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남한에서 생활 5년차를 맞고 있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2012년 아들도 남한으로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국수 싫어하는 사람은 북한 사람 아니죠.
남북 사람들이 맞서 다 비등비등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월등하게 북쪽 사람들이 앞서는 것이 있습니다. 국수 먹는 속도, 먹는 량, 먹는 횟수... 국수 사랑입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고향의 국수 얘깁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겨울입니다. 겨울에도 나름대로 좋은 점들이 있는데요. 우선 날이 선선해지고 겨울이 되면 냉면 집에 줄이 줄어듭니다. 여름에는 40분 정도 줄을 서야하는데 겨울에는 오래 안 기다리고 바로 먹을 수 있어요. 아, 북쪽에는 냉면이라고 따로 안 부르시나요?
문성휘 : 아뇨. 그렇진 않아요. 이것도 지방별로 차이가 있는데요. 냉면, 온면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평양 냉면, 옥류관 냉면, 쟁반 국수 이런 것은 굉장히 소문 나지 않았습니까?
박소연 : 아! 먹고 싶다. (웃음) 그래도 북한 옥류관은 40일은 기다려야 표를 받을 수 있나? 일반인들은 쉽게 못 들어간다고 해요. 40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앉았다 일어섰다 몇 번만 하면 돼죠!
진행자 : 제가 지금 냉면 얘기로 시작을 했지만 여러분 앞에서 국수 얘기 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남쪽에서 살면서 만나본 최고로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도 북쪽에서 온 평범한 사람에게 당할 수가 없습니다. (웃음) 정말 국수 좋아하고 또 잘 드세요.
문성휘 : 그렇죠. 국수 싫어하는 사람은 북한 사람 아니죠. (웃음)
진행자 : 왜 그럴까요?
박소연 : 주식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요? 하루에 무조건 한 끼 먹었고 어릴 때부터 먹어왔고. 그리고 음식이 많아야 가리겠는데 북한에서는 워낙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먹을 수 있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고 쉽고 넘어가는 음식이 국수였습니다.
문성휘 : 우선 밥을 먹자면 국도 있어야 하고 이것저것 곁들여 먹을 반찬도 있어야 하는데 국수는 육수라는 건 소금을 풀어 넣으면 되고, 파 몇 개를 썰어 넣으면 되는 것이고. 그럼 완성! 그 다음에 반찬도 김치 아니면 시금치 하나 있으면 된다...
진행자 : 간편식이라?
문성휘 : 그리고 아침에 장마당에 나갈 때 국수를 물에 푹 불거(불려) 놓으면 저녁에 와서 바오리 같은 데 건져 끓는 물에 슬쩍 데쳐 내면 다다...
진행자: 쉽게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이고요.
문성휘 : 그렇기 때문에 땔감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 여러 가지 이유가 있네요.
문성휘 : 이 것 뿐이 아니고요. 강냉이 쌀을 타게 그걸로 밥을 해먹자면 껍데기가 날아가지, 강냉이 눈알이 빠지지... 많은 것이 빠지는데요. 그걸 국수로 누르면 빠지는 것 없이 그게 다 국수가 되고 지어는 거기에 감자까리로 섞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먹다 남은 잡다한 것들은 다 말려서 넣으면 국수가 됩니다. 웬만하면 음식이 안 되는 것들도 다 말려서 가루로 내면 국수로 누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버릴 것이 없고 양을 충분하게 만들 수 있고.
진행자 : 이렇게 듣자니 진짜 고마운 국수입니다. (웃음)
박소연 : 아... 정말 완전히 공감합니다. 문 기자님과 제가 나이대가 비슷한데요. 저희 어릴 때는 배급을 줬습니다. 그런데 식량 공급소에서 아버지는 입쌀을 주는데 저희는 강냉이 쌀, 밀 쌀 같은 것을 줬는데 이게 정말 오래 삶아야지 목을 넘어가지 거칠거칠 먹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이걸 국수로 눌러 먹으면 목이 술술 넘어갔습니다. 어릴 때 그래서 어머니가 아침, 점심, 저녁 밥을 하면 울었어요. 그 거친 잡곡을 밥으로 먹다 보면 항문이 메여요. 변기가 있어서 비누를 삼각형으로 깎아 넣기도 하고.... 그래서 국수를 노래 불렀죠.
