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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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이 시간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6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소연 씨는 남한에 도착한 이듬해 아들도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노재완: 안녕하세요?

박소연: 네, 안녕하세요.

노재완: 어제 성탄절에 뭐하셨어요?

박소연: 어제는 크리스마스라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들이랑 함께 밖에서 맛있는 스파게티도 먹고 새로 개봉한 영화 '강철비'를 보았습니다.

노재완: 요즘 그 영화 인기가 많더라고요.

박소연: 볼만하더라고요. 북한 정찰병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데요. 한국 최고의 영화배우 정우성이 주인공이라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습니다. 정우성 씨는 진짜 북한에서도 잘 생겨서 인기가 참 많았습니다. 저도 북한에 있을 때 정우성 씨가 나온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봤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저희는 정우성 씨를 조각, 기념물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노재완: 북한 사람들이 볼 때도 정우성 씨가 잘생겼나 보죠?

박소연: 기가 막히게 잘생겼죠. 저도 여자라서 그분이 나오는 영화는 그동안 다 챙겨봤습니다.

노재완: 그랬군요. 북한 주민들은 성탄절인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잘 아는지 궁금합니다.

박소연: '성탄절'이라는 말은 몰라도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알아요. 북한에서는 6.25전쟁을 그린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을 만들었는데요. 그 영화에서 미국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나오고 크리스마스 음악도 함께 나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크리스마스는 미국의 큰 명절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노재완: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일이죠. 이날 교회와 성당에서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고 맛있는 음식도 먹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의 축제가 됐죠.

박소연: 저도 한국에 와서야 크리스마스가 세계적인 큰 명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에 와서 보니까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엄청 기다리는 거예요. 처음에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관심도 없고 우리 탈북자들에게는 전혀 상관 없는 명절로 생각했습니다.

노재완: 그랬군요.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없어서 그런 가봐요.

박소연: 추억이 없어서도 있지만 사실 북한에서의 좋지 않은 추억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노재완: 안 좋은 추억이라는 게 뭐죠? 박소연: 북한에서 12월 24일은 김정숙 생일과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날입니다. 이렇다 보니 12월 24일은 온종일 정치행사에 충성의 노래모임에 바쁜 하루였습니다.

노재완: 공교롭게도 이날 정치 행사가 많군요.

박소연: 정치 행사는 대부분 밖에서 하는데요. 북한의 12월 날씨는 아시겠지만 영하 20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매우 춥습니다. 정치 행사에 몸이 얼어들었는데 강당에서 노래모임까지 하고 나면 온몸의 기운이 빠져 나른해지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서일까 저희는 해마다 12월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노재완: 아, 그랬군요.

박소연: 그런 안 좋은 기억이 있는지라 한국에 와서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생각이 나서요.. 그러다가 점점 크리스마스날을 맞으며 거리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을 보면서 점점 분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크리스마스 날이 다가오면 설레는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노재완: 가장 기억나는 크리스마스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박소연: 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2년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우리 집에는 올 사람이 없는데 하는 마음에 일단 문부터 열었습니다. 그런데 빨간 옷을 입은 산타할아버지와 이쁜 두 처녀가 케익과 성탄절 선물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우리가 가족이 없는 탈북자이고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인근 교회에서 특별히 선물을 준비해 온 것입니다.

노재완: 와~ 진짜 감동이었을 것 같아요. 산타할아버지 복장을 하고 집에 직접 방문해서 선물도 주고.. 당시 아들이 진짜 행복해했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산타할아버지는 선물로 아들 모자와 내 스카프를 준비해왔습니다. 추운 겨울 따뜻하게 보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고는 한동안 아들의 손을 잡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고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성탄절을 보내는 우리 가족을 많이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때 이후 저는 크리스마스가 좋은 날이 됐고 외출해서 사람들도 만나고 즐겁게 놀았죠.

노재완: 어른 입장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마냥 좋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즐거운 날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지 않습니까? 소연 씨는 어때요?

박소연: 행복한 골칫덩이라고 할까요. 크리스마스 때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니까 부모들이 자식들한테 선물 뭐 받을래 물어보잖아요. 아들이 어릴 때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커 가면서 주위 환경에 휩쓸리다 보니 성탄절만 다가오면 좋은 선물을 해달라고 대놓고 말합니다. 먹고 사는 근심이 없는 데 굳이 왜 선물을 사달라고 하냐고 했더니 아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노재완: 글쎄요. 뭐라고 했나요?

박소연: 엄마도 좀 남한 엄마들처럼 문명해졌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아들한테 거액의 돈을 떼였어요.

노재완: 아들이 선물 대신 그냥 돈으로 달라고 했군요.

박소연: 친구들과 놀이장에 가서 놀려면 입장료가 3만원 정도 드니까 5만원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5만원이면 중국 돈으로 250위안 정도 되잖아요. 이 돈이면 쌀 60kg을 살 수 있습니다. 결국 하루 만에 아들이 노느라 입쌀 60kg을 하늘에 휙 날린 셈이죠. 그래도 제가 하루에 쌀 60kg 이상을 버니까 아들을 위해서 그 돈을 쓸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않고는 제가 어떻게 그 돈을 줬겠어요.

노재완: 사춘기 때는 친구들과 노는 게 즐겁죠.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저도 이해가 갑니다. 혼자 집에 있을 엄마를 생각하지 않고 밖에서 친구들하고만 노니까 솔직히 좀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았나요?

박소연: 진짜로 서운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아들이 많이 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이 남한 아이들과 똑같이 성탄절을 즐기며 명동에도 가고 홍대거리도 마음껏 누빈다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했습니다.

노재완: 그러셨군요. 커 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씀하시니까 듣는 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 박소연이었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