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예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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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남한에서 생활 5년차를 맞고 있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2012년 아들도 남한으로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 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국수 싫어하는 사람은 북한 사람 아니죠.

남북 사람들이 맞서 다 비등비등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월등하게 북쪽 사람들이 앞서는 것이 있습니다. 국수 먹는 속도, 먹는 량, 먹는 횟수... 국수 사랑입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고향의 국수 얘깁니다.

문성휘 : 북한에서는 가정마다 꼭 갖고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것이 3 가지 있는데 한 가지는 키, 두 번째는 절구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국수분틀인데요. 이건 집집마다 다 있습니다. 여기다가 옛날에는 빵틀이 있어야 했습니다. 8개인가 동그랗게 빵을 구어 낼 수 있는 틀인데...

박소연 : 숟가락 뒤로 해서 딱 돌구던 생각이 나네요... (웃음)

문성휘 : 러시아에서 밀가루가 많이 들어오고 배급에서 밀가루를 많이 줄 때 이야기입니다. 집집마다 다 있었는데 점차적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아마 그 빵틀 기계를 아직까지 갖고 있는 집은 대단한 집일 겁니다. 이제 정말 골동품이죠. (웃음) 세상에 참 신기한 것은 80년대 초반 전기 사정이 좋았을 때 전기다리미가 나왔고 그러면서 사라진 것이 불 다리미인데 90년대 전 기 사정이 안 좋아지자 사라졌던 불다리미가 어디서 나왔는지 다 다시 나왔습니다. 참 신기하다는 건... 그런 걸 보면 밀가루가 흔해지면 어디에서인가 또 그 빵틀 기계가 또 나올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빵틀 소리를 하니까 기억 나는데요. 제가 탈북 전에 장사가 한번 크게 망했었습니다. 빚까지 지었는데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울어요. 나는 진짜 그냥 죽고 싶은데... 압록강에서 빠져 죽고 싶은데 아이는 울고. 결국 일어났는데 쌀이 없었습니다. 시장에 가서 옥수수 가루 두 킬로를 외상으로 가져오고 두부 하는 집에 가서 비지를 한 틀 사왔습니다. 그거 한 때 개, 돼지가 먹었던 것인데... 그걸 같이 반죽해서 거기에 소다를 같이 넣었습니다. 사카린은 칼로 쪼개 넣고... 죄기가 겨우 잡아 지는 겁니다. 돈 때문에 싼 비지를 더 많이 넣어서 더 죄기가 안 잡아졌고요. 이렇게 꼬장떡을 해서 삶아 놓으니 소다 때문에 약간 빨갛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뿐 아니라 아이도 너무 잘 먹었어요. 누가 또 대주는데 쌀뜨물 꼭대기에 가재보를 치고 나무재를 놓으래요. 나무재가 물을 다 빨아들여서 밑에 하얀, 걸죽한 것만 한 3 센치 정도 남으면 거기다가 또 옥수수 가루를 넣고 소다를 넣어서 죄기 떡을 만들어 먹어가면서 그렇게 거의 한 달을 살았습니다. 정말 너무 고생했지만... 그 때 그 옥수수 가루와 비지를 섞어 만든 그 꼬장떡의 맛은 잊을 수가 없어요. 정말 맛있었고. 아이가 이제 한국에 왔잖아요? 아들이 삼계탕... 남한은 닭곰도 다 포장이 돼서 나오는데 그거 해주면 제 정신없이 먹는데 항상 그 생각이 납니다. 저 비지 꼬장떡을 먹던 아이가... 이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몇 년 전의 일도 아니에요. 너무 꿈 같은 일입니다...

진행자 : 음식이라는 게... 생명을 이어준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죠?

문성휘 : 그래요. 사람의 입이라는 게 말로도 간사하지만 입맛도 간사합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가 되니까 옛날엔 저거 어떻게 먹나 했던 것도 다 먹었습니다. 사람들, 못 먹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국수 같은 것, 까리 국수를 누르면 100 킬로씩 이렇게 눌렀는데 그것도 초기니까 그나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답답한 게 그걸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는 일이었습니다. 진짜 못 해먹을 일이에요.

박소연 : 그거 세 끼 먹으면 진짜 눈이 안 돌아가요.

문성휘 : 진짜 싫은데...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것도 없어 굶어 죽는 것이고.

박소연 : 그때는 진짜 맛으로 먹는 것도 없고 맛이 없는 게 없고 그랬습니다... 제가 남한에 와서 국수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부대찌개입니다. 남한식 와리와리! 이것저것 섞어 와글와글 끓인다해서 와리와리라고 부르는데요.

문성휘 : 와리와시라고 하기도 하고.

박소연 : 맞아요. 우리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문성휘 : 북한에서는 와리와시할 때 국수를 꼭 넣었습니다. 옥수수 국수! 음식이라고 생긴 건 다 주어 넣어 끓이는 음식인데요. 대학생들이 합숙에서 주로 해먹는데 주는 밥으로 너무 배가 고프니까. 다른 놈들이 들어오면 가라고 쫓을 수도 없으니까 방문을 꽁꽁 닫고 해먹는 음식인데요. 자택생들(집이 대학 주변에 있어서 자택에서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혹시 김치라도 한 포기 얻으면 그날은 명절입니다. (웃음) 그날은 식당에서 주는 밥도 전부 비닐 박막에 담아서 올라오고 건더기가 거의 없이 된장이 지나가기만 한 그 국도 비닐 박막에 담아 갖고 오고요. 그리고 그걸 한꺼번에 다 넣고 김치를 넣고 국수를 넣고 끓이는 거죠.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박소연 : 저는 항상 북한에 있을 때도 와리와리 좋아한 것이 국수와 같은 원리입니다다. 반찬이 필요 없어요. (웃음) 남한에서도 부대찌개가 은근히 비슷해서 가끔 잘 먹습니다.

문성휘 : 아... 정말 생각해보면 제일 웃겼던 게... 98년, 정부에서는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강행군이 시작했다고 할 때인데 아는 친구가 와리와시 먹으면 한다는 자랑이 우리한테 어느 리 관리 위원장 아들이 있는데 이 놈이 집에 갔다 오면서 계란 열 알을 갖고 왔잖아? 어... 계란 열 알!! 그걸 와리와시에 넣었는데 진짜 엄청 맛있었다고... 그 얘기를 듣자마자 갑자기 우리가 먹던 와리와시가 너무 맛이 없어지는 겁니다. 친구들한테 그 친구가 마구 욕을 얻어먹었어요. (웃음) 계란 열 알 넣은 와리와시... 얼마나 맛있었겠나... 걔가 너무 천대받아서 그것 때문에 더 기억이 나는데 계란 열 알 넣었다는 게 그렇게 자랑스럽고 우리는 또 그 때 그것 때문에 먹던 와리와시가 맛이 없어지고 걔를 얼마나 구박을 했던지... (웃음)

그래서 문 기자의 소원은 한국에 오면 계란을 큰 바게츠에 하나 가득 쌓아놓고 먹는 것이었다는데요. 문 기자뿐 아니라 탈북자들, 이런 먹을 것에 맺힌 소원 하나쯤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 남한에 와서 거의 다 이루질 못 합니다. 이유가 뭔지,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