은 물론 나라의 힘으로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 속담은 정부의 복지 정책 한계를 변호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는데요. 한 번 생각해보죠. 개인의 가난이 온전히 개인의 탓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후원이나 기부를 통해 그 구멍들을 메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이도 힘들게 사는 사람을 보면 선뜻 나서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회가 얼마나 살기 팍팍한지... 청취자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다음 시간에 남은 얘기 이어갑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