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씨는 2012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남한에 와서 티비나 방송을 보면 누가 기부를 했다, 재단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던데요. 문 기자님 재단이 뭐예요?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문성휘 : 북한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아무리 어려웠다고 해도 한국처럼 개인이 마음대로 남을 도울 수 있는 기부 문화가 조성됐다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 겁니다.
진행자 : 그때도 남을 도울 만큼 형편이 좋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박소연 : 그럼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부자가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문성휘 : 근데 그 사람들이 돈을 기부할 수 없었죠. 혹시 기부라도 했다면 자기 주위에 울타리를 쳐서 사람들을 모으려고 한다, 곁가지를 치려고 한다고 가차 없이 처벌됐을 겁니다. 북한에선 그런 게 종파로 인식이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보위부, 보안서에서 추적이 붙어요. 그러니 누가 도움을 주겠어요? 괜한 짓을 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그 당시엔 살 수 있는 사람들도 북한의 특수한 사회적, 제도적 구조 때문에 많이 사망한 겁니다. 대신 골 때리는 기부들이 많죠. 요즘은 쩍하면 원호물자, 돌격대 기부 물자...
진행자 : 근데 그건 의무성이 있잖습니까?
문성휘 : 그게 기부 맞습니다. 어머니 당에서 하라고 할 때는 누구나 '자원성에 의해서', '능력껏' 이라고 말하지만 각 단체에 내려올 때는 그게 완전히 의무화됩니다. 어디 동맹에서 장갑 몇 켤레, 고추장 얼마... 결국 의무적인 게 되는 거죠.
박소연 : 뭘 내라는 그 소리를 안 들으니 살이 찌는 것 같아요. (웃음)
문성휘 : 진짜요.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박소연 : 남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인민군대 벤또를 싸라 그러면서 반찬 가짓수를 정해줘요. 그게 다 돈이잖습니까? 돈을 내서 집체적으로 여맹에서 함께 도시락을 싸는데 그러고 나면 여맹 위원장은 우리 초급단체는 충성의 마음으로 원호를 했다, 그럽니다. 충성은 무슨 충성이에요. 강제로 하고서는... 남한의 기부는 자기 마음이잖아요? 문 기자가 진짜 중심적인 얘기를 했는데요. 북한이라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 살겠어요? 돈 많은 사람도 기부를 하자고 해도 벌써 보위부가 뒤를 캡니다. 북한에선 검은 돈, 검은 돈... 하는데 그게 남한 돈이라는 얘기거든요. 돈이 많은 사람들은 안기부나 남한이랑 연계되지 않았나를 색안경을 끼고 봅니다. 걸리면 끝나는 거죠. 우리가 고난의 행군 시기에 함께 죽이라도 쑤어먹을 수 있는 그런 기반이 있었다면 3백만 아사자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진행자 : 근데 이건 좀 논리적 비약이 아닌가요? 그 당시에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도와겠죠. 기부라는 이름으로 들어지는 못했겠지만요.
박소연 : 개인, 개인들끼리는 도와줬겠죠. 그러나 한 두 사람이 도와서는 그 한계가 명백하죠. 남한처럼 기부 단체라는 것이 있어서 누군가 기부를 하면 개인들을 나눠주잖아요? 그렇게 됐으면 숱한 사람을 살릴 수 있었겠죠.
문성휘 : 기부라고는 말을 못해도 북한에서도 옆에서 조금씩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 것까지는 국가가 통제를 안 하는데 뭐가 문제냐하면요, 당장 굶어 죽게 되서 쌀 한 킬로를 갖다줬다... 이건 그 사람의 목숨을 하루 연장시키는 결과밖에 안 됩니다. 남한처럼 기부도 조직적인 행위가 돼서 단체들에서 기부를 받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잖습니까? 한국 사회처럼 기부가 어떤 사회적 문화로 자리 잡아야 좀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거죠. 북한에서는 그게 안 됩니다.
진행자 : 재단, 단체가 생기고 이런 식으로 말이죠.
문성휘 : 맞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보면 세이브 더 칠드런, 유니세프 같은 단체에선 돕는 방식이 특별합니다. 개인과 개인 간의 결연을 맺어서 내가 돕는 아이에게 편지도 보내고 연락도 하고 하면서 기부를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그런 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런 사랑은 당과 수령 밖에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선 가장 큰 사랑과 배려는 이 세상에 당과 수령만 줄 수 있습니다.
진행자 : 그래서 어느 나라이건 북한에 지원을 하면 당과 수령을 보고 줬다고 하는군요.