문성휘 : 북쪽은 지금은 중국산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국수를 팔아요. 분토자라고도 하고 흔히 '까면'이라고 해요.
진행자 : 남쪽은 밀가루로 뽑은 국수를 말려서 잘라 봉지에 넣어서 팝니다. 건면이라고 하고 면의 굵기에 따라 소면, 중면 이렇게 불러요. 아마 까면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여기 와서 냉면을 지금도 잘 먹는데 북한에 있을 때 저희는.... 냉면 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집들이 있습니다. 국수를 점심 식사를 함지에 이고 와서. 그 사람들은 기름에 잘게 썬 양파를 막 볶아요. 거기다가 고춧가루 두 숟가락 딱 넣고 다시 볶다가 찬물을 확 붇습니다. 그럼 빨간 고춧물이 우러나는데 그걸 식혀서 거기다 식초를 꼭 넣어요. 북한 사람들은 냉면에서 식초 냄새가 나야 좋아해요. 그걸 사다가 마음 먹은만큼 불거 먹는 거죠. 그런데 최근에는 북한도 시장 경제로 나가면서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지 않았습니까? 정말 없는 사람들은 저녁이 돼서 음식 매대에 가서 다 퍼진 국수도 사 먹는데요. 잘 사는 사람들은 냉면집에 가서 생국수라는 것을 요구합니다. 누르자마자 먹는 국수를 생국수라고 하는데요. 양이 딱 한 젓가락만큼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사는 사람들은 그걸 요구하죠.
진행자 : 제가 두 가지에 놀라는데 일단 가정마다 국수분틀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질길수록 국수가 맛있다고 말씀하는 것.
박소연 : 당연하죠. 국수를 이빨로 끊어지면 안 됩니다.
문성휘 : 그래서 북한은 국수 먹을 때 장난질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국수를 한창 먹을 때 그릇을 당기는 것이죠. 그러면 머리가 막 그릇을 따라 가야해요. 으으으... 이러면서 (웃음)
박소연 : 남한에 와서도... 아플 때가 많았는데 그 때 가장 먹고 싶고 생각나는 것이 고향 음식입니다. 집에 국수 분틀이 있었는데요. 꼭대기에 올라가서 꾹 눌러서 국수를 빼는데 마지막에 남은 것들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서 줴기를 잡아서(손으로 꼭 쥐어서) 끓는 물에 넣어요. 그게 북한으로 말하면 녹마 꼬장떡이라는 건데 그걸 간장물에 찍어 먹으면 진짜 맛있어요. 임신 했을 때도 그걸 너무 먹고 싶었는데... 남한에 와서 아프고 열이 나는데 아무것도 남한 음식이 안 맞는 겁니다. 야, 진짜 녹마 국수를 한 그릇 먹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인천 어디에서 탈북자들이 북한 식당을 하는데 거기서 녹마 국수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내려갔어요. 갔더니 그 식당 냉장고 안에 북한 사탕이 있고 손가락 과자가 있고 유엔 영양 과자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명태가 있었어요. 거기서 녹마 국수를 해달라고 해서 두 사발을 정신 없이 먹고 명태를 사 갖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나았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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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와 국수! 저는 이 두 가지 음식 하면 바로 북한을 딱 떠올리게 되는데요. 여기에 강냉이, 감자까지 더하면 북한 주민들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공기와 같은 식재료 들입니다. 혹시 그런 생각해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명태는 북한의 흥망성쇠와 그 궤를 같이하고 국수는 그 궤를 반대로 따라왔다... 다음 시간에 국수 얘기 이어갑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여기까집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함께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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