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와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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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이 시간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6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소연 씨는 남한에 도착한 이듬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노재완: 안녕하세요?

박소연: 네, 안녕하세요.

노재완: 어제 눈이 많이 내려 거리가 매우 미끄럽죠?

박소연: 북한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이번 눈은 많이 온 게 아닙니다. 그래도 한국에 와서 제가 6년을 살면서 서울에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인 건 처음입니다.

노재완: 그래도 한 두 번은 어제처럼 눈이 많이 왔을 텐데요.

박소연: 그 전에는 눈이 와도 금방 녹았어요. 그리고 남한은 도로가 죄다 아스팔트로 되어 있다 보니까 더 빨리 녹는 것 같고요. 도로에다 제설제까지 뿌리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도로에 눈이 안 쌓이니까 좀 슬펐어요.

노재완: 그래도 이번에는 날씨가 계속 추워서 잘 녹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밤에는 녹았던 것도 다시 얼어버리고..

박소연: 운전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눈이 녹지 않으면 싫죠. 그러나 저처럼 운전을 안 하고 눈 덮인 풍경을 자주 봤던 사람들은 눈이 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노재완: 저도 여전히 쌓인 눈을 보면 기분이 좋고 그렇습니다.

박소연: 누구나 눈을 보면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노재완: 크리스마스인 성탄절이 다가오면서 곳곳에 구세군 냄비가 있더라고요. 연말이라 여기저기 돈을 쓸데가 많지만 불우이웃들을 위해 그냥 지나칠 순 없겠죠?

박소연: 저도 방금 여기로 오면서 지하철 개찰구에서 빨간 통의 구세군 자선냄비 주변에서 사람들이 기부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만 원짜리 1장을 넣고 왔습니다.

노재완: 많이 하셨네요.

박소연: 제가 많이 한 건가요?

노재완: 보통은 천 원짜리를 넣고 500원짜리 동전도 넣고 그렇습니다.

박소연: 방송 시간에 맞춰 나오느라 서둘러 오는데 7살 정도 보이는 어린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천 원을 모금함에 넣는 거예요. 저도 그걸 보니까 감동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덩달아 모금함에 돈을 넣었습니다. 아이가 천 원을 하는데 어른인 저는 만 원을 해야겠더라고요. 연말을 맞으면서 누군가를 도왔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들뜨고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노재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불우이웃을 돕는 구세군의 빨간 복장과 종소리를 보고 신기했을 것 같아요. 어땠습니까?

박소연: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빨간 옷을 입는 사람들이 손에 작은 종을 쥐고 흔들길래 많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모금함에 돈을 넣는 사람들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당국이 강제로 모금 활동을 하거든요. 남한도 연말이면 무조건 모금함 통에 돈을 넣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길에서 모금함을 보면 돈을 넣으라고 할까 봐 저는 모금함에서 먼 쪽으로 피해 다녔어요. 지금이야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금함에 정성을 담는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엔 정부가 무슨 돈을 걷는 줄 알았어요.

노재완: 아 그러니까 소연 씨는 이런 모금 활동이 정부가 강제적으로 집행하는 줄 알았군요.

박소연: 네, 저는 그 일이 있고 나서 인터넷을 이용해 구세군 자선냄비가 뭔지를 알기 위해 검색을 했고 제가 오해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또 구세군 모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 중에는 박스를 모아 돈을 마련하여 어려운 이웃을 도와준 사람도 있고 시장에서 장사해 한푼 두푼 모은 돈을 넣어 모금한 어르신도 있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기부에 관심을 갖고 3년 전부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만 원씩 기부하고 있습니다.

노재완: 그런데 사람들이 이름도 밝히지 않고 돈을 넣는다는 것을 알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박소연: 솔직히 처음엔 돈을 넣는 사람들을 보고 바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이름과 주소도 밝히지 않고 돈을 낸다는 게 이해가 안 갔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어떤 할머니가 길거리에서 종이박스를 팔아서 모은 100만 원을 모금함에 넣은 거예요. 저는 뉴스에서 그걸 보고 진짜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넣은 모금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재완: 그랬군요. 또 남한은 구세군을 비롯한 자선모금함도 있지만 연말이면 유명한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연탄 봉사를 한다는 사실도 아십니까?

박소연: 알죠. 사실 유명한 체육 선수들과 배우들이 뭐가 아쉬워서 봉사를 하겠어요. 그냥 사랑으로 하는 거죠.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건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서 유명 연예인을 비방하는 글을 써서 경찰에 잡혔는데 이 유명 연예인이 처벌을 요구하기보다는 자기와 함께 연탄 배달 봉사하는 것을 해달라고 요구해 함께 봉사했다고 합니다. 그 연예인이 그 사람과 함께 연탄 봉사를 하면서 다시는 그 사람이 죄를 짓지 않게 하고 불우이웃을 생각하게 하는.. 정말 좋은 사람인 거죠. 북한에서는 자본가를 멸시하거든요. 이기적이라고 말입니다. 당연히 남한은 서로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기부나 도움이 없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까 돈을 번 사람 중에는 이렇게 남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노재완: 남한에는 또 아이들을 돌봐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소연 씨도 돈을 버느라 아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혹시 아이 돌봄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박소연: 네 저도 받아봤습니다. 제가 직장에 나가다 보니 저녁 늦게 들어오는데 초등학교 아들은 학교 갔다 와서 갈 곳이 없어 빈집에 늘 혼자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지관에서 온 봉사자분이 아들에게 저녁도 먹이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친부모처럼 돌봐주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그분과 만나 이야기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들은 돈 한 푼도 받지 않고 공짜로 아이들을 돌봐주는 자원봉사자였던 겁니다. 그때 그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도움으로 누군가 행복한 삶을 산다면 그로 인해 갖게 되는 뿌듯함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때 저는 그런 질문을 했던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노재완: 탈북하신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남한에는 이웃 간에 정도 없고 모든 걸 돈으로 판단한다고 북한에 있을 때 많이 들었다는 겁니다.

박소연: 그런 말은 5~6살 때부터 듣습니다. 남한에는 자본가가 판을 치고 돈이 판을 치는 인간 생지옥이라고 말입니다. 진짜 이 말은 귀에 딱지가 안도록 들었습니다. 물론 다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본가에 대해선 부정적인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남한에 오니까 잘 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못사는 사람도 밥은 먹고 삽니다. 진짜 어려운 사람들은 장애인이나 정신장애를 가진 분들입니다.

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 박소연이었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