문성휘 : 그렇죠. 례하면 미국에서 북한 주민들을 위해 식량을 지원했다하면 미국이 장군님이 무서워서 장군님께 쌀을 가져다 바쳤다. 그러니까 미국이 지원한 쌀은 우리 장군님이 미국에서 뺏어낸 전리품이라고 선전을 합니다. 그러니까 장군님은 그 전리품을 자기 마음에 나는 사람들에게(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거죠. 북한은 모든 게 그렇게 돌아갑니다. 한때 인터넷을 달궜던 사건이 하나있죠. 세계 어려운 국가들을 돌며 눈을 수술해주는 안과의사가 몇 번의 요청 끝에 북한에 들어갔답니다. 그 사람은 진짜 많은 사람들을 수술해주고 싶었는데 북한이 허가한 날이 며칠 안 돼서 잠도 줄이며 수술을 했는데 수술 받은 환자들이 모두 눈을 뜨고는 장군님 초상화 앞에 가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고요. 근데 실은 그 의사가 몇 번 방북 신청을 했다가 거부당했는데 북쪽에서 세 번 만에 허가를 해줬다고 하고요. 그 의사는 더 수술해주고 싶었는데 못 했다는데 감사의 인사는 엉뚱한 사람이 받은 거죠. 개인 대 개인도 기부를 못 하고 가난한 북한에 외국에서 기부한 것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또 기부를 해준 사람이 칭찬을 받아야겠는데 칭찬은 고사하고 욕 안 먹으면 다행이죠.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북한에 기부를 하겠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 갈 수 있도록 명백하게 기부를 하고 싶다 하는데 북한이 그걸 거절하지 않았어요? 주겠으면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달라는 얘기거든요.
진행자 : 내가 알아 쓰겠다...
박소연 : 장군님이 알아서 하겠다는 얘기죠.
문성휘 : 세상에 누구도 그렇게 기부하지 않습니다. 저도 가끔씩 지나가다 구세군이나 이런데 돈을 넣는데 왜 내가 돈을 넣을까요? 구세군이 그걸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는 걸 알기 때문에 돈을 넣는 거죠. 구세군이 그렇게 받은 돈을 자기네들이 먹는다면 누가 돈을 기부하겠습니까? 북한도 지금 빈부격차가 엄청 커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북한 지도부도 국가를 유지하고 싶으면 기부 문화를 활성화해야합니다. 당과 수령, 여기에 모든 걸 집중하려 하지 말고요. 그늘이 없이 밝은 빛을 줘서 숱한 사람들이 굶어 죽었는지 모르겠는데 햇볕도 그늘 없이 빛을 줄 수 없습니다. 기왕 사회체제, 제도를 유지하자면 기부 문화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북쪽이 쉽게 기부 문화를 수용할 순 없을 것 같네요. 사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살 맛 나는 좋은 사회는 자기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곳이 아닐까 싶은데요. 문 기자는 그런 좋은 사회를 위해서 본인이 뭔가 하고 계신 게 있습니까?
문성휘 : 저도 가끔 기부를 하고요. 저는 세이브칠드런이라고 어린이 돕기 운동이 있어요. 주로 아프리카 염소 보내기 같은 것도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요. 국내 아동 또는 해외 아동을 선택할 수 있는데요. 저는 남한 내의 아이들의 돕고 있습니다.
진행자 : 소연 씨는요?
박소연 : 진짜 남한 사회는 좀 요지경 같아요. 생존 경쟁이 치열해서 신문 보도 같은 걸 보고 사람들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하루 사는 게 간단치 않거든요. 물론 북한보다는 조건은 훨씬 좋지만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면도 있어요. 그런데 또 이렇게 지하철이랑 이런데 보면 어린 학생들이 쟁개비(양은으로 된 작은 냄비) 같은 걸 두드리며 어려운 사람을 도와달라는데 그게 자기네들이 쓸라고 그러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진행자 : 쟁개비 두드리는 게 구세군입니다. (웃음)
박소연 : 그런 걸 보면서 문 기자말대로 살만한 세상이구나... 느끼는 거죠. 그러나 이런 기부라는 것도 문명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을 도와줄 때는 인식이 좁은 사람은 도와주지 못합니다. 내 것만 움켜쥘 줄 알죠. 내가 남을 도와주는 걸 기쁨으로,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자체가 문명하다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 어려운 얘기겠지만 북한에서도 정말 죽이라도 함께 끓여 먹을 수 있는 이런 기부의 문화가 좀 정착이 됐으면 합니다.
문성휘 : 북한 사회도 기부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투명성을 보장하는... 이젠 북한도 그런 걸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저는 참 낯섭니다. 사회주의 국가, 공산주의를 고수하는 북쪽에 자본주의 사회에 있는 저희가 빈부격차를 걱정하고 함께 나눠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현실이 말입니다. 음력 설 명절이 코 앞 입니다. 남쪽에는 이런 명절 시기가 가장 기부가 많은데요. 저도 또 방송을 듣는 분들 중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주변을 한번 돌아봐야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